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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사회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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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8월 21일 (목) 06:54:34
최종편집 : 2008년 08월 21일 (목) 11:01:11 [조회수 : 2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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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갈등과 대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역간 갈등은 이미 해묵은 갈등의 원조가 되었으며 세대간의 갈등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문화적 갈등, 가치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생태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자연생태계가 파괴됨으로 인한 자연간의 갈등이 지진으로, 태풍으로, 자연재해로 나타나고 있듯이 사회구성원간의 갈등이 각종 범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종교간의 갈등 또한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모든 테러가 종교간의 갈등으로 비롯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단군상과 불상, 기독교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보수와 진보간의 해묵은 갈등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모든 갈등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탐욕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된 원인이 바로 탐욕이기 때문이지요.

한세대 이전만 하더라도 가족 구성원은 2대, 3대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치관의 연계와 가풍이란 가족 문화가 전달되어지고 사회공동체의 암묵적 관습, 약속들이 공유되어 사회질서가 면면이 유지되어졌습니다. 이는 법보다 우선시되는 불문율이었습니다. 공동체의 어른은 노동력은 약화되었지만 정신적인 구심점으로 질서와 규율을 바로 잡는 상징이고 구성원들은 어른을 존경하고 따르는 생태적인 사회모습이 60-70년대까지만 해도 어느 마을에서나, 동네에서나 존재했습니다. 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린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고 술을 먹어도 누구 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명절날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7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설날이 되면 동네어른들을 찾아 세배를 하는 전통이 유지되었지만 그 후로는 이런 미풍양속이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동네어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산업사회와 핵가족사회로 접어들어 사회 생태계가 파괴되어 더 이상 어른의 존재가 필요치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려는 오염된 마음들이 우리를 지배하여 무례한 동물적 삶이 마치 세련된 자본주의적 삶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런지요.

지금 신세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의 표출이 바로 왕따문화입니다. 아주 동물적인 갈등의 원형이지요. 나와 똑같이 않으면 배척해버리는 마음이 바로 동물들의 군집본능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명품소비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이유가 바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본능 욕구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심리를 이용하여 마케팅을 교묘히 이용하기도 하구요. 소수의 귀족층, 명품소비족들이 명품을 선호하니까 상대적 박탈감의 계층들도 짜가라도 좋으니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고 명품소비대열에 합류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명품대여코너도 있다니 가히 유교 체면문화를 이어받은 우리 민족의 허영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음식문화의 허영도 그렇습니다. 상다리 뿌러지게 손님 대접하는 문화는 체면문화의 대표적입니다. 천문학적 음식 쓰레기 발생과 처리비용을 보더라도 우리는 너무도 허영과 체면에 우리의 본질적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안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교수와 노가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것처럼 끼리끼리 노는 갈등의 모습이 교회안에서도 발견되어지는 것은 교회가 사회를 교정하고 정화시키는 모집단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화되는 갈등의 집단이 아닌지 성찰해봐야 하겠습니다.

갈등의 해결이 합리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제도가 미비한 우리나라는 데모와 파업공화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지역 간 ,부처 간, 노사 간, 보혁 간의 갈등은 수많은 데모와 파업, 알력을 초래하였습니다. 귀족노조로 알려진 현대자동차는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툭하면 연례행사로 파업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러한 피해는 하청회사, 비정규직만 당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손해를 입을 듯 싶으면 부자동네인 강남의 아파트 부녀회들도 데모를 합니다. 이러한 개인, 지역,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데모와 파업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 일상화된 문화로 여길 정도입니다.  주공과 토공의 통합문제로 갈등이 빚어집니다. 서로의 밥그릇이 줄어들까봐 이해당사자는 갈등의 포로가 되고 있습니다. 마치 개 밥그릇 차지하듯이 말입니다.

일상화된 갈등의 현장이 관공서 주변에서 발견되어 집니다. 시청, 구청, 도청에서 심심찮게 보게 되는 철거민 생존 보장 집회, 노점상 보호 집회, 골프장 허가관련 비리 규명 집회, FTA 에 따른 농민 생존권 보장, 농어민 부채 탕감 등등의 각종 민생현안의 집회현장을 보게 됩니다. 이는 모든 국가정책과 정부의 행정이 어느 일방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국민들의 자연스런 목소리라고 생각됩니다.

갈등을 궁극적으로는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실천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탓으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가진 자가, 권력자가, 갑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양보를 하면 가능합니다. 먹이사슬 상위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만 양보를 하면 그 하위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수혜를 입기 때문에 갈등이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사회생태적인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들의 존재가 서로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 흘러가듯이 흘러 내려가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법(法)이란 글자가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지 못하니 수많은 법으로 규제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려고만 하니 판사, 변호사조차도 법이 있는지 없는지 법조문을 봐야 알 지경입니다.

적절한 갈등은 때로는 사회를 유지하는 건전한 힘을 주는 역할도 합니다. 자연의 생태계와 우리 신체의 원리가 그러합니다. 교감신경계와 부교감신경계의 적절한 조화가 없으면 자율신경실조증이 걸려 건강이 망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기타, 바이올린들의 현악기와 피아노의 경우 적절한 텐션의 조율이 되어야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가 가능합니다. 1개의 피아노 선의 장력은 200- 300 ㎏이나 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아름다운 음이 울려지게 되는 것이지요.

정통과 이단과의 갈등, 율법과 복음의 갈등, 보수와 개혁의 선과 악의 갈등도 그렇습니다. 정통의 장력, 복음의 장력, 개혁의 장력, 선의 장력이 스스로 유지가 되이지 못할 때 갈등은 증폭되어 집니다. 스스로 바로 서지 않으면 사회의 갈등만 증폭 시키고 자신 스스로도 갈등의 피해자만 되지요. 피아노 조율을 할 때 당기는 힘은 대단합니다. 너무 당길 때는 선이 터져 버리듯이 법을 너무 강력하게 적용할 때는 사회생태계가 파괴되어지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촛불시위의 지나친 진압이 그렇습니다. 서민계층의 지나친 세무 정책이 그렇습니다.

수백개의 피아노선이 각각의 장력을 가지고 조율이 되어 졌을 때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지듯이 우리 사회의 생태적 모습도 그렇게 되어야 도덕적인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의 모든 분야가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의 사회 모습을 보면 어느 곳 하나라도 조율이 정상적으로 되어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피아노 조율하듯이 조율을 하여야 하는데 잡음이 나는 피아노를 가지고 연주를 하면서 좋아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갈등을 즐기고 있습니다. 피아노는 정기적으로 조율하지 않으면 음이 풀어지게 됩니다. 우리 사회도 정기적으로 갈등을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생태계는 파괴되어 지게 됩니다. 휼륭한 조율사는 피아노를 상태를 좋게 하듯이 정치가, 목사, 기업가들도 조율사와 같은 종합적인 안목으로 갈등을 해결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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