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 토론:동쪽,물과 불 생략)
“가자~, 어서 나와요. ”
마당에서 돗자리와 큼직한 보따리를 든 아저씨의 부름이다. 수박을 먹은 후에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는 산소로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황소대신 암소가 작은 달구지를 달고 마당에서 영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달구지는 마당을 나와 감나무 담을 끼고 개울쪽의 좁은 길로 향했다. 생각보다 감나무 담은 길게 이어져 있었으며 사랑방 뒤 편의 큰 마당에도 기와집들이 계속해서 줄지어 있는 것이다.

200m정도 가자 개울 건너편에 감나무와 목련나무 울타리에 안에 커다란 기와집이 네모 반듯하게 세워져 있었는데 아저씨는 젊은이들이 수련을 하는 곳인데 70개의 방이 거의 다 차 있다고 설명을 한다. 주로 강원도 출신의 젊은이들이 이용을 하는데 전 의원의 아이디어로 건축을 하여 개방을 하였으며 10년 전에 한명의 고시 합격자를 시작으로 날이 갈수록 합격자가 늘어난다며 아저씨는 이 섬의 제일 큰 열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일년에 고시 마지막 발표날에는 이 섬이 잔치의 날이지. 즉시 자신들이 키우던 염소와 돼지를 잡음을 시작으로 수험생들과 전 의원이 내려오면 황소를 잡아 3일 동안 잔치가 벌어져. 작년에는 4명이 합격하여 4일 동안 잔치를 했어. 내 아들도 법대를 졸업하고 지금 저 곳에서 공부하고 있어. 그 놈이 동네사람과 강원 외할아버지에게 진 신세를 갚아야 하는데…”
아저씨는 담배를 태우면서 먼 하늘을 바라 보는 것은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나 또한 슬픔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경험하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도령이 과거에 합격하여 ‘암행어사 출두요’ 하며 춘향을 구하는 환상을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아직도 갖고 있기에 고시합격은 최대의 소망인 셈이었다. 나라의 장래는 젊은이들이 어디에 자신의 청춘을 투자하는가에 따라 결정이 되는데, 고시합격이 신분이 상승하고 평생을 보장 받을 수 있으나 이기적인 집단으로 변하고 있는 슬픈 사실도 모르고 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젊음을 바쳐온 슬픔 인생도 있는 것이다. 아니 알기에 젊음을 바치는지도 모른다.

20분쯤 길을 가다 약간 가파른 언덕 아래서 달구지를 세워두고 진돗개가 앞장을 서고 키퍼, 아저씨와 강원 순으로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밍키는 꽃 사냥을 나온 개처럼 뛰어다니다 짖으면 춘원이 달려가서 꽃을 꺾어 영이에게 맡기는 것이다.

춘원의 꽃 꺾음 때문에 한시간이나 걸려 올라가니 아주 평평한 잔디밭에 아저씨와 강원은 준비를 다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모양과 크기가 똑 같은 3개의 무덤이 비석과 제단상을 갖추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강원은 시내에서 점심 때 식당 할머니가 챙겨 준 닭 갈비와 아저씨가 썰어주는 수박과 삶은 옥수수를 접시에 담아 세 군데의 제단상에 올리는 동안 춘원은 꽃들을 무덤 위에 이불같이 덮어 준다.

“강원이, 춘원이 어머니와 친구들, 자식들이 왔으니 잠시 잠을 깨고 눈을 떠 보세요. 절 받고 목이라도 추깁시다.”
아저씨는 옆집 아주머니를 부르듯 구수하면서도 애처로운 목소리로 운을 띄우며 향에 성냥불을 붙인다.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씨에 향의 연기는 이들의 소식을 빨리 전하기나 하듯 곧게 위로 올라간다. 비석을 보아서 세 분은 여자이며 같은 시각에 돌아가신 것 같았으며 아저씨가 친구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하였다.

“울지 말아라, 산 자가 무덤에 와서 울면 죽은 자가 편히 쉴 수가 없다. 시원한 막걸리 한 잔 부어 드려라.”
가운데 엄마의 무덤 앞에서 춘원은 어깨를 들썩이며 연신 눈물을 흘렸고 강원은 애써 흐르는 눈물을 입을 오물거리며 참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어릴 때 부모의 죽음을 본 아이들인데, 아이들에게는 죽음이라는 현실적 운명을 생각하기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영이는 무덤 옆에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자신은 유복자라 아버지의 얼굴도, 무덤도 모르고 자랐으나 국민학교 입학식 때 부모의 양 손을 붙잡고 오는 친구들을 봄으로써 비로서 아버지란 존재를 처음 안 것이다. 자라면서 아버지의 빈 공백을 이따금 느끼고 고독해 한 적은 있으나 이들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갑자기 빼앗기는 고통을 당해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영이는 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산다고 느꼈는데 아픈 상처를 영이보다 더 강하게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픔 없는 행복은 정말로 없는 것인가 보다.

세 군데 산소에 인사를 하는 동안 진돗개, 밍키, 키퍼는 산소를 마주보고 얌전히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었는데 진돗개는 아저씨와 이 곳을 종종 방문하는지 엄숙한 표정이고 키퍼는 진돗개를 한번씩 곁눈질을 하였으며 밍키는 울고 있는 춘원만 쳐다 보고 있었다.
예식이 다 끝난 후, 일행은 돗자리를 한 곳에 모아 자리를 만들어 제단 위의 음식을 옮겨서 먹을 준비를 하는 동안 아저씨는 보따리에서 과자와 빨간 야외용 미니전축을 꺼냈는데 미니전축은 부잣집 아이들이 소풍 때 들고 온 것을 영이는 본적이 있는 일본 제품이었다.

“이 음악은 아이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에 산소에 올 때마다 내가 꼭 잊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지. 조 선생은 이 산소에 대해 들은 것이 있어요?”
조심스럽게 바늘을 내려 놓고 미니전축의 덮개를 덮으면서 아저씨는 영이를 쳐다보며 묻기에 영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저씨는 영이에게는 사이다를 붓고 자신의 컵에는 막걸리를 붓는다.

“산소의 내력을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 오랫동안 세워두고 궁금하게 하다니, 나도 이제 노망끼가 들었나. 나는 알고 있는지 알았어. 정말 미안해요.”
아저씨는 막걸리를 천천히 마시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성냥불을 부치고는 앞의 강과 모래사장 위에 즐비하게 늘어선 이뿐 집들과 휴가를 즐기는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말문을 연다.

“3년 전의 일이지. 5월 25일의 국회의원 투표를 3일 앞두고 이 고장에 불행한 일이 발생했어. 강원 외할아버지가 전국구로 나서면서 비서관이며 사위인 춘원 아빠를 자신의 지역구인 이곳에 국회의원 후보로 내 세웠지. 전 의원은 강원도 원주 출신인데 그 곳 토박이야. 원주 사람들은 춘천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강원도의 중심지는 중앙선이 통과하는 원주인데 어느날, 도청소재지가 춘천으로 옮겨졌어. 원주와 강릉은 고려 때부터 강원도를 대표하는 도시였고 원주는 이조시대에는 관찰사와 병마절도사의 주재지야. 그래서 강릉과 원주라 하여 강원도가 된 것인데 원주가 군사도시로 춘천이 문화도시로 변하면서 힘의 논리에 있어서 밀린 것 같아. 강원도의 생명줄은 중앙선인데 중앙선이 통과하지 않는 도청소재지는 춘천 사람들도 할 말이 없어.”
컵 대신에 큰 잔에다 다시 막걸리를 붓는 아저씨는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면서도 고향의 흉을 외부인에게 털어놓는 솔직한 성격의 사람인 것 같았다.

“전 의원도 강원도 사람이지만 이 곳 사람의 눈에는 장인의 세력을 등에 업고 나선 타향사람이라는 인식과 보수적인 강원도에 여당이라 상당히 불리한 상황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고는 훤한 대낮에 일어났어. 시내 변두리에 차들의 왕래는 적으나 잘 닦여진 고갯길이 있어. 모래를 가득 실은 8t트럭이 고갯길을 막 내려 오는데, 중앙선을 넘어 서면서 쓰려지는 자전거를 보고 급하게 핸들을 꺾은 트럭이 인도를 지나 양품점 앞에서 인사하고 돌아서는 강원엄마 일행을 덮친 거야. 세 여인은 바로 즉사하고 운전수와 양품점 여주인은 큰 부상을 입는 대낮에 생벼락이 떨어진 불행한 일이었어.”

아저씨는 그날의 일이 괴로운지 또 다시 막걸리를 부어 마시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 뿜었으며 듣고 있는 영이도 모순된 이 사건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 가족들의 합의로 합동장례식을 치루기로 했기에 강원엄마와 단짝인 명옥의 막국수 집에 시신들이 모셔졌어. 어린 자식들이 상주였고 실성한 전 의원은 선거본부의 문을 닫게 하고는 시신들이 모셔진 큰 방 구석에서 죄인처럼 꿇어 앉아 잠도 자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밤중에는 관을 붙들고 통곡만 하는 것이야.

전 의원은 아내의 죽음이 자신에 대한 신의 저주라고 생각하였고 춘천 사람들은 불길한 징조라 수군거렸어. 그러나 이 사건은 자전거를 처음 타 보는 중학생과 건설공사 현장에 모래를 납품하기위해 이틀이나 잠을 자지 못하고 운전한 운전수의 무리에서 생긴 일이야. 지금 정부가 내일이면 지구가 망하는 것처럼 무리를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술에 취하면 다 취해야지 안 취한 자는 병신이 되는 꼴이야.”
영이에게 외떨어져 사는 아저씨의 술에 대한 표현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느낌으로 들리는 것은 본인도 하나의 성을 쌓아두고 세상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개념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여자들의 집념이 대단하더라고. 투표일 하루 전인 다음날 아침,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전 의원의 기호와 이름이 새겨진 붉은 띠를 두르고 침묵으로 거리를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어. 그 다음날의 마지막 합동유세장에는 선거를 포기한 전 의원은 참석하지 않았으나 소복을 입고 죽은 자들의 흘린 피를 상징하는 전 의원의 기호와 이름이 적힌 붉은 띠를 두른 명옥이가 상복을 입은 춘원을 앞 세우고 단상에 대신 올라가서 ‘남편을 위하여, 친구의 남편을 위하여, 이 고장의 발전을 위하여, 이 흰 띠가 붉은 피의 띠가 되어 저 세상으로 간 세 여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이 지지한 타향의 전 새원 후보를 춘천의 가족으로 맞이하여 슬픔에 빠져 있는 이 어린 소녀에게 자랑스러운 어머니와 정다운 이웃이었다는 기쁨을 선물 합시다.’라고 외쳤지.”

말을 하는 아저씨도 자신의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고 점심때 닭 갈비를 굽던 평범한 아주머니에게 그러한 용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영이는 깜짝 놀랐으며, 진정한 우정은 상대를 위해 희생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를 준다는 말이 와 닿았다. 삼일장으로 예정되었으나 장례 날이 투표일이고, 선거 때문에 오지 못한 춘원 외할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장지인 이곳 도토리 섬으로 옮겨 이틀을 더 지내기로 하였다고 한다.

“투표하는 날 정오에 3대의 운구차는 섬으로 가는 도중에 투표장인 국민학교에 들렀지. 전 의원은 투표를 하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움직이지 않았기에 다시 명옥이가 춘원의 손을 잡고 운구차에서 내림으로 대부분의 사람들도 투표를 할 수가 있었어. 투표를 마치고 운구차는 세 영혼이 국민학교 때 뛰어 놀던 운동장을 한바퀴 돌자 운구차 안은 울음바다가 되었어. 인생이란 이렇게 덧없는 것인가?”
아저씨는 코를 실죽거리며 손등으로 콧물을 닦고 엄지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선 무안해진 영이가 살며시 부어준 막걸리를 들이킨다.

“길 가의 시민들이 눈시울을 적시면서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주더군. 강에 도착하여 나는 세 개의 관과 6명의 어린 상주들만 싣고 나룻배를 저어 이 섬으로 건너 오는데, 나의 생애 제일 힘들고 기나긴 시간이었던 것 같아.”
아저씨는 이마에 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 쉬며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되풀이 되서는 아니 된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도착하여 섬 입구에서 기다리던 목감서원생들이 관을 받아 쥔 후에는 도청과 시민들이 지원한 10대의 모터 보트가 3일 동안을 밤낮없이 사람들을 실어 날렸어. 그날 오후 늦게 강원 외할아버지도 오셨는데 부모가 자식의 죽음을 본다는 것은 대단한 슬픔이지만 손자들을 위해 속으로 눈물을 삼키시더군. 그날 선거 개표가 밤 늦게 시작되었는데 초반부터 전 의원의 독주였으나 상가에서 개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관이 무덤을 향해 산으로 올라갈 때 강원 할아버지가 울먹이며 관들을 쓰다듬으며 ‘자네들의 소원이 성취되었으니 좋은 세상에 가서 편히 쉬라’는 말씀을 하더군. 대단한 어른이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애쓰다 죽은 자들은 목표 없이 사는 하루살이 인생에 비해 행복할 것이다.

“이 섬은 언제부터 유씨 집안과 인연을 맺게 됐나요?”
아저씨의 슬픈 추억도 덜어 드리고 사학도의 호기심이 발동한 영이는 침묵을 깨고 질문을 하였다.
“이조 말에 무관벼슬을 하던 어른이 모함에 빠져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하더군. 2년 후에 모함이 풀려 복직이 되었으나 어른은 계속 이 곳에 혼자 남아 여생을 보내다 이 곳에서 돌아가심으로 자연히 유씨 집안의 선산이 되었어. 여기서 산으로 한 시간을 올라가면 꼭대기에 정자가 있는 곳이 선산이야. 세 사람이 눈이 덮인 겨울에 떠나지 않고 생기 도는 5월에 떠났다는 사실이 불행 중에도 다행인 것은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따뜻함을 그리워 하거든.”
불행 속에도 복의 싹은 죽지 않으며 행복 속에도 저주의 싹은 자라고 있기에 인생은 끊임없이 선과 악의 연결고리에 묶여 있는 삶이다.

“할아버지, 음악 하나 틀어 주세요.”
언제 왔는지 강원이 표지에 ‘Brams’라는 영어가 적혀 있는 레코드 판을 한 장 아저씨에게 내 민다. 준비를 마친 아저씨와 영이는 무덤을 향해 돌아 앉았다.
강원은 오른손에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들고 왼쪽 가슴에는커다란 꽃을꼽고 있었고키퍼가 꽃다발을목에 걸고 옆에 서 있으며, 춘원은 유별나게 꽃 반지를 열손가락에 다 끼고있었고분홍색스카프를허리에매어 치마처럼두르고 있었으며꽃 모자를쓴 밍키가옆에서지켜 보고있었다.둘은 무덤을향해 인사를 하고 돌아 서서는무대의배우처럼아저씨와 영이에게인사를 한다.

▲ 브람스(자료사진)

영이와 아저씨는 신기한 연주와 춤에 크게 웃으며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어 주었고 텃세를 부리던 진돗개도 기가 찬지 도시 개들을 쳐다보기만 한다. 서울 집의 이층 마루에 걸린 세 개의 반원에 지휘하는 남자와 춤추는 여자 그리고 개 두 마리의 그림의 비밀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죽은 자는 침묵을 지키고 산 자는 음악에 맞추어 정확하게 자기 표현을 하며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다.(개인 종말론 토론 생략... 필명 외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