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한 장면, CJ엔터케인먼트

김지운 감독이 분명히 일을 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서양스타일을 우리 영화에 비벼 넣었으니까. 그것도 포스트모던 웨스턴 스타일을. 2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 고작 한 일이 코쟁이들의 흉내라니. 하지만 참 재밌다. 영화를 재밌자고 하는 거라면 대박이다. 감동을 주려고 하는 거라면 쪽박이다.

재미와 감동의 줄타기, 스케일과 스토리의 말 타기, 웨스턴과 이스턴의 열차 달리기, 참 그 짬뽕이 맛있다. ‘돈 놓고 돈 먹기’식의 서양흉내를 이미 여러 방면에서 따르고 있는 사회문화적 견지에서 본다면 이 시대에 나올 만한 것이 나왔다. ‘블록버스터, 블록버스터’ 하는데 이런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좋은 것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에는 눈 씻고 찾아도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이상한 놈도 없다. 미친놈들만 있다. 지도 한 장에 목숨 건 건방 떠는 미친놈들. 하지만 지도 한 장은 그저 영화적 구심점일 뿐이다. 지도 한 장이란 설정(의미 없음), 바로 그게 좋은 점이다.

지도 한 장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면 오락영화이기보다 스토리 짱인 장르물로 가야했을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은 스토리를 버리고 신으로 갔다. 김지운의 장점이며 탁월성이 여기서 덧보인다. 만약 ‘관객 1000만’이라는 대기업영화의 골을 달성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지도의 무의미성 때문일 것이다.

별 의미 없는 지도 한 장으로 이리 질긴 추격전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 넣을 수 있다는 것은 김지운만의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냥 장면을 봐라’ 김지운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하면 되는 영화다. 오락영화의 진수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통쾌한 추격전, 스릴만점 총 쏘기, 황야의 달리기, 뭐 이쯤 되면 오락영화 명함은 제대로 내민 것 아닌가.

김지운이 서부극을 찍겠다고 했다면 황야의 말 타기와 열차탈취사건을 건방 떠는 친구들을 내세워 카메라에 담겠단 얘긴데, 그 말이 영화에 죄다 들어있다. 그러니 성공이지 않은가. <놈놈놈>에서 감동이니 스토리를 찾으려고 한다면, 그 자체가 김지운만큼이나 모험적인 관객이다. <시네21>의 20자평을 보면 <놈놈놈>이 부린 호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한국영화 액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다”(이동진), “만주 벌판에서 펼치는 호쾌한 난장. 말~달~리~자!”(황진미), “정서보다 속도로 다가오는 호쾌한 황야의 액션활극”(주성철), “좋은 점, 나쁜 점, 이상한 점을 다 갖춘 액션특급열차”(문석), “눈으로만 즐기는 총천연색 버라이어티 만화경”(강병진)

나쁜 것

“200억짜리 실습 영화”(<씨네21> k3822724)라고 했던 누리꾼의 말은 잘 새겨둘만 한 말이다. 워낙 실험성이 강하다 보니 앞으로의 험로가 훤히 보인다. 이번의 대박이 앞으로의 대박도 보장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발성 대박으로만 끝난다면 그 또한 김지운을 시험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딱 한 놈만 살아남는다”(태그라인)

“돈 되는 건 뭐든 사냥하는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정우성), 최고가 아니면 참을 수 없는 마적단 두목 박창이(이병헌), 잡초 같은 생명력의 독고다이 열차털이범 윤태구(송강호)”(시놉시스)

그럴싸한 선전 문구에도 불구하고 좋은 놈과 나쁜 놈과 이상한 놈은 그 경계가 없다. 모두 시건방을 떠는 미친놈들일 뿐이다. 여기서 ‘미친놈’이라 함은 정신이상자라는 말이기 보다 ‘혼신을 다하는 자’란 뜻이다. 감독도 예외가 아니다. 미치지 않고야 이리 신랄한 스크린을 전개할 수 없다.

경계가 모호하면서도 구태여 이런 제목을 뭍인 것은 무슨 이유인가. 세르지오 레오네의 1966년작 <석양의 무법자- 좋은 놈, 나쁜 놈, 치사한 놈>을 오마주한 것이라서? 그렇게 밖에 말할 게 없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석양의 무법자>에서 김지운이 하지 못한 스토리의 탄탄한 전개, 나름대로 이유 있는 총잡이들의 추격전, 인간에 대한 탄탄한 고찰, 장면을 살리는 배경음악, 다중초점을 조화롭게 이용한 카메라기법,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반 클리프, 엘리 월러크의 적절하고 독특한 배역 등이 모두 갖춰져 있다.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라는 대스타들을 앞세웠지만 세르지오 레오네가 거둔 각 배역의 특성은 찾기가 어렵다. 눈매, 몸매, 말투, 몸짓 등등이라면 그것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배우의 역할일 뿐이다. 굳이 <석양의 무법자>와 견줄 게 아니라면 오마주 자체가 별난 실험으로 끝날 위험성이 크다.

오락영화니까 스크린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김지운식 논리는 설득의 자리가 없는 듯하다. 누가 왜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인가? 이상한 놈은 또 뭔가? 유머러스해서 이상한 놈인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목적이라면 성공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허술한 스토리를 현란한 장면에 쑤셔 박은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상한 것

정통 웨스턴이든, 만주 웨스턴 혹은 김치 웨스턴이든 왜 그들이 총질을 하고 열차와 황야를 주 무대로 말 달리기 시합을 했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독립운동이니 일본의 앞잡이 등의 설정은 했으면서도 그들을 설정자체만으로 내버려두는 용기는 또 뭔가.

서양, 만주, 러시아, 조선, 일본 등 여러 나라들을 등장시키며 다민족문화의 짬뽕을 선사하기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너무 서부극으로만 내몰지 않았는가. 실험영화라서? 그렇다면 그 실험이 실험으로만 끝나지 않겠는가.

193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 만주라는 공간적 배경, 거기에 블록버스터의 고향 미국의 옛날을 섞어야만 그럴싸했던 것인가. 의상은 서양이고, 시대는 일본강점기이며, 무대는 만주다. 이리 어울릴 수 없는 것들을 섞다 보니 짬뽕 맛은 제대로다. 짬뽕 맛을 보이기 위한 거라면 대 성공이다.

친일파 조선인 부호와 독립군이 동시에 갖고 싶어 하는 지도, 지도가 보물지도이기에? 그렇다면 매국노와 독립군은 같은 물욕의 다른 색깔일 뿐이다. 조선의 후예라면 이런 설정은 이상하기 그지없다. 먼저 장면들을 찍고 나서(그것도 스펙터클 해야만 한다) 이야기를 적절히 버무려 넣는 김지운식 귀납법은 결국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이상한 스토리를 엮게 만든다.

‘의미 없음이 바로 의미’, 김지운은 이런 식으로 영화에 모험을 건다. <놈놈놈>은 영화에 미친 감독이 미친 케릭터들을 내세워 배우나 카메라맨, 그리고 관객을 미치도록 하는 매력을 지녔다. 배우들이 쏴대는 총질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대리만족하지 않으면 안 될 영화다.

이왕에 미치는 것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서 촛불로도 못 다룬 미친 소나, 선거로도 못 다룬 미친 교육에 가상의 총질을 해대는 것은 어떨까? 이미 칸영화제에서 “스파게티 웨스턴에 뻔뻔하게 총구를 들이댄 김치 웨스턴”이라고 했던 ‘Variety’의 논평처럼 우리도 뻔뻔스런 총질을 해대면 된다.

김치라면을 먹고 헤이즐넛 커피를 마시는 맛이 바로 <놈놈놈>의 맛이다.

김학현/ 안디옥교회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