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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치 공포목회의 추억 (1)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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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7월 18일 (금) 15:45:03
최종편집 : 2008년 07월 19일 (토) 09:44:08 [조회수 : 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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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박정희 식의 밀어붙이기 즉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압축 성장 하였습니다. 국가의 사활이 수출에 걸려 있을 만큼 죽어라고 구로공단의 여공들이 수출전선의 전위대로 앞장섰습니다. 당시의 TV나 영화관의 뉴스에는 필히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현장 시찰과 수출에 관한 기사가 단골로 등장했던 수출지상주의가 기억이 납니다.

이당시 교회는 교회대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삼박자 축복이라는 대칭적 성경말씀으로 성도들을 족쳐 교회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아 구호를 외쳐댔습니다. 그 후로는 적극적 사고방식, 마인드 컨트롤, 야베스의 기도류의 구호가 유행을 하고 뒤를 이어 긍정의 힘이란 세련된 마인드로 자본주의 성도들을 길들이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이후 우리 국민들에게는 일종의 정치심리적 공황이라고 할까요. 마음에 구멍이 나 있을 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기대와 지지와 종교적 의지는 절대적이었습니다. 박정희 향수에 빠질 만큼 기성세대의 공유된 경험은 그때가 좋았었다. 라는 아득한 그리움이란게 있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비록 군사독재이었을망정 경제는 호황이었다는게 기성세대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긍정적 정서임은 분명합니다. 더군다나 서민들은 살기가 괜찮았다는 평이 많습니다.

정치학자나 야당 의원들은 달리 판단할지라도 일반국민들은 비록 독재를 했었다 하더라도 그게 다 나라 잘되고 국민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이므로 면죄부를 주는 쪽으로 자연스런 합의가 도출되는게 일반적 국민의 정서라고 생각합니다. 경제만 잘 돌아가고 서민들의 살아가는 걱정만 하지 않는다면 정치가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정치허무주의가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성장의 초석을 다진 국부라면 육영수 여사는 국모로 여길만큼 우리 국민의 절대적 숭상의 결과 두 분의 장례식 역시 옛날 왕이 서거 하신 것만큼 국민들은 땅을 두드리고 통곡을 했습니다. 이는 마치 이북의 김일성 주석이 죽었을 때 이북의 주민들이 땅을 두드리고 통곡했던 모습과 유사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정치체제는 제도적으로 사회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완전히 달랐지만 정치 메카니즘과 국민들의 의식의 속내는 유사하였습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남한의 박정희 체제와 적화통일의 이북 김일성 체제와 함께 쌍둥이 억압, 독재정치체제에 익숙하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역대대통령 중에 박정희 대통령만큼 근엄한 대통령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근엄주의 같은 카리스마로 한국정치와 사회를 무섭게 만든 장본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전체주의정치 분위기로 우리 모든 사회가 영향을 받았습니다. 교회도 목사도 바로 이런 박정희식의 통치스타일을 목회스타일로 모방하여 목회를 한 결과 오늘날의 대형교회로 세계최고의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근엄하다는 것은 일종의 무게를 잡는 것으로 즉 폼을 잡는다는 말로도 표현을 할 수 있겠습니다. 폼을 잡는 다는 것은 일종의 권력자의 자기 과시인 것 같습니다. 공포를 조장하여 알아서 기도록 하는 리더십이기도 하지요. 폼을 잡는 대표적인 권력자는 대통령, 조폭, 목사, 정치인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누구한데 지시를 하고 명령을 하는데 익숙한 조직과 집단의 리더들입니다. 이들은 대개가 합법적인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비합법적인 지시나 명령을 내리는데 더 익숙하다는데 우리는 아무런 이의를 달 지 못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공유된 정서경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누구든지 합의 되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침묵의 근엄으로 무장한 카리스마리더십을 행사하여 알아서 기라(행동하라)는 식의 암묵적인 권력행사와 추종의 시스템에 우리는 눈치로 행동하는데 익숙하여 졌습니다. 이런 공포 분위기가 군사독재 근엄정치와 맞물려 공포정치가 태어났던 것이지요. 공포정치는 중앙정보부와 같은 막강한 국가권력의 조직에서부터 교회까지 그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공포목회로 한손은 복을 한손은 저주를 담은 설교로 성도들을 자신의 목회성공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특히 부흥사화 대형교회 브랜드 목사중에 이런 유형이 많습니다. 강단에서 성도들을 자신의 충실한 똘마니로 만드는데 성경을 왜곡 인용하고 하나님의 섬김을 자신의 섬김으로 물꼬를 돌리고 이웃의 구제를 자신에게로 바치도록 하는 영적 마케팅을 하여 결국 자신의 교회와 몸집만 불어나게 하였습니다.

현재 대형교회는 거의가 군사독재시절의 정치시스템과 경제성장의 공포분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집니다. 그기에 한 수 더 떠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영적으로 더 공포분위기로 만들어서 자신의 목회성공에 이용하였던 것이지요. 마치 목사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처럼, 교회를 옮기거나 떠나면 곧 망할 것처럼 죽을 것처럼, 마른하늘에 날 벼락 을 맞을 것처럼 저주, 공포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저질적인 모습입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근본주의 공포정치가 있었다면, 교회는 성경문자를 절대시 하는 축자영감설교리를 근본주의 공포 교리로 있습니다. 국가와 교회를 떠받들게 하여 애국심과 믿음을 굳건히 하고 충성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여 자신의 통치리더십과 목회리더십에 충실한 국민과 성도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다른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목소리는 국가는 국가보안법으로 다스리고, 교회는 출교로, 이단으로 정죄하며 꼼짝을 못하게 하였습니다.

정치의 리더는 여러 사람들의 이견과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대화로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지휘자 역할을 하여야 하고 목사 역시 그런 지휘자 역할을 하여야 하는데 우리는 그간의 정치적, 종교적 경험을 통하여 알듯이 언제나 한 목소리만 나오도록 지휘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촛불시위도 그런 다양한 목소리 중에 일부입니다. 국민들은 변하고 있지만 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와 행정은 변하지 않고 있는데서 촛불시위는 계속 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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