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최종운칼럼
절망의 사회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생태적 물의 흐름, 생태적 피의 흐름, 생태적 돈의 흐름, 생태적 복음의 흐름은 불가불리의 관계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8년 07월 15일 (화) 05:26:00
최종편집 : 2008년 07월 15일 (화) 15:54:14 [조회수 : 269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사람의 건강 체크는 피를 빼내어 임상병리검사로 피의 유동성과 각종 질병체크를 한다면 우리 사회 건강의 체크는 돈의 흐름으로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체크를 하게 됩니다. 돈이 어느 곳에 많이 모여 있어 썩고 있는지, 어느 곳에 돈이 모자라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지 각종 사회병을 체크를 하면 됩니다.

돈이 최고의 이데올로기로 정착한 이 세상은 사람다운 사람은 없어지게 됩니다. 즉 인격을 갖춘 사람은 없어지고 돈이 활개를 치는 돈격을 갖춘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이세상은 탐욕의 동물 농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을 측정하는 외부적 측정기준은 이미 연봉, 소비규모, 거주지역과 아파트 평수로 사람을 판단하는데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돈이 우리의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으며 목줄을 쥐고 있다는데 하등의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안에서도 이런 기준이 보편화, 상식화 되어버렸습니다.

돈이 우리 사회의 각 구석구석을 잘 돌아 다녀 사회란 공동체에 생명을 주는 피라고 한다면 현재 우리사회를 진단해 보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병들다 못해 죽어가고 있는 말기암환자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돈이 너무 한곳에 몰려 있어 몰린 곳에는 썩어 냄새가 진동하고 없는 곳에는 영양실조가 되어 역시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세포의 덩어리가 모여 있는 것과 같이 돈이 벼락부자에게로, 수십억대 연봉을 받는 은행장에게로, 차때기의 정치헌금을 받는 정치인들에게로, 뇌물을 받는 공무원에게로, 부동산 투기를 하는 투기꾼들에게로, 대박을 터뜨리는 주식투기꾼에게로 돈은 점점 모여들고 있습니다.

물은 모여들면 모여들수록 생명의 터전이 되지만 돈은 모여들면 모여 들수록 사망의 터전이 되어버립니다. 물이 모여든 강물과 바닷물은 각종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활발이 전개되고 있는 창조현장이기도 합니다. 허지만 돈이 모여드는 인간세계는 각종 죄악들이 살고 있는 사망의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있는 죽음의 현장입니다.

이미 상위 5%의 특정인이 전체 95%의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머지 5%의 돈으로 95%의 국민이 나누어 쓰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균형적 돈의 흐름으로 지금의 20대에게는 앞으로 상위 5%만이 정규직 직장에 다닐 수 있고 나머지는 비정규직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상위 5%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는 연봉이 5000만원 이상 경우에 따라서는 수억대의 연봉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비정규직에게는 연봉 1000만원에서 1500만 원 정도의 끔찍한 전망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약육강식, 승자독식이란 경쟁룰이 지배하여 정의나 공의, 윤리 도덕 같은인문학적 가치는 내팽개쳐 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자독식게임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부의 증식을 위해 정치, 경제, 문화, 종교는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승자독식게임의 살벌한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자본의 흐름에 따라 대형교회는 인적, 물적 자본이 모이다 못해 고여 있어 썩어져 가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는 상대적인 빈약으로 영양실조로 메말라 가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 우리사회의 부정적인 생존방법으로 교회를 운영해가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돈을 벌고 왜 교회를 목회를 하며 교회를 다니고 있는지 성찰해봐야 할 것입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교회 역시 하나님 사랑의 현재화와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등등의 이유가 있습니다. 허지만 한꺼풀 그 속내를 까집어 들여다보면 우리사회의 온갖 문제가 다 내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브랜드 목사들은 그 속내를 숨기며 온갖 연기와 마술적 속임수로 성도를 속이고 있습니다.

우리사회의 부패한 사회 병리현상과 생태환경의 문제등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현장인 농업을 살리는 문제는 원초적인 우리 삶의 향방이 달려 있기 때문에 교회가 고민하고 이미 망가져 버린 농촌의 농사생태계를 복원하는데 앞장서야 하나님의 진노를 면할 것입니다. 생태문제를 고민하지 않고서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교회 역시 하나님의 창조원리인 생태문제를 성경적 차원으로 해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돈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유용한 물질에 불과 합니다. 마치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피가 유용한 물질인 것처럼 말입니다. 일단 우리 몸이 죽으면 몸의 구성성분은 자연으로 되돌아갑니다. 허지만 돈은 그대로 남아 자손에게 상속되어 집니다. 여기에서 돈의 잘못된 흐름이 시작된다고 여겨집니다.

새롭게 태어난 아기에게는 부모로부터 기본적인 생명의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이상의 과다한 조건은 오히려 아기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합니다. 졸부들과 대기업의 2, 3세들은 부모 잘 만난 덕택에 부의 상속으로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왜 대기업 회장이 자살하고, 딸이 자살하겠습니까? 바로 생명의 조건을 어긴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현대인들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을 하고 각박한 사회속에서 허덕이며 일을 하고 생존의 낭떠러지로 내몰리면서도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거의 무의식차원에서 동물적으로 승자의 트로피를 향해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사회의 단면적인 모습은 사람은 돈을 버는 동물이 아니라 돈을 버는 기계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체가 아니라 사탄의 탐욕적 형상을 닮은 돈격체로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를 어찌 하겠습니까?

수많은 의식있는 학자들이 지적하기를 우리사회는 절망의 사회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대라고 합니다. 새로운 경제살리기의 포부를 제시하고 국민들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이명박 정부는 연일 촛불집회에 함성에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왜 촛불 함성을 듣지 못하고 있는지 한심하기만 합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한 마리의 생쥐로 비하되는 것은 국가적인 수치입니다. 그건 국가리더십의 수치이기도 합니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국민의 대표입니다. 따라서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이런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유형적으로는 명박산성으로 차단하고 무형적으로는 조중동과 같은 언론플레이와 친위 어용 기독교 세력을 이용하여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일그러진 정치욕망, 일그러진 성공출세 욕망, 일그러진 목회성공욕망은 서로 관통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절망적인 가치관의 공통분모적 탐욕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사회의 종교는 자본주의라는 돈의 종교입니다. 자본주의 제도는 시장만능주의라는 교리를 내세워 돈이 개인을 사회를 구원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강요하고 세뇌하고 있는 종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은 한낱 없어질 물질임을 알아야 할 것인데 돈이 나의 건강을, 가족의 행복을, 목회성공을, 강성한 국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거짓 믿음이 충만하다 못해 넘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참여정부의 탈권위 사회에서 국민이 직접 주권을 행사하는 촛불집회가 생활화하고 있는 생동감 있는 정치적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천되고 있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특정신문들과 어용단체들의 왜곡된 정보로부터 자유로이 직접 의사를 표현 전달하는 촛불집회야 말로 진정한 국민에 의한 기본정치의 틀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역사의 현장에 한국교회는 내 몰라라 하는 식의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창조질서의 생명과 구원 받은 백성들의 밑바닥 삶의 절망적 환경을 팽개쳐서는 안 됩니다. 교회안으로 떠 안아 와야 합니다. 국민의 원성을 , 울부짖는 소리를 하나님께 고해야 합니다. 교회안에서만 우리끼리 희희낙락, 복 받으라, 믿으라 , 돈내라 , 주의 종을 섬겨라, 돈내고 장로 권사해라는 식의 자본주의식 시장만능 소꿉놀이를 하다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가 돌아가는 원리가 돈에 원리대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복음과 개혁의 원리로 돌아가야지 인간이 발명한 돈의 원리로 돌아간다면 그러한 교회는 처음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하였지만 결국은 사탄의 교회로 전락할 것이라고 예단한다면 교만하다고, 믿음이 없다고, 철 모른다고, 어떤 놈이 감이 함부로 말을 하느냐고, 겁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교회와 목사를 뭘로 보느냐고 항변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필자 개인의 신앙적 양심으로서는 그렇게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절망의 낭떠지로 가고만 있는 사회에 복음으로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촛불집회 중단을 호소하고 종교색깔이 같다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정치세력에 아부하는 것은 또 하나 역사의 죄악을 저지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는 항상 제도권에서 벗어나 있는 소외된 계층을 돌봐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득권 세력을 옹호할때부터 교회는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심장속에 있는 피가 펌프질하여 인체 각 부위로 피를 공급하지 않고 심장속에만 모여 있다면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마찬가지로 5%의 극부층들의 돈이 그 사람의 심장속에 가두어 둔다면 그 사람은 죽을 것입니다. 그 영향력으로 95% 나머지 사회 역시 죽음의 사회로 내몰아질 것입니다. 생태적 물의 흐름, 생태적 피의 흐름, 생태적 돈의 흐름, 생태적 복음의 흐름은 불가불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세상은 모든 물질의 순환이 잘되어야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존재하게 하는 기본적 조건인 것을 교회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관련기사]

최종운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4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4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1992 종교재판 무효. (125.142.176.121)
2008-07-16 05:47:11
말 잘 했도다.....
창세기 11:9절에도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다...
바벨탑을 쌓다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데도 지금까지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북한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부시는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에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성경 적으로 가르치지 않은 대형교회를 비판하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바빌론적 맘몬에서 기인한 것!!!
리플달기
5 7
나그네 (71.255.109.31)
2008-07-16 02:03:49
정해진 법에 따라 처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실패가 없는 분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것의 희망이고 소망 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자에게 보여 지는 것과
믿지 못하는 자들이 하는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촛불로 가장한 불법 난동은 정부 전복을 기도하는 용공 분자들의 세력들이며
그 배후에는 친북 좌파 들이며, 그 뒤에는 지난 두정권의 실세 들이고
그들이 하는 짓을 기뻐하는 것은 김정일이 입니다.

이렇게 교회를 비방하며 훼방하는 자들이나
철없는 애들 부축여 길바닥으로 내모는 자들을
교회에서 보면 이단자들이요, 나라에서 보면 이적자들이라.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고, 나라에는 국가의 법이 있으니
결국에는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그 법에 따라 처벌을 받지 않겠는가?
리플달기
4 8
1992 종교재판 무효. (125.142.176.121)
2008-07-15 23:39:32
긍정.
촛불집회의 진정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해봐야 소귀에 경읽기.
진정한 촛불의 의미가 수그러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촛불이 무슨 폭력을 유발하는 전초전 같이 매도당하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주의하면서
거침없이 타오르기를 소망합니다.
리플달기
3 8
But (71.228.182.251)
2008-07-15 21:01:49
좋은 말씀, 그러나 교회에 별로 기대 안 합니다
마치 러시아 혁명 전야 같습니다. 목사들 하는 것 보면....'평안하다, 평안하다'를 외쳐대던 거짓 선지자들이 난무하던 그 시대 같습니다. 지금도 심리학적 설교에 취해있는 교인들은 다 잘되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심어주는 그런 설교에 목을 메고 있는데요. 요즘 어디 예언자적 설교가 있기나 하나요.
리플달기
6 7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