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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한 기도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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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7월 01일 (화) 20:05:32
최종편집 : 2008년 07월 01일 (화) 23:24:00 [조회수 : 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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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를 염려하는 분들중에 이구동성으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황을 중세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의 가톨릭교회의 상황과 유사한 점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권처럼 목사가 권력화 되어 성도들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왜곡된 해석과 복음의 율법화, 교회의 변질, 죄성이 극대화하는 신앙의 관습의 답습은 지금도 한국교회 안에 적지 않게 재현되고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천주교는 이런 과거의 모습을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많은 반면 개신교는 오히려 과거로 역행하여 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는 중세교회와 같이 개신교회 성직자가 관료적 계급으로 구조화되고 있습니다. 만인제사장 교리는 쓰레기통에 이미 폐기되어 버린지 오래입니다. 우리는 다시금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작 기도해야 할 것은 안하고 쓰레기를 위한 기도만 하고 있으니 한심하기만 합니다.

잘 먹고 잘사는 웰빙과 부자되기 위한 탐욕을 위해 기도하는데 너무 많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무명의 목사는 목회성공과 교회권력의 제도권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즉 평 집사는 장로, 권사가 되게 해달라고, 목사는 노회장, 총회장이 되게 하달라고 기도합니다. 세속적 권력 탐닉으로 장로대통령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청와대에 기도와 찬송소리가 울려나오도록 기도를 합니다.

이제 뜻이 이루어 졌으니 어떤 식으로 기도 할까요? 교회부흥에 제도적으로 국민의 세금을 지원 해달라고 기도 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 사회가 촛불집회로 삼세판 장로대통령이 위기에 몰리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정치권력에 아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로대통령 그늘아래 떡고물 챙기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종교개혁의 신학전통이 많이 훼손되었음을 신앙의 현장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즉 신학의 변질이라고 하지요. 이미 뜻있고 양심있는 신학자들은 현재 목회의 패러다임은 잘못된 신학교육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것으로 신학의 변질로 인한 세속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목회현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인간 중심의 신학, 인간의 의와 공로사상, 거짓된 경건과 신비주의, 천국상급론, 일천번제, 야베스의 기도, 성전과 교회건물의 동일시 등으로 교리가 변질됐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병적인 증상들이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온존하고 있지만 일부 개혁을 부르짖는 개혁가들을 놓고서는 아무도 지적하지도 않고 기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목사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겠기에 꿩 잡는게 매라는 실용주의적인 목회 상술이 목회관행으로 정착이 되어 이를 밑바탕으로 하여 오늘날 일부 대형교회가 등장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면 한마디로 목사의 과다배출이 그 원인이 있습니다. 희소성의 원칙과 정신과 물질의 반비례 법칙, 엔트로피 법칙, 인플레이션 사회적 현상을 무시한 신학대학의 무분별한 배출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평신도로서 현재의 직업이 청지기로서의 삶이 은사인줄을 모르고 꼭 목사가 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는 사명이라는 왜곡된 은사의 인식 때문에 한국교회는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이지요.

권력은 제도화 하면 필히 썩어지기 마련입니다. 일인 장기 독재권력은 정치권력이든 교회권력이든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중세 교회의 타락에 눈에 띄는 것은 성직자들의 윤리적 부패라고 역사신학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직자의 과다한 배출은 성직자의 지적, 영적, 도덕적 수준을 떨어뜨리고, 성직자의 권위와 신뢰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지금 한국교회 상황을 보면 그렇습니다.

목사의 대량배출은 목사들 간의 양극화의 경제적 불균형을 가져오게 합니다. 복음을 위한 협력 관계가 아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관계를 가져오게 하고 대형교회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목사는 고액연봉으로 결국 목회의 초심을 망각하고 필자가 언급한 10호(好)에 빠지고, 망중한을 즐기며 교권을 장악하고 교계원로 행사를 하며 이권개입에 몰두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훌륭한 목사님들도 계심을 전제합니다.

한국교회 목사 숫자는 15만여 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 많은 목사들이 다 어디에 가서 목회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맡을 임지가 없이 지내는 목회 실업자가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수요공급의 시장원리에 맞추지 못한 한국교회의 목회자 과다배출은 결국 목사의 질을 떨어뜨리고 약삭빠른 목사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순수한 목사들은 생계유지 곤란으로 일반 직장으로. 택시 기사로, 노가다판으로 땀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목사들은 일반 성도들보다 기도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할 것이고 질적으로도 하나님과 더 친밀한 기도를 많이 하였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침묵으로 자신의 종들을 고생하게 만드실까요? 그건 전혀 그분의 의도와는 다른 인간들의 소꿉장난으로 놀고 있기 때문에 한심해서 외면하신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탐욕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도의 보편적 동기이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사회경제발전으로 인해 성장하였지만 복음이 설자리는 상대적으로 좁아졌다고 여겨집니다.

기도의 왜곡된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기도를 많이 하는 집사님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다소 생뚱맞은 면도 있기는 있었습니다. 순수한건지 모르지만 어느날 기도를하는 중에 이사를 하여야 한다는 응답이 떠 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디로 갈까요? 기도를 하니 오래전에 교회뒤에 있는 빌라를 교회가 사들였는데 그리로 가면 좋겠다 하는 음성이 듣겨서 다짜고짜 현재 있는 집을 팔고 담임목사에게 기도응답으로 빌라에 이사를 하겠다고 하니 담임목사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후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 중심적인 유치한 기도와 응답의 반응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기암시와 자기확신의 착각현상 현재화에 불과한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 이러한 자기암시적인 기도요청과 응답을 두고 수많은 갈등과 마찰을 빚어온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에 대한 정확한 성경적 의미를 되새겨 성숙된 기도를 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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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운 (221.153.112.28)
2008-07-04 19:26:25
저의 생각을 별도로 종합하여 기사로 올렸습니다.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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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펠리페 (121.136.214.87)
2008-07-04 13:25:24
최종운 선생님, 나그네님의 덕담(?)을 다 듣게 되시는군요.
선생님의 컬럼은 지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또 예리한 비판을 가하시면서도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시고, 보수적이면서도 결코 고루하지 않아, 선생님의 글은 항상 즐거운 맘으로 읽게 됩니다.

좀 글의 성격은 다르지만 불교계에 법정스님이 계시다면, 당당뉴스엔 최종운 선생님이 계시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듣기 거북하시다면 죄송...)

제가 아래서 댓글을 쓴 것은, 제가 워낙 선생님의 글을 무비판적으로 읽게 되다보니, 갑자기 한번 딴지걸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데, 선생님의 아래 댓글을 읽고 진짜 딴지 걸고 싶어집니다.
첫째, 알곡이 가라지보다 많다고 하셨는데요. 일반 신자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동의하겠는데, 선생님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교회의 리더십에 관한 말씀이라면 좀 동의하기 어려운데요. 주위 아무리 눈씻고 찾아 봐도 알곡이라고는...

둘쩨, 댓글을 보고 배우신다고 하셨는데요. 그 댓글이 나그네님의 댓글인가요? 그건 좀...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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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71.255.99.51)
2008-07-04 08:57:15
마음을 시원케 하는 이 한마디를 고백하고 들을수 있는시간이 이렇게도 길었든가?
마음에 와 닿는 이 한마디의 말을 하기가 왜들 그렇게 어렵읍니까?

그렇읍니다. 진정한 개혁의 의미는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이루실 일입니다.
약속하신 그분이 하신다는 그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그것이 믿음이고
믿고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이 하신 그일을 진정한 개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늘 교회 다운 교회와, 목회자 다운 목회자를 소망하며 글 올리는 것을 알면서도
긁어대는 딴지거는 소리에 맘 상하신 때도 있겠으나. 다 잘되자고 하는 뜻으로
이해 하면서 앞으로도 좋은 글과 댓글로 만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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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운 (221.153.112.28)
2008-07-04 08:14:53
글이 깨져 수정합니다
부족한 제 글을 두고 여러분들께서 답 글을 올려 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성경과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잘못되어가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들이라고 봅니다. 개혁의 근거는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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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1
최종운 (221.153.112.28)
2008-07-04 07:24:44
진정한 개혁의 의미는 복음입니다.
부족한 제 글을 두고 여러분들께서 답 글을 올려 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모두가 님에 대한 신뢰와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와 잘못되어가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들이라고 봅니다.

저 역시 40여년간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교회안팎의 현장에서 성경과는 판이하게 지배해온 목회현장을 무수히도 목격한바가 있습니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의 머리를 예수그리스도로, 교회의 주인은 성도들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전혀 다른 메카니즘으로 교회가 움직여 가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보더라도 알곡이 많은게 사실입니다. 허지만 작은 가라지에 더 비중을 두어 말씀하신 것을 보더라도 교회개혁은 다수의 알곡보다 얼마 안 되는 가라지를 상대로 하여야 하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식물의 종자에도 몇 안되는 잡종이 섞이게 되면 순수한 품종은 금방 잡종으로 변질 되기 때문에 종자 선별과정이 엄격합니다. 제가 논하는 교회개혁의 방향은 이와 같습니다. 전체교회를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 또한 정통보수교단에서 신앙생활을 출발하고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단이 오히려 하나님과는 멀어진 생활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제도와 시스템이 좋더라도 운영하는 사람이 잘못한다면 무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바로 리더가 바로 세워져야 구성원이 바르게 된다는 것이지요.

민주주의라는 용어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세계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국가의 근본 통치이념으로 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그렇고 북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빈민 독재국가로 망하기 직전의 상태가 아닙니까?

제가 주장하는 개혁은 교회를 망가뜨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폐기하자는 적그리스도도 아니고 다만 사람을 변화시키고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언제나 죄성이 충만한 상태에서 조그만 뇌관에도 폭발되는 죄성의 위험성이 있으며 항상 위험물질이기 때문에 자기 안전관리에 신경을 쓰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 차원에서 교회개혁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생각과 사고와 개혁의 방향이 다름은 생태적인 원리로 보더라도 맞습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아량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생태계가 다양성의 기초위에 있고 그러 인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존립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현장도 그렇습니다. 이세상에 진리의 표현이 하나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보수정통의 할아버지가 세운신학과 교리라 하더라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정립한 신학을 절대불변의 교회관으로, 개혁관으로 붙들고 있는 것도 모순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존재도 ,수많은 개혁가들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 됩니다. 개혁은 과거 완료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세상은 엔트로피가 증대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 말씀으로 교정하고 개혁하여야 하는 당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금의 한국교회 상황을 본다면 제같은 사람이라도 작은 목소리로 개혁의 생태계 한 모퉁이에서 주님의 바른 교회로 하나님의 공의가 바로세워지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외쳐 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 않습니다. 아이의 심리는 누구나 엄마 아빠를 제편이라고 우깁니다. 이러한 정서는 유치한 어린아이의 심리구조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는 집안의 재산을 자기한데만 물려줄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자기만 하나님을 잘 믿고 하나님은 자기만을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우기고 강제하고 교육하고 있는 것은 유치한 신앙사고 구조입니다. 우리는 매크로 하나님과 마이크로한 하나님을 동시에 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여러 댓글을 보고 배우겠습니다. 저의 글 역시 부족함이 많습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저의 보는 시각이 생태적이고 언급하는 시야가 다른 분들의 시야와 다르고 독특할 뿐 삐딱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사진작가의 시각으로 사물을 촬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광각렌즈로, 망원렌즈로, 줌렌즈로로 피사체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작품세계를 모르고 일반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정통사진이라고 우기면 얼마나 자신의 정신, 예술세계가 빈약함을 스스로 들어내지 않겠습니까? 이제 근시안적인 신앙생활 사고를 지양하고 다양한 관점의 신앙사고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개혁과 비평은 결국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워나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보기에 악성적인 댓글이 아니라면 여러분들의 댓글을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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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4
나그네 (71.255.98.80)
2008-07-03 23:25:32
진정한 개혁의 의미는 무엇인가?.....
녹색개혁님의 댓글에 일부 공감을 하면서 권면의 글 감사 합니다.

그러나 나는 논평을 하는 자도 아니고, 훈수를 두는 자는 더욱 아닙니다.
또한 글 쓰는 분들이 모든 교회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지도 않으며
글쓰는 분들을 폄하 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읍니다. 다만....

교회를 개혁한다는 가당치도 않은 거짓된 속임수로 거룩한 하나님의 피로 세운 교회와
말씀을 왜곡하고 변질시켜서 결국은 성도들을 신앙에서 떠나게 하려는 악한 세력들을
경계 하고자 하는 뜻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성도의 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곳을 통하여
여러번 밝힌적이 있읍니다.

또한 글 올린 분들이 모두 말씀과 교회와 목회자들을 무조건 적으로 훼방 하고자
글을 쓴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글의 내용상 많은 부분이 교회의 본질을 휘손하려는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의 적인 의도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음을
감지 하였고, 교회를 개혁한다는 허구로 포장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반 기독교
세력들이라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하여 확인한 사실이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과 집단들이 상당 부분 여러 경로를 통하여 교묘하게 그럴듯한
구실을 붙여 십자가를 앞세우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결국은 든든히 세워져 가는 개신교회를
무너트리고자 하는 거짓된 자들을의 실체를 알리고자 하는 성도의 한사람일 뿐입니다.

제가 올린 댓글을 보았다면 어느 종파에 대하여 많은 경계를 하고 있는지도 보았을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하여 가만히 있기도 부담스러워 녹색개혁이라는 필명으로 댓글을 올리신것 같읍니다. 그러나 종교는 여러개가 된다고 해서 문재 될일은 아니지만, 신앙의 근본이 되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갈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갈수 있다라고 하는 변질 시킬수 없는 진리를 교파나 종파에 얽매여 고의 적으로 호도 하거나, 왜곡 하거나, 변질 시키려는 종교 자들과는 같은 신앙인이라고 할수 없는것이 개신교의 성도들이 갖는 신앙의 본질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며,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나, 사회 생활의 구조상 이들과 어울려서 생활은 할수 있지만 지켜야 하는 신앙의 길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따라서 나는 물론이고 글 올리시는 분들이나 다른 모든 댓글을 올리는 분들도 결국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 뿐이고, 그것이 꼭 상대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든가,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이야 말로 자기의 독선이지요. 다만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상대방이
이해할수 있게하는 노력과 성의는 필요 하지만, 그것이 말씀을 벗어 날수는 없는 것이며,
더구나 왜곡 하거나 변질 시키면서까지 자신들의 자신의 생각이나 교리에 꿰어 맞추는
궤변은 안된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개신교인들이 지켜져야 하는 신앙이기에
예수 안에서의 진리를 추구하고 더 알기위한 대화나 토론은 있어야 하지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더하거나 빼내는 것은 물론 성경을 떠난 개인의 생각과 세상의 학문과 논리와 상식과 이론으로 논쟁을 일삼게 만드는것 까지도 허용 한다고 보지는 않읍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세상의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누구든지 자신의 맘대로 해석 해서도 안되지만
그럴수 있다라고 하는 자들이 사이비 이거나 이단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 아시겠지만
한분이신 하나님 안에 영원히 변치않는 진리 까지도 하나 일진데 마치 시대에 따라, 종파에 따라, 종교에 따라 다르고, 교회마다 다르게 변하는 것으로 오해할수 있는 소지의 글에 대하여
입다물고 있거나, 그러지 못하면 수용을 해라, 하는 결론적인 그 마음은 이해 하지만, 진리 안에있는 신앙은 타협 하거나 양보 하면서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하는 타 종교와 같은 개념의
신을 섬기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말씀 드리고 싶읍니다.

그러므로 나 개인에 대하여는 얼마든지 비방을 하고 비판을 해도 그럴만한 소지가 있으면
상관이 없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고의적 으로든지, 각자의 신학교에서 배운것만을
주장함으로 잘못 해석 되거나 왜곡되거나 변질된 부분에 대하여는 언제든지 나의 생각을 올릴 것이고, 그 이유와 근거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바로 알고 전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 근거는 언제나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이 될것이며, 신앙을 지키고 말씀을 연구해온 무디나 목사나 스펄천 목사와 같은 분들의 주석을 이용 할수도 있는것은, 예수님의 제자였던 열두 사도를 통하여 가르쳐지고 배웠던 제자와 선생들로 이어지는 전통은 오늘도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운영자의 운영의 방침과 의도에 따라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무슨 글 이던지간에 상대방의 인격을 고의적으로 손상 시키고자 하는
내용의 글이 아니고, 나라와 국민들과 교회와 성도들에게 진정한 발전과 도움을 주는 글
이라면 누구나가 사용할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피차 인식하고, 원론으로 돌아가서 피차
나라와 국민을 위하고 사회의 안정을 진심으로 바라는 창조자의 피조물이 되기를 바라며.....

또한 개혁은 인간들이 하는 구호와 혼란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물론, 종교라는
조직을 사용하는 가증한 일도 안되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하는 것은 모든것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죄악이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각자가 제자리에서 자기의 일을 충실히 할때에 바로 세워지는 것이 바른 개혁이라고 생각 하면서, 인간들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패거리를 짓고 때로 몰려 다니며 떠들어서 하는 개혁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분의 방식대로 그분의 뜻 안에서 그분이 하시게 하는 개혁이 진정한 개혁의 의미가 아닐까요?........
리플달기
7 13
CHEF (59.13.194.186)
2008-07-03 18:33:07
이 기사의 논지를 지지합니다
지지합니다.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하고 양심적 목회가 되지 않았을 때에 자신 뿐 아니라 교회와 교단과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에는 유치한 기도가 없다고 믿지만 유치한 발상으로 기도를 변질시키는 일이 우리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말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도를 소원하고 우리 나라 교회의 체질이 변하기를 소원하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지지합니다.
리플달기
8 14
녹색개혁 (221.153.112.28)
2008-07-03 18:07:42
훈수자의 자기모순
나그네님 그대의 논평은 자기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훈수를 두는 것 까지는 좋지만 글의 전체성을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글의 논지는 일부 교회임을 전제하지 한국교회 전체를 전제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나그네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지만 여러 글의 댓글을 남기시는 분으로 보아 상당한 신앙과 신학의 소유자이신 것 같습니다만 댓글만 달지 마시고 본인의 신앙적 칼라를 기사로 쓰 보심이 어떨지 제안해봅니다.

비평만 하는 분은 남의 글은 비평은 잘하지만 정작 자신의 글은 잘 쓰지 못하는 분들이 있기에 말입니다. 정작 비평을 하려면 본인의 글부터 올린 분이라야 남의 글도 비평 할 수 있는 기본적 자격이 주어진다고 봅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양쪽의 수를 훈수를 두는 사람은 눈에 금방 들어오지만 정작 자신이 둘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게 차이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따라서 어른스러운 비평을 하시기보다 먼저 자신의 솔직한 글을 올려보시기를 권면드립니다. 그렇다고 본인의 우월적 지위는 보장 되지는 않음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나그네님의 비평이 모두 다 아니라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허지만 글의 진정성에 대해 폄하하는 경솔함은 지적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세상은 항상 상대적입니다. 절대는 하나님 이외는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글을 읽을 때 상대적인 부분까지도 감안하여 읽으시는 여유도 가지시구요. 초등학교와 같은 이분법적이고 단세포적인 나누기를 하시면 안되구요. 통합적인 비평을 하시기를 원합니다.
결국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남의 주장도 수용하는 여유도 가지시는 게 어떨까요?
리플달기
8 14
나그네 (71.126.123.176)
2008-07-02 06:31:47
글 쓴자나 댓글자에게 보이는 삐딱한 교회상
사람은 언제나 자기중심 적이고 자신이 알고있는 것 밖에는 말할수 없는것이다
나 역시도 내가 알고있는 것 외에는 말할 밖에 없다
따라서 신앙을 갖는다는 것도 결국은 듣고 배운대로 밖에는 할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를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성도들에겐 정말 귀하고 중요한 일이다.

물론 종훈씨의 말대로 현재의 교회가 염려 스러운 부분이 많이 있는것도 사실이기에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지만 그렇다고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교회를 폄하하고 깍아 내릴려고 하고자 하는자의 눈에는 그런 교회만 보였기 때문일 것이고
교회를 귀하게 보는자의 눈에는 좋은 교회만 보일 것이다.

인간의 눈에 보기에도 안타까운 교회라면 하나님께서 보실때는 어떠 하시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 보다도 더 한것 까지도 하나님께 나오기만 하면 받아 주신다는데
허접한 인간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일을 함부로 논할수 있겠는가?

유치한 기도?......무엇이 유치한 기도란 말인가?.......자신의 귀에 듣기가 유치 하다고
유치한 기도라도 말하는가?.....자신이 듣기 좋아야 유식한 기도란 말인가?.....고상한 기도를 듣기 원하는가?......자신의 생각이 기도의 잣대가 될려고 하는가?......그런 자에게 나는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나는 말한다.

우리는 낮은것 같으면서도 끝없이 높으시고, 보이지 않도록 높으시면서도 내 안에까지 낮아 지면서 오신 그분을 믿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와 성도들을 자신의 어줍잖은 생각에 넣으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치말길 바란다. 설령 자신이 보기에 잘못된 교회가 있다고 하드라도 말이다!.
모든것은 끝날에 그 주인이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부로 판단해야 하는 소관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신앙은 신학이 아닌데 마치 신학위에 신앙이 있는것 처럼 독선적인 신학이라고 표현한것도 잘못된 것이다. 신앙을 가진자가 신학을 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리 신학을 했드라도 신앙이 없는 신학은 죽은 신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학을 자랑 하지말고 신앙을 귀하게 여기는 자를 부러워 하는자가 되라. 얼치기 신학은 교만에 빠지지만 바른 신앙은 영생까지 보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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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121.136.214.87)
2008-07-02 03:18:31
깨우침을 주시는 좋은 글 쉽게 써 주셔서,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님의 글 같은 것을 읽고 기독교인들의 의식이 점점 자각되어 결국엔 교회를 떠나가게 되는 일은 없을까요?

말하자면, 처음에 신앙의 태도에 대해서 자각하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엔 기독교 신앙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져 보고 그리곤, 교회를 떠나가거나 아니면 다원주의 같은 곳으로 귀착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인가요?

그렇게 되면 목사들은 뭘 먹고 삽니까?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해 목사님들은 신자들을 더욱더 맹목적으로 몰 수 밖에 없는 것이구요.

그리고 신자들도 감은 잡고 있지요. 자각해서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자의 외로움과 불확실함에 홀로 던져진 두려움을...차라리 반쯤 눈감고 휩쓸려 살다가 천당가는 걸로 알고 죽는 편이 낫겠다...

이렇게 목사와 신도의 이해와 꿈이 서로 잘 맞아 떨어져 힙겹게 서로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건만, 왜 자꾸 들쑤셔 깨우십니까?

여기 나그네라는 필명을 쓰시는 분이나, xxx목사님 같은 독선적 신학을 주장하시는 분 모두, 그런 불확실함의 공포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건만...ㅎㅎ(나그네님, 애교로 이해해 주세요.)

어쩌란 말입니까? 진정 답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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