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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헌금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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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6월 27일 (금) 06:41:08
최종편집 : 2008년 06월 27일 (금) 15:40:01 [조회수 : 2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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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은 사회 공동체의 생명젖줄 역할을 합니다. 돈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돈은 경제생활의 필요부가결한 물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즉 돈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피의 역할을 합니다. 돈이 없다면 우리사회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돈은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밥이기도 합니다. 교회도 사회제도 속에 속한 공동체이므로 돈 이 필요합니다. 교회라고 해서 돈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한국교회의 자리매김과 전도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은 교회가 너무 돈을 밝히고 설교시간에 돈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 교회 가는 것을 꺼려하고 돈을 많이 벌면 그때 예수 믿겠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인 칼빈도 그 당시의 교회가 돈 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자 <오늘의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에 대해 바른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문제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역시 지금 한국교회도 칼빈의 말을 새겨야 할 것입니다. 돈이란 자고로 중립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사회의 피의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몸의 생명을 유지케 하는 것도 피 입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피가 깨끗해야 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점점 피가 흐려져 가고 있습니다. 각종 성명으로, 간염으로, 에이즈로 피가 오염되고 있다고 합니다. 적십자에서 헌혈 적합대상자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피가 오염이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회의 생명을 유지케 하는 돈 역시 그러합니다. 깨끗한 돈이 흘러다녀야 사회가 깨끗한데 검은돈과 오염되고 부패된 돈이 흘러 다니고 있으니까 우리 사회가 사회적 성병, 간염, 에이즈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청부(淸富)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야 할 만큼 희소하기만 하고 졸부, 벼락부자, 탐관오리의 뇌물, 신이 내린 직장에서 거저먹는 돈, 각종 로비 리베이트,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 이런 저런 검은 돈이 우리 사회와 경제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우리사회가 그만큼 중병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중병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되어야 할 심각한 질병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비유중에는 절반이상이 돈과 관련된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돈은 사회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자 맘몬이라는 사탄의 영역에 빠질 수 있다는 양면적인 역설을 말씀하신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돈이라고 해서 맘몬적으로, 반사적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돈은 칼의 용도와 같이 중립적이고 양면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복음, 사회생활, 교회생활 등등의 우리 삶의 모습을 돈으로 살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의 모습이 있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는 사실입니다. 그 돈을 얼마나 정직하게 정당하게, 깨끗하게 버느냐와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공통적인 병리적 현상과 사고에는 반드시 돈과 연관되어져 있습니다.

돈은 물질이지만 돈에 대한 사용은 자신의 믿음과 건강한 정신을 외부로 표현하는 화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헌금은 그리스도인의 돈에 대한 정확한 잣대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물질에 대한 애착과 포기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사랑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부유한 복음을 위해서는 이세상의 물질을 포기하는 것 보다 더 위대한 믿음은 없습니다.

헌금의 동기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다는 외적인 표현입니다. 외적인 표현의 무게는 있을수 없습니다. 100원이나 1억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와 교환가치가 있다는 말이지요. 과부의 두 렙돈과 같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은혜의 절대적 가치를 인간의 질서에서는 차등의 가치를 주어 헌금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잘되고 천국에서 상급이 크다는 투자의 동기로 많은 헌금을 하도록 하고 이들에게는 직분과 명예로 보상하게 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의 헌금행위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과분하게도 할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환난과 많은 시련이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넘치는 기쁨의 표현으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드릴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힘대로, 지나도록 드렸습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모인 헌금을 구제하고 성도와 교회 간 평균케 하는데 쓰여 졌지만 지금의 교회는 거두기는 성경적으로 혹은 인간적으로 거두어 들리면서도 사용하기는 개교회 성장하는데만 쓰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봉사와 구제행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곡해하거나 아전인수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게 된다는 말씀도 헌금수익의 극대화를 노리고 설교하는 구절가운데 대표적입니다. 헌금은 강요와 분위기에 휩싸여 얼떨떨결에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9:7에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 하시느니라> 고 말씀했습니다. 자신의 분에 맞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겨내어야 올바른 헌금정신일 것입니다.

교회건축이 어디 한 두 푼 들어갑니까? 최소한 수십억에서 수백억이 들어갑니다. 이 돈을 정부가 보조해는 것도 아니고 전액 성도들의 헌금으로 충당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교회는 사전 이벤트성 부흥회를 하고는 하지요. 아니면 직분매매 이벤트를 하기도 하구요. 전 성도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구좌를 개설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합니다.

심은대로 거두리라. 30배 60배 백배로 반드시 갚아주신다, 천국에서 상급이 커다. 믿음으로 바쳐라 하며 온갖 비유와 간증을 동원하여 건축헌금의 극대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회생활이란 공동체에 이처럼 이려가지 비용발생은 당연합니다. 그 비용충당을 하기 위해서 헌금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허지만 거두는 과정과 사용되어지는 과정도 기쁨과 자원과 투명성 있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목회성공 컨셉은 이제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이는 다름아닌 <믿어라, 돈 내라 , 교회 짓자>세단어로 압축파일화 되어 개 교회별 옵션이 추가되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건축하는 과정에서 은혜로 교회를 건축하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강압적인 방법으로 억지로 짓는 교회도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건축하는 과정에 시험이 들기도 합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은혜의 법칙으로 한 결과이고 후자는 인간의 질서인 배당의 법칙으로 한 결과일 것입니다.

각자의 형편대로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이 하고 적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적게 하여야 합니다. 이게 필자가 말하는 생태적 헌금의 정신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수백억 할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천 만원 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이고, 십 만원도 할 수 없는 능력인데도 수 백만원 작정 하게하여 과도한 헌금으로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 헌금은 공공의 유익과 하나님 나라건설에 합당한 사용처로 쓰여 져야 합니다. 헌금의 절반 이상 목사개인에게 지출되는 헌금은 그리 보기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헌금사용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소수의 교회지도자들이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즉 목사가 총회장이 되기 위해서 귀한 헌금을 사적으로 유용한다는 사실과 대형교회의 귀족목사들의 10호(好)를 위해 즉 사리사욕을 위해 사용되어진다는 사실은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있음을 잘 말 해주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복음적인 교회라면 돈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하고 맘몬의 세력을 견제하여 진정 하나님의 교회로 개혁적인 교회로 방향전환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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