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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존심, 인간의 자존심 (1)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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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6월 20일 (금) 05:48:27
최종편집 : 2008년 06월 20일 (금) 10:23:16 [조회수 : 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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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자존감입니다. 이런 자존감이 없다면 살아갈 의미를 망각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여 결국 생을 포기하는 쪽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자존감은 혼자의 감정이지만 자존심은 타인과의 감정흐름을 말합니다. 자존심이란 자기자신의 인생 가치관과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하게 되는 뇌관은 대개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어집니다. 우리 사회생활의 단편적인 모습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네 삶은 끊임없이 만남의 연속입니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부터 부모와의 만남, 형제자매와의 만남, 친구와 만남, 애인과 만남, 스승과의 만남, 회사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만남, 목사는 성도와 만남 성도는 목사와의 만남 등등 이런 모든 만남들이 불교적으로는 인연이라고 하지요. 이런 인연들은 소중히 하여야 할 만남이자 인연입니다. 지구촌에서 살면서, 한 울타리인 우리나라 한 직장, 한 교회, 한 가족, 한 동네에서 만남은 결코 폐기하지 말아야 할 참된 인연입니다. 이런 만남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자존심을 건드려 기분을 상하게 하고 헤어지는 불상사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자존심은 대개가 거짓 자존심으로 팽팽하게 대결하는 경우가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얄팍한 자존심이지요. 부하직원이 상사의 자존심을 건드릴때 상사는 견디기다 힘이 들지요. 역시 반대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대개 상하는 자존심이란 헛되고 저급의 자존심에서 비롯된 게 많습니다. 예컨대 국회의원들은 자가용으로 티코는 탈 수 없고 고급 그랜져급 이상의 차를 타야 한다든지. 스타들은 막걸리, 순대를 먹어서는 안 된다든지 하는 등등의 허영의 자존심이 그러합니다.

참된 자존심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스스로 소화시키고 인내하며 지나가는 성숙된 인품이라고 여겨집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알기 때문에 먼저 마음의 창을 열고 화해의 손을 내미는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은 쉽지만 필자 역시도 그리 행하기란 어려운 숙제임을 밝힙니다. 성숙된 자존심을 가진 국회의원이라면 티코로 자가용으로 해도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으례히 기득권의 알력이 있기 마련이고 패가 갈라지고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새로 온 직원이 있다면 기존의 직우너들이 일종의 텃세를 한다는 말입니다. 이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보면 생태적인 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는 동물적인 반응이기 보다는 사회적인 따뜻한 인간관계망속에서 선임자자 후임자를 배려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 준다면 그 조직체는 훌륭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라고 하는 조직에서도 발견되어집니다. 이도 일종의 조직의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가족관계도 편애가 있기 마련이고 동호회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조직과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 역시 그런 교회란 울타리의 조직도 역시 그렇습니다. 사람이란 전적타락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이상 누구나 다 죄성을 가진 이상 인간적으로 결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죄성과 결점 때문에 살아가는데 애로와 지장을 초래하지요. 그 가운데 하나가 자존심입니다. 이런 자존심은 대개가 쓸모없는 자존심에 속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인간관계가 참으로 중요한데 어느 곳에 가든지 항상 텃세를 부리며 초를 치며 심술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어떤 조직에서 일할 때 일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사람한데 스트레스 받으면 그것이상 견디기가 어려운 것을 누구나 경험하였을 겁니다. 필자 역시 그러합니다. 그런 쓸모없는 자존심을 팽개쳐버리고 나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세상만사 모두 깨달음의 현장으로 알고 하나님의 자존심을 생각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자존심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의 개성이나 고집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린 언제나 자신을 갈고 닦아서 알찬 실력과 인격을 쌓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자존심 강한 사람은 내적으로 강하고 겸손한 사람임을 말해 줍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남을 사랑하고 위해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이 아니겠습니까?

어떤 조직과 집단이든 구성원들을 자기 소속집단의 색깔에 맞도록 인간을 일정한 틀에 맞추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이를 회사로 말하면 기업이념이고 경영마인드입니다. 이런 집단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을 자율적 주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가만히 보면 대개가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틀의 맞아야 존재하게 되는 타율적 주체로서 자존심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런 사회는 필히 복잡한 거미줄 같이 정치적인 권력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필히 권력의 중심에서부터 자존심의 권력파워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역학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관찰하게 됩니다.

자존심은 정치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고 그 다음 지식인들, 대학교수들, 목사를 비롯한 성직자들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사회적 기대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대접을 못 받을 때 기분 나빠하며 자존심이 상하게 됩니다. 필자도 아무런 내세울게 없지만 이런 자존심이 상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저명한 사회적 인사들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심리학자는 자신이 노는 무대에서 자신의 신분에 걸 맞는 기대 자존심을 찾는 것은 자신이 약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스스로를 인정하면 타인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만으로도 자존심이 유지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게 결코 쉽지만은 않지요. 국회의원, 정치인, 공무원, 성직자 등등의 모든 사람들이 헛된 자존심에 손상을 받으면 참지 못하는 본능적 반응을 보입니다. 망국지폐인 우리의 전통적 유교사회의 부정적문화가 이런 헛된 자존심을 더 부풀리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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