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안에서의 계약, 찬양, 정의
- 성경연구 다섯 마당

1. 창조를 보전하리라는 하나님의 계약(창세 8:18-9,7): [방법론: 역할극]

우리는 창조에 관한 일련의 성경연구를 창세기 1~2장으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홍수 이후의 새 계약을 갖고 시작하는 것은, 창조에 관한 이야기의 출발부터 우리는 항상 깨어진 창조의 측면으로부터 말문을 연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홍수의 심판은 우리의 시대와 첫 번째 창조 사이에 담처럼 서 있다. 그러므로 현대의 창조신학은 창조에 맞선 폭력, 그리고 창조의 파괴라는 현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셨고, 이 지음 받은 세상은 보기에 참 좋았다(창세 1,31). 우리는 창조가 얼마나 선한 것인지 알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맑고 신선한 물, 인류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무한한 순환 속의 고기와 식물들. 이뿐만 아니라 창조는 또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일몰 때의 하늘의 색채들, 거품을 일으키며 낙하하는 폭포, 그리고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색채놀이인 무지개.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위협했던 창조의 유일한 부분은 바로 인간이었다. 처음부터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공동창조자가 됨의 의미를 오해했다. 하나님의 창조를 잘 돌보는 대신, 인간은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창세 1,28)는 말씀만을 강조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악용하고 약탈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성경 말씀이 거듭 인용되어 왔다.

구약성경 학자들이 P문서(제사문서)라고 부르는 자료에서는 홍수를 우주적 재앙으로 본다. 하늘에 있는 바다들이 땅에 쏟아져 내리고 땅 밑에서도 물이 솟아오른다. 이로써 창조는 다시 혼돈 속으로 침몰한다. 홍수에 관한 보도를 하는 또 다른 신학자인 J저자(야훼기자)의 자료와는 달리, P는 물이 인간과 동물뿐만 아니라 전체 세계에도 위협이 되는 것으로 본다. 생명을 위협하는 물의 위력은 확실히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한 홍수들,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에 해수면이 높아져서 저지대의 섬들과 해안 지역들에 미칠 잠재적 결과들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홍수 이야기는 자신이 창조하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을 증거하며, 또한 홍수의 심판에 뒤이은 은총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약화시키지 않음을 증명한다. P가 매우 신인동형론적으로 표현하고 있듯이, 창조(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은 노아를 기억하셨다"(창세 8,1). 여러 세기 후 베드로의 편지에서는 홍수의 물을 세례와 비교한다: 홍수의 물은 심판의 물이다. 그러나 이 심판의 다른 한쪽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총에서 나오는 생명이 있다(벧전 3,20~21 참조).

J가 홍수 이야기를 창세기 8장 21-22절에서 끝맺음하는 반면, P는 자기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학적 질문들 중 일부에 답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노아 사이의 계약까지 더 깊이 파고든다. 첫째 질문은, 창조의 첫째 계명인 "생육하고 번성하라."(창세 1,28)는 말씀이 여전히 유효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P가 창세기 9장에서 주는 대답은 "그렇다"이다. 하나님은 인류가 온 땅에 퍼지기를 원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이 대답을 보다 회의적인 눈초리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왜? 창조가 급속한 인구팽창 때문에 위협받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급속한 인구팽창 역시 죄의 결과이다. 가난과 불의야말로 소위 인구폭발의 주된 원인임을 여러 연구들은 거듭 보여준다. 한 민족의 기본적인 의식주의 욕구가 채워지기만 하면, 그 민족의 출생률은 즉시 감소한다. 여성들이 해방되어 그들 자신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되어도, 출생률은 감소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한, 가족을 부양하고 늙은이들을 돌보기 위해 자식들을 많이 낳을 수밖에 없다.

둘째 질문은 이것이다: 피조물들은 서로 어떤 종류의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가? 폭력과 살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그 대답은 "우리는 낙원을 잃었다"는 것이다. 피조물의 신음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로마 8,23). 하나님은 인간이 살인하는 것을 허락하신다! 살인과 관련하여 오직 두 가지 예외조항이 있다. 하나는 모든 존재의 생명(soul)인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신명 12,23)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 인간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이 전자의 금지조항만큼은 아직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 반해,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인들은 그것을 망각했다. 생명을 의미하는 피만큼은 먹지 못한다는 예외조항을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독일의 구약신학자인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이 이 조항에서 추론하는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 동물들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법칙만을 예외로 하고, 동물의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신의 은총은 계속 유지된다. 동물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내포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께 속하기에 그 어떤 이유로도 동료 인간을 죽이지 못한다는 금지조항과 함께, 이것은 인간의 잔인성과 살인 행위를 제약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에 대한 인간의 행동은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행동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연관을 인식하는 것은, 왜 적어도 서유럽에서는 피조물과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많은 사람들이 점점 채식주의자들이 되어가고 있느냐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매우 지능이 높고 민감한 동물로 알려진 돼지들이 오늘날 어떤 식으로 사육되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3천 마리 혹은 그 이상 되는 돼지들을 한꺼번에 거대한 우리 속으로 숨막히게 처넣는다. 불과 몇 달 안 되는 생명을 유지하는 동안 돼지들은 어둠 속에 살아간다. 하루에 단 한번 먹이를 먹는 동안에만 돼지들은 어둠 밖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돼지의 고기를 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돼지들이 쇼크로 인한 심장마비로 죽지 않도록, 나머지 모든 시간들에 돼지우리는 모든 빛으로부터 차단된다. 돼지들은 히스테리와 욕구불만 가운데 때로 서로를 물어뜯는다. 그리고 다음날 누군가의 눈에 발견되기 전에, 이 싸움에서 희생당한 돼지는 피를 흘리며 죽어간다.

또 돼지들은 이리저리 걸어다닐 수도 없다. 돼지의 두 다리는 특수사료를 먹고 너무도 빨리 불어나는 그 육중한 몸을 도저히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 한 마리의 돼지에게서도 보다 많은 고기를 얻으려고 안달을 떤다. 이 불쌍한 돼지들에게 닥치는 두려움은 이것만이 아니다. 화물트럭에 실릴 때, 때로 유럽을 경유하여 시장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실려갈 때, 그 다음 미처 죽기도 전에 잔인한 기계들이 자기네 몸을 저미기 시작할 때, 돼지들의 공포는 점점 더 상승된다. 암소들, 닭들, 토끼들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살아 있는 동물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사회는 피조물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마침내는 인간에 대해서도 아무런 존경심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새 시대는 하나님의 인내의 때이다. 폭력이 이 세상에 깊은 분열을 가져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물러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이 세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주권을 유지하신다. 이것이 노아와 그의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의 법의 개념이다.

홍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지점에서의 계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 및 모세와 맺은 계약과는 다르다. 왜? 이 계약에서는 하나님의 파트너인 인간의 아무런 행동이 없이도 하나님의 은총이 한 사람이나 한 민족이 아니라 전체 인류에게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지고, P는 창조 이야기를 모든 민족의 역사와 연결시킨다. 폭력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질서와 축복이 있다. 미국에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복음성가에서 노래하듯이,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당신의 손안에" 쥐고 계신다. 바로 이것이 P의 메시지이다.

하나님은 노아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노아의 아내, 노아의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 또 그들의 아내들―과 계약을 맺고 계신다. 이 네 명의 여자는 성경에서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데, 이 성경의 의미를 놓고 나는 몹시 마음이 괴롭다. 사실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는 성경에서 여자들은 아무 이름이 없다. 이 점은 이 이야기에서 특별히 곤혹스럽게 느껴진다. 왜? 여자가 없이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창세 9,17)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P가 인정하고 싶어하든 그렇지 않든, 여자들은 계약의 필수 조건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역사에서 계약의 개념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것은 1948년의 첫째 회합에서도 교회들 상호간의 헌신을 성격화하기 위해 이미 사용되었다. 특히 독일 교회들에게, 이 계약은 자기네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다시금 받아들여진다는 상징적 의미를 띠고 있었다. 비록 암스테르담에서는 계약이 주로 유럽과 북미에서 온 백인 남성 교회지도자들에게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후 이 계약 개념은 서서히 발전하여 보다 폭넓은 참여를 담아내게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의 324개 교파가 WCC에 가입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WCC의 여러 모임에는 남성과 여성, 다양한 교파의 성직자와 평신도, 모든 연령층, 모든 민족과 모든 인종이 함께 참여한다.

뱅쿠버에서 1983년 열린 회합에서, WCC는 "회원 교회들을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 보전(JPIC)을 위한 화해의 과정에 참여시키기" 시작했다. 이 JPIC의 개념을 간략히 말하면, 교회의 일치를 이룸에 있어 윤리적 문제들이 교리적 질문들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계약을 맺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회합에서 JPIC의 개념에 대한 열렬한 호응이 있었다. 즉, 하나님이 계약을 허락하심으로써 그리고 바로 이 계약에 기초해서만, 우리도 서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주신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이런 계약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창세 21,22-34), 이삭과 아비멜렉(창세 26,26-33), 다윗과 요나단(삼상 18,3; 19-20장). 서울 JPIC 회합을 위한 예비문서에서는 계약의 개념을 이런 식으로 정교하게 다듬었다:

계약의 중심에 있는 것은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라는 약속과 도전이다. 이 말씀에 함축된 의미는 신학의 구성적 원리일 뿐만 아니라 비판적 원리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 말씀은 우상들에 대한 고발을 의미한다("너희는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못한다!"). 동시에,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 됨, "한 분 하나님" 아래에서 또 그분과 더불어 하나의 참된 공동체가 됨의 약속과 가능성을 제시한다.2)

예전 동독 출신의 지방감독이며 신학자인 하이노 팔케는 계약의 갱신에 필요한 다섯 가지 목록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⑴ 회상: 하나님이 베푸신 계약, 그리고 하나님의 이전의 구원활동들(출애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계약)을 회상·기억하는 것.

⑵ 주어진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 선포의 핵심 내용은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이다).

⑶ 일체의 우상들을 척결하고, 오늘의 체제들을 상징하는 죽음과의 계약을 파기하는 것.

⑷ 상호 헌신(이 헌신 속에서 둘 혹은 그 이상의 파트너들은 하나님 앞에서 서로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행동할 것에 동의한다).

⑸ 식사와 나눔과 성찬식에서 계약을 경축하는 것(이것은 계약이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그리고 모든 사람이 공동체로 초대받았음을 말해 준다).

벤쿠버 회합의 전체 회의기간 중에 태평양 연안에서 온 한 대표자의 진지한 발언을 통해 정의와 평화, 창조질서 보전 사이에는 내적 연관성이 있음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그는 태평양 연안 섬들에 사는 사람들이 핵실험 때문에 어떻게 그들의 고향에서 내쫓겼는지를, 또 핵실험이 물과 고기와 사람 등 그들의 환경을 어떻게 오염시켰는지 고발하였다. 아마도 이 내적 연관을 분명히 밝힌 것이야말로 세속적 세계를 둘러싼 사회적·윤리적 토론에 에큐메니컬 운동이 끼친 주요 공헌일 것이다. 정의와 평화, 그리고 창조질서 보전이라는 개념은 이 셋이 동일한 수준에서 서로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려고 애쓴다. 이 셋은 하나의 동일한 복합체이다.

[역할극]

이 성경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각 사람에게 채색된 카드를 한 장씩 나눠준다. 나머지 30분 동안 같은 색 카드를 가진 사람들끼리 그룹을 짓는다(한 그룹은 8명). 그리고 다음 지시에 따른다.

여러분은 이제 노아의 가족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분노와 은총, 즉 홍수와 무지개를 목격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계약을 맺으셨다. (성경본문을 다시 읽는다.)

하나님의 계약에 대한 여러분의 응답은 무엇인가? 무지개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무지개에 응답하는 여러분들 상호간의 계약은 무엇인가?

우선 여러분이 누구인지, 또 여러분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각자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라.

그 다음 여러분 가족들 내부의 질문들에 대한 여러분의 응답을 토의하라. (약 20분 후에 전체 그룹이 함께 모인다. 각 그룹의 대표자가 이 계약의 주된 내용을 가능하다면 하나의 문장으로 다른 그룹들과 함께 나눈다.)

2. 모든 피조물들아, 하나님을 찬양하라(시편 148편): [방법론: 묵상]

많은 서구인들은 자연과학과 신학에서, 데카르트 철학의 주체와 객체의 구분에서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구분이 창조를 파괴하는 본질적 근원이라고 본다. 이 구분은 끔찍스런 결과들을 낳았다. 첫째, 사물들·객체들의 세계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한에서만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둘째, 남성은 주체들의 세계와, 여성은 그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감정과 자연의 세계와 관련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남성은 세계를 지배하고 여성은 가족과 자녀들을 돌보는 게 당연시된다.

마르틴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은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존재의 과정의 특별한 성운(constellation)을 절대화한다는 것을 밝혀왔다. 다른 철학자들도 모든 과학의 밑바닥에는 주관적 결정들이 놓여 있음을 증명해 왔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창조의 파괴를 향한 일반적 경향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서구철학에서는 하나님에게서 가져온 무한성을 인간의 속성으로 돌렸다. 이로부터 무제약적인 경제성장 개념이 생겨났다. 또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직선적 사고가 시작되었다. 이 사고는 탄생과, 생명, 그리고 죽음의 순환을 무시하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성(sex)과 그밖에 가장 친근한 감정들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말하면서도 죽음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한다: 얼굴의 주름을 제거하는 성형수술, 보디빌딩, 머리염색. 얼굴의 주름과 흰 머리카락이 이제 더 이상 경험과 지혜, 원숙함의 표지들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표지들을 없애려고 무슨 일이든 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종종 홀로 방치된다. 아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이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늘 여성들의 몫인데,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이 하는 일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1974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들>이라는 연구보고서를 출판했을 때, 이 제목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오일 위기와 베트남 전쟁이 겹치면서, 서구 사회들은 그들의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할 카이로스(kairos)를 맞았다. 이것은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예언자적 표징이었다. 그러나 요나가 니느웨에서 설교했을 때 그 곳 사람들이 회개했던 것과는 달리, 서구의 산업화된 세계는 화산 위에서 춤추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980년에서 1990년 사이에 독일의 자동차 수가 두 배로 늘어난 것은 그 단적인 실례이다.

시편 104편 30절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루아흐('영' 혹은 '숨')라는 것을, 그리고 창조의 리듬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피조물은 탄생과 성장과 죽음의 순환과정을 거치도록 부름 받았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91년의 WCC 캔버라 회합에 앞서 연구팀과 함께 우연히 토착민들의 여러 공동체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순환적 사고와 직선적 사고 사이의 차이점이 나에게 아주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는, 토착 문화는 농사짓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유럽 문화보다 열등하다고 들어왔다. 그런데 사실은, 토착민들은 토지와 조화를 이루는 농사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즉 지혜로운 자기네 조상들이 대를 물리며 전해온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비옥한 토지에 얼마간 살면서 이 토지가 맺는 온갖 열매와 씨앗들을 목격한 다음, 그들은 이 토지에 불을 지르고 그 곳을 떠나간다.

몇 년이 지나 그들은 다시 돌아온다. 재가 토지를 비옥하게 해 주었기에, 이제 이 토지는 토착민들을 다시금 먹여 살릴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의 농부들은 양들로 하여금 토지를 파괴하게 해 왔다. 양들은 풀을 뿌리째 먹어치움으로써 토양 침식과 사막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시편 148편 저자는 욥기 38장을 연상시키는 찬송조의 '과학적 목록들'을 사용하면서 그 시대의 자연적 지혜를 끌어들인다. 후에 느부갓네살의 불가마에 던져진 유대의 세 젊은이들이 부른 찬양의 찬송(다니엘 3장)에서 이것은 더욱 확대된 형태로 나타난다. 아마도 시편 148편은 구원의 확실성을 표현하는 일종의 신조로 예배에서 사용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혼돈을 무찌르셨으며 또 창조의 연속성을 보장해 주실 것이다. 학자들은 이 시편이 이집트의 현자인 Amenemope의 이름들의 목록(Onomastikon)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 목록은 상이한 범주들에 속하는 생물들에 이름을 붙여 그것들을 차별화하기 시작하는, 하나의 위계질서적 목록이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고대과학의 요소들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 인간을 대표하는 것은 시온의 하나님의 백성인데, 아마도 여기에는 종말의 때에 야훼의 백성이 높이 들어올려진다는 예언이 담겨 있는 듯하다.

시편 148편은 온 피조 세계를 아우르면서 웅장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늘과 땅이 마치 두 개의 성가대인 양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외치는 소리에 화답하는 메아리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는 무수한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는 교향곡이 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신 전능한 창조자로 인식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창조의 의미와 목적이 된다.

1-6절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 초점을 모으면서 우리에게 하늘로부터의 찬양을 들려준다. 이 경우에 하늘은 하늘 위의 대양까지를 포함하는, 보다 거룩하고 신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천사들과 하늘, 하늘에 빛나는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 위의 물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 받는다.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았으며, 그러므로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한다.

7-13절은 역사의 주님으로서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며 창조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불과 바람, 산들과 동물들뿐만 아니라 바다의 어둠과 깊은 바다의 모든 피조물들, 즉 살아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부름 받는다. 창조 이야기에서처럼, 한 요소 다음에는 또 다른 요소가 뒤따른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나오는데, 인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부름 받는다.

베스터만은 이 시편이 모든 인류의 주님과 우주의 주인으로서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선포하고 있다고, 이로써 두 위대한 역사적 보고서인 J 및 P와 매우 유사한 신학적 경향성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구약의 모든 예배가 그리스도교 예배들에서는 별로 뚜렷하지 못한 에큐메니컬하며 우주적 색채를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사소한 것들'(small things)을 많은 비유들의 통로로 삼는 예수 역시 동일한 주제를 포착하고 있다.

만약 이것을 우리의 창조신학의 기초로 삼는다면, 그것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는다면, 감히 누가 하나님이 어디에는 계시고 어디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던 토착민들을 다시 생각해 보라. 시편 148편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200년 전 최초로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이 이방의 어둠 속에 살았다고 믿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그 이전까지는 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계시하지 않았음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만일 하나님이 유럽인들과 더불어 비로소 토착민들의 땅에 도착한 것이라면, 이것은 하나님이 유럽인들의 검을 통해 비로소 계시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하나님은 유럽인들이 오기 오래 전부터 이미 토착민들의 땅에 계셨다고 믿고 싶다. 이들 토착민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 그들은 피조물을 존경한다. 그들은 피조 세계가 베푸는 은총들을 다시 이용하기에 앞서 재창조를 위한 순환을 기다릴 줄 안다. 피조물 안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이며, 우리가 다른 신앙들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영이다. 타종교들이 흔히 위협으로 간주되며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전도의 사명인 유럽의 나라들보다는 인도처럼 다양한 신앙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이 점은 보다 잘 이해된다.

1992년 리오에서 열린 지구 정상회담 기간 중에, 피조물을 잘 돌보는 것은 모든 종교의 공통된 관심사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그랜버그-마이클슨(Wesley Granberg-Michaelson)은 이 경험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리오에서 열린 지구포럼에서는 다양한 종교단체들 사이의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제시되었다. 가장 돋보인 것은 철야기도였다. 이 기도는 새벽에 다양한 종교인들이 모여 드리는 예배로 끝났는데, 이 예배를 인도한 사람은 티베트의 라마교 주교인 달라이 라마였다. 밤이 새도록 기도하고 묵상하고 자신들 나름의 형태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서로 다른 종교전통을 대표하는 거의 60개에 달하는 종교단체가 플라밍고 공원의 여러 텐트에 모였다. 영적 예배의식들이 각자의 관점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하고 독특했기에, 그것은 종교적 관용의 한계들에까지 가 닿았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 온 복음주의 그리스도교 단체들은 철야기도에 참여하기를 원하면서도 담을 사이에 두고 자기네들만 떨어져 있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일부 예배의식들에서 숭배되는 의심쩍은 마술과 자기네와는 다른 '영들'(spirits)에 대해 진정한 의심을 드러냈던 것이다.

브라질에서 온 일부 오순절파 및 복음주의파 교회들은 지구 정상회담을 둘러싼 모든 사건들에 신앙이나 관심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께 대해 그들 나름의 찬양을 하도록 대회가 요청했을 때, 수만의 사람들이 어느 날 오후 리오의 거리들로 쏟아져나갔다.

이것은 한 가지 중요한 요소, 즉 영성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당긴다. 시편 148편은 수천 년 전 이스라엘 영성의 일부분이다. 피조 세계는 늘 영성의 근원으로서 영성을 고무시켜왔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모든 명시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과 기도들이 깃들여 있다. 낮과 밤, 새벽과 황혼, 그리고 순환하는 계절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교 예배의식들에 영감을 주었다.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밤이 점차 짧아지고 낮은 점차 길어지는 때이다. 부활절은 풍요로움의 계절이다. 비록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성경의 기사들에 토끼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독일에서 토끼들이 부활절 전통의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우리의 영성은 우리의 감각을 필요로 하는데, 이 감각은 산업화된 사회에서 너무도 자주 억눌리거나 파괴된다. 우리는 사물들을 참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현실을 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맛볼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 우리가 즐겨 먹는 패스트푸드는 사실 아무런 맛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사물과 접촉하는 법을, 사물들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사물들의 냄새를 맡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창조성은 위축된다.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예전의 아이들은 거의 백 개에 달하는 놀이를 알고 있었는데 오늘 서구사회의 아이들은 평균 4-5개의 놀이밖에 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영성을 재발견하려면 우리의 생활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1975년 나이로비에서 열렸던 WCC 회합에서 소위 '전투적 영성'(spirituality of combat)이라고 불렀던 것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전투적 영성, 그것은 우리 눈앞의 현실을 그저 묵인하도록 우리를 침묵시키는 영성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계 안에서의 온갖 파괴에 우리가 맞서도록 하는 영성이다. 영성은 수입하거나 수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확실히 우리는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자기 나름의 상황(context) 속에 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이 복음에 따라 살고 자기네 앞에 펼쳐진 도전들에 응답하면, 그들 자신의 영성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의 숱한 평화운동, 인간권리 회복을 위한 운동, 그리고 또한 현재의 생태계 운동의 소중한 체험이다.

우리의 시편은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다고, 그러므로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결론적으로 두 개의 경고 혹은 교정책을 언급하기 위하여 내가 몸담아 살고 있는 독일의 상황을 끌어들이고 싶다. 첫째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그리고 이른바 자연종교(natural religion)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나치 시대에 얼마나 악한 목적들에 사용되었던가를 상기시켜 준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사람들은 자연이 오직 자연의 아름다움과 특별히 히틀러를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왜곡된 이해를 방지하는 교정책은, 남을 위해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하나님에 관한 표징들을 읽고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모범으로서 늘 바라보는 일이다. 둘째 경고는,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보다는 자연 속에서 더 잘 발견된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사람들의 주장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우리는 종종 홀로 있는 것이 더 쉽고 편하다는 것을 발견하지만, 그리스도는 공동체를 건설하고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타인들을 돌보도록 우리를 보내신 것이다.

[묵상]

성경연구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밖에 나가서 아무거나 하나를 집어오도록 요청한다(예쁜 것이나 보기 흉한 것, 중요한 것이나 무가치한 것, 뭐든 좋다). 그 다음 성경연구 지도자는 이 물체들을 사용하여 참여자들이 묵상에 잠기게 한다.

여러분이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그것을 파괴하지 말라. 그것이 얼마나 복잡한지 혹은 간단한지 살펴 보라. 하나님은 그 어떤 것이든지 돌보시며 또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이신다. 하나님은 예술가이시다. 여러분 손에 있는 이 물건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배경음악이 깔리고 몇 장의 슬라이드를 비추는 동안 그것을 여러분 손에 꼭 쥐고 있어라. 슬라이드에 비치는 피조물과 여러분 손안에 있는 피조물을 살펴 보라. 그것을 느껴 보라. 이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생명과 아름다움을 사랑하신다. 긴장을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라. 여러분의 감각을 사용하여 보고 느끼고 냄새를 맡아 보라.

슬라이드가 끝나면, 여러분의 두 발을 땅에 힘차게 내려놓고 두 눈을 감고 심호흡하라. 여러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만져 보라. 이 물체를 인식하라. 여러분의 호흡을 느껴 보라. 시편 148편을 다시 읽어주겠다.

이제 눈을 천천히 떠라. 손안에 있는 것을 보라. 여러분 주위 사람을 쳐다보고 그 사람, 혹은 전체 그룹과 함께 이 피조물이 여러분에게 뭘 의미하는지 이야기를 나눠라.

 
3. 폭력 - 창조의 파괴(창 34장): [방법론: 대화]

창세기 6장 5절의 저자와 달리, 휴머니즘에서는 인간은 천성적으로 선하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은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하며 악은 제도들 속에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가난과 무지만 근절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훌륭할 것이다. 루소와 다윈에서 시작된 사회적 진보에 대한 이런 낙관주의 이론들은 인간의 진보를 일종의 자연법칙으로, 즉 거의 기계적인 문제로 인식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의 비극,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더불어 이 신화는 완전히 깨졌다. 이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분명히 목격한다.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물리적 힘은 영적 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파괴적이라는 사실을! 축복이 저주가 된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폭력의 현실과 끊임없이 대면하는 것이다:

카인은 자기 아우 아벨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 골리앗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사울은 다윗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암논은 자기 여동생인 다말을 범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헤롯은 어린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리스도교인들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카인은 자기 아우 아벨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우리는 폭력을 극복하려는, 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깨뜨리는 새로운 방법들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또한 발견한다:

미리암은 모세를 구한다.

십브라와 부아는 갓난아기들을 죽이기를 거절한다.

다윗은 요나단을 사랑한다.

예수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건다.

이 성경연구가 초점을 모으고 있는 창세기 34장 전체는 폭력의 악순환의 완벽한 실례이다. 그것은 폭력 한복판에서의 강간을 보여준다. 강간(겁탈)이라는 단어는 창조의 파괴를 묘사하는 데 종종 사용된다.

우리 이야기의 배후에는 두 가지 요소가 깔려 있다. 하나는 하몰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이다. 세겜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지역은 이스라엘화되었지만, 세겜 도시는 여전히 가나안적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은 끊임없는 갈등의 근원이었다. 다른 하나는 가족 이야기이다: 나머지 열 지파와 달리, 시므온과 레위지파는 이스라엘에서 자신의 땅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도된다. 창세기 34장은 이것의 이유들에 대한 하나의 설명인데, 야곱의 마지막 유언(창세 49,5-7)에서 그 이유들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된다.

일체의 사건들의 원인은 강간이다. 디나 이야기는 우리가 그 안에서 야곱의 한 딸에 관해 듣게 되는 유일한 예이다. 이스라엘 역사 전편에 거쳐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은 누차 나타나지만, 이 창세기 40장을 제외하고는 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도가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역사의 절반이 우리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종교에서 감추어져 있는지 다시 목격하게 된다.

디나의 이야기는 어떻게 더욱 심화된 폭력을 야기하게 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 강간사건으로 시작해보자.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모든 시간, 모든 문화, 모든 나라에서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닥쳐오는 현실이다. 때로 나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이 끊임없는 위협이나 현실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강간은 종종 전쟁의 무기로도 사용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 병사들은 유럽 전역의 여성들을 겁탈했다. 러시아 병사들은 이에 대한 복수로 독일 여성들을 겁탈했다. 만일 누군가 참으로 몸서리쳐지는 비교를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최악의 경우는 일본에 끌려간 수천의 한국 여성들이 당했던 강제매춘과 겁탈일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3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름다운 섬 오키나와에서 열린 한 평화회의에 참석했다. 이 미군 주둔은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군사시설 때문에 땅과 물이 오염된 것, 또 오키나와의 네 명의 여성 중 하나는 매춘을 해서 살아가려고 애쓴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이 오키나와에서 진주만 사건에 대한 보복을 가하기 시작했을 때, 그 곳에서 매춘을 강요당하던 한국 여성들은 바다 속으로 떠밀려 익사당했다. 그 섬에 있는 몇 안 되는 방공호와 거의 바닥난 식량은 일본 군대의 몫으로 돌려져야 했기 때문이다. 해안선에 서서 보면, 우리는 이 전쟁으로 산호초들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알 수 있고 또 겁탈을 당한 채 애처롭게 숨졌을 여성들의 피맺힌 외침을 상상할 수 있다.

1992년 12월 크로아티아를 방문했던 WCC 여성분과 보고서는 전쟁에서 겁탈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전문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끔찍한 현대적 실례를 보여준다:

여기에 세르비아 군대의 병사들이 저지른, 조직적인 대량 겁탈이 전쟁의 세련된 무기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한 강력한 증거가 있다. 이것은 인종 척결 프로그램의 일부로서의 조직적인 겁탈에 대한 유력한 증거이다. 생존자들은 '전선에서의 겁탈'(rape on the front line)과 '제3자 겁탈'(third party rape)에 대해 말한다. 이것들은 세르비아 병사들이 적군 병사들의 기를 꺾기 위해 자기네 가족들이 겁탈당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하도록 강요하여 공공연히 자행한 것이다. 군대 야영지들로 둘러싸인 마을 공동체들(혹은 학교나 마을회관)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떠돈다. 공공연한 겁탈이 이뤄지는 곳은 바로 이 장소이다. 겁탈은 반복해서, 폭력적으로, 그리고 '절차상'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된다. 희생자들 중 상당수 및 겁탈의 목격자들이 겁탈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사람들은 주장한다. 생존자들 중 상당수 및 그들의 직장 동료들 또한, 여자들에게 '세르비아 아이들'을 임신시키려는 명백한 목적 아래 겁탈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고 주장한다. 최소한 임신 4~5개월이 될 때까지 여자들을 붙잡아 두었다가 그 다음에야 풀어 준다. 일부 여자들은 거듭 겁탈을 당한 끝에 결국 목숨을 잃는다. 희생자들 가운데는 겨우 10살 먹은 아이들과 80살이나 되는 늙은이들까지도 포함된다. … 교회와 국제사회는 겁탈이 이런 식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경각심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촉구할 의무가 있다.
 

강간(겁탈)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국제적인 매춘관광에 대해서도 아울러 언급해야 한다. 매춘관광은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다. 못사는 나라들의 일부 사람들은 여자와 아이들의 가난을 미끼로 삼아 그들을 성거래에 강제로 끌어들임으로써 큰돈을 번다. 부유한 나라의 남성들은 '사람이 감히 돈을 갖고 살 수 없는 것', 즉 여성의 성을 사는 데 있어서 무자비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런 비극적인 사실은,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들의 여러 단체들의 연결망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실례를 또한 제공한다. 매춘관광 비행기가 떠날 때 항의하기 위해 사람들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서 있을 수도 있지만, 저편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비행기가 도착하면 항의하기 위해 방콕에서 기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는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비록 해외에서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법은 한 사람의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똑같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못박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의 보고에 따르면, 일부 나라들에서는 여성 죄수에 대한 겁탈이 일상적 고문의 형태이다. 희생자들은 신체적 폭행의 고통을 당함은 물론 심리적으로도 정서와 감정 모두에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도 심문자들과 일부 국가 공무원들은 정보나 자백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은 물론 그저 여성들을 겁주기 위해서도 겁탈이란 극악무도한 방법을 사용한다.

여성에게 있어 겁탈은 더할 나위 없는 수치이며 일반적으로 그녀의 남은 생애 동안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의 여러 결과들을 낳는다. 겁탈당한 여성이 이 끔찍한 체험에 잘 대처할 수 있는지 여부는 종종 그녀의 출신지와 그녀가 몸담아 살고 있는 환경과 문화적 배경이 어떠한지에 달려 있다. 특히 수치나 두려움 가운데 그 체험을 자신의 기억에서 말끔히 지우려고 애쓰는 여성들은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겁탈의 상처들은 보통은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바로 이것 때문에 겁탈은 여성과 어린 소녀들을 희생시키는 몹시 사악한 도구로 계속해서 사용된다.

겁탈에 관해서는 아직도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여성은 성적인 괴롭힘과 겁탈에 대해 자기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들의 보고서가 흔히 그러하듯이, 성경의 이 구절에 있어서도 디나의 고통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 대신, 창세기 34장의 기사는 디나가 속한 가문의 분노로 직접 넘어간다. 디나가 겁탈당한 것은 자기네 가문에 대한 폭행으로 간주되며, 그리하여 겁탈은 관심의 초점이 된다. 그러면서도 디나의 감정이나 바람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겁탈당한 디나 자신보다도 디나를 자기네 소유물로 믿는 사람들이 더욱 겁탈을 당한 것처럼 보인다. 디나의 오빠들인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 사람들을 죽인다. 이것은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잘못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이다. 아버지인 야곱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시므온과 레위는 이 살인에 대한 벌을 받을 것이다. 이로써 모든 가족이 고통을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진 채 자기네를 보호해 줄 환경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세겜의 여자들과 아이들 또한 야곱의 아들들에게 포로로 잡혀가 고통을 당한다. 결국 야곱 자신도 가나안과 블레셋 족속의 복수를 두려워하기에 이른다.

이 이야기 전체는 파멸로 가득하다. 세겜 도시와 세겜 주민들의 여러 들판들이 파괴되었다. 전쟁과 폭력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환경파괴는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고 죽이는 것과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한니발(Hannibal)과 시저(Caesar)의 전쟁들에서 이탈리아 남부의 산림이 모조리 파괴되었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사하라 사막의 팽창을 초래했다고 믿는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베트남에서 네이팜 폭탄을, 그리고 일본에서 원자폭탄을 사용한 결과가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핵무기 실험은 자연, 특히 태평양 연안의 자연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시켜 왔다.

폭력은 항상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폭력의 원인들이 아주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전 유고슬라비아의 전투원들은 그들의 증오심의 뿌리를 1389년, 즉 Amselfeld에서 유명한 전투가 벌어졌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다. 독일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부 우익 젊은이들은 1930년대 독일의 이데올로기들을 가지고 그들의 증오심을 키운다. 너무도 자주 이데올로기들은 폭력을 기른다: 민족격리정책, 인종차별정책, 군사주의, 성차별주의. 그들의 언어는 폭력의 언어가 된다. 우리의 성경 본문에서 이 언어는 맨 처음에는 디나에게, 그 다음에는 디나의 오빠들에게, 그 다음에는 세겜의 남자들과 그들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종족 전체가 몰살될 가능성에까지 가 닿는다.

일반적으로 사회는 폭력을 멈추게 하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모른다: 폭력. 때로 우리는 다른 방법들을 찾기를 단념한다. 아니면 이것은 단순히 폭력의 고리를 깨뜨릴 새로운 방법들을 찾는 우리의 상상력과 창조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인가? 오늘날 우리는 자연을 겁탈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만일 이 자연의 파괴를 멈추기 원한다면, 우리는 다시금 새로운 방법들을 찾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러분은 겁탈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는 겁탈의 문제를 결코 다루지 못한다. 겁탈에 관해 말하고 그 상처의 근원을 드러냄으로써만 여러분은 겁탈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는 자연의 겁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는 창조성이 필요하다. 생태학적 농업, 특히 서구사회에서의 에너지 절약하기, 자동차 사회의 이데올로기 극복, 생산과 소비를 다시금 인간관계 중심으로 되돌리기 등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자연을 겁탈하는 일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먼저 폭력을 멈추어야 한다.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창조질서 보전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

[대화]

우리 이야기 속의 여섯 인물과 그들의 생각을 살펴 보라.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본 다음 여러분이 초점을 맞출 한 인물을 선택하라. 갈등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을 애써 찾아 보라. 그 다음에 우리가 갈등을 해결하는 다양한 편차의 비폭력적 접근방법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여러분 각자의 사고의 노선을 함께 이야기해 보라.

이야기 속의 여섯 인물은 다음과 같다:

하몰: 나는 갈등이 점차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실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겁탈 때문에 전체 도시가 파괴되었다. 나는 이 겁탈을 용서할 수 없다.

디나: 겁탈은 끔찍했다. 그러나 나의 오빠들의 복수는 사태를 악화시켰다. 그 누구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내 삶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양측 모두가 나를 그들의 폭력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세겜: 나는 디나를 겁탈했다. 그러나 나는 진심으로 그것에 대해 보상을 하기 원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신부의 값을 치렀고, 평화를 제의했고, 심지어 할례까지 받았다. 나는 그들을 신뢰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배신했다.

시므온: 그들은 내 여동생을 겁탈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정의란 어울리지 않는다. 속임수는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최소한의 대가이다. 그들 모두는 죽어야만 한다.

레위: 정말이지 우리는 세겜만 벌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복수심이 점점 더 커졌다. 그래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차 확대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옳았다. 이것은 분명하다.

야곱: 내 딸이 겁탈을 당했다. 나는 여기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나는 내 아들들의 분노를 알고 있었고, 또 문제가 확대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불타는 분노를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상대방이 또 다시 우리에게 복수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4. 정의-창조를 나누는 일에 관하여(누가 12:16-34): [방법론: 편지나 유언장 쓰기]

네 복음서 중에 누가복음에만 이 비유가 실려 있다. 비유 속의 농부는 대단히 현명한 사람, 즉 자신의 투자를 매우 주의 깊고 성공적으로 계획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시장(market)의 원리를 아는 기업가요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는 10월의 추수감사제 때 종종 이 본문을 갖고 설교한다. 수확을 이기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타인을 위한 수확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또 궁극적으로 우리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이어야 함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놓고 여러 고민에 빠져든다. 왜냐하면 이 본문은 농부들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나의 한 동료는 이 본문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부자에 대해 마음 편하게 생각하는 부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본문을 설교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도 편견에 빠져 있다고 말하고 싶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본문의 농부에게 파촘(Pacho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이야기들 중 하나는 러시아 농부 파촘에 대해 말한다. 그는 하루 동안 자기가 걸어다닐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얻을 기회를 맞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는 조금이라도 더 걸어다니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원을 완성할 수 없다. 결국 탐욕 때문에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도 얻지 못한다. 인간의 욕심은 이 세상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시장의 법칙에 따라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인간의 욕심이다.

루터는 이 농부를 미신에 사로잡힌 마법사요, 하나님의 적대자라고 불렀다. 결국 루터는 그에게 맘몬(Mamm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을 바라볼 때, 여러분은 부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주된 목적이 되기 얼마나 쉬운지 곧 깨닫게 된다. 인생의 의미가 뭐냐는 독일에서의 최근의 조사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인생'을 휴가, 먹는 것, 마시는 것, 여가, 성생활, 사회생활 따위의 소비적인(consumer) 목적들과 동일시하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누가의 이야기는 그런 태도들과 직접 관련이 있다.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단순히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분명할 때조차도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는 절대로 부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는 부가 안고 있는 위험들을 지적했고 또 부를 악용하는 것을 늘 심판했다. 다른 모든 권력과 마찬가지로, 돈은 좋게도 나쁘게도 사용될 수 있다. 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가난 그 자체도 좋은 것이 못 된다. 예를 들어, 요셉은 곡식 창고들을 가득 채우고도 이집트의 수확물을 저장하기 위해 새 창고들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던가(창세 41장)? 그러나 요셉과 누가복음의 농부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요셉은 남들이 살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고 곡식을 저장했다는 데 있다. 누가복음의 농부는 실로 바보였다. 왜? 그는 생명 그 자체와 생명의 수단을 혼동하였기 때문이다.

비유에 인용된 그의 60마디 가량의 발언은 끊임없이 '나'와 '나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우리'와 '우리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만 너무도 사로잡혀 있었기에 개인 재산의 뿌리는 공동 재산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는 자기 혼자 모든 일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자기 땅에서 열심히 땀흘려 일한 다른 많은 사람들의 긴 줄 끝에 자신이 서 있다는 걸 몰랐다. 오늘날 생태학적 농업에 대한 점증적인 인식은,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세대에게 감사하고 앞으로 올 세대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한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생태학적 농업에서 본다면 땅이 스스로를 정화하는 데는 적어도 3년이 걸린다. 또 땅이 정말로 회복되기까지는 그보다 몇 년이 더 걸린다.

1992년 나는 WCC 팀의 일원으로서 브라질을 방문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주쿠루(Xurcuru) 부족을 찾아갔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레시페 서부에서 차를 타고 약 10시간 걸리는 북동쪽의 자기네 땅에서 살아왔다. 유럽인들이 약 200년 전 브라질의 그 지역에 도착했을 때, 침입자들이 가져온 무기들, 질병들, 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땅에 대한 약탈로 그 곳 사람들은 무참히 파괴되었다. 우리가 방문하기 직전, 그 부족의 추장은 그들의 전통적인 땅으로 복귀하기로 결심을 했었다. 몇 개의 초소를 지나 마침내 우리는 60개의 작은 오두막에 도착했다. 60가구 모두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긍지로 충만해 있었다. 그들은 옷도, 곡식도, 음식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땅에 돌아와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한 갓난아기를 보여주었다.

200년이 더 지나서야 주쿠루 땅에서 태어난 최초의 주쿠루인을! 이 연약한 갓난아기를 보았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그 갓난아기가 떠올랐다.

우리와 동반했던 그 지역 교회의 한 남자는 말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은 적지만,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그 땅의 주인은 모르긴 해도 그들을 내쫓거나 죽여버릴 것입니다. 이게 이 땅의 보편적 이야기이지요."

땅 주인은 그 땅을 갖고 무슨 일을 하는가? 그는 값싼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수출할 사탕수수 밭을 경작하여 왔다. 이것은 그저 불의한 일만이 아니다. 이것은 창조의 파괴이기도 하다. 해마다 거기에서 자라나는 사탕수수는 토양을 죽일 것이다. 많은 열대 우림이 파괴되어 대기 속에는 보다 많은 온실 가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정말이지 어느 누구도 그 땅을 소유하지 못한다. 50년마다 노예들은 자유롭게 되어야 하고 땅은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져야 한다고 못박은 이스라엘의 희년법(레위 25장) 배후에는 바로 이런 신념이 깔려 있었다.

한 사람이나 한 민족이 정의와 생태계 사이의 이런 관련을 망각하기 시작할 때, 그 결과는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누가복음의 성공한 농부처럼, 많은 부자들은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기 시작한다. 누가에게 죄는 우쭐대는 것과 관련된다. 그리고 구원이란 도덕적 향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해방적인 통찰력, 즉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총과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임을 바로 깨닫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누가의 구원론의 일부이다: 부유하고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하던 초기 교회에 있어 해방에 대한 통찰력.

이 본문을 오늘 우리 세계의 사악한 현실에 적용시켜 보는 것은 매우 쉽다.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서유럽은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지 않도록 남아도는 음식을 내다버리고 또 우유와 쇠고기를 덜 생산하도록 농부들에게 강요한다. 바로 이런 법 때문에, 많은 농부들이 이제 농업만으로는 생활을 꾸려갈 수 없다. 동시에, 내 딸이 아침으로 먹는 바나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내가 마시는 차는 인도에서, 나의 다 큰딸들이 먹는 코코아는 남부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내 남편이 마시는 커피는 브라질에서 온다.

오늘날 부유한 세계의 죄는 이런 관련들을 무시하는 것, "외국인들은 꺼져라!" 그리고 "독일 사람들만을 위한 독일"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한 동료는 자신이 쓴 이야기에서 "만약 독일에 들어온 모든 외국 제품들이 이런 슬로건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고 상상의 날개를 편다. 자동차 타이어는 고무나무의 나라로, 차는 인도로, 코코아는 남부 아프리카로, 커피는 브라질로, 바나나는 파나마로, 목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열대 우림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독일에서 모든 외국 제품이 사라지면,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로 남들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자신들의 부는 자신의 노동이 아니라 외국의 값싼 노동력과 불공평한 교역조건에서 옴을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이 세계를 잘 돌보아야 할 백성이라는 사실을, 또 다수의 고난을 기반으로 소수가 잘 사는 한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데 절실히 필요한 논쟁을!

누가의 이야기 속의 농부의 위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 그것은 소유에 대한 그의 태도로 야기된 위기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소유를 그 소유의 본래 목적, 즉 남들 또한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산을 불리는 것이 삶의 안전을 도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자기 재산을 늘리는 데만 정신이 팔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누가복음의 농부에게 붙인 이름인 바보처럼 살고 있다. 자기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들, 자기네가 없이는 이 세계가 존재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바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가?

천안문 광장에서 학생들을 죽인 사람들, "모든 전투의 어머니"(mother of all battles)라고 뽐내는 사람들, 금지명령들을 갖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침묵시키려고 애쓰는 사람들, 이들 역시 바보이다. 예수가 선언했고 누가가 자세히 이야기하는 "이 어리석은 자여"라는 하나님의 심판은 듣기 좋다. 왜? 역사는 너무도 자주 대단한 체하는 사람들을 편들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발전과 기술을 가져다준다. 이것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다국적기업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이 너무 비참해서, 모든 형태의 돌발사고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공장에서 2백 명의 사람이 불에 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누가복음의 이야기 전편에 흐르는 것은 바로 이 역사의 또 다른 측면, 밑바닥 즉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한 자들의 관점에서 본 역사이다. 이 어리석은 자여!

우리는 새로운 인식들, 즉 재산의 사회적 책임성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한 세대적 책임성이 필요하다. 자연과 내 자신과 앞으로 올 세대들에 대해 비극적인 결과들을 불러일으키는 삶은 결코 훌륭한 삶일 수 없다. 이 세계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사회적 책임성의 한 주요 쟁점은 자동차 운전과 관련된다. 독일의 한 주인 북부 라인-베스트팔리아에만 해도 아프리카 대륙 전체보다 더 많은 차가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무시당하고 있는 사회적 책임성의 한 실례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자가용을 소유한다면, 이 세계는 결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이 기후변화를 낳는 가스 축적의 주요 원인들 중 하나라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부유한 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열대 우림 파괴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말레이시아의 수상은 언젠가 말했다: "세계 인구 중 부유한 25%가 세계의 부의 85%를 소비하고 또 세계의 모든 쓰레기의 90%를 만들어낸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부자들이 낭비적인 소비를 25%만 줄여도 세계적인 공해는 22.5%가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인구 중 75%를 차지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소비를 완전히 줄이고 지구상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세계적인 공해는 겨우 10%만 감소될 것이다."

세대적인 책임성에 있어, 에너지 소비가 핵심 문제의 한 실례가 된다. 지금 우리 세대는 우리 자녀들에게 충분한 에너지를 남길 수 없을 정도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가령 우리는 핵발전을 이용하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데 핵발전은 수천 년 동안 방사능을 유출시킬 위험을 포함한 온갖 위험을 안고 있다. 체르노빌 대참사는 인류에게 에너지 문제와 관련하여 귀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일마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 전문가의 평가에 따르면, 예전 소련 영토의 40%는 핵실험, 핵으로 인한 사고들, 마구 내다버려지는 핵폐기물로 오염되어 있다. 이것은 앞으로 올 세대들에게 비극적인 유산이 될 것이다.

독일의 신약학자인 렝스토르프(K.H. Rengstorf)는 이렇게 적고 있다:

그 농부에게 있어 잘못된 것은, 자연과 자연의 산물이 더 이상 하나님과 합리적인 관계 속에 있지 못하다는 것,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은 가득 채운 곡식 창고들뿐이라는 것, 그리고 특히 풍부한 수확의 축복을 누리면서도 그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을 주고 또 보호해 주는 것은 자연(nature)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그는 죽어야만 한다.

누가의 농부는 겉으로는 부자이지만 안으로는 죽어 있는 서구문명에 대한 비유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독일 신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1983년 벤쿠버에서 열린 WCC 회합에서 행한 연설에서 이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부유한 제1세계에는 충만한 생명이 거의 없다. … 그 대신 끊임없이 증가하는 공허만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와 중류계층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물질적 어려움이 아니라 정신적 공허감이다. 무의미한 인생은 일반 대중의 공통된 경험이다. 그 무엇도 당신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실제로는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타인들과의 관계는 표면적이고 상호 가변적이다. 희망은 오직 다음 번 여행이나 휴가에만 가 닿는다. 하는 일은 그저 무의미하고 지겨울 따름이다.

필립 슬래터도 이 공허감에 대해 유사하게 묘사한다:

우리는 개인주택, 개인 운송수단, 개인 정원, 개인 세탁소, 셀프서비스 상점들과 자신이 직접 하는(do-it-yourself) 기술들을 추구한다. 거대한 과학기술 때문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질문하는 것이 불필요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한 가족 내부에서도, 가능하면 각 사람이 개인적인 방, 개인전화, 개인적인 텔레비전과 자동차를 가지려고 한다. 우리는 보다 많은 사생활(privacy)을 가지려고 애쓴다. 그러면서도 막상 그리되면, 우리는 소외감과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낀다. 우리가 갖는 우연한 접촉들은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그런 접촉들을 자발적으로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임은 물론, 그런 접촉들은 우리에게 친숙한 모든 독립적인 형태와도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는, 모든 피조물을 돌보아 주실 분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매우 상이한 상황들 속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우리의 생애 동안 그 나라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바보는 바보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정의가 언젠가는 승리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는 '부유한 농부들'에게 나눔을 위해 저장하도록,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밭을 갈도록, 토지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를 돌보기 위해 토지를 경작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토지를 경작하는 모든 사람은 토지의 사회적 책임성을 고려해야 하고, 또 그 토지를 필요로 할 앞으로 올 세대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편지 쓰기]

누가의 본문을 다시 읽고 하나님 앞에 부유하게 됨의 의미를 묵상해 보라. 이 본문 바로 다음에 나오는 하늘의 새와 들의 백합들, 그리고 우리가 마땅히 걱정해야 할 일과 걱정해서는 안 되는 일에 관한 구절들을 갖고도 묵상해 보라. 그 다음, 앞으로 50년 후 태어날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라.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남겨두게 될 것인지에 관해. 이것은 희망 혹은 절망의 편지, 격려 혹은 참회(고백)의 편지일 수도 있으리라.

5. 예수 안에서―새로운 피조물(로마 8:18-23): [방법론: 그림 그리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생태계에 대해 논의할 때 종종 인용하는 성경 구절은 요한계시록 21장이다. 이 구절은 더 이상 고통이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 눈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말한다. 확실히 생태계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접근 속에는 궁극적으로 희망과 신앙고백이 포함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종말론적 측면은 우리의 신앙에서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과 대조적으로, 로마서 8장의 본문은 피조물과의 그리스도론적 연관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피조물 자체가 주제가 되는 중요한 본문이다.

독일에서는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종종 이 구절을 읽는다. 하늘에 대한 소망,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망각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구절은 여러 전쟁에서 죽은 이들을 기념하는 국민 애도의 날의 설교 본문으로도 사용된다. 동시에 이 본문은 신학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독일의 많은 유명한 신학자들과 심지어 철학자들(에른스트 블로흐,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도 이 본문에 주석을 달았다. 피조물의 고통과 갈망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 이 본문은 자연에 대한 신학적 접근에서 핵심 구절이다. 본문은 빛나는 언어로 인간의 고통스런 체험과 희망을 밀접히 연관짓는다. 이 본문을 둘러싸고 내려진 다양한 해석들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 노선의 해석학적 접근법을 식별할 수 있다.

칼 바르트는 그의 1921년 로마서 주석에서 이 본문을 구원에 관한 바울의 그리스도론적 및 종말론적 가르침과 연관하여 해석했다. 루터를 좇아, 바르트는 예기(expectation)와 계시, 노예 됨과 자유, 고통과 영광, 고뇌의 현실과 희망이라는 본문의 상호 연관된 단어들을 인류와 이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정의(定義)로서 해석한다.

루돌프 불트만은 다른 노선, 즉 실존론적이며 역사적인 접근법을 강조한다. 그는 본문이 실존론적 해석을 강화하는 영지주의적·신화론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본다. 1938년 마르부르크에서 행한 한 연설에서, 그는 "우리는 지금 보여지는 대로의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희망하는 바로서의 존재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대로의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바로서의 존재이다"(We are not what we now seem to be, but what we hope. We are not what we make of us, but what God has planned for us.)라고 진술한다.

폴 틸리히는 이 둘째 노선을 따르면서도 역사적 요소를 강조했다. 그래서 자연과 영(spirit), 자연과 문화 사이의 불일치의 종말은 구원일 것이고 결론지었다. 그에게 있어, 자연의 구원이 없이는 인간의 구원도 없다. 인간은 자연 속에 있고 자연은 인간 속에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생명의 의미이며 목적이다.

위르겐 몰트만은 그의 희망의 신학에서 틸리히의 노선을 한층 더 발전시키는 데, 희망의 신학에서 이 본문은 핵심 구절이다. 그는 이 본문을 이 세상, 역사, 그리고 실제적인 미래의 구원을 희망하는 예언자적 선포로서 파악한다. 이런 해석의 노선은 오늘날 생태계 파괴로부터의 이 세계의 구원에 대한 희망으로까지 확대된다.

에른스트 케제만은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위의 두 해석의 노선에 깃들인 위험을 보여준다: ⑴ 자유를 명백히 미래에 대한 개방성으로 묘사함으로써 구원을 개인주의화하고 바울의 메시지를 축소시킬, 실존론적 접근의 위험들. ⑵ 자연신학(theologia naturalis), 우주론적 사색, 세속적 유토피아로 전락할, 역사적으로 편향된 주석의 위험들. 그래서 케제만은 이 두 측면을 결합시키려고 애쓴다. 바울은 종말론적 자유를 우주적 차원에서의 구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신자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우주론적으로 이 세계의 구원으로서 묘사된다. 본문은 십자가의 신학의 틀 안에 있는 구원의 실재를 지적하고 싶어한다.

해산의 진통을 겪는 여인처럼, 본문에서 피조물은 신음하는 주체이다(22절). 본문에서 핵심적인 것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이 세상의 현실에 맞서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자신은 이미 부활했지만,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분이 떠나간 세상, 고통과 고뇌와 멸망의 세상 속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절망 한복판에서 희망을 살아야 한다. 케제만이 말하듯이, "이 세상 안에서, 그리고 이것과 대조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는 공동체 속에서, 모든 피조물을 위한 구원으로서의 종말론적 자유는 윤곽을 드러낸다."

모든 피조물이 고난 속에 신음하고 있다. 여기에 대한 수많은 실례가 있다: 오존층 파괴, 기후변화, 토양침식, 수질오염, 산림 황폐화, 거주지의 파괴, 종(species)의 멸종, 생물공학의 사용/악용. 날마다 우리에게 환경파괴에 관한 뭔가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는 듯하다.

이 고난은 해산의 진통으로 묘사된다. 해산의 진통은 참으로 인상적인 체험이다. 일단 진통이 시작되면, 여러분은 이 진통의 과정을 어떤 방법으로도 멈출 수 없다. 여자는 비명을 지를 것이다. 혹은 가부장제적 전통이 이 비명마저 금한다면, 그녀는 비명을 피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다. 땀이 흐르고, 피가 나고, 눈물이 뒤범벅된다. 진통의 절정에서 이제 더 이상 진통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여자는 막 숨이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되고, 마침내 아기가 태어난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때는 바로 이 순간, 즉 여자가 "이 고통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고통을 참으려고 애써도 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피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피조물이 비명을 지른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에서 피와 땀과 눈물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이 지구라는 행성에는 아무런 미래가 없다. 그러나 이 고통스런 과정이 풍부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우리의 희망은 새 생명을 향하고 있다.

이 상징(image)이 안고 있는 첫째 문제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만약 궁극적으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진통의 과정에서 걱정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하도록 유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채로 태어나는 아기들도 있다. 태평양 연안의 방사능 때문에 유전적 결함을 갖고 태어나는 아기들, 큰 도시들에서 천식증을 갖고 태어나는 아기들, 마약중독증을 갖고 태어나는 아기들, 살아볼 아무런 기회도 갖지 못하고 태어나는 아기들을 생각해 보라. 피조물의 파괴는 이미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본회퍼가 표현했듯이, 값싼 은총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똑같이 이 세상에는 값싼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안일한 해석은 앞서 언급한 첫째 함정, 즉 "지금은 고통이 존재하지만, 그 다음에는 영광이 존재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든다. 그러나 바울은 긴장과 역동성을 그의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19절). 이것은 희망 속에서 행동하는 것, 절망하지 않는 것, "파괴가 극에 달했으므로 이 땅에서 생명을 구원할 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 우리는 그저 마음을 편하게 먹고 "희망은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럴 수 없다. 우리는 실제적인 위협과 실제적인 희망의 변증법을 갖고, 하나님은 우리가 공동창조자가 되기를 원하셨다는 인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다. 현실과 맞서기 위해, 더욱이 희망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영적 힘이 요구된다.

둘째 문제는, 우리가 본문을 단지 인간만의 구원을 위한 일종의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자연에도 역사가 있고 자연도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된 것은 겨우 지난 몇 년의 일이다. 자연은 객체가 아니라 주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앞의 성경연구에서 배웠던 통찰력, 즉 우리는 피조물의 일부라는 사실로 되돌아가야 한다.

미국 원주민인 크리(Cree) 사람들의 속담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다음에야, 비로소 너희들은 사람이 돈을 먹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로마서의 이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지막 나무가 베어지기 전에, 이 영께서 우리가 돈을 먹을 수는 없다는 통찰력에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다. 우리에게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 즉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시는 분은 바로 이 영이다.

북미의 또 다른 원주민인 윈투(Wintu) 족 출신의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은 땅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죽인다. 땅의 영(spirit)은 그들을 증오한다. 인디언들은 어떤 것도 파괴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인들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어떻게 땅의 영이 이런 백인 남성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손이 닿는 어디에서나, 땅은 염증을 일으킨다.

이 '땅의 영'과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성령이 과연 관련이 있는지는 흥미롭고 중요한 논쟁이다. 정현경 교수가 캔버라에서 열린 WCC 제7차 회합에서 공연을 한 이래, 이 논쟁은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다시 불붙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 둘 모두 동일한 현실을 드러낸다: 자연에 대한 존경, 그리고 우리는 고통과 갈망의 한복판에서 두 시대 사이에 살고 있다는 인식.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피조물의 구원과 연관시켜 보아야 할 의무와 축복을 동시에 갖고 있다. 우리는 피조물의 일부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파괴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학적 문제들은 '비신학적인 요소들'이 아니라 주목할 만한 신학적 관심사이다. 하나님이 주신 성령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가 몸담아 살고 있는 죄의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안다.

바울이 피조물이 받고 있는 저주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의 결여로 해석했던 반면, 우리는 피조물의 가장 끔찍한 고통을 야기하는 것이 바로 인간임을 고백한다. 바울이 피조물의 신음을 궁극적 구원을 향한 피조물의 희망의 표징으로 보았던 반면, 우리는 그 신음소리를 죽음 앞에서의 최후의 신음소리로, 이 세계의 종말로 듣는다. 바울이 피조물의 해산의 진통을 새로운 탄생의 표징으로 보았던 반면, 이 진통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고백하도록 몰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체로서의 인간과 자연 사이의 연관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과 자연의 공동의 구원 혹은 공동의 파멸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인식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또 더 나아가서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인식은 우리가 우리의 삶의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가 하는 지점까지 서둘러 가 닿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계약은 아직도 유효하다. 무지개는 여전히 하늘에 걸려 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이 지구를 우리가 파멸시킬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

우리는 뭔가 창조적인 것으로 우리의 성경연구를 마치려고 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피조물의 해산의 진통과 여러분이 피조물과 우리 모두를 위해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그릴 재료들을 나눠 갖는다. 여러분의 마음이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색깔을 갖고 여러분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그려 보라.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의 느낌(생각)을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자신의 느낌(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라. 이것은 바로 여러분의 그림이다. 이 그림들은 바로 여러분 모두의 감정이며 상상력이다.

여러분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위로 하늘이 내리는 축복,
아래로 깊은 곳에서 오는 축복,
짐승들과 자궁의 축복,
곡식과 꽃들의 축복,
영원한 산들의 축복,
변함없는 언덕들의 은혜,
이 모든 축복이 당신과 함께 머물기를,
또 당신과 동행하기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이 글은 Margot Kassmann, "Covenant, Praise and Justice in Creation: Five Bible Studies", in: Ecotheology: Voices from South and North, ed., David G. Hallman (Orbis Books, Maryknoll, New York, 1994), 28-51쪽의 완역이다.

마거트 캐스만
정연복 옮김(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