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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자료사진) |
|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지팡이로 꼬부랑 걸어 가네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길을 운전하는 신 보좌관이 꼬부랑이 나올 때마다 베이스로 화음을 넣어 주는 것으로 보아 가족들은 이 길을
많이 다녀본 것 같았다. 춘원은 밍키의 두 발로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추고 음료수와 새우깡을 먹는 틈 외에는 노래가 끊이지 않았는데, 소풍을
나와 달리는 차 속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도 노래하지 못하는 영이의 메마른 감정을 나무라는 듯 했다. 강원은 동생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다가도
이따금 창 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곤 하였으며, 키퍼는 바람을 싫어하여 아예 코를 좌석의 머리받침에 대고 돌아 앉아 춘원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은 춘원의 손에 있는 과자를 얻어 먹기 위함이다.
사람의 본능은 어린 춘원처럼 무엇인가를 타고 달릴 때 외치고 싶어 하는 야성을 가지고 있다. 옛날 기차의 웅장한
소리는 이를 잘 나타내 보였으나 세월이 갈수록 기차도 사람도 조용해 지는 것은 이성의 발달로 야성을 거부한 인간은 마치 간경화증 환자처럼 인간의
마음이 굳어져 가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영이가 처음 본 춘천의 인상은 산 속에 강의 허리띠를 두르고 우뚝 서 있는 아름다운 유럽의 성(城)이었고 낮은
산등성이 사이로 물들이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며 조밀한 풍치는 영이의 마음을 푹 담기게 하는 마력을 지닌 도시였다. 번화한 곳에 들어서자
‘원조 막국수 ’라는 간판을 단 대형식당에 차들이 멈추자, 신 보좌관이 유 비서관의 누나가 경영하는 식당이니 점심을 여기서 해결한다고 귀띔을 해
주었다.
“"아이구나~, 내 새끼들.”
유 비서관의 누나인 듯한 30대 후반의 정이
넘치는 얼굴을 한 여인과 60세 정도의 모시를 깨끗이 입으신 할머니가 아이들을 얼싸안고 볼을 맞대며 반가워 하더니, 아주머니는 춘원을 등에 업고
강원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춤추듯 들어갔다.
홀에는 통나무로 만든 식탁과 의자가 자연미를 나타내었고 한쪽 면에는 개방된 방들로 되어 있었으며 방바닥은 온돌인데
대나무로 만든 방석 위에 앉으니 더위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키퍼는 홀에 있어야 하나 특별히 발바닥을 깨끗이 닦고 강원과 영이
사이에 점잖게 앉아 있는 것이다. 영이는 이제야 일행들을 속으로 헤아려 보았는데 외할아버지 운전수 2명, 유 비서관 부부와 어린 두 자녀,
가정부 아주머니와 남편, 신 보좌관 부부와 쌍둥이 딸, 우리 셋 그리고 친구 둘. 총 열 일곱의 대식구였다.
맨
먼저 큰 대야에 키퍼의 음식이 방의 구석에 놓여졌는데 닭 머리를 중심으로 닭의 다리뼈들이 잔뜩 담겨
있었고 작고 이뿐 그릇에는 밍키를 위해 닭의 살이 잘게 썰어져 있었다. 개에게는 닭의 뼈는 금물이라는 말은 키퍼의 식사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예외도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작년 가을에 유 비서관의 누나인 명옥 아주머니께서 전 의원 댁을 방문을 하였을 때 정원에서 삼겹살을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키퍼가 고기를 먹고 있는 자기를 쳐다보는 눈이 너무나 애처로워 고기가 넘어가지를 않기에 고기를 주려고 했으나 전 의원이 키퍼가 한
시간 전에 먹었고 요즘 너무 살이 찌니 굶겨야 한다는 말에 포기를 했으나, 오늘은 키퍼도 소풍을 나왔으니 닭 머리를 마음껏 포식을 시키겠다고
아주머니가 미리부터 준비를 한 것이다.
강원도의 토양처럼 검고 누런 빛깔을 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막국수의 구수한 맛은 매운 맛의 닭 갈비와 멋진 조화를
이루었으나 영이의 마음은 10년 전의 고향의 맛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 영이가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은 길거리 냉면이었다. 아주머니들이 고기 나무상자 2개를 붙여 만든
운반통에는 번쩍이는 은색의 둥근 양푼이에 옥수수 가루로 만든 면과 얇게 썬 노란 무시, 무시를 넓고 얇게 썰어 고추가루에 절인 냉면 김치, 삶은
돼지고기 한 점, 삶은 계란 사분지 일 조각을 담아 3층으로 포개어 머리에 이고서 한 손에는 큰 주전자에 냉면 국물을 얼음에 채워 들고는 자갈치
시장과 시내의 번화가를 외치며 다녔는데 아마 이것이 어쩌면 라면의 원조인 셈인지도 모른다. 엄마의 생선 좌판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식초와 겨자를
잔뜩 친 노란색의 길 냉면을 먹는 맛은 지금도 영이의 입에 군침이 돌 정도로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명옥 아주머니는 춘원의 곁에 앉아 닭 갈비를 구우면서 연신 작은 접시에 담아 손님들에게 돌린다.
“춘원아, 너는 나무
젓가락으로 막국수 먹는 법을 엄마에게 잘 배웠구나, 아주 잘 하는데.”
“…….. ”
춘원은 막국수를 입에 물고 있기에 눈으로 생긋이
웃으며 머리를 끄덕인다.
“조 선생, 우리집에는 국수 자르는 가위가 없어요. 막국수는 이북에서 내려 온 함흥냉면이나 평양냉면에 비해 질기지 않는데도 가위로 잘라
달라는 손님이 많아요. 면이나 국수는 절대로 금속으로 잘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엄마의 막국수 식사법 이예요.”
조금 전까지 강원이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어느 사이에 홀에 나가서 서울서 놀러 온 듯한 손님들에게 젓가락을 놀리며 무엇인가를 설명을 하고 계셨다.
“막국수를 먹을 만큼 그릇에서 집어 허리를 편 채로 약간 고개만 숙여 입 안에 넣고서 막국수를 잡고 있는 나무 젓가락을 앞니로 물면
정확하게 끊어 지지요. 아무리 질긴 함흥냉면도 한번에 끊어져요.”
영이가 방안을 둘러 보니 모두들 솜씨 있게 나무젓가락을 무는 솜씨가 질긴
이북 냉면에 익숙한 부산 사람들보다 나은 것은 향토의 음식에 대한 애정 때문인 것 같았다.
“30여년 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어머니가 막국수 장사를 시작했어. 지금의 홀은 마당이었고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방이 안방이었지.
마루에서 시작한 막국수가 안방으로 마당까지 손님이 앉게 되어 10년 전에 3층으로 새로 건축했어.”
아주머니가 이야기 하는 도중에 식사를
하러 온 동네 사람들이 유 비서관과 신 보좌관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으며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강원도 사람들은 강한 사투리가
없는 대신 마음 속은 높고 깊은 산들의 영향인지 과묵한 듯 하였다.
“춘원 엄마와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동기라, 흔히 남자들이 말하는 불알 친구인 셈이지. 그녀의 별명은 ‘차공’인데 착한
공주란 뜻이야. 공주처럼 유별난 옷차림과 행동은 하였으나 어찌나 마음이 착한지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어. 선머슴 같은 나하고는 아주 대조적이었으나
어울리는 짝궁이었어.”
아주머니는 많은 사연이 있는 듯 했으나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어린 자식들이 있는 데서 하므로 모처럼의 나들이의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라 판단했던지 자제를 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별장까지는 족히 차가 30분을 달려야 하므로 춘원네 가족은 먼저 일어 나기로 했는데, 어느새 할머니가 먹을 것을 차의 트렁크에
잔뜩 실어 놓으셨다. 시내를 빠져 나오면서 아이들은 식후인지라 낮잠이 들었고 호반의 도시의 풍경은 바다만 보고 자란 영이에게는 환상 그
자체였는데 걸맞게 라디오에서 <호반의 벤치>라는 옛 노래가 울려 나왔다.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무엇을 하는 님일까~ 만나 보고 싶네.
그림을 그리실까? 신문을 보실까?
호반의
벤치로 가 봐야 겠네.
삭막한 환경에서 살아온 영이의 가슴에도 순수한 자연과 좋은 분들과의 만남으로 숨어있던 임에 대한 그리움의 불씨가 굼틀거린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워 했으나 이는 영이도 거쳐야 하는 두 번째의 사춘기 과정인 것 같았다.
시내를 벗어나자 강물을 따라 잘 포장된 길들이 곡선을 그리며 이어져 있었으며 틈새마다 온갖 색깔의 텐트들이 조가비처럼 널려 있었고
젊음이 넘치는 함성이 간간히 들렸으며, 강 건너편에는 유럽의 사진에서 본 원색의 세모 지붕들을 가진 개인 별장들이 드문 드문 보였다. 큰
강줄기를 똑바로 따라가다 길이 오른쪽으로 쏠리면서 모래사장이 나타났는데, 낚시꾼들이 더위도 잊은 채 강가에 앉아 있었으며 강 건너에는 수박을
이등분 한 것 같은 큰 섬이 보였는데 잠에서 깨어난 춘원은 다 왔다며 연신 섬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킨다.(필명 외눈,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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