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호반(자료사진)

영이는 방학기간이라 하루에 4시간식 아이들의 학기말 시험을 위해 강행군식의 지도를 한 것은 벼락치기 공부가 아니라 모든 일의 마지막 순간에는 최선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정신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적표를 받은 아이들의 얼굴이 환한 것으로 보아 노력을 한 만큼 열매를 거둔 셈이기에 가르치는 영이도 보람을 느끼며 기뿐 마음이었는데 또 하나의 기뿐 소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 의원이 보름 계획으로 동료 의원들과 유럽의 여러 지역을 견학하는 관계로 전 의원 대신 영이에게 호반의 도시 춘천 별장에서 두 아이와 두 친구를 데리고 자연을 즐기는 야외 과외수업의 임무가 맡겨졌는데, 이는 강원과 춘원의 성적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담임교사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아 간다는 소견과 전 의원 가족이 영이에 대한 믿음으로 맡겨졌고 과외비 외에 이학기 등록금이 지급되는 특별보너스까지 주어진 것이다.

아침 일찍 전 의원 댁을 간 영이는 출국준비에 바쁜 전 의원께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이미 챙겨 놓은 아이들의 짐을 다시 한번 검토 하였는데, 군인 장성의 손자들답게 이뿐 배낭과 가방들이 거실에 일렬로 정돈되어 팀장의 출발신호만 기다리는 것 같았다.

“후배, 이번 휴가는 나 대신 두목이 되어 가는 것이니 잘 부탁해요. 아이들은 어머니 산소에만 인사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셋이서 아니 다섯명이 자연 속에서 실컷 놀아 주세요. 후배도 잘 알겠지만 어릴 때 자연보다 더 좋은 환경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나의 교육관이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아이들에게 심어 주리라 믿어 .”

“예, 저도 춘천이 처음이라, 상당히 기대가 큽니다. 선배님.”
“허허, 세 아이에 개 두 마리의 모험이 시작되네.”
식탁에서 같이 아침을 먹던 아이들도 웃으며 새 팀장과의 모험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웡~웡~웡~”
대식구들이 몰려 온다는 베이스 성악가 키퍼의 신호대로 가정부의 남편, 유 비서관의 식구들, 신 보좌관의 식구들이 춘원 외할아버지께서 하루를 빌려 준 2대의 승용차를 몰고 왔는데 전체 가족의 고향 나들이는 선거철에도 잘 없었던 일이라고 한다. 영이는 대부분 처음 보는 분들이라 인사하기에 바빴으나 춘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기에 자신은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밍키는 한번씩 차 나들이를 한 것 같아 침착했으나 키퍼는 생전 처음인 모양인지 엉덩이를 빼고 거부를 하기에 차 속으로 밀어 넣는데 온 식구들이 동원될 정도로 였다. 전 의원 차에는 전 의원이 밍키를 안고 앞에 타고 뒷좌석에는 영이, 강원, 춘원과 키퍼가 앉았는데 키퍼 때문에 자리가 여간 비좁지가 않았다.

김포 공항에서는 신 보좌관과 영이 그리고 아이들만 전 의원을 전송하였는데 전 의원은 강원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악수를 한 후 춘원을 안더니 손가락을 걸며 귓속으로 무엇인가를 약속을 하는 것 같았다.
“후배, 내가 돌아와서 15일간의 흥미로운 모험을 많이 들려줄 것을 기대 해. 우리 가족들, 안녕!”
동료 의원들과 함께 출구로 나가며 전 의원은 크게 손을 흔들었는데, 서로 손을 흔드는 인간의 표현은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표현하는 허공에 대한 약속인 것 같았다.

우웅~ 우웅~”
차로 돌아오는 아이들과 영이를 발견한 키퍼의 정상적인 소리인데, 이제 안정을 되찾았는지 전 의원이 앉았던 앞 자리에 앉아서 창문으로 머리만 내어 놓은 채 짖고 있었다. 여름은 개들에게는 제일 고통스러운 계절인데도 밍키의 머리에는 인형에서 떼어 낸 흰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키퍼의 목에는 선풍기 그림을 배경으로 ‘물지 않아요!’라고 크게 쓰여진 팻말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키퍼를 선두로 3대의 승용차는 호반의 도시 춘천을 향하여 달렸는데 서울에서 금곡(金谷)까지는 지형이 평탄하나 동쪽은 산간지방을 통과하므로 꼬부랑 길이 많았으며 북한강이 안내를 하는 듯 하였다. 서울이 멀어질수록 영이는 복잡한 서울을 떠나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주위의 풍경들이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영이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설악산을 구경한 것이 강원도의 첫 방문이며 제일 북쪽으로 가본 것이다. 강원도 쪽으로 갈수록 한국의 좁은 땅이야 다 똑 같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임을 알게 해 주었고, 좁은 땅일수록 지역간의 풍토는 조밀하게 차이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확 트인 바다 대신에 좁은 산길을 이리 저리 헤치고 전진하는 것도 새로운 맛이었는데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춘원의 노래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지팡이로 꼬부랑 걸어 가네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필명 외눈,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