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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일기-3초면인데도 오랜 친구처럼 되는 게 농사꾼의 사귐인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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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9월 10일 (토) 00:00:00 [조회수 : 2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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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선생님이랑 올 여름에 상동 영상 단지 노는 땅에다 텃밭을 일구었다. 땅을 골라 잡초를 뽑고, 돌을 골라 내고, 김 매고, 비둘기 쫓고, 홍수 때는 물길도 내고, 가뭄 때에는 페트병에 물 부어 나르기 등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했다.
씨를 뿌리고 사흘쯤 되자 물에 분 도툼한 콩이 몸을 열어 어린 싹을 내밀었다. 그것들이 흙을 머리에 이고 올라올 땐 정말 뛰고 싶었다. 애초에 거두는 보람은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 손으로 심은 것들이 고개를 드미는 것이 얼마나 이쁜지 쪼그려 앉아 쳐다보는 것으로 행복했다. 더욱이 콩밭에 들어와 뛰노는 청개구리들과 무당벌레, 방아깨비, 풍뎅이 등등 수많은 무주택자들이 임대료 없이 들어와 맘 편히 사는 것을 보면 정말 마음이 뿌듯해진다.
마음은 콩밭에 있다는 말도 체험해 보고야 알았다. 분홍색 약을 바른 청롱무싹도 처음에는 정말 예뻤다. 옆에서 농사하는 사람들을 알게 되는 기쁨도 크다. "뭘 심으세요?" 하고 물어만 봐도 금방 친해진다. 아침이나 저녁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기 바쁘다. 초면인데도 오랜 친구처럼 되는 게 농사꾼의 사귐인가 보다. 자기가 익힌 기술을 알려 주거나 무언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 대대로 우리 핏줄이나 원형질에 녹아내린 농심(農心)이라는 것일까?
담양에서 양돈하는 친구 상우가 농사짓는 사람들은 두어 달만 바짝 힘을 쓰면 9개월 간은 거의 신경을 안 쓰고 논다고 투덜거렸었다. 일반 농사와 양돈에 투자한 노동 시간만 단순 비교해 보면, 양돈은 일반 농사에 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에 비해 그 이익이 결코 크지않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우리도 처음 밭을 일굴 때를 빼고는 그다지 힘이 들이지 않았다. 우리가 심고 물은 주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커린띠언즈 서신에서 말했던 파송자 폴의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가 땀 흘린 하찮은 수고에 비해 저주 받은 땅이지만 그 힘이 아직까지 얼마나 위대한지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묵어 돌과 잡초와 벌레 투성이 땅에서 제법 식물들이 자라는 게 용했다.
7, 8월 방학 때는 손을 놓고 농사를 하늘에 맡겨 두었다. 그 동안에 거기에는 수많은 밭이 생겨났다. 우리 밭이 원조인데, 우리가 심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하나둘씩 밭을 일구기 시작했자. 머잖아 거기도 노는 땅이 없어질 것 같다. 아직은 빈 땅이 많은데도 어느 할머니는 우리 콩밭에 너무 바짝 붙여 밭을 일구었다. 임자 없는 땅이라 말뚝만 박으면 누구나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다지만 좀 속이 상한다.
잎들깨는 싹도 안 터 완전히 실패했고, 청롱무는 처음에 반짝하다가 잎에 구멍이 송송 뚫리더니 시들어 버렸다. 비료도 한 번 안 주고 커다란 무를 기대한 욕심이 지나쳤다. 올해 농사에 성공한 것은 콩과 피마자 농사뿐이다. 첫 농사 치고 반 타작은 한 셈이다. 콩잎은 따서 간장에 조려 놓고 밑반찬으로 먹고 있다. 어제는 이웃 밭 아주머니가 우리 콩잎을 따 가고 싶다고 해서 허락했다. 그분에게서 콩잎은 간장이 아니라, 끓인 소금물을 잰다는 말을 들었다.
키가 작은 난쟁이 피마자는 이른 것은 벌써 열매를 맺고 있다. 어릴 때 동네에서 자주 보던 키가 길을 넘는 키다리 피마자하고는 품종이 영 달랐다. 두세 번 잎을 따다가 데쳐서 쌈을 싸 먹는 중이다. 풋잎은 특이한 냄새가 나지만, 데치면 약간은 질겨도 냄새가 안 나고 야들야들한 맛이 좋다. 잎도 손바닥 넓이만 하여 쌈을 싸 먹기에는 안성마춤이다.
서리가 올 때즘 콩을 거두면 배추를 심을까 했는데 까다로운 무 농사를 보고 마음을 접었다. 이웃 밭 어른들은 농사 경험이 많은지 밭에 두둑도 만들고, 농약도 뿌리고 비료나 거름도 듬뿍 주어 식물들이 싱싱하게 잘 자랐다. 우리 것은 천연 무농약이다. 초보 농군 두 사람은 학교 오가는 길에만 둘러볼 뿐이지 거름을 줄 엄두가 안 났다. 이웃 사람들은 무 배추는 물론 상추, 근대, 순무까지 심지만, 우리는 아직 자신이 없다. 다만 올 1년 농사 경험으로 손도 안 타고 잘 자라 주는 작물이 콩이라는 것은 확실히 배웠다.
한 가지 축복은 우리 밭 옆에 저절로 싹이 터 자라고 있는 동부콩을 거저 얻었다. 요즘 그 꽃이 한창이다. 저절로 자란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 소유로 알고 있다. 9월 초까지 덩굴만 죽죽 벋더니 연보랏빛 꽃들이 한 쌍씩 사이좋게 이마를 맞대고 만발하는 게 아닌가? 마치 그것은 연인 같이 다정해 보여 더 예쁘다. 이 동부콩 씨도 받아 내년에 정식으로 다시 심을 생각이다. 이 번에는 잘 몰라서 콩을 너무 바짝 붙여 심었더니 콩알이 빈약해 보인다. 아마 영양 부족 탓이리라. 콩씨는 50cm쯤 거리를 두고 심고, 파종도 4월 초에 서둘러 심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수확하지도 않았는데 맘이 벌써 내년 콩 농사에 가 있다. 주변 할머니들이 심는 것을 보고 잘 자라는 작물을 골라 몇 가지 더 심어 볼 생각도 있다.
첫 콩 농사를 성공한 것으로 농사에 재미와 자신감을 얻은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소득일 것이다. 당장이라도 시골에 가면 콩농사만큼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자신감이 가장 큰 재산이다. 십년 후 정년퇴직을 하면 시골에 내려가 내 땅에 컨테이너 집을 세워 놓고, 콩농사부터 지어 볼 생각이다. 가끔 이웃과 친구들을 불러 먹거리도 나누고, 흙을 만지면서 즐겁게 살고 싶은 게 소박한 내 꿈이다.
2005-09-10
이일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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