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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장이 비유 바르게 이해하기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기
박창진  |  5016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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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3월 27일 (목) 09:11:05
최종편집 : 2008년 03월 27일 (목) 11:05:39 [조회수 : 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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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사도는 토기장이가 토기를 마음대로 다룰 권리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다루시든지 인간은 항변할 수 없다는 원리로 연결시킵니다(롬 9:21-23). 토기장이 비유는 이집트 탈출 때에 바로 왕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연결되어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때에 바로 왕의 마음을 강팍케 하여서 열 번째 재앙까지 가도록 하셨습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 여섯 번째 재앙이 있은 후에 하나님께서 바로 왕이 계속 고집을 부리도록 하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이 재앙으로 인해 바로 왕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고 생각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 그렇게 계속 고집을 부리도록 하는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 열 번째 재앙까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능력의 차이를 생각하면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역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연히 인간의 반응-강팍함-에 대한 책임을 인간에게 돌릴 수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에 대해 바울 사도는 토기장이 비유를 말하면서 누구도 하나님께 항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초칼빈주의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 본문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악을 조장하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으로서 항변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러한 주장은 아무런 하자가 없는 정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닙니다. 초칼빈주의에서는 문맥과 연결하여 본문을 읽지 못하였고 그렇게 잘못 읽은 결과를 보편화하는 잘못을 행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 비유는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범죄의 상관 관계에 대한 한 원리로서 이야기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잘못된 보편화의 한 부분입니다.

토기장이 비유 자체의 문맥은 인간의 범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새 언약의 시대가 도래하는 때에 옛 언약의 백성을 새 언약 안으로 들이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로마서가 쓰인 당대에 옛 언약의 백성인 유대인들 가운데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오는 남은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그 역사를 과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는 언약의 시대를 끝내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시내산 언약의 시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왕을 강팍케 하셔서라도 열 재앙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을 시내산 언약의 시대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로마서가 쓰인 당대에 유대인들 중에 어떤 이들은 남은 자로서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어떤 이들은 끝까지 자기 고집을 따라 예수님을 부인하고 새 언약의 교회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언약에서 완전히 떨어져나갈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강팍한 것이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자 강팍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토기장이 비유는 언약의 중첩기에 옛 언약의 백성에게서 새 언약의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역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토기장이 비유가 나타내는 원리는 창세전에 미리 사랑하신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로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시고 정하셔서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선택하지 않으시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택하신 이들을 구원하시고자 그 마음을 열어 복음을 청종하게 하시는 역사를 행하십니다. 때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선택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을 강팍하게 하시기까지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그것에 대해 사람이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것이 토기장이 비유가 나타내는 원리입니다.

토기장이 비유는 범죄에 대한 보편적인 설명으로서 예정과 범죄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자유의지를 지옥 자식 만드는 것으로 말하고서는 하나님께 항변할 수 없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자유의지는 인간이 로봇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됨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인간이 악하게 사용하여 타락하였고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사용함으로 세상이 지금과 같이 왜곡된 것입니다. 자유의지가 지옥 자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지옥 자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반면에 자유의지를 바르게 사용하면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를 풍성히 누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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