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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은사님께은사님, 저를 키워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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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9월 09일 (금) 00:00:00 [조회수 : 3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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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흥운 은사님!
은사님의 소재를 알고 나서도 연락을 드리거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마음에 늘 고마운 분으로 자리 잡고 계시는 은사님을 떠올리면서 전철을 탔습니다. 큰 키에 중후한 인상의 은사님을 보면 어릴 적에도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분당선으로 갈아탔습니다. 은사님이 사시는 분당으로 전철은 소리 없이 미끄러집니다. 중학교 입시의 마지막 학생들인 저희는 매일 같이 모의고사를 보면서 치열한 입시를 대비했지요. 은사님이 재밌게 가르쳐 주신 지식들을 학교 현장에서도 종종 써 먹을 때가 있습니다. '가을 길'이란 단조의 노래로 유엔 참전 16개 원조 국가를 외워 둔 게 입시 때만 아니라 이제도 요긴합니다.
저는 6학년 때부터 일찍 성실하게 살 것을 자각한 것 같습니다. 은사님께 무슨 자극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청소를 할 때는 교실 바닥 틈새에 낀 먼지를 빗자루를 세로로 세워 쓸고 쓰레받기에 담아 냈습니다. 모래와 흙먼지가 수북한 복도 가장자리나 보호대 밑판을, 빗자루 머리가 닿지 않는 데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보람을 느끼곤 했어요. 선생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청소하는 게 기뻤거든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김동식 선생님에게 청소하는 그런 모습을 우연히 들키는 바람에, 그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 했답니다. 중학교 때 아침마다 예배와 홈룸 시간이 있었는데, 시작종이 울리자 걸레를 빨던 아이들이 수돗물을 틀어 놓은 채 교실로 들어가 버렸어요. 마침 교목의 기도가 시작되자 눈을 감고 있는데, 제 귀에 수돗물 소리가 들리더군요. 복도 중앙에 있는 수돗가로 가서, 꼭지를 잠그고 걸레를 짜 교실 뒷편에 놓고 자리에 들어왔어요. 그것을 교실 뒤편 문 뒤에 숨어서 선생님이 보고 계실 줄 몰랐죠. 홈룸 시간에 저는 그 선생님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은사님은 시험 결과가 나오면 성적 순으로 차례로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긴 회초리로 한 대씩 때리셨지요. 멀리서 딱, 딱, 딱, ... 하는 매 소리가 들리면 긴장 되어 가슴이 벌렁거리고 진땀이 났지요. 교실에서 소란할 때도 매 타작을 하셨는데, 돌이켜 보면 맞는 것도 추억이 되었습니다. 한 복도에 남자가 두개 반, 여자도 두개 반이었는데, 저는 그 때도 여자들을 좋아했는지, 소란한 죄로 맞을 때는 일부러 여자 아이들 보이는 문 쪽에 가서 매를 맞았답니다.
저로서는 은사님께 감사할 것 중 가장 큰 일은 2학기 때 반장으로 지명해 주신 점입니다. 치맛바람이 드세던 시절, 가난한 부모님은 학교에 한번 찾아오지 못하셨는데. 공평하게 저를 택해 주셨거든요. 그 날 정황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2학기 때 우리 반을 위해 누가 반장이 되었으면 좋겠느냐?” 그런데 대다수가 제 이름을 연호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들으시고는, “그럼 오늘부터 일배가 반장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요즘 반장 선거는 혹시라도 담임 입김이 작용할까 봐 여러 가지 까다로운 장치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한 마디로 선생님을 인격자로 믿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 당시 선거 규정을 모르지만 지금도 은사님의 그런 결정이 부럽습니다. 당시에 동무들 사이에 왜 제 인기가 높았는지 모르겠지만, 은사님과 친구들 덕분에 반장을 해 본 그 경험이 제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은사님, 감사합니다.
우리 반에는 다른 반과 달리 재수생이 3명이나 있어서 경쟁이 더 치열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아들 장하구, 은사님 아들 배승민, 정덕현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물과 기름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1년을 더 배운 그 아이들과 힘겹게 경쟁하면서 공부했습니다. 그 중에 저를 힘들게 한 아이는 전교 어린이 회장이던 임승권과 선생님의 아드님 승민이었어요. 회장이 반장보다 높다고 대드는 승권이는 말로만 다투었지만, 덩치가 큰 승민이는 덩치로 밀어부쳤습니다. 하루는 참다못해 점심시간에 남산 혜경이네 집 근처 공터로 가서 맞짱을 떴지요. 서른 여 명의 사내 아이들이 손을 잡아 링을 만들고 그 속에서 둘이 업치락 뒤치락 혈전을 벌였어요. 얼마나 힘에 센지 정말 강적이었지요. 그 친구가 재수생이라 제 딴에는 후배에게 지려고 하지 않았을 테지만, 저역시 나이가 많아 결코 밀릴 수 없었거든요. 무승부로 끝난 그 싸움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은사님이 팔순을 바라보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시는 것을 보니 다행입니다. 스승의 날마다 은사님을 뵙기로 한 결심을 실천하려고 서현역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흔들리며 이 글을 씁는 중입니다. 얼른 뵙고 싶습니다. 제가 대학 때까지 살던 모란을 지하로 통과하면서 전철은 분당으로 서서히 진입하는 중입니다. 은사님, 저를 키워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2004-05-15(토)
제자 이일배
* 2004년 '좋은생각' 5월호 표지 4에 써 둔 이 글을 교실 책장에서 우연히 찾아 다시 옮겨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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