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이상한 일, 그러나 당연한 것

행15:26...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바울은 사랑을 강조했다. 사도행전은 바로 그 사랑의 사도인 바울의 행적에 대해 기록한다. 그러나 바울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그토록 강조했던 “사랑”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을 나타내는 비슷한 어조도 없다. 어찌된 일일까?


•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기(行蹟記) ?

사도행전이라는 책명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앞부분은 예루살렘 사도들에 대한 기록인 것으로 생각될 만큼 베드로가 중심이 되어 나타난다. 베드로와 요한의 활동및 빌립의 전도활동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에 대한 보도가 있다. 하지만 이외에 다른 사도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별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보도가 없다. 그리고 후반부는 바울의 활동상에 대한 보도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바울은 이미 스데반의 순교 현장에서 암시되므로(8:1a) 그는 일찌감치 사도행전 전체의 주인공으로 그의 독보적인 자리를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이렇게 사도행전의 중초반 부분에서부터 등장하면서 줄거리를 주도잡아 나간다. 특히 9장에 나타나는 부활하신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받게 된 새로운 소명에 관한 이야기는 예루살렘 회의가 기점이 되는 15장 이후부터 그를 본격적인 중심인물로 등장시키는 결정적인 토대가 된다. 그 후로 바울을 중심에 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사도들을 마치 ‘마감된 사람들’인 것처럼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가 유대인들에게서 나왔다는 것과 “사도들도 유대인이다”라는 인상을 오버랩시키는 듯한 느낌마저 받게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시각에 따르면 예루살렘 사도들은 바울을 해하려는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는 같은 동족의 사람들이므로 그들은 더 이상 바울과 조화될 수 없는, 그래서 “제각각 따로 자기의 갈 길을 가는” 사람들인 것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있은 후에 발생한 것으로 기술되는 바나바와 바울과의 다툼과 그로 인한 두 사람의 결별사건은 바로 이런 그림을 그리게 하는 바탕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15:36~41 참조).


• 참으로 이상한 일, 놀라운 일

그래서 그런 것일까?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사랑의 사도라고 칭해질 수 있는 ‘사랑 바울’의 행적을 이야기하는 사도행전에 바울이 그렇게도 강조한 ‘사랑’이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이 “사랑”이라는 단어는 바울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핵심단어이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그렇게도 중요한 이 “사랑”이라는 핵심단어가 사도행전에서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차라리 놀라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바나바와 격한 감정으로 다투고 제각각 자기 길로 갔다고 해서 바울의 주제어 중의 하나인 ‘사랑’을 사도행전 저자가 전혀 말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은 무언가 석연치 않다.


• “사랑”의 사도인 바울에 대한 기록에서 완전히 빠져버린 “사랑”이라는 단어

바울의 친서인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章)”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요한복음에 흔하게 나오는 “사랑”이란 단어 못지 않게 바울서신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 “사랑”이라는 단어는 바울의 신학과 설교를 떠받치는 대표적인 주제 어휘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바울 관련 본문들이 전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사도행전이 기술하는 바울관련 구절 어디에도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위의 구절인 행15:26에 나타나는 “사랑하는”의 뜻도 바울 친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강조하는 의미에서의 “사랑”과 연관되는 개념을 갖지 않는다. 발음과 철자만 “사랑”이라는 어휘와 같을 뿐, 의미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전혀 ‘사랑’의 뜻을 담고 있지 않다.


• 사도행전의 유일한 ‘사랑하는’의 뜻은 상투적인 격식어일 뿐

실제로 위의 구절에 나타난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에서 ‘사랑하는’의 의미는 바울의 신학과 메세지에 나타나는 의미로 사용된 “사랑의 개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여기에 사용된 ‘사랑하는’이라는 말은 “같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짐한 의형제”라는 개념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친서에 나타나는 크리스챤의 윤리적 덕목이나 신자의 삶의 모습을 규정짓는 도덕적 요소로서의 어휘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우리가 사랑하는”이라는 표현은 예루살렘 사도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이방인들에게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면서 했던 여러 말들 중에 담겨 있는 단어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이방인들 중에는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야 하느냐 마느냐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그 때 결정된 사안이 15:20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이 내용에 따르면 이방인들은 이제 이런 음식물로 인한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이 때 결정된 이런 사항을 이방인들에게 알리면서 이방인들을 양육하도록 파송받은 사람이 바로 바나바와 바울이었다(15:25~26).

예루살렘 사도들은 이방인들에게 이런 기쁜 소식을 보내기 위해 이 소식을 가지고 갈 사람들로 바나바와 바울을 택했고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소개했다. 그들에 따르면, 바나바와 바울은 예루살렘 사도들 못지 않게, 또는 그들과 다름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25절~26절)’들이다. 예루살렘 사도들은 이들과의 관계성과 그들의 정통성을 보증하는 차원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바나바와 바울이 예루살렘 사도들과 “동격의 형제들”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따라서 바나바와 바울은 예루살렘 사도들과 함께 예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한 분이신 주께 충성을 다짐한 형제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의형제” 개념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 사용된 ‘사랑하는’의 뜻은 바울친서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바울의 중요한 어휘들 중의 하나인 “사랑”의 개념과는 별 관계가 없는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 크리스챤 생활률과는 전혀 무관한 일상적인 호칭으로서의 의미

또 헬라어 원전에 따르면 이 구절에 사용된 ‘사랑하는’의 단어가 영어의 ‘love’ 라는 동사적 성격의 개념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바울친서에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생활률적인 의미로서의 동사적 성격이 아니라는 뜻이다. 비록 영어번역의 성경들은 ’beloved‘를 사용하여 이 어휘를 번역하지만 “아가페토스”로 되어 있는 원전의 뜻은 의미상으로 볼 때 “친애하는”이라는 상투적인 격식어로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나 혹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여러 사람을 상대할 때 상대방의 사람들을 가깝게 부르는 호칭에 해당하는 어휘로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 구절에 사용된 “아가페토스”라는 형용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우리는 한 주인에게 속한 형제들로서 우리의 “의형제”들인 바나바와 바울이라는 사람을 당신들에게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사용된 격식어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에 유일하게 사용된 이 ‘사랑하는’이라는 단어는 바울친서에 나타나는 ‘사랑’의 개념과 전혀 무관한, 형식적인 인사말에 해당하는 표현일 뿐이라고 단정짓게 된다. 전혀 바울의 신학과 사상과 교훈과 가르침과는 관계없이 사용된 ‘관계를 나타나는’ 격식투의 형식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바울 자신은 그렇게도 “사랑”을 강조했건만 사도행전에서 묘사되는 바울은 왜 ‘사랑’이라는 어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한 마디의 언급이 없는 것일까?


• “사랑 사도” 바울에 대한 행적을 기록하면서 “사랑”이 빠진 이유

이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들면 아래와 같이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1. 사도행전의 신학이 이방세계를 향한 선교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크리스챤의 윤리도덕 차원에서의 관계성을 규정짓는 ‘사랑’을 말할 상황이 아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이방인들 세계에서 확장되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말할 입장이 아니었다.

2. 사도행전은 이방인들을 향해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선포하는데 주력했기 때문에 대사회적인 크리스챤의 생활률로서의 ‘사랑’을 말할 이유가 없었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사랑을 선포하는 책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을 선포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3. 사도행전의 메시지가 예수 부활에 초점을 두고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이 우선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바울친서나 요한서신에 나타나는 관계성의 차원을 말하는 ‘사랑’이 이야기되지 않았다. ‘사랑’관련 가르침과 설교나 권면 등의 이야기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갖게 된 이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향해 주어진다.

4.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구도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틀로 구획되어져 있기 때문에 ‘사랑의 삶’보다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선교활동’에 육중한 무게가 실려 있다. 사도행전 저자의 관심과 목표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향한 생활률을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에 있지 않다. 예수를 향한 믿음을 강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직 ‘사랑’을 말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믿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당연한 것

이와 같이 사도행전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주제에 몰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에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도행전은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에 렌즈를 맞추고 바울의 활동상을 기술하면서 자신의 신학과 메세지를 선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도행전에는 어째서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것인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친서에 나타나는 사랑 개념 혹은,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사랑’의 개념을 갖고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어떤 부분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자명하게도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에 대해 설명하려면 “바울의 이방 사회를 향한 선교활동”의 차원에서 되어져야 한다. 그럴 때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전한다는 사람들이 왜 예수의 십자가 정신에서 나온 사랑으로 하나되지 못하고 심히 다투었는지(행15:39),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상을 화목케 하신 주의 능력은 어디에 놔두고 서로 격한 감정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채 ‘너 따로, 나 따로’가 되어 결별하게 된 것인지를 잘 납득할 수 있게 된다.

• 사랑이 없어서 분열된 것이 아니라 선교관의 차이에서 온 결별

그들은 사랑이 없어서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방 세계를 향한 선교관이 달라서 선교활동을 같이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행13:13, 15:38 참고). 추정컨대 바나바와 마가요한은 유대교에 근거한 이방선교, 다시 말하면 통상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율법에 근거한 선교로서 "이방인들의 유대화"라는 기치 아래 전개되는 보수적 선교관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바울은 이방인의 입장에서 볼 때 유대교와는 전혀 무관한, 그래서 유대교의 통제와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스런 선교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