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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된 창조목적으로 인한 결과잘못 설정된 인간 창조목적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신학 및 세계관은 인간에게 허무를 안겼을 뿐입니다.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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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15일 (화) 23:18:54 [조회수 :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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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된 창조목적으로 인한 결과

올바른 인간 창조목적은 사유와 삶을 통일시킬 수 있으며, 선한 생활을 정의하고 인생의 희망과 목적을 찾게 할 수 있어야 하며, 사고를 인도할 수 있어야 하며, 행동을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지전능과 사랑의 하나님으로, 인간을 하나님의 소모품으로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우주 환경과 우주의 모든 현상을 일관성 있는 체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서구 문명은 기독교적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 산물이든지 반대적 산물이든지 기독교세계관의 긍정과 반대로 인한 결과들입니다. 서구사회를 이끌어 온 기독교 신학 및 세계관에 대하여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서구의 허무주의를 낳게 한데 대한 기독교 신학의 잘못에 대하여 엘룰(Jacques Ellul)은 기독교 신학의 잘못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기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허무주의와 기독교”라는 글 속에서 서구의 허무주의를 낳게 한 세 가지 요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절대적 초월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데서 인간을 허무로 몰아 넣었다는 것, 둘째는 이렇게 해서 현실적인 가치부정 때문에 인간을 세속적인 허무로 몰아넣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원죄의 절대화라는 신학적 이해 때문에 허무주의가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의 주장에 대해서 신학적인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서구의 자유사상과 민주주의가 직면하는 위협과 좌절에 대해서 자기 반성을 한다는 데 대해서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가 없습니다.

잘못 설정된 인간 창조목적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신학 및 세계관은 인간에게 허무를 안겼을 뿐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그러한 심정을 두 편의 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신앙의 바다 또한

한때는 가득했고, 육지는 둘레에

밝은 띠처럼 겹겹이 감겨 있었소

하지만 이제 내 귓전에 들리는 건

그 음울하고 기다란 썰물 소리 뿐,

밤바람의 숨결에 맞춰

세계의 광막한 가장자리와

헐벗은 자갈밭 해변을 흘러내리는 물소리 뿐

 

우리들은 텅 빈 사람들

우리들은 짚으로 채워진 사람들

서로 기대고 있지만

머리통은 짚으로 꽉찬

 

20세기의 절망속에 사는 인간은 ‘무(無)의 대양’에서 사라지기까지 보글거리는 작은 의식의 기포입니다. 우리는 끝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귀도 없고 나침반도 없는 배를 타고 표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디로 노를 저어 가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출구도, 궁극적 희망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창조 목적에 대하여 다르게 설명할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영광을 돌리는 방식

말씀에서 굳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구절을 찾아 「이렇게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는데 왜 영광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고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래의 말씀을 함께 봅시다.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보고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마15:31).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시자 그 사람이 자기가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모든 사람이 놀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눅5:17-26).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이 죽어 성문을 나아갈 때 예수님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하시자 죽었던 자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눅7:11-17).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이 참으로 영광 있는 분이구나 하는 고백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방식은 자신의 영광의 나타남을 보고서 그 영광을 인정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부모가 아이에게 옷을 한 벌 사 주었을 때 그 아이가 밖에 나가 「 이 옷, 우리 아빠가 사 주셨다」하는 방식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 안에 우리가 거하는 것입니다. “영광 돌린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버지로 인정하여 그 분께 기쁨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기쁨은 나이 어린 자녀가 부모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잘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대로 잘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자유자재의 자율능력 존재자로 잘 창조되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되는 방식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의 노력과 애씀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중 천국 비유(마13:44)에 잘 나타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일을 하다 그 밭에 보화가 묻혀 있는 것을 보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다고 하셨습니다. 만약에 이 사람에게 억지로 그 밭을 사라고 하였다면 그는 사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부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 밭에 보화를 본 후에는 그 밭을 어떻게 해서라도, 현 시가보다 얼마의 돈을 더 주더라도 그 밭을 사려 할 것입니다. 이 변화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 밭의 보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그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우리의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고후 3:18). 그 영광을 얻으려고, 그 영광에 참여하려고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팔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얻으려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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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옥 (75.25.125.194)
2022-09-15 01:14:03
이렇게 가르치는 목사님을 여지껏 보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동감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이 참으로 영광 있는 분이구나 하는 고백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방식은 자신의 영광의 나타남을 보고서 그 영광을 인정하는 방식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 안에 우리가 거하는 것입니다. “영광 돌린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버지로 인정하여 그 분께 기쁨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기쁨은 나이 어린 자녀가 부모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잘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대로 잘 성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변증 유튜브를 만들고 있는데, 목사님 성함을 밝히고 인용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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