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우리 집에서 모임이 있는 날. 아침부터 대청소를 하고 손님을 맞아야 한다. 아내는 불편한 몸으로 서두르고 나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하지만 아내는 몸 상태가 꽝이다. 방학 시작부터 별러서 친구의 명동한의원에 가서 긴 침도 맞고 한약을 두 재나 복용 중이다. 게다가 안구 각막증으로 각박이 양파 껍질 벗겨지듯 하는 눈병 때문에 인공누액을 달고 다니는 데다, 항생제로 염증 치료까지 받는다. 그것뿐만 아니라 토요일에는 자궁암 검사를 받고 조직검사용 수술까지 받았으니 내심 불안했던 모양이다. 아침인 데도 세상이 어둡고 흐릿하다고 말할 때 눈치 챘어야 하는데, 그만 내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아내를 도와 내 전공인 칼질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흠흠~ 콧노래를 불렀던 것.

"잠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웃에게 축복하는 자는 무엇처럼 느낀다고 했죠?"
"응, 저주라고 했던가?"
"그래요. 마음 상한 사람에게 노래하는 것은요?"
"앵잿물에 식초를 붓는 것과 같고..."
"내가 이렇게 힘든 데도 노래를 불러요?"

찍소리도 못하고 말도 없이 양파를 썰고 파도 다듬었다. 그런데 짜증이 나는지 파를 생전 처음 썰어 보느냐고 하면서, 그렇게 조각 내면 어쩌냐고 날카롭게 찌른다. 갑자기 파의 매운 기운에 눈물이 찔금났다.

옆에서 게장국을 끓이는 아내의 두런거림과 볼멘소리가 연신 송곳처럼 파고 든다.
"남편도 남이나 다를 바 없군요."

조용히 앉아 눈치밥을 먹고 나서 진공 청소기를 돌렸다.
그런데 아차! 또 깜박하고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번엔 휘파람.
첫 노래는 기억나지 않지만, 좀 무거운 곡이어서 덜 미안했었는데..

"훗훗훗훗! 후~ 훗훗, 훗훗훗 후후후후 후~..."

청소하면서 부른 노래가 마침 슈베르트의 유명한 '숭어'였다. 평소 슈베르트의 '들장미'를 좋아하지만, 청소기를 밀고 당기는 리듬감에 따라 내가 마치 그 발랄한 숭어 한 마리처럼 되고 말았다. 쏜살같이 꼬리치며 헤엄치다가 잔잔한 물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만 숭어!

또다시 아내의 한탄을 듣기 전까지는 자못 행복감에 도취했었다.

그런데 쭁긋거리며 식탁에서 내 휘파람 소리를 엿듣은 집사람은 다름 없는 낚싯꾼이었다. 아내의 긴 한탄의 줄이 드리운 것. 집안 공기도 금새 잊어 버리고 천진난만하게 훗훗 노래 부르던 그 숭어는 미끼에 덜컥 걸려 파닥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숭어는 피아노 5중주곡 가장조 OP.114이다. 1819년, 슈베르트가 22세 때, 명가수 포오그르와 함께 북 오스트리아 산지의 작은 도회 슈타일 방면으로 피서 겸, 연주 여행을 갔다. 이 두 사람은 7월 13일부터 9월 중순까지 거기서 머물며, 슈타일의 광산업자인 시르베스터 파움가르트너의 융성한 대접을 받고, 그의 의뢰를 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 한다.

이 곡을 '숭어'라고 부르는 것은 제4악장이 '숭어'라는 가곡의 가락을 주제로 한 변주곡이기 때문이다. 작은 시내를 화살처럼 달리는 숭어의 아름다움과 그 넘을 낚아 챈 매정한 낚시꾼에 관한 노래. 슈베르트가 쓴 선율 중 발랄한 숭어의 움직임을 나타낸 이 선율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이 곡을 고등학교 1학년 때 흥겹게 배워 부른 기억이 난다.

내가 민물 숭어의 유연한 몸놀림을 본 것은 5, 6년 전 정선 소금강에서였다.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소금강 절벽을 따라 화암 약수터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구경꾼들을 보고 차를 멈추었다. 스노클을 입에 물고 작살 총을 겨눈 사나이가 맑고 푸른 계곡에 뛰어들어 커다란 물고기를 쫓고 있었다. 큰 물에 가두리 양식장을 빠져 나온 듯한 숭어가 작살을 날래게 피해 바위 틈으로 숨바꼭질한다. 큰 바위 틈새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그 숭어를 향해 그가 수차례 작살을 쏘아도 용케 빠져나갔다. 참 민첩하구나! 제발 그에게 잡히지 말기를 빌면서 흥미진진하게 그 숭어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았다. 스스로 생명을 지키는 숭어의 숭고한 노력을 지켜보는 것도 미안했다. 혹 사람 사냥도 쫓는 자와 도주자의 긴박감이 그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어느덧 한 방 맞았는지 꼬리 쪽에서 피가 서서히 흘러 벽옥 같이 푸른 물에 번지는 것을 뒤로 하고 길을 서둘러 떠나야 했다.

오늘 오후 슈베르트의 '숭어'를 감상한다. 아무런 방해꾼도 없이 자유롭고 활달한 숭어처럼 푸른 물살을 가르고 싶다. 아내도 빨리 병마를 이기고 함께 기분좋게 뛰놀 수 있다면....

"훗훗훗훗! 후~ 훗훗, 훗훗훗 후후후후 후~..."

2005-09-05
이일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