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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새 신학의 방향성구원론 중심 신학으로는 사람들에게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게 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어려운 상황이나 환경에서 그 문제들을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도록 가르치고 있기 ?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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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09일 (수) 23:07:08 [조회수 :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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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새 신학의 방향성 

현대 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와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기독교인이 다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독교인들이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불신자들은 교회가 썩었다고 비판합니다. 세금 비리 사건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나 모두 교인들이 주 인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 이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에게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든지 천국만 가면 됩니다. 그래서 잘살기 위하여 자기 뜻대로 살다가 죽을 때 참다운 회개하고 구원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을 내라”하는 것은 결국 “철저하게 영광을 돌리는 도구가 되라” 또는 “마귀 진멸하는데 도구로 너희를 헌신하라, 그러면 내가 구원할 자는 구원하겠고 마귀진멸에 수고하였으니 은혜로 너를 구원하여 주겠다”고 하니 확실한 가능성도 없는 일에 자신을 전적으로 투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혹시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를 무시하지나 말아 주십시오”하는 정도로 얼굴이나 내미는 정도로 하나님을 대하는 것입니다.

 

구원론 중심 신학으로는 사람들에게 능동적이며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게 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어려운 상황이나 환경에서 그 문제들을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에 처하였을 때 바로 자신이 그 문제를 이길 수 있고 다스릴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나 상황이 제거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모든 문제로부터 구원받으려는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행복하고 즐겁고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기를 원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교회마다 기도원마다 축복을 외치고 건강을 외치고 문제 해결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책임 있는 한 존재로 서는 것보다는 이 세상의 삶이 풍성해지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구원론 신학은 사람들을 자력인(自力人)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걸인(求乞人)으로 전락시킵니다. 하나님은 영원 하나님 나라의 후사로서의 경영자 실력을 우리안에 형성시키고자 하시나 구원론 신학은 우리안에 월급쟁이 속성을 형성시킵니다. 하나님은 자유하는 아들로 우리를 키우시려 하시나 구원론 신학은 우리를 눈치보는 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관계되는 적극적 소망이 없을 때는 능동적이지 않습니다. 인간들을 하나님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린 신학의 결과가 오늘날의 교회 현상입니다. 자신이 수단화된 신학 안에 열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더욱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굳이 자기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안에 사는 사람들은 돈벌이가 되는 것에는 무엇이든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듭니다. 자기의 일이 곧 자신의 이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겨 주는 신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신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프로그램, 공동체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철저하게 충실한 것이 이기심은 될 수 있으나 이기주의는 아닙니다. 이기심은 “자기의 삶에 철저하게 관심을 쏟는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 개념을 잘 파악하면 교인들로 하여금 목회 현장의 프로그램에 성도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케 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도 질질 끌려 다니길 원치 않습니다. 아무리 타이르고 구슬리고 협박까지 해 보십시오. 아무런 이득도 없어 보이는 일에는 절대적으로 참여하려고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언가 효과가 있어 보이는 일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은 참여할 것입니다.

이 이기심은 모든 인간에게 정당한 욕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기본 속성으로 심어 주신 본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8)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인생도 너희 자신을 위하여 살고, 신앙도 너희 자신을 위하여 가지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너희를 위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존신앙에서 하나님의 영역으로 치부함으로서 인간들의 존재의미를 봉쇄한 전통신학의 일반적 문제점과, 그로인해 하나님에 대한 오해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현대신학을 요청케 한 전통신학의 한계점과 동시에 현대신학의 과제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위한 대안신학은 다음과 같은 요청에 대답할 수 있는 설명체계여야 할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사랑을 바로 설명할 수 있을 것.

둘째, 인간의 창조목적을 하나님의 속성과 배치됨 없이 설명할 수 있을 것.

셋째, 우주의 존재의 의미를 의미충만 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넷째, 세상의 역사와 역사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일관성 있고 통일성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것.

다섯째,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할 수 있을 것.

여섯째, 영적실재의 인정과 영의체험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것

일곱째, 인류의 평화를 도모할 수 있을 것.

여덟째, 공동체와 자연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을 것.

 

우리의 희망은 새로운 신학에 있습니다. 부언하자면 인간이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으로 설명하는 신학, 하나님의 사랑과 전지전능을 서로 배치됨없이 설명하는 신학, 인간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력한 소망을 심어주는 신학, 이 세상이 비록 우리가 경험하기에는 고통의 상황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하나님의 강력한 뜻이 있다는 신학, 구원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뜻을 이루기에 전력케 할 수 있는 신학, 마귀에 대하여 강력한 궨세를 나타낼 수 있는 신학, 공동체와 자연생태계에 대한 강력한 관심을 제공하는 신학이 우리 시대에 필요합니다.

이같은 요청에 대한 대답은 개체적으로 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중 한가지의 문제가 축이 되어 이 모든 요청문제들을 엮어내게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핵심축이 바로 인간창조 목적입니다.

 

본서는 이 대답에 대한 시도를 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적인 주장은 아닙니다. 이 시도는 어떤 기존의 책이나 강의를 통해서 습득한 지식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거의 본인의 독자적 논의이기 때문에 전문적 신학작업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깨닫게 하신 것에 대한 기본적인 뼈대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후에 이 논의에 대한 신학작업을 해 보겠습니다. 필자로서 독자들께 바라는 바는 이 작업이 21세기 대안신학을 위한 실마리를 풀어 보려는 애씀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기존의 신학과 다른 의견을 말했다고하여 무조건적으로 이단시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의 논지에 대하여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씀해주시면 언제라도 신중히 검토하고 고려하겠습니다.

 

이제 다음 장부터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모두 소망이 있는 신학을 개진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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