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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개방각종의 교회개혁을 위한 몸부림이 있지만 여전히 개혁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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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09일 (수) 23:04:41 [조회수 :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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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개방 

① 교회개혁의 목소리가 높음은

현재 교회가 아주 절망적인 난국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교회의 활로(活路)를 찾자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성장의 둔화, 신앙의 유아성, 사회의 혼탁, 가치의 부재, 기복주의 신앙등등 속수무책의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요즈음은 온통 개혁의 소리로 가득합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입니다. 그러나 태평양 한 가운데서 쪽박으로 바닷물을 퍼 내겠다고 하는 것과 같아 보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몇가지의 대안을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은 교회성장과 역사적 변혁을 선교비전을 통한 대책강구를 통해 시도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사업을 벌임으로, 즉 일거리를 활발하게 만들어 그것으로 교회를 활성화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또 혹자는 개인구원과 사회참여 신앙을 조화시켜 사회로부터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교회로 신뢰를 회복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재 이분화되어 되어 있는 신학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 이 둘의 입장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도시·전원교회 복합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문화적인 상황을 현대성에 맞게 바꿈으로 현대인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여가생활을 영적생활과 연결시킬 수 있는 모델교회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또 팀 목회를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담임 목회자 혼자 모든 사역대상을 다 감당할 수 없고, 각 사역의 종류별 전문화를 기해야만 현대성의 세대에서 교회가 존립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들어와서 전 세계적으로 제3의 물결 성령운동이 파도처럼 파급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이 여러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계속 파급되는 이유는 전통 교회안에서 얻을 수 없었던 영적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 윔버의 애너하임 빈야드 교회나 존 아노트의 토론토 에어포트에 다녀온 목회자가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이 운동에 그렇게 열성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교회의 존폐를 가늠할 사활을 건 몸부림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에 한계를 느끼고 목회사역의 진부함에 대한 대안 모색인 것입니다.

전통 기독교에서는 좀 생소한 몸부림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영성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동양의 종교성을 기독교안으로 흡입하려는 흐름입니다. 기계적이고, 분석적이고, 이분법적인 과학적 사고방식의 결과가 현대 서구사회의 모습이라 봅니다. 그러나 동양사상은 온 우주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면서 상호관계의 긴밀성을 말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생명적 유기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들의 상호존중을 말합니다. 즉 서구정신으로 일색된 기독교 사고가 이제는 동양의 사상을 수용해야지 전 인류적 공동체성과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의 이같은 여러 노력들은 교회의 존재 위기에 대한 탈출구로서 시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고사할 직전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외면받고, 성도들에게도 관습적인 신앙형식은 심어 주시만 그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전과 변화를 주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부르짖음입니다. 주일날 야외로, 각종 행사로 빠져나가는 성도들을 붙잡아야만 한다는 절박한 교회살기 운동입니다.

 ② 개혁의 대안이 없다

위와같은 각종의 교회개혁을 위한 몸부림이 있지만 여전히 개혁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윤근 목사의 말입니다. 온통 개혁의 소리는 많은 데 실제적으로 개혁이 없는 현실에 다분히 실망한 듯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요즘 개혁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높아가고 있어 기독교의 장래에 밝은 면을 보는 것 같아 매우 기쁘다. 그러나 소리는 무성한데 알맹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지 아니하니 과연 개혁이 이루어질까 의심치 아니할 수 없다.

개혁의 구심점은 성경뿐인데 지금 성경과 거리가 동떨어진 것이 허다하다고 느껴진다. 정말 성경을 중심해서 개혁을 한다면 현재 기독교 제도의 전반적인 부분을 뒤집어 놓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성경관부터 바로 잡아야 하겠고, 교회론을 바로 정립해야하며 성령론, 종말론, 축복론, 구원론 및 교리적인 면부터 손을 대야하고 기독교윤리적인 면도 손을 대야하며 특히 직분론에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 역시 이 분의 생각에 동감입니다. 요즈음의 개혁의 목소리는 21세기를 맞이할 수 있기 위한 교회의 몸부림인데 내가 보기로는 이들 모두가 라면에 기막힌 포장을 하려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행위의 모든 출발은 신학인데 신학의 개혁없이 교회를 개혁하자는 것입니다. 라면은 때에 따라 맛있는 것이지만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아무리 응용요리를 해도 역시 라면 이상일 수 없습니다.

 ③ 복음주의 신학체계 포기

한국복음주의 신학회의 말을 들어 봅시다.

 한국교회는 일주일에 3번 이상의 공 예배와 산기도, 새벽기도, 특별기도 등을 하는 복음주의적 토양을 갖기 이전에 일제식민자지 6·25등의 수난을 겪으면서 순교라는 씨앗을 이미 뿌렷기 때문에, 그 열매가 지금의 한국교회 성장으로 나타났다. 반면 지금의 성장둔화 원인도 학문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지난 70-80년대말까지 자유신학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지성적 학문과 반사회활동을 한 ‘오류’를 인정, 앞으로는 성경적 교리를 지키면서 동시에 지성적 학문추구와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넓혀야 한다.

자유신학이나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종교학이 성경의 무오성을 공격하는 추세가 더 가속화 될 것인데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성경의 근본적 운동인 복음주의 운동만이 이 도전을 극복할 수 것이다. 

이 학회에서 말하는대로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하여 그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복음주의 신학이 지금에 와서 제시할 대안이 있겠는지 의문스러운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대안이 제시될 수 있다면 그 대안은 실로 30년이상에 걸친 연구의 결과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시되고 있는 대안이 없다면 복음주의 신학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라고 보아야 합니다. 무슨 대안이 있습니까?

이들은 “자유신학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지성적 학문과 반사회활동을 한 ‘오류’를 인정하면서, 앞으로는 성경적 교리를 지키면서 동시에 지성적 학문추구와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넓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이 말한대로 복음주의 신학은 무조건적 믿음은 강요할 수 있지만 지성적 합리와 논리가 없습니다. 그들 스스로 복음주의 신학은 반지성적이며 반사회적인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원신앙과 사회참여를 조화시켜야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성적이고, 인간의 제반사를 통체적으로 살명할 수 있으며, 21세기 현대성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주의 신학 구조 자체로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구원론 중심 신학은 세계관 자체가 이원론적이기 때문에(주장은 일원론이라 하지만) 신앙과 삶을 통일시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물과 기름석기 입니다. 인간 육체의 죽음과 우주의 소멸이 인간의 죄로 인한다고 설명하는 복음주의 신학이 어떻게 현재의 삶을 긍정할 수 있습니까?

과연 복음주의 신학이 지성적학문이 될 수 있을까요? 복음주의 신학 자체가 지성적 구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성적 학문추구를 해야한다고 하는 것은 라면을 가지고 쌀밥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나 별반 다름 없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은 구조 한계상 교회개혁을 위한 대안이나 21세기를 위한 대안을 결코 제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그들의 신학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복음주의 신학체계를 포기하여야 합니다.  

④ 신학개방

이윤근 목사의 말대로 새로운 성경해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김원배 목사(기장신학연구소장)의 말대로 이제는 서구에서 발전된 교회와 신학의 한계를 넘어 예수께서 시작했던 복음의 정신으로 돌아가 교회와 신학의 체계를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지금의 교회는 “개혁되었고 항상 개혁되는 교회”라는 개혁전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 정신으로 예수께로 직접 돌아가 복음의 참 뜻을 조명받는 일에 일차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서구사회에서 발전된 헬라화된 복음을 넘어 예수께서 펼치셨던 원 복음을 똑바로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제는 신학을 개방시켜야 합니다. 전통신학이 우리 신앙의 유일한 대안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 긍정적으로 받을 것이 있고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의 신학은 오늘도 개혁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주장한 것은 그들이 주장한 내용만이 절대 진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 신학 내용 자체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혁정신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지금의 신학이 그들에게 계속 붙어 있으려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 자식도 어릴때는 부모에게 꼭 붙어 있지만 자라서는 부모 뛰어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부모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신학을 전통신학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합니다. 우주와 인간과 세상과 삶에 대한 통체적 설명체계의 신학을 구축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강단과 신학교 강단에서 목회자들과 교수들이 그동안 가져왔었던 잘못된 이원론적인 신앙과 신학을 겸허하게 비판하고 반성하면서, 신앙과 행위, 신분과 삶, 나무와 열매, 은사와 윤리가 결코 분리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바른 신앙과 신학을 정립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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