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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왜 침체하나?아이가 오줌을 가릴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면 부모는 짜증이 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더우기 아이가 자라야 하는데 자라지 않고 유아티를 벗지 못한다면 더 답답합니다.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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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09일 (수) 22:59:32 [조회수 :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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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왜 침체하나? 

① 답답한 심정

아이가 오줌을 가릴때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면 부모는 짜증이 나고 답답하기도 합니다. 더우기 아이가 자라야 하는데 자라지 않고 유아티를 벗지 못한다면 더 답답합니다. 조효근 목사가 일전에 “이미 대장부로 길렀어야 할 아들을 아직 껏 품안에 싸고 앉아 영양가 모두 소진되어 버린 외할머니의 젖꼭지 물고 노는 자식들에게 한 교회가 받을 큰 벌이 있음을 알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입니다. “난감하다”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풀빛목회에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몇 분이 지적하였습니다. 기복주의, 물량주의 성장정책, 역사인식 결여등입니다. 이같은 함정은 너무나 깊어서 여기에서 어떻게 헤어나올 지 난감합니다. 소리쳐도 소리쳐도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올 뿐. 건져보겠다고 외치는 이소리 저소리가 섞이어 오히려 공해가 되어 버립니다. 

② 오진단(誤診斷)

죽어가는 교회를 살려 보겠다고 외치는 소리가 왜 공해가 됩니까? 정확한 진단이 되었으면 이쯤에서 교회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술굿은 아이한테 내동댕쳐진 개구리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전에 오물짝 거리는 정도의 움직임을 보입니다. 다시 생명의 질김을 포기해 버리는 듯이 교회는 체념하여 버립니다. 그리고 무엇을 합니까? ‘복이나 받자’, ‘평안과 기쁨이나 얻자’, ‘병이나 고치자’, ‘교인수나 늘리자’합니다.

교회가 죽어가는 것에 대한 전문적 진단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를 살리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많은 진단들이 응급처치적 진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오진단입니다.  

12.12와 5.18 범죄자들을 다루기 위해서 특별법을 제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법을 가지고는 그 범죄를 심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법은 그같은 범죄를 가능하게 할 소지가 있는 법이었습니다. 때문에 그 범죄자들만을 심판한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 차원에서 그들의 범죄를 다루고 법을 그대로 두었다면 언제든지 그같은 사태는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일이 또 일어났을때 정권욕이 지나쳐서 그같은 끔직한 일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그 사태에 대한 진단을 하는 것은 완전히 오진단입니다.

어떤 면에서 볼때 인간속에 불행히도 욕심이 존재합니다. 이 욕심은 여건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법자체가 이같은 욕심을 옹호하거나 드러낼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 욕심은 합법적으로 드러납니다. 때문에 인간의 욕심이라는 진단과 더불어 법에 대한 심판을 하여 그 법을 다시 개정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③ 헛다리 긁기

교회에서 성추행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에 대한 대책이 무엇입니까? 고작 한다는 말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정직한 도덕성 회복운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순결서약 운동같은 것을 합니다. 물론 이같은 처방안이 응급적인 것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주 지엽적인 것입니다. 기껏해야 개인적 책임으로 그 문제의 책임소재를 돌릴 뿐입니다.

현 교회의 문제인 기복주의, 물량주의, 성공주의, 형식주의, 개인주의등에 대한 해결방안 역시 기껏해야 개인적인 책임으로 치부되어 버리고 맙니다. 좀더 범위를 넓히는 사람들은 사회, 경제, 정치, 문화구조악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인식한다면 핵심적인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그야말로 헛다리 긁기입니다.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범죄를 엄격하게 제어할 법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사회나 국가는 사회문제에 대한 원인을 법차원까지 연계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자 개개인들만을, 교회의 풍토만을 성토할 뿐이지 모든 신앙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신학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물론 법 자체로는 아무런 흠이 없어도 인간의 범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법이 무용(無用)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법에 흠이 있다면 그 흠을 비집고 범죄가 이루어집니다.

신학적인 결격이 있다면 그 틈으로 마귀와 인간의 욕심이 이빨을 드러냅니다. 신학적인 결격을 고치지 않고 그 산물만을 고치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④ 신학상의 결격성(缺格性)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교회의 문제는 신학적 결함의 문제입니다. 기존의 신학자체가 기복주의, 성공주의, 개인주의, 물질물량주의적입니다. 이같은 현상은 기존신학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가운데 물질물량주의를 예로 들어봅니다.

물질물량주의는 물질만능과 물질다량 소유를 추구하는 양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의 6일간의 창조가 인간의 삶을 복주시기 위한 창조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물질이 많은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질이 없으면 그는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회사가 잘되고, 사업이 잘되고, 판매고가 늘어나고, 집사고, 땅사는 모든 것이 축복받은 것입니다. 사고나고 사업이 잘 안되는 것은 복을 받지 못하여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잘사는 성도는 신앙이 좋아 그런 것이라고 보아 그런 사람을 장로 세웁니다. 신앙은 좋으나 못사는 사람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무슨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아 장로 추천에서도 제외되는게 오늘의 상태입니다.

물질창조와 그에 대한 권한을 아담에게 주신 것에 대한 해석이 인간의 삶을 위한 축복으로 해석되는 한에서는 결코 물질물량주의가 극복될 수 없습니다. 신학이 그것을 보장해주는 데 어떻게 물질물량주의 신앙이 극복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다르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물질추구를 하지 않도록 해석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인간창조 목적이 새롭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기존 신학으로 볼때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창조되었으므로 6일간의 창조는 돼지의 밥정도로 주어진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는 영광 잘돌리는 인간에게 주는 상이 물질인 셈입니다. 신학상의 가장 큰 결격은 인간창조 목적입니다. 이 문제가 신학의 핵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신학의 체계 및 구조, 내용이 다르게 정리됩니다.  

⑤ 신학체계 새로 세우기

교회의 살길은 무엇입니까?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법을 뜯어 고치듯 교회와 인간의 삶을 살리기 위해서 신학을 고쳐야 합니다. 신학을 개혁해야 합니다. 물질물량주의 신학을 그대로 놔두고 어떻게 물질물량주의 신앙을 고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한국의 성도들이여, 우주의 성도들이여, 신앙의 법 곧 신학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이길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마땅한 대안을 제시도 못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학과 조금난 다르면 무조건 이상하다느니 하는 무책임한 인간들의 말을 듣지말아야 합니다.  

못된 인간들은 “또 그 모든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의 말씀에서 자신들을 언제든지 제외시킵니다. 자기네들의 해석은 옳으나 너희의 해석은 그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나의 해석이 그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 정도는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들의 해석은 절대무오하다는 교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하여 지음받았다고 가르치는 그 해석이 인간을 멸망의 길로 끌고 갑니다. 인간창조 목적을 이렇게 설정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전지전능과 사랑의 하나님이 될 수 없고, 인간 역시 똥우리에 뒹구는 돼지밖에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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