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한 바로의 퍼런 서슬 앞에서도 동족을 위한 모세의 혈투는 처절했는데. 먼지와 바람에 묻혀있는 광야 길을 가면서 모세를 원망하던 백성들의 원성이 아직 잦지 않았는데. 홍해를 가르며 애굽의 군인들을 수장하던 하나님의 역사가 아직 가슴 속에 담겨있는데. 그는 거기, 비스가산에서 마쳐야 했다.

그 때, 모세가 그랬을까? 숱한 고초와 어려움을 맞닥뜨리면서도 슬픔과 외로움을 마음속으로 넘기며 걷고 또 걸어 가나안을 눈앞에 두었을 때, ‘너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랬을까?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눈앞에 펼쳐진 가나안을 바라보며 데리고 다니던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하여 후계자로 삼으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 그랬을까?

모세의 일생 동안 단 하나의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는 가나안! 그러나 그는 그 단 하나의 인생 목표 앞에서 하나님의 금지명령에 봉착했다. 마치 다 달린 경기의 골인지점에서 이제 경기가 끝났으니 집으로 가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의 인생은 실패인가 성공인가? 영적으로야 성공이지만, 보이는 것만으로는 분명히 실패라 할 수 있다. 바로 그 때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며칠 남은 달력을 달고 있는 벽이 처량하게 보이는 이 마음을 무엇이랴 표현해야 할지? 아마 모세가 그 때 그랬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가 되는 듯도 하긴 한데. 그러나 아직 모세와 같은 숙련된 주의 종은 못되나 보다. 아직 찐하니 마음이 외롭다. 싱그러움으로 내일을 생각하기에는 내가 너무 때 묻었나 보다.

지금 나는 숨이 차게 달려왔는데 이미 경기가 끝난 것을 늦게야 깨닫고 허무해 하는 그런 기분이다. ‘2007’이라는 백넘버를 달고 숨차게 달렸건만 우승은커녕 경기가 끝난 다음에야 입장하고 말았으니 창피 만발이다. 이것저것 무수히도 계획은 세웠건만 계획 속에 묻혀 또 다른 형태의 나의 배설물들이 되었으니 말이다.

2007년이 펼쳐 놓았던 운동장을 걷으려 한다. 그런데 난 아직 그 운동장 한 가운데서 꼼짝을 못하고 있다. 너무 처절한 싸움이었기에 그런가 보다. 너무 힘든 경기였기에 그런가 보다. 열매 없는 농사였기에 그런가 보다. 주마등처럼 모세와 비스가산, 벧세메스로 법궤를 끌고 가던 암소와 장작불 더미 위에서 타는 제물이 지나간다.

모세는 거기서 죽었지만 그를 거기까지 인도하신 분은 분명 하나님이시다. 암소는 제물이 되어 탔지만 그들을 벧세메스까지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나는 여기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있지만 목회를 도우시고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에벤에셀 지켜 주셨다. 여기에 ‘2007’이란 백넘버를 떼면서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젠 싫어도, 일어날 힘 없어도 2007년이 제공한 운동장에서 나와야 한다. 2008년이 새로운 운동장을 펼쳐놓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모세라도 좋고, 또 다시 벧세메스로 간 암소라도 좋다. 낭자하게 피를 흘리고 죽어가더라도 주를 위해 피를 흘릴 수 있다면 내일이 희망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