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상현상을 통해 비를 일으키시는 하나님

성서는 종교적이고 신앙고백적 언어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실증적, 객관적 기술이 생명인 우리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신화적이고 설화적인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신화적인 표현을 썼다는 것이 곧 신화라는 말과는 다르다.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 오랜 가뭄 끝의 큰비가 내렸다는 기록(왕상 18:41-46)도 오늘날 과학적이고 기상학적인 관점에서는 ‘고기압, 저기압’해 가면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옳다. 그것은 어느 하나가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은 게 아니다.

분명 현대 과학으로 보면 그것도 기상학적인 변화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걸 알고 있을 리 없는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구름을 옮겨 비를 내렸을 것이다. 굳이 말한다면 이렇다.

“고기압과 저기압의 기상현상을 통해 큰 비를 내리신 하나님” 당연히 고대 신앙인 엘리야는 고기압과 저기압, 또는 기상학을 찬양한 게 아니라 기상의 변화를 일으키셔서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상학과 하나님 사이에 꼭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은 어느 새 하나님의 흉내를 내고 있다. 인체의 장기와 생명을 그대로 복제하는 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적인 눈도 비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젠 굳이 하나님이 필요 없어도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흉내다. 아무리 멋진 조화(造花)도 실제 꽃의 생명력을 담아낼 수 없듯이, 사람이 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숨어있는 법칙과 원리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조합해 냄으로써 놀랍게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지만, 본래 그러했던 처음의 조건자체를 만들어 내거나, 바꾸는 것은 아니다.

창조주가 이미 만들어 놓은 우주의 질서를 찾아내어 효과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일 뿐이다. 이는 과학적 탐구가 필요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엄연한 결과들을 보면서 그저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거나 “결코 알 수 없다”고만 말하는 것은 조금도 현명한 대답도, 지혜로운 탐구도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이라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저 “야, 산이 참 아름답다” “역시 대자연은 오묘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멋진 자전거를 선물 받은 아이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즐기며 “이 자전거는 내 최고의 보물이야”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주신 부모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상 창조 때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해드리거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해져서 그들의 지각없는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어서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숭배하고 섬겼습니다.”(롬 1:20-23, 25/표준새번역)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지으신 손길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간다면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결코 피조물들을 착취하고 멋대로 파괴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라 믿으면서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창조만물과 인간을 착취하였던 기독교 국가들은 스스로의 신분을 부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이치와 만물의 오묘한 운행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질문한다(욥기 38장). “…해가 뜨는 곳에 가 본 적이 있느냐? 동풍이 불어오는 그 시발점에 가 본 적이 있느냐?(24절)…얼음은 어느 모태에서 나왔으며 하늘에서 내리는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29절)…까마귀 떼가 먹이가 없어서 헤맬 때에 그 새끼들이 나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를 때에 그 까마귀 떼에게 먹이를 마련하여 주는 이가 누구냐?(41절)”

몇 년 전 “용의 눈물”이라는 대하사극이 전 국민의 시선을 집중한 적이 있다. 주인공이었던 정안대군 유동근씨는 정말 대단한 카리스마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휘어잡았다. 그런데 어느 신문의 가십난을 보니 그 카리스마의 주인공 유동근씨가 실제 녹화장에서는 연출자에게 언제나 혼이 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TV만을 보는 시청자들은 마치 유동근씨가 온 세상을 호령하는 진짜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지만, 녹화장의 실상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유동근씨는 그저 연출자의 호령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도 흔히 천하를 뒤흔드는 영웅과 호걸, 또는 민중의 힘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참된 힘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더라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라든가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다”라는 말들은 바로 그런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 위에서 이 역사와 세계를 섭리해 가고 있는 연출자가 따로 있지 않은지도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지혜로운 일일 것이다. 많은 지성인들이 하나님을 말한다. 그러나 세계에 결코 개입할 수 없고, 섭리하지 않으며, 결코 징계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하나님은 관념뿐인 하나님이며, 정말 ‘만들어 진 신’이다.


2. 전제의 진위는 반드시 열매로 확인된다.

사람의 삶 속에는 그의 전제가 있다. 하나님을 이미 믿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세상은 온통 인격적인 하나님이 존재하는 증거들로 넘치나, 그런 하나님이 없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은 하나님이 없는 증거들로 가득 차 있다. 전제가 없이는 생각(판단)할 수도, 행동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그리고 모든 전제에는 어차피 순환적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전제하니 그런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전제가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제가 없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전제가 있는데, 그 전제가 다른 것이다. 분명한 이 전제를 은폐하고 그저 누구에게나 객관적인 사실처럼 말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물론 나의 전제는 성경이 말하는 그런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떤 전제를 갖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전제가 다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고 진위를 판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논쟁은 누구의 전제가 더 옳은지 단지 논의를 세계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검증하여 설득해 내야 하는 것이다. 거짓된 전제는 반드시 열매로 나타날 것이다.

그동안 졸고를 통해 신앙의 의미와 건강한 기독교의 변화를 위해 다소간 생산적 자극이 되었다면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