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사도회의 합의안의 진정성 문제

갈2:1-10; 행15:1-29


바울 친서인 갈라디아서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대한 진술과 바울 사후 후세대의 기록인 사도행전에 기록된 예루살렘 사도회의 관련 진술을 비교해 보면 두 기록들 간에 서로 일치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병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와 관련이 있는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의 두 본문을 비교해 볼 때 서로 일치되는 부분은 이방인들에 대한 할례시행 여부의 문제로서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합의가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 이외에 사도행전 분문에 나타나 있는 다른 내용들은 바울의 친서들에는 나타나지 않으며, 나아가 예루살렘 사도회의 이후에 발생한 일에 대한 바울의 격한 감정은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분위기와도 전혀 다르다. 이것은 바울 당사자의 입장과 바울 사후의 사람인 사도행전 저자의 입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며 그런 입장들의 차이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독자 등 여러 다양한 조건들이 바울 당사자 때의 그것들과 전혀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 본문간의 연속성을 위한 재해석 작업

그렇기 때문에 본문은 항상 재해석되지 않으면 안된다. 성서의 본문을 초시공적으로,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문자 그대로의 내용을 암기시키듯이 주입하면서 그에 따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을 통해 나타나는 저자들의 신학사상을 매개로 계시되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에도’ 변함없이 동일하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생동하는 진리가 되게 하려면 “그 때 거기서”의 진술이 “지금 여기서”의 진술로서 연속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런 원리를 예루살렘 사도회의 합의안에 대한 바울 당사자와 사도행전 저자와의 차이를 통해서도 보게 된다. 사도행전 저자는 자기 시대보다 앞섰던 바울 당사자 때와 자기 시대와의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예루살렘 사도회의를 재해석했다. 그는 이 재해석의 작업을 통해 서로 다른 시공의 차이를 극복하므로서 연속성을 기하고자 했다. 그래서 사도행전 저자는 바울 당사자의 기록에 나타나는 개인적인 문제와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 등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 시대를 향한 메세지를 통해 자기 시대의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의 신앙을 독려하려는 목적으로 서로 다른 두 시대를 이어주고자 상호 연관성 차원에서 예루살렘 사도회의 합의안을 재해석했다. 그 결과 사도행전 저자는 자기 시대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자기 시대 때 발생했던 신앙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관한 바울친서와 사도행전의 일치점

갈2:3 이하에 따르면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바울은 헬라인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고 하므로서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의 율법을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시한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게한다면 그 자체로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의 은혜’를 무효화시키는 행위가 된다(갈2:21). 왜냐하면 율법의 그 어떤 행위로서도 사람은 결단코 의로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갈2:16).

이런 바울의 입장에 대해 사도행전이 보도하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주 핵심 의결사항도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베풀지 않아도 된다는 합의였음을 보여준다.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유대교의 전통에 서서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합당하므로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행15:1,5). 하지만 이에 대한 많은 격론이 있은 후에(15:7a) 베드로가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고 하면서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고 선언하였고 이에 뒤이어 야고보의 합의안 제시를 통해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할례 문제로 괴롭게 하지 말자는 의견이 통과되어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합의가 이뤄졌다(15:19). 그리고 이 결정에 따라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기로 하여 이방인들에 대한 할례문제는 일단락 되었는데(갈2:9) 이 내용은 사도행전의 보도와도 일치한다(행15:25~26).


• 사도행전에는 암시도 되지 않는 바울의 게바 비난 사건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식탁교제 사건에서 터지고 말았다(갈2:11-13). 사실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합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율법없는 은혜의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을 전제로 한 이방인과의 교제나, 율법을 앞세운 유대인들의 우월성 강조는 사실상 바울의 입장에서는 폐기된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인이 된다는 것은 유대의 율법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또 그렇게 간주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구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차원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마주 대할 때에는 늘 율법이란 것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비록 이방인들은 더 이상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사람들이었다고 할지라도(갈2: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는 차별이 없는 사람들로서 같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행15:8,11) 할례의 문제 이외의 다른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구별되었고 나아가 이방인들을 좀 열등한 위치의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듯한 묘한 차별성이 나타났다. 바로 여기서 바울이 게바를 향해 ‘외식하지 말라’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책망하였음을 말하고 있다(갈2:11-13). 하지만, 사도행전에는 바울이 게바를 책망했다는 내용이 암시도 되지 않는다.


• 바울은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사도회의의 음식규례 합의안 내용

이 뿐만이 아니라 바울 자신은 전혀 모르는 듯한 내용이 사도행전에 기술되어 있는데 바로 음식규례에 관한 야고보의 제안이 합의사항으로 의결되었다는 내용이다(행15:20,29). 바울의 친서인 갈라디아서에 따르면 바울이 게바를 책망했던 식탁교제 사건은 사도회의 이후에 있었던 “안디옥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갈2:11). 이 사건은 베드로를 비롯한 예루살렘 사도들이 이방인들과 식사하다가 기둥같이 여기는 사도인 야고보 일행이 안디옥에 이르자 역시 기둥같이 여김받는 사도인 게바와 또 그와 함께 했던 바나바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식사를 마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므로서(2:12) 그 자리에 있던 이방인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바울은 바로 이 점, 이방인들과 식사하다가 말고 중간에서 야고보와 그 일행의 눈치를 보면서 일어났던 일을 외식이라고 지적하며(갈2:13) 격앙된 어조로 그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갈2:14).

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고 있는 중이 아니었다. 또는 야고보에 의해 합의사항으로 결정된 부정한 음식으로서의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고 있던 중에 야고보 일행이 들이 닥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바울 자신은 음식에 관한 한 관대한 입장이었고 먹는 문제로 인해 믿음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할 것을 촉구했던 입장이기 때문에(고전8장) 야고보의 이런 제의가 합의사항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은 바울의 친서를 통해 볼 때 쉽게 납득될 만한 내용이 아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에 나온 식탁교제 사건으로 터진 갈등의 문제는 정결법과 연관된 음식물과 관련있는 사건이라고 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 정결법과 연관된 이방인과의 식탁교제 문제와 음식물 규례 문제

사도행전 11장에 의하면 이방인과 어울리거나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된 사항이므로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정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과 식탁교제를 통해 서로 어울리는 문제는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권면해야 할 일이지 예수 안에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3절 이하 참조). 그런데 갈라디아서의 바울은 이방인들과 식사하다가 말고 일어난 게바와 그 일행을 비난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게바 비난 사건은 음식물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었음이 분명해진다. 이방인과의 식탁교제가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방인과 같이 식사를 하는 문제가 사도행전에 이르러서는 베드로를 통해 해결된 것으로 나오지만 바울 때에는 아직 미해결의 문제였다.

이 식탁교제의 문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과 상종해서는 안된다는 정결법의 범주에 속한다. 그런데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방인들이 이제는 더 이상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결정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였을 것이었으므로 이방인들과 식사를 같이 하는 문제도 해결된 문제였다고 간주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사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방인과 같이 식사를 하는 문제는 아직도 정결법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바울과의 합의내용이 아니었던 것으로 상정된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의 바울은 식사하다 말고 중간에서 일어난 게바와 나머지 유대인들을 향해 외식적인 이중적인 행위를 했다고 힐난한 것으로 생각된다.


•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합의안은 단지 이방인에 대한 할례시행 여부에 관한 것이었을 뿐

그러므로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진정한 결의사항은, 이방인들에게는 할례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할례문제 뿐이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통해 이방인과의 식탁교제 문제도 해결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총체적으로 볼 때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루살렘 사도들의 편에서 볼 때 바울과 합의한 것은 할례문제에 국한하는 것이었을 뿐 식탁교제 문제는 일시적이거나 잠시 용인될 수도 있는 정도의 문제라고 간주되었던 사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볼 때 게바 일행이 야고보와 그 일행이 왔을 때 식사 도중에 식사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이렇게 이 식탁교제의 문제는 바울 시대에 유대적인 배경을 가진 유대 그리스도교인들과 이방인들과의 사이에 상존하고 있던 갈등의 씨앗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바울의 진술을 보면 그것은 사도행전에서 합의된 사항이라고 말한 음식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한 자리에서 식사를 같이 하는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 의하면 할례문제와 더불어 예루살렘 사도회의 시에 결정된 합의사항은 “정결법”에 연관된 음식문제였는데 비해 갈라디아서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이방인과 같이 한 자리에서 식사하는 식탁교제의 건이었다는 차이점을 볼 수 있다.


• 사도행전과 바울친서 사이의 차이점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회의가 끝난 이후 갈라디아서에서 말하는 바울과 예루살렘 사도들을 대표하는 게바 사이에는 이런 식탁교제로 인한 갈등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회의 이후 바울이 안디옥에서 발생했던 예루살렘 사도들과 이방인과의 식탁교제 건으로 갈등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쪽에서 누구를 같이 데리고 선교사역을 하러 갈 것인지의 문제로 동료 동역자인 바나바와 갈등을 일으켜 서로 헤어져 각자 따로 복음을 전한 것으로 나타난다(행15:37-40).

이런 차이는 분명 바울 당사자의 때에 핵심문제였던 할례문제는 사도행전 저자 때에 이르러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동시에 바울 당사자 때의 갈등문제는 사도행전 저자 때에 와서 깨끗하게 해소되었으며 오히려 전혀 엉뚱한 문제들이 나타난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바울 당사자 때 보다는 월등하게 왕성해진 이방인 상대 선교사역에서 오는 동역자들 간의 갈등문제가 훨씬 심각하게 제기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며 나아가 수적으로도 많아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해법이 당면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상황의 차이에 따른 정결법 재해석과 새로운 적용에 따른 해법제시

이것은 바울 당시의 핵심문제였던 할례와 식탁교제 문제가 사도행전 저자 때에 와서는 그 양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된다. 사도행전 저자 때에 이르러 이제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바울 때와는 달리 월등히 수가 많아진 이방인과 그에 비해 아직도 율법적 정결의식을 갖고 있던 유대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의 입장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고 나아가 이방인들의 식사관습 중에서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다. 그 어려운 문제란 이방인들과 같이 식사하는 식탁교제의 문제가 아니라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물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현상과 문제들 속에서 사도행전 저자가 제시하는 무게있는 해법은 이전 시대에 이뤄졌던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가졌던 의미심장한 합의의 정신을 통해 나타나는 메시지여야 했을 것이다.

확실히 바울 당시의,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이방인과의 식탁교제에 있어서의 갈등은 사도행전 저자 때에 이르러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이방인들에 대한 할례문제와 유대인들의 이방인과의 공동식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워진 것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사도행전 저자 때에 새롭게 부각된 문제는 바울 때와는 달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물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실 이것은 이방 세계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법한 것이었다. 야고보가 제기하여 합의된 것으로 나타난 문제들은 실상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는 문제의 소지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오히려 이방인들로 인해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상처받을 만한 내용들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 네 가지 규례는 유대인들에게 지키라고 권면할 성격의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그런 음식물을 금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생활관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방인과의 공동식사가 아니라 식탁에 오르는 음식물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민하게 다가왔을 법한 정결법 관련 문제였기 때문에 사도행전 저자는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물의 문제에 대한 정결법 적용의 문제로 재해석함으로서 당대에 가장 민감했던 신앙적인 난관을 신학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예루살렘 사도회의 전통과 그 의미를 이어가는 맥락속에서 사도행전 저자가 자신이 처해 있던 상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했던 합의사항으로서 제2의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버금가는 사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