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얼마 안있으면 성탄절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지금쯤 각 교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행사준비로 바쁠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곧 '복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이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성탄에 빗대어 말한다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그 자체가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매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는 뭔가 2% 부족한 감을 지울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신자들이 성탄을 과연 참으로 기뻐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솔직이 말해서 오늘 우리는 과연 성탄을 진정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좀더 심하게 말하면 성탄절이 그저 연례행사쯤으로 되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냉정히 말해서 그 이유는 교회의 잘못에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복음을 '살아있는' 복음이 아니라, '죽은' 복음으로 만들어 왔다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복음이란 복음의 본질을 그시대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여 전하여 줌으로써 참다운 기쁨의 소식이되는 복음이요, '죽은' 복음이란 교리와 전통, 문자적 성서해석에 얽매여 그저 공허한 교설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을 말합니다.

전통적인 교리에 의하면,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으며 이제 그 사실을 믿기만하면 우리는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탄을 기뻐한다는 것은 그런 목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고 기뻐해야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전통적인 복음이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는 별로 가슴을 고동치게하고 심장을 뛰놀게하는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다른 글에서도 밝혔듯이, 이제는 그러한 이론적이고 문자적인 신앙교설로는 현대인을 감동시킬수 없습니다. 이미 현대인들의 삶의 자리는 이천년전의, 아니 불과 5~6십년전 사람들의 그것과는 달리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시대에는 죄의 문제가 각 개인의 삶에서 지대한 관심의 문제였다면 오늘의 사람들에게는 더이상 그것은 고민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죽은 다음의 내세의 문제 역시 그러합니다. 보십시오. 아직도 여전히 길거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누구하나 그런 외침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시대가 달라지면 성서의 해석도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성서의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러한 노력을 외면한 채, 그저 요지부동, 성서의 문자적 해석에 얽매어 대속교리, 이신칭의 교리만을 변하지않는 복음의 전부인 양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런 교리 역시 그 시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 *
그렇다면 오늘의 시대에 '살아있는' 복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그것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란 시대를 따라 그 해석은 바뀌어진다해도 그 본질은 바뀌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그릇은 바뀌어도 그 내용은 바뀔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예수의 선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것이 어째서 기쁜 소식이었을까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온전하게 펼쳐지는 세계를 말합니다. 그러한 세계를 예수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행동과 실천을 통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

예수는 주로 그 당시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된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세리와 창기들, 율법적으로 죄인들, 떠돌이들…. 그 시대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완전히 희망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유대인이지만 나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도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자격조차 없는 인간들로 여겨졌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완전히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채, 그저 목숨만 연명해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이면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하는데 그들은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 사회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그들은 정죄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 당하고 소외되었습니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런데 예수가 그들을 품어준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가 베푼 병 고침, 죄인들과 식사를 함께함, 죄 사함의 선포,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제자 삼음 등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인정하고 받아주신다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 보시기엔 얼마든지 똑같이 가치 있는 인간이란 선포입니다.(예를 들어 잃은 양 비유 / 탕자의 비유/ 일어버린 드라크마의 비유 등등).

더구나 그는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너희가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다시 말하면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먼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그러한 선포는 보잘것 없고 비천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새롭게 깨닫고 당당하게 살아갈 근거를 가질 수 있게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이란 예수가 보여준 하나님의 차별 없는 사랑. 자신들 같은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하심, 바로 그 메시지였습니다.

저는 그것이야말로 모든 시대를 관통하여 모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할 복음의 원형이고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 * *
그러면 이 복음의 본질은 과연 어떻게 이 시대에 맞게 선포되어야 할까요?

모름지기 인간은 누구나 그 삶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사회입니다. 최고 가치는 능력이요 성공이요 돈이요 출세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보다 그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러한 가치를 더 많이 획득하여 승리자가 됩니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체제가 자신들의 능력을 뽐내고 자랑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됩니다. 그러한 몇몇 소수의 능력 있는 사람들은 훌륭한 인생으로 평가받습니다. 가치있는 인생으로 높여집니다.

그러나 별볼일 없는 소시민들에게는 그런 가치 체계는 그들의 인생에 무거운 짐이 되고 굴레가 됩니다. 마치 옛날 유대 사회에서 율법은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자들에게는 자기 자랑의 좋은 수단이었지만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에게 족쇄요 짐이요 굴레가 되었듯이!

옛날 유대 사회식으로 하자면 의인/ 죄인 의 구분은 오늘날에는 성공자/ 실패자로 구분합니다.
성공자는 소위 '의인'이 되고 실패자는 남보다 뒤쳐졌다는 열등의식, 패배의식, 소외감, 박탈감이란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와 희망을 잃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립니다.

오늘의 사회는 그런 체제의 낙오자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매정하게 비난하고 소외시킵니다. 심지어 살 가치도 없는 인간으로 매도해버립니다. 그래서 자살자가 속출하게 됩니다. (며칠전의 뉴스에도 수능을 치른 자매가 성적비관으로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하고 돈벌고 출세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는 사람 사이의 사랑과 인정이란 한낱 사치스런 감정에 불과하게될 뿐입니다. 현실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자본주의의 비인간화의 비정한 단면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삭막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과연 기독교의 복음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가치를 자본주의적 가치 기준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가치 기준으로 평가하신 예수의 복음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못나고 보잘것 없고 소외된 사람들이라 해도 결코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바로 그 복음을 선포하고 그것을 현실 속에서 보여주어야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 그러므로 교회는 오늘날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함몰되어 스스로 별볼일없는 무의미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패배의식에 젖어 살아가는 많은 소시민들에게, 그들도 얼마든지 당당하게 살아갈 가치와 의미를 가질수 있게하는 희망의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물질이나 능력이나 지식이나 그 어떤 것의 소유 여부를 가지고 인간을 차별화시키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거부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능력 많고 돈 많은 것이 교회 안에서도 가치 있는 인생으로 평가받고 부러워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얼마나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는가, 얼마나 예배에 잘 참석하는가, 얼마나 기도 생활을 많이 하는가, 얼마나 교회 봉사에 열심인가.... 그런 공로주의적 가치관도 버려야 합니다.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다면, 그가 비록 세상적으로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성공한 인생으로 평가된다는 믿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우리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다만 어떤 삶을 살고자 힘썼고 어떻게 살았느냐로 평가하신다는 새로운(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가치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실 어찌 보면 그런 삶은 별로 가치있어 보이지도 않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시시하게 보이는 삶이, 오히려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보다도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가치 있는 삶일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든지 당당하게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을 교회가 힘주어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의해서 무시되고 짓밟히는,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인격의 존엄성과 그 삶의 가치를 회복시켜 주는 메시지이어야 합니다.

2천년 전에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던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알게 함으로써 삶의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품게 해주셨던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은 오늘날 이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가치관이 횡행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참으로 좋은 '기쁨의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