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앙은 비합리적인 개인감정인가?

과거시대 자신들의 기득권 향유를 위해 백성들을 바보로 만들었던 미신과 신화들, 권위주의적 종교제도, 절대왕정체제의 문제점들을 생각하면 그러한 근대적 사고방식이 얼마나 큰 발전인가를 절감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그러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리고 경험적인 자료들조차도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 되고, 유일한 설명방식이 될 때 또 다른 독재의 도구가 된다. 장황했던 연재 글의 마지막에 다다라 나는 이제 신앙이 가진 합리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아는 한 신앙이란 단지 개인적 신념이나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세상과 우리 자신을 설명하는 유의미한 설명방식이며, 마땅히 그렇게 인정되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자문한다. 인격을 가진 하나님이 없다면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생겨났는가? 정말 남자와 여자가 단지 성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그 남자와 여자를 닮은 생명체가 세상에 생겨나는 것이 그저 당연한 결과일까?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합쳐졌다고 당연히 생명체가 생긴다는 것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근본적 설명방식일 수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새로 태어나는 한 생명체에 대해 사실상 거의 결정하지 못한다.

물론 현대에는 유전공학이 발달하면서 상당 부분을 인간 스스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인간복제도 사람이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이미 생명체 안에 구비되어 있는 분명한 특성들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로 조합해 내는 것일 뿐이다. 내가 태어난다는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더더욱 우리는 내 스스로 결정하는 바가 없다. 성별도, 나라도, 민족도, 부모도, 시기도 모두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어떻게 자연스런 현상이라 할 수 있으며 숨겨진 뜻이 없다고 하겠는가? 그럴 때 고대인들은 과학적 언어가 아닌 시적 표현으로 신앙의 세계를 고백했다(시 139:13~16).

인체의 신비를 보라. 우리는 매일 밤, 잠을 자면서도 여전히 심장이 뛰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되뇌며 잠을 청하지 않으며, 혈관을 통해 피가 계속 돌기를 기원하면서 잠자리에 들지 않지만 각 인체장기들은 조금도 어김없이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우리가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어서 당연해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기적인가? 시야를 넓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살펴봐도 어김없이 하루 한 번씩 스스로 돌면서, 한 해마다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 그 거리는 조금도 어김없이 정확한 궤도를 돌고 있다.

이 일을 위해 나도, 우리도, 우리 조상들도 걱정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이 오묘한 일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적적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수행되고 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세상을 보면서 “자연”이라고 부르고 있다. “자연(自然/nature)”이라니! 이 놀라운 신비를 보면서 어떻게 ‘처음부터 스스로 그런 것(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가. 이것은 다시 말하면 “모른다”는 말과 같다. 자동차(自動車)가 말 그대로 아무런 외적 동인이 없이 정말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보면서 ‘우연히 어쩌다가 보니 그저 그렇게 됐다’는 말의 자연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한편 이것은 참으로 솔직한 말이다. 누가, 왜, 언제부터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건 원래 그런 것이다’(自然)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똑똑해서 하나님 흉내를 내기는 하지만(인공눈, 유전자 복제 등),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서를 빌어 그 모든 것을 “내가 만들었다”고 선포한다(창 1:1, 31). 물론 이것은 결코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증명이 아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은 그것을 증명하려거나 제발 믿어달라고 우리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그저 창조주의 권위로 선포할 뿐이다. 우리는 그저 이것을 “믿든지 안 믿든지”이다. 즉 이 세상을 보면서 “이는 분명 하나님의 작품이다”라고 믿든지, “그저 처음부터 그렇게 있을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하든지 우리 맘대로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 사람도 없고, 실험적 증명도 불가능하지만 믿음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작품임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2. 두 종류의 기적을 믿는 사람들

김상복 목사는 세상에 기적을 믿는 사람과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기적을 믿는데 하나님 없이 기적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통해 기적을 믿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잃어버린 왕좌, 김상복). 참으로 정확한 말이다. 이 세상은 날마다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내가 아무런 의식도 없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그에 따라 내 장기들이 움직이고 있고, 밥을 먹으면 장기 순서에 따라 처리되다가 자연스럽게 배설구를 통해 배출된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절기들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그에 따라 어김없이 비가 오고, 서리가 내리고, 눈이 온다. 이 어찌 기적적인 일이 아닌가? 인체의 움직임과 기상학에 입각한 과학적인 설명이 없다거나 무시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그렇게 되어 가는 현상에 대한 설명일 뿐, 본래 왜 피가 모든 세포에 산소를 제공하고 이산화탄소를 모아오게 되었는지 저기압과 고기압이 만나면 왜 비가 내려야만 했는지 그 기원에 대한 설명일 수는 없다. 이 날마다의 기적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치요, 법칙이요, 섭리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설명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며 “지금 때가 어느 땐데 하나님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려느냐?”고 질타한다. 그러나 바로 그런 사람들의 설명도 결국은 “원래 처음부터 그런 것일 뿐이고 그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할 뿐이다. 이 역시 신화적인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금세기 최고의 과학자 중 하나인 칼 세이건은 지구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구는 46억 년쯤 전에…만들어진 것이다. 그러한 초기 무렵에는 대기 중에 수소 원자를 많이 가진 단순한 분자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를 분자에 번개가 작용하거나 태양의 자외선이 부딪치거나 하여 분자는 분해되었다.…대양의 물은 유기물의 수프가 되었다. 이 수프는 점차 복잡한 것으로 되어 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자신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분자가, 아주 우연히 만들어졌다.”(코스모스, 칼 세이건, 학원사, 64쪽)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는 첨단과학의 설명방식이 이렇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다는 말처럼 과학은 그저 46억 년 전쯤 대기 중 수소 원자, 태양 자외선의 적절한(?) 작용이 맞아떨어져 분자가 분해되다가 또 다른 적절한 작용 등으로 원시생명을 향해 나가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하나님, 말씀 등이 개입되는 대신 대기, 원자, 자외선이라는 단어만 다를 뿐 이 설명은 신화적이지 않은가?

나는 지금 창세기의 증언이 맞고, 칼 세이건의 설명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창세기는 비과학적인 언어로 기록된 신화적 문서이기에 신뢰할 수 없고, 과학은 합리적인 실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언제나 신뢰할만하다는 것이야말로 매우 비과학적인 신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