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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말씀에서 모든 진리가 발견되어야 한다.복음은 최소한의 하나님의 육성이다.
김주범  |  kjbjoh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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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1월 02일 (금) 00:07:48
최종편집 : 2008년 03월 26일 (수) 17:24:00 [조회수 : 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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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이 복음신학인가?

*** 본 글은 손병호 박사의 글에서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인간 경작의 신학을 말하려면 예수의 복음을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따라서 본 내용을 말하기 전에 인간경작 신학이 어떤 배경으로 구상되었는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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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모든 기독교 신학의 중심과 핵심과 본질을 연구하고 검증하는 신학이다.

무엇이 기독교 신학인가? 그것은 기독교 종교 안에서 교리적으로 형성된 모든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모든 교리적 신학들은 그들의 첫 번째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에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에 두어왔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호했고 방어했고 해석하였고 보존하여 왔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치할 수 없다. 교리를 최고로 삼는 신학은 복음을 그것의 핵심으로 중심삼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떠한 전통적이고 체계화된 교리도 갖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학들 가운에서 일어난 것은 사람들이 교회복음이 마치 그것들을 교리 신조 그리고 훨씬 더 많게 그들의 의견들을 추구하였고 복음은 부속자료나 백업 본 중의 하나가 되게 한 것이다. 그것의 교리를 최고로 평가하는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반대로 걷는 것이다. 만약에 복음을 연구기 위한 단순한 도구인 어떠한 교리라도 신학의 중심이나 주요 대표물이 된다면, 그 신학은 복음을 그것이 마치 시시한 묵은 지혜와 같은 것으로 제쳐놓는 것이다.  이것은 객이 주인을 밖으로 차내고 집을 차지하는 것과 같은 부당한 상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기초하여 모든 교회 신학의 본질적인 이론과 원리를 숙고하며 탐구하는 복음이다. 무엇이 교회 신학인가? 그것은 기독교 교회에 대한 신학들을 포함한다. 아직 교회와 모든 교회 신학들에 관한 모든 신학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신학”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회신학”에 더 많이 근거하여 생각하고 인식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를 대항하여 완전히 구별 짓는다. 모든 다른 교단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교회”라는 이 개념 때문에 발생된 것이다.


1.1. 복음이 교회의 중심인가 또는 성경인가?

비록 성경과 복음사이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다음과 같이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즉 우리는 성경이나 복음을 기독교 교회의 기초로서 생각하여야 하는가?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교회가 성경위에 견고하게 세워져 있다고 말한다. 종교 개혁자들은 교회에 대한 이러한 생각 즉 성경의 교회를 촉발시킨 첫 번째 그룹이다. 이같은 교회의 개념은 개혁교회와 아직 교황통치의 로만 캐톨릭 교회 사이에 어떤 구별을 만들기 위하여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교회를 위한 기초가 성경이라면, “회당교회”나 “성전교회”는 “성경적”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리고 “희생종교”와 “율법의 종교” 또한 정당화 될 것이다. 다른 말로 기독교 교회의 정체성은 옛 전통들과 구별 짓기에 너무 힘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직 희생제물을 드리라고 요구받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성직자들을 필요로 하는가?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교회를 위한 기초가 되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1.2.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든 교회들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었더라면, 그것은 영원히 덮여지고 숨겨졌을 것이다. 또한 그 경우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고 핍박한 유대인들은 합법적으로 정당화되고 “종교적”이라고 불리울 것이다.


1.3. 성전과 회당이 성경적 교회가 된다면 어떨까?

현대의 기독교 교회가 성전과 회당의 후계자로 여겨진다면,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오는가? 그것은 간단히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무엇이 종교개혁자들의 “개혁 교회”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히 선생인가? 그는 전통적인 유대주의로부터 “밖으로 부르심 받은” 하나의 공동체를 요청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전통적인 유대 종교 로마 캐톨릭 그리고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까지와도 명백히 다르다.

복음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연구하는 신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신학들의 궁극적 기초이다. 성경은 한 저자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라 2천년 이상에 걸쳐 그리고 약 40명의 다른 기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66권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그 66권의 책은 인간에 의하여 선별되었다. 이것은 분명히 성령(the Holy Spirit)의 일하심에 의해 수집되고 선택되었다. 그러나 성령의 일하심은 66권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1.4. 성경은 복음의 집이다.

얼마나 많은 책들이 수집되었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구약뿐만 아니라 토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준비였다. 또한 사도행전, 바울의 서신들, 그리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증거이자 간증이다. 마틴 루터는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거주하시는 집으로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빌딩이 아니라 누가 그 안에 사는가이다. 즉, 예수는 성경을 돕고 설명하고 성취하는 분이 아니라 성경의 모든 책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거기에 있는 것이다.

1.5. 성경의 정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위의 권위를 가진 분으로 인식하는 것은 복음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중의 하나이다. 만약에 그리스도가 성경의 단순한 해석자와 전달자이었다면 그리스도 없는 성서적인 종교를 형성하는 것조차 가능할 것이다. 무엇이 그리스도 없는 전형적인 성경적 종교인가? 그것은 유대교이다. 기독교는 바로 그 유대교로 회귀하려는 위험에 빠져있다.


1.6.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없는 기독교는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개념만을 가지고 있다면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와 그의 복음을 가져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에 복속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기독교가 “마리아의 품에 있는 아기 예수:만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황이나 샤만의 종교가 될 것이다.


1.7. 영원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해석되고 번역되고 지속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구약은 옛 이스라엘과 유대인들 부족, 종족, 국가, 정치, 종교, 그리고 사회 역사이다.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복음위에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은 좋은 소식을 열방에 주셨다. 거기에는 열방이 때 지난 유대교를 관찰해야할 어떤 이유도 없다. 또한 우리 역시 제한된 자기 안목에 근거하여 복음을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구약은 우리로 모종의 지혜 교훈을 얻도록 주어졌다. 바울의 서신들은 최기 교회의 신학적 서신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기독교 교회의 핵심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곧바로 돌아가야 할 시기이다.


1.8. 성경안에서의 풍자와 모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한 구절은 “원수를 미워하라”고 말하고 있고 다른 구절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 이것만이 아니라 성경은 논리적으로 많은 역설과 모순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질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모순들을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율법 토라는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시기에 주어졌다. 그리고 복음은 다근 시기에 백성들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최종적이며 종말론적인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것은 모든 시기에 백성들에게 주시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영원한 진리이다. 만약에 사람들이 복음을 선택하지 않거나 구별하지 않는다면 성경과 교회와 기독교와 모든 신자들은 자기 모순 외에 아무것도 가지는 것이 없다. 이제 우리는 원수들을 미워하는 대신에 사랑해야 한다. 새 율법과 새 언약은 주어져 있다. 우리는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부어야 한다.


1.9. 복음과 율법을 구분하여야 한다.

복음신학은 복음을 성경안에 있는 어떠한 다른 요소와도 구별한다. 구약을 신약에서 분리하는 것은 소용없으며 율법과 서신들을 성경과 구별하는 것도 소용없다. 하지만 복음은 현재의 성경에서 구별되어야 한다. 뿌리와 가지와 꽃들을 보호하여 그 나무에서 열매를 맺을 시기가 있다. 복음을 율법과 구별짓는다는 의미는 율법이 아니라 복음을 살고 믿고 따르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과거나 모순 속에 거하지 않는 때이다.


1.10. 옛 법은 새 법 앞에서는 소용없다.

사람들이 새법을 설정하게 되면 옛법은 자동적으로 버려지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토라를 확장하거나 복구하거나 반복하거나 따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좋은 소식 곧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오셨다. 토라를 완성하여 끝내고 결론지음으로 토라는 자동적으로 옛법이 되며 새 법에 의해 대치된다. 옛 법을 복원할 이유는 전혀 없다. 복음의 새 법은 지금 우리와 함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아이들이나 땅을 남기지 않은 사람은 지금 이 생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를 핍박과 함께 백배를 받지 못할 사람이 없으며, 또한 영원한 생명을 이루는 때에도(마10:29) 그렇다.” 그가 그의 우선권을 하나님의 일에 둔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땅위에 이를 것이다.


1.11. 복음은 알파이며, 복음신학은 오메가이다.

복음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일한 알파와 오메가로 간주한다. 즉 시작과 끝 또는 처음과 나중으로. 복음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원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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