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기독교세계에 보낸 정연수목사(인천북지방 효성중앙교회)의 글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신실한 크리스천

	▲ 효성중앙교회 정연수목사

명랑하고 성격이 소탈해서 허물없이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딸이 어느 날 조금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내게 하소연을 했다. 학교 친구들이 ‘넌 목사님 딸이 왜 그래?’라고 질문하더라는 것이다. 말인즉 목사님 딸이면 좀 조용하고도 내성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자기네들이 생각한 이미지인데 딸이 그런 친구들의 기대를 좀 깬(?) 모양이다. 딸은 친구들의 궁금증에 대해 다소 충격 아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볼 멘 소리로 하는 말, ‘아빠! 목사님 딸은 다 얌전해야 되는거야?’라는 딸의 질문에 대해 정말 미안하게도 우리 부부는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 ‘~다운’ 스트레스
지난 9월 8일 저녁에 잠시 목사답지 않은 외도(?)를 했다. 우리 교회가 몸담고 있는 계양구에서 해마다 <계양산숲속음악회>라는 문화 행사가 열린다. 민·관 연합단체인 [계양의제21실천협의회] 주관으로 3년째 열고 있는데 올해 그 음악회를 총감독직을 맡게 된 것이다. 행사를 기획하면서 내친김에 2부의 열린음악회 사회를 봤다. 한 술 더 떠서 행사 중간에 가수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처럼’이란 노래를 불렀다. 선글라스까지 끼고서...
이에 대한 반응은 두 갈래이리라. ‘목사답지 못하다.’라는 고까운 눈초리와 ‘목사님 답지 않게 너무 멋있는 거 아닙니까?’라는 반응이다. 첫 번째 반응의 소리는 직접 듣진 못했지만 , 두 번째 반응은 그날 행사에 참석한 비기독교인들에게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목사답지 않게 보이면서도 목사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순 없을까?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의 아들답지 않게 살다가 제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이 더욱 존경스럽다.

크리스천 되기 쉽다. 교회에 나와 새신자 등록서 한 장 써 내면 그 날로 크리스천이 되고, 한 교회의 성도가 된다. 4년간의 학부, 2년 대학원, 단독목회 3년, 진급하면서 해마다 논문에다가 품행 평가까지 잘 받고 통과해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감리교회의 목사 안수도 목회하면서 ‘목사님 답게’ 되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결혼해서 살다보니 어느덧 아이 아빠가 되었다. 그런데 ‘아빠다운 아빠’되는 것은 20년 넘게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 균형 잡기
이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가는 실존적 크리스천에겐 두가지 선택에 대한 고민이 존재하리라. ‘기독교인답게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로마인처럼 살아갈 것인가?’
나는 아직까지 첫 번째 요구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두 번째 요구에 더 많이 무게 중심을 옮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혹자는 반문할지 모른다. ‘오히려 후자에서 전자 쪽으로 더 옮겨가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이다.

연구실에서 한 걸음 나와 현실에 부대끼면서 갖게 된 목회철학 가운데 하나는 ‘목회란 균형을 잡아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율법이 세상에 주어졌을 때에 율법은 광야 생활하는 유랑민들에게 꼭 필요한 법이었다. 유대교와 바리새인들이 그 법을 고색창연한 골동품처럼 생명 없는 법으로 만들었을 때에 예수님은 율법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율법을 폐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율법을 오히려 완성하시기 위해- 율법을 깨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성별의 확신을 심어 주었던 할례가 믿음과 구원의 기준점처럼 막강한 힘을 구사할 때에 바울은 자신도 할례받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례 규정을 깨기 위해 갈라디아서에서 그토록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전통이 복음의 숨통을 조이고 있을 때에 루터는 이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를 외치면서 가톨릭이 잃어 버리고 있었던 영적 균형감각에 경종을 울렸다. 귀족종교, 국가종교를 자처하면서 우아하게 예배를 드리던 영국국교회의 무감각한 영적 감성을 깨우기 위해 웨슬리는 하지 말라는 노상설교를 계속하면서 법으로 교구를 제한하며 교리로 복음의 영역을 제한하는 것에 반(反)하여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외치면서 소외계층의 선교와 찾아가는 설교를 계속했던 것이다.

종교는 늘 좀 더 근엄해지고, 좀 더 형식화 되고, 좀 더 권위적인 데로 나아가고자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지난 기독교의 역사가 증명해 주는 것은 복음의 능력이 형식에 갇혀 숨통이 막힐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균형을 잡아 주시기 위해 교회를 갱신해 오셨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품고 요즘 골똘히 생각하는 주제는, ‘교회가 기울어져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의(異意)없이 동의하는 이 시대에서 과연 어떤 균형감각을 지닌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가?’이다.

■ 기름기 좀 빼고.
저수지가 죽어가고 있다. 잡은 고기를 오직 자기 바구니 안에 담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은 개념없는 낚시꾼들이 저지르는 일을 보자. 자신의 낚시대를 드리운 곳에만 고기가 몰려오도록 하기 위해 어찌나 떡밥을 뿌려댔는지... 그러다보니 이젠 저수지 전체가 부영양화가 되어 물 전체가 서서히 진녹색으로 변하면서 썩어가고 있다. 머지 않아 그 저수지에서는 아무리 낚시를 드리워도 낚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다.

교회의 이미지가 좋을 때에는 {크리스천 < 잠재적 크리스천 > 비 크리스천}이라는 공식이 성립됐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크리스천 ≠ 안티 크리스천} 구도로 점차 고착되어가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한 숱한 통계 수치와 분석이 제시되었기에 이 글에서는 더 이상 수치 제시는 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은 아닌 크리스천’, 그러나 ‘곧 크리스천이 될’ 층이 왜 사라지고 있는걸까?
필자가 진단하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교회가 너무 ‘기독교스럽다’는 것이다. 우리 용어부터가 교회 혹은 예배당으로 부르기 보다는 성전이라는 호칭에 더 익숙해 있다. 새로 지어진 교회를 방문하다 보면 예루살렘 성전, 벧엘 성전 등등의 이름을 예배실에 붙여 놓은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제사라고 표현해야 좀 더 무게감 있게 느껴진다. 대표기도자의 어투는 사회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는 특이한 어조일 가능성이 높다. 전지전능, 무소부재, 세초부터 세말까지, 삼라만상을 주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딛고 사는 땅과 얼마나 멀게 있는가? 또 그 용어들이 주는 시간의 간격은 얼마나 아득한가?

어떤 목사님은 예배를 ‘드리러’ 와야지 ‘보러’ 오면 안된다고 야단 하시지만 필자가 생각할 땐 예배를 ‘보러 오는’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교회에 호기심을 느끼고,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 궁금해서 구경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초기 한국기독교 시절, 부흥사경회가 열리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 삼아 멀찍이 예배실 뒤편에 서서 구경하던 시절이 부럽기만 하다. 적어도 그 시절 교회는 놀러라도 가볼만한 곳이었지 않은가?

동네에 새로 신장개업한 해물찜 집에 갔었다. 어찌나 음식이 실하던지 계산을 치르는데 미안할 지경이었다. 몇 달 후에 다시 그 때의 감동을 기억하면서 들렀더니 이번에는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업했을 당시에 감동하면서 먹었던 그 메뉴가 아니었다. 지난번 들렀을 때 느꼈던 주인의 고객감동 서비스도 예전 같지 않다. 다들 한마디씩 했다. ‘이젠 돈 좀 벌더니 변했구먼.’이라고...

부풀려진 포만감으로부터 교회는 벗어나야 한다. 아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4배가 넘게 더 많은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기름기에 젖어 영혼 추수를 향한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 큰 문제다. 기름기 흐르는 비만에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는 아직 영적 전쟁을 끝맺을 때가 아니다. 이미 수차례 숱한 검사를 통해 교회에 이상증후가 나타났다는 경고를 받았다.

■ 교회 밖으로 성큼.
우리에겐 무궁한 블루오션이 열려있다. 감사하게도 아직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 밖 80%의 성도들이 있다.
분당의 한 교회는 다른 교회 다니다 자신의 교회로 수평 이동해 오는 성도들을 안 받기로 천명했다 한다. 배부른 교회의 선택이라고 눈총을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잘 한 일이다. 어디가 블루오션인지, 어디가 레드오션인지를 빨리 간파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서울의 한 교회가 일본선교를 한류를 활용해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 일본이야말로 기독교 인구가 어떤 나라보다 더 적은 곳이 아닌가? 기독교가 가장 부흥이 안되는 일본이야말로 선교의 가장 열려진 블루오션이라 생각한 그 교회의 발상의 전환이 놀랍다.

다 알만한 기독교 성향의 중앙일간지를 구독하는데 교회 홍보용 전단지가 자주 끼워져 배달된다. 그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은 거의 다 기독교인임이 분명한데 교회 전도지가 그 신문에 딸려 들어오는 것이 좀 어색하다. 전도가 목적이라면 오히려 다른 일반신문에 끼워져 배달되어야 할 게 아닌가? 수해의연금이나 구제금을 기독교계 신문에 기탁하는 것도 의미있는 것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돌리면 오히려 비기독교 신문에 기탁하는 것이 맞는 일이라 생각된다. 교회 이름, 목회자 이름이 교계에 알려지는 일에는 손해 보겠지만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를 줘야 할 게 아닌가? 지방마다 곳곳에서 열리는 선교대회도 ‘선교’라는 말을 붙이려면 적어도 선교의 대상자들을 초청하거나, 선교 대상자들을 찾아가는 일이 있어야 할 터인데 언제부턴가 우리들만의 잔치만으로도 넉넉하게도 사람들이 모여주니 굳이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워야 할 스트레스도 없다.

선교지향적인 교회라는 것은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도 한 부분이 되겠지만 마인드 자체를 바꿔 관심을 교회 밖의 ‘복음 수용 가능자’들에게 돌리는 교회를 의미한다. 베드로와 야고보를 위시한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교 출신 기독교인인 할례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바울은 치열한 할례논쟁을 벌이면서 제1차 예루살렘공의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무할례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어야 할 뿐 아니라 무할례자도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 할례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대교인이었지만 유대교를 넘어선 바울, 할례자였지만 할례를 넘어 선 사람이 바울이다. 바리새인이었지만 바리새주의를 밟고 넘어갔다.
고린도전서 9장의 고백처럼 바울이 자유자이나 종이 된 것은, 이방인들에겐 율법 없는 자처럼 보여지도록 노력한 것은, 강하지만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더 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 바울은 자기를 지탱해 왔던 그 기둥들을 스스로 허물었다.
좁디 좁은 팔레스타인에 복음은 갇혀 있을 수 없었다. 수 많은 열방과 민족, 족속에게로 퍼져 나가야 할 복음이 어찌 할례 여부만으로 재단될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복음을 교회 안에 가두어 옴짝 못하도록 움츠러지게 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불행하게도 크리스천이다. 율법을 완성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율법의 신봉자들이 죽였던 것처럼,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을 짓누르는 일도 교회를 가장 사랑한다는 자들로 말미암는다.

■ 깨진 유리창 하나를 고치는 심정으로
누구나 ‘내려 놓음’에 대해 설교할 수 있고, 감동적으로 설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삶으로 ‘내려 놓음’을 증명해 내지 못한 자의 외침은 공허하다. 하지만 삶을 다해 ‘내려 놓음’을 행동으로 옮긴 이용규 선교사의 글은 숱한 사람을 감동시키고 도전을 준다.

범죄학자인 James Q. Wilson과 George L. Keiling 이 1982년 발표한 [깨진 유리창 법칙]이 있다. 아주 간단한 원리인데, 큰 건물의 깨진 유리창 하나, 작은 낙서와 같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즉시 바로 잡지 않으면 조만간 그 건물 전체가 흉가로 변할 뿐더러 깨진 유리창을 방치해 둔 사회가 무법천지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 이론을 실제로 적용한 뉴욕시의 경우 지하철역과 거리의 낙서를 대대적으로 지움으로 인해 도시 전체의 범죄율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되었단다.
사람들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 깨진 유리창 하나를 고쳐 놓는 일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지 않고 있다. 빨간 신호등일 때 길을 건너는 사람을 막지 못한다면 온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강도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거창한 개혁이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작은 일 하나를 신실하게 실천하는 것으로부터 위대한 변화를 향한 ‘나비효과’가 시작된다고 확신한다. 소돔과 고모라의 몰락을 막을 수 있는 힘은 거대한 혁명이나 구호가 아니다. 신실한 의인 10명만 있어도 족하다.

위대한 감리교회는 거대한 조직이나 잘 짜여진 법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신실한 사람, 신실한 기독교인, 신실한 감리교인 한 명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