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다시 찾은 삶, "국민 성원 보답하며 살께요"피랍자 21명 퇴원 기자회견서 억류 과정 상세히 설명
당당뉴스 편집실  |  webmaster@dangda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7년 09월 13일 (목) 23:50:18 [조회수 : 182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뉴스앤조이 주재일 기자의 기사입니다.
 
 ▲ 안양샘병원에서 퇴원 기자회견 중인 피랍자들. ⓒ뉴스앤조이 주재일
   
 
샘안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21명의 피랍자들이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21명의 피랍자들은 9월 12일 샘안양병원 지하 1층 강당에서 100여 명의 취재진과 만났다. 이성은, 이연경 씨 등 일부 피랍자들은 몸이 채 회복되지 않아 기자회견 도중 강당을 빠져나갔지만 나머지 피랍자들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1시간 넘게 인터뷰에 응했다.

석방자 대표 유경식 씨는 국민들의 염려 속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피랍 경위를 설명하고, 피랍자들이 억류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울러 유 대표는 "저희는 아프간을 떠나왔지만, 아프간과 탈레반을 증오하기보다는 사랑으로 품어서 평화가 오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또 언론과 인터넷 등으로 유포된 오해와 의혹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해명했다.

특히 떠나기 전 정부의 만류를 받았는지 여부는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 회장의 주장과 피랍자들의 발언이 엇갈렸다. 김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두 번 이상 만류했다고 밝혔지만, 비자 업무를 담당한 이선영 씨는 "위험에 대해 어떤 단체나 기관에서 듣지 못했고 공문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인솔 책임자인 고 배형규 목사에게 어떤 이야기가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지영 씨는 배 목사가 살해되기 직전 함께 억류된 이들에게 "믿음으로 승리하세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이야기를 전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피랍자들은 탈레반이 개종을 강요하며 총으로 위협하고 때렸으며, 남자들은 노예처럼 살았다고 증언했다. 그렇지만 고세훈 씨는 탈레반이 신발을 사주었다고 말했고, 서경석 씨는 따로 억류된 누나 서명화 씨와 쪽지를 주고받도록 도와줬다는 등 탈레반의 호의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박상은 원장(샘안양병원)은 "귀환자 21명이 신체적으로는 회복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완전히 치료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며, 그동안 치료 과정을 설명했다. 50여 명의 양·한방 의료진이 10여 일 치료하고 상담사 등과 더불어 식이요법, 운동요법, 미술과 음악 치료 등을 병행했다. 그 결과 "좋지 못한 환경에서 억류된 것으로 인해 발행한 소화기 질환과 피부질환을 제외하고는 특이한 질병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박 원장은 "대부분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지만, 일부 환자들이 아직 우울·불안·불면 지속 증상을 보이고 있어 약물과 면담 치료를 하고 있다"며 "퇴원 후에도 지속적인 치료를 실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피랍자들은 9월 12일 퇴원한 뒤 가족과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생활 적응 훈련을 받는다. 추석 이후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적응 여부를 확인한 뒤 추가 진료 여부를 결정한다.

다음은 피랍자들이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민소매 차림 돌아다녀? 말도 안 되는 소리

아프가니스탄으로 출국하기 전 국내에서 어떤 준비를 했나.

송병우 : 우리는 자발적으로 지원서를 제출하고 모여서 3개월 간 매주 2~3시간 아프간에 대한 상황과 문화, 언어 등을 공부했다. 그 이후에는 저희가 아프간에서 하게 될 봉사 활동 내용을 팀별로 준비했다.

외신에 '일부 여성 신도들이 민소매 차림으로 현지를 돌아다니기도 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인가. 떠나기 전 문화를 익히는 것 말고는 어떤 안전교육을 받았는가.

임현주 : 한국에 돌아와서 외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이 잘못된 게 많다는 것을 알았다. 민소매 차림으로 돌아다닌 건 비상식적인 이야기다. 이슬람권에서는 현지인 복장을 구매해서 입고 다녔다. 큰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다녔고 잘 때도 그 스카프를 착용했다. 외신에서 우리가 고급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말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매일 칸다하르를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전세로 빌렸다. 무난한 버스였다. 버스 안에도 커튼 쳐져 있어서 외국인인지 (밖에서는) 확인 안 된다. 지나가는 주마다 검찰의 검문을 받았는데, 한국 여권을 보여주고 짐까지 확인했다. 칸다하르로 가는 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경찰이 우리를 흔쾌히 보내주었다. 가즈니 초소에서는 환영을 받았다.

공항에서 '아프간이 여행제한국가이니 유의해달라'는 내용의 표지판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찍은 이유는. 사전에 안전교육을 받았나.

유경식 : 우리 중에는 그런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없다. (그래서) 말씀 드릴 수 없다. 사전에 매주 주일 저녁에 두 시간씩 관련 교육을 받았다.

이선영 씨 미니홈피에 이슬람 사원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했다는 내용이 네티즌 사이에서 떠돌았는데 사실인가. 이번에도 같은 행위를 했는가. 이런 행위가 현지인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비추어졌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선영 : 인터넷을 확인 못해서 어떤 사진이 거론됐는지 모르겠다. 2005년 아프간을 방문한 적 있다. 당시 칸다하르대학 모스크를 찾았는데, 방학 중이라 아무도 없어서 관리자의 허락을 받아 모스크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작은 에피소드였다. 그들의 종교를 침해하거나 저해하려는 목적으로 그런 행위를 한 적 없다. (이번에) 저희 팀은 모스크에서 그런 일을 한 적 없고, 모스크를 방문한 적도 없다. 무슬림들은 저희가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걸 알기에, 저희가 가정방문을 할 때 저희 식으로 기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저희도 그들의 방식으로 기도하기도 했다.

유서를 써 놓고 갔다는 논란이 있었다. 어떤 유서였는가. 가기 전 유서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김지나 : 유서를 쓴 것은 더 의미 있게 살자는 (의도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단기 봉사 활동은 단순한 해외여행을 가는 게 아니라 진지한 마음으로 가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유서를 쓰자고) 해서 절반 이상은 쓰지 않았다. 유서 내용은 개인 사생활 문제이기에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은 못하겠다. 가족에게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 감사하다는 이야기, 아프간에 가면 어떤 어려움을 겪을 건데 기도해달라는 이야기 등을 유서에 썼다. 진지하게 쓰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과 가족에게 편지 형식으로 쓰기도 했다.

외교부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여행제한국가로 지정돼 있고, 탈레반이 한국인들을 노리고 있으니 유의해달라"는 내용을 한민족복지재단에 보낸 사실을 교회가 알면서도 당신들을 아프간으로 보냈다. 외교부가 아프간 행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교회 측으로부터 전해 듣고도 아프간 행을 선택했는가.

이선영 : 제가 6월부터 비자 발급과 관련된 일을 진행했다. 비자 발급 과정에서 어떤 단체나 기관에서도 안전에 대한 공식적인 공문을 받지 못했다.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었다.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에 대해 들었는데, 지난해 다른 단체에서 행한 일이 우리가 한 일처럼 알려졌다. 어떤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그런 공지나 서신을 받은 적 없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고 싶었다"

왜 아프간에 가게 되었나.

김윤영 : 저를 제외한 다른 팀원은 대부분 싱글이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지만 우리보다 더 어렵고 힘든 친구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을 도우러 간다고 말했다.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교육하고 싶었다. 먼저 내 몸으로 실천하고 싶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 아프간에서 사역하고 있어서 그곳으로 갔다.

아프간에서 어떤 봉사 활동을 펼쳤는가. 무슬림에게 하는 선교는 어떤 방식이었나.

김윤영 : 구체적인 선교 활동은 없었다. 그곳에는 장기로 체류하며 활동하는 분들이 있다. 우리가 이번 여름에 가서 한 활동은 장기 체류자들을 돕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발해주고, 머리에 난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아이들과 축구하고 노래 부르고 신발을 나눠주고 벽화도 그렸다. 벽화는 종교적인 그림이 아니라 꽃과 나비였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벽화였다. 마지막 날에는 가정을 방문했는데, 모두 반겨주었다. 이틀 모였는데 300명 넘는 아이들이 왔다. 장기적으로 봉사 활동하는 분들이 주민들과 좋은 관계였구나 생각했다. 피랍된 이후 풀려나는 사이에, 내 딸의 사진을 내 딸과 동갑내기 아이에게 주었다. 그 사진 뒤편에 한국말로 우리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글을 써서 한국으로 나오는 사람 편으로 남편에게 전달했다. 그곳 사람들은 친밀감이 있었다.

"죽음의 공포가 가장 힘들었다"

피랍 당시 격은 가장 큰 어려움은.

유정화 : 가장 힘든 순간은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였다. 탈레반이 저희를 여러 번 비디오 촬영했다. 처음엔 23명을 모두 벽에 기대어 세우고 무장한 총을 겨누고 촬영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앞에 구덩이가 파져 있었다. 그런 비디오 촬영을 여러 번 했다. 마지막에는 임현주 씨와 둘이 방에 남았는데, 이슬람교를 믿으면 살려주겠다고 위협하며 비디오를 찍었다. 이슬람 기도문을 주면서 읽으라며 개종을 강요하기도 했다. 무장한 탈레반이 가득한 상황에서 먹지도 못하고 물도 못 마셔 탈수현상이 왔다. 그들을 자극하면 안 되기에 울지도 못하고 임현주 씨 품에 안겨서 고통의 기간을 참으며 반나절을 보냈다. 지금도 카메라를 볼 수 없고…. 이런 게 너무 힘들다.

제창희 : 남부 산악 지대에서 20일 이상을 보냈다. 저희는 토굴에서 묵었다. 지붕이 무너진 곳이었는데, 이불 두 장으로 네 명이 살았다. 밤에는 너무 춥고 낮엔 더웠다. 40일 동안 입었던 옷을 가져왔다. (제 씨는 너덜너덜하게 헤어진 반팔 티셔츠와 찢어진 바지를 펼쳐보였다.) 남자들에게는 이것저것을 시켰다. 물을 가져오게 하고, 불을 때게 했다. 노예처럼 살았다. 토굴로 독사가 들어와 나뭇가지로 잡아야 했다. 구타도 많이 당했다. 총구로 위협하고, 대검을 장착한 총을 목에 대고 개종을 강요했다. 발로 차고, 총과 나뭇가지로 때렸다. 일부 탈레반이 한 일이지만, 다분히 그런 일이 있었다. 손이 묶인 채로 이동했고, 머리를 씌워 차에 태울 때도 구타했다. 송병우 형제는 (구타로) 가슴뼈를 다쳤다.
 
차혜진 :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했고,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답답했다. 여러 자매들이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현지 음식이 안 맞아 보름가량 먹지 못하고, 먹으면 설사와 구토를 했다. 탈수에 빠진 자매도 많았다. 감자 두 알로 네 명이 나눠 먹었다. 방 안에는 쥐와 벼룩을 비롯해 해충이 많았다. 지금도 벼룩에 물린 곳을 치료하고 있다.

어떤 팀은 살해 위협에 구타, 어떤 조는 친절

피랍된 이후 분산 배치되면서, 그룹 별로 대우가 어떻게 달랐는가.

유경식 : 억류된 생활이나 옮겨 다닌 것은 각 그룹별로 다르다. 어떤 곳은 잘 대해주었고, 어떤 곳은 구타를 하거나 총기로 위협했다. 팀마다 겪은 일을 간단하게 말하겠다.

제창희 : 저희는 해발 3000미터의 산악 지대에서 지냈다. 핸드폰이 안 터졌다. 탈레반도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무전을 했다. 제대로 씻지 못하고 필수품도 없었다. 화장지도 없었다. 제가 가져간 책을 화장지 대용으로 써는데, 이 자리에 가져왔다. (제 씨가 구겨진 책 종이를 펼쳐 보였다.)

박혜영 : 3명으로 나눠져 다섯 번 이동했다. 처음과 마지막엔 승용차로 이동했고, 나머지는 오토바이로 이동했다. 우리가 머문 곳은 모두 민가였다. 저희를 방 안에 가두고 밖에서 문을 잠궜다. 식사나 필요한 것을 제공할 때만 문을 열었다. 하루 종일 문 밖을 나갈 수 없어 힘들었다. 밤에 한 번 화장실을 갔다. 마지막에는 하루에 한 번도 나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차혜진 : 저희 팀은 남자 한 명과 여자 세 명으로 구성돼 12번 이동했다. 처음에는 민가의 헛간이나 창고에서 머물렀다. 탈레반과 24시간 지냈고 방 안에 감금돼 밖으로 나오는 일이 없었다. 이동할 때는 주로 두 대의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걸을 땐 남자는 눈을 가렸다.

한지영 : 유정화 씨가 말한 것처럼 저희 팀도 개종을 요구받았다. 배 목사님이 나간 후에 여자 세 명만 남았다. 언제나 탈레반과 있었다. 심리적으로 너무 두렵고…. (한 씨는 울먹이며 잠시 이야기를 멈췄다.) 10여 일을 하루에 세 번 한 시간씩 식사하는 시간에 탈레반과 함께 먹어야 했기에 너무 두려워 제대로 못 먹었다. 민가에 감금되었을 때는 민가 주인이 와서 하루에 세 번 화장실을 가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대화하는 건 불가능했고, 정보도 없었다. 우리가 감금된 방에는 창이 두 개 있었는데 천과 커텐으로 가려 빛이 안 들어왔다. 심리적으로 공포를 경험했다.

고세훈 : 우리는 다른 팀과 다르게 매일 밤 이동했다. 24번 민가에서 민가로 이동했는데, 이동할 때마다 포탄이 터진 모습을 자주 보았다. 아마도 전쟁 지역이었던 같다. 탈레반 두 명이 우리는 감시했다.

배형규 목사, "믿음으로 승리하세요"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씨가 살해되는 과정은 어떠했는가.

한지영 : 세 번째 비디오 촬영을 한 후 우리가 한 민가에 도착해 방에 앉자마자, 탈레반이 배 목사님의 이름과 성을 확인한 뒤 그를 데려갔다. 배 목사님이 저희를 바라보지 않고 걸음을 옮기면서 방문을 지나가는 순간, "믿음으로 승리하세요" 하고 말했다. (울음)

이지영 : 탈레반이 심성민 씨 이름을 부르고 대답하자 그를 데려갔다. 심 씨가 대문 밖에서 대기하다가 남자들이 쓰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우리는 심 씨가 떠나는 것밖에 보지 못했다. 

서명화 씨 바지 메모를 보면, 서명화·차혜진 씨가 집에 통화한 것으로 나와 있다. 어떤 상황에서 통화가 가능했고 누구와 무슨 내용으로 통화했는가.

서명화 : 민가에서 탈레반 세 명 같이 있을 때, 그들이 우리 이름도 물어보고 우리에게 아프간식 이름도 지어주고 다른 팀보다 우호적으로 대해주었다. 핸드폰으로 장난치고 놀면서, 코리아로 전화할 거냐고 말하기에 온몸으로 간절히 원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편과 통해했다. 남편은 아직 상황이 위험하니까 조심하라고 말했고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간단히 통화했다.

동영상을 찍거나 언론과 통화할 때는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졌는가. 탈레반의 강요는 없었는지.

임현주 : 저희는 서너 번 동영상 촬영을 강제로 했다. 내가 현지어를 알기에 네다섯 번 언론과 통화했다. 탈레반은 무조건 BBC라고만 이야기했다. 인터뷰는 배 목사님이 살해된 날 저녁이 이뤄졌다. 탈레반이 멘트를 줬고, 나는 현지어로 읽었다. 아프고 매일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탈레반의 요구를 듣지 않으면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멘트를 줬다. 탈레반은 나에게 대통령, 유엔사무총장, 교황 등 특정 인물의 이름을 대며 간절하게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유정화 :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인터뷰를 했다. 핸드폰이 안 터져 핸드폰을 천장에 매달아놓았는데, 나보고 큰 소리로 외치라고 했다. 감금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이야기했다. 두 번째 인터뷰에서는 제가 아프다는 것 위주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탈레반은 그런 것은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교황 등에게 살려달라고,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는 멘트를 줘서 그대로 이야기한 게 기억난다.

"탈레반이 사준 신발로 수월하게 이동했다"

잘 대해준 탈레반 무장 세력은 없었나.

고세훈 : 매일 밤 도보로 이동하는데, 내 샌들의 끈이 끊어졌다. 한 탈레반이 즐겨 싣는 한국제품의 운동화를 사다주었다. 그나마 이동이 수월했다.

서경석 : 저는 누나(서명화 씨)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다. 저를 지키고 있던 한 탈레반에게 누나의 안부를 물었더니 쪽지를 쓰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누나와 쪽지를 주고받았다.

탈레반이 개종을 강요하며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또 박은조 목사에 따르면 여신도들에 대한 성폭행 위협이 있었다고 했는데.

제창희 : 개종 강요하면서 발로 차고 총과 나뭇가지로 때렸다. 박 목사님이 말씀하신 건에 대해서는 신문 보도에 나온 걸로 알고 있다. 그 이상은 드릴 말씀이 없다.

"석방 후 눈물도 안 날 정도로 비정상"

석방 이후 지금까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건 무엇인가.

유정화 : 풀려나 카불에서 배 목사님과 심 씨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심리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한국에 와서 언론에서 말한 이야기도 들었다. 저희에게는 정신적으로 쉴 여유가 없었고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여러 사람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 또 오랫동안 감정을 억눌려 슬픈데도 눈물이 안 난다. 감정이 정상적이지 않다.
 
아프간 등 이슬람으로 또 다시 선교하러 갈 계획인가. 박은조 목사는 지난 8월 12일 설교에서 "이번 피랍 사태는 하나님의 계시다", "3000명의 배형규가 더 나와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경식 : 박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모르겠다. 교계에서 해외선교 전반에 대해서 다시 논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교계 의견이 정리되면, 그 뜻에 따르겠다.

아프간 선교에 대한 비난 여론이 여전한데.

김경자 : 일단 많은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돌아와 보니 저희 팀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우리가 한 것처럼) 나와 안타까웠다.

이주연 씨 어머니가 피랍은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간증한 동영상을 보았는가. 이 씨 어머니가 말할 때는 이미 배 목사와 심 씨가 숨진 상태였다.

이주연 : 동영상을 보지 못해 뭐라 말씀 드리지 못하겠다.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당신들이 풀려나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몸값을 지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구상권 청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경식 : 이번 일로 국민과 정부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하고 싶다. 우리가 가족 품으로 돌아오도록 도운 모든 분들께,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한다. 죽었을 텐데 다시 산만큼 남은 삶을 국민 여러분의 사랑과 기대에 부흥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위험 경고 듣지 못했다"

팀과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유경식 : 저희들이 민소매 차림으로 돌아다녔다든지, 어디 가서 쇼핑을 했다든지, 호화 버스를 타서 표적이 되었다든지, 정부가 서면으로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다든지 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거기 가서 선교사들이 하던 일, 즉 영어와 재봉, 컴퓨터 등을 가르치고 무료로 진료했다. 아프간 의사들을 훈련시키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시오 하고 강제로 개종을 요구한 것처럼 보도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이동할 때는 가장 안전한 낮에 카불에서 칸다하르까지 고속화도로를 타고 갔다. 많은 차들이 다는 길이다. 위험한 루트로 간 것처럼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상당 부분 외국 언론에 의해 잘못된 정보가 국내에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었다. 탈레반이 총을 겨누면서 웃으며 손 흔들라고 해놓고 사진을 찍었다. 탈레반이 선전용으로 보낸 사진을 우리가 속없이 그렇게 한 것처럼 보도하고…. 힘들다.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 회장이 두 번 이상 만류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만류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양자의 주장이 대치된다.

유경식 : 지금 있는 사람 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이가 없다. 일솔 책임자인 배 목사님이 돌아가셔서…. 혹시 그분에게 어떤 이야기가 갔는지 모르겠다.

이선영 : 거듭 말하지만 돌아와서 그런 내용을 듣고 당황했다. 비자 관련해서 초청장을 발급 받을 때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공문을 받거나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 순조롭게 비자를 발급받았다. (비자 발급을 거부당한 적 있다고 들었다.) 그건 비자 문제가 아니라 초청장에 관한 일인데, 위험해서가 아니라 단체 간 이해관계 때문이다.

당당뉴스 편집실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97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4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이경선 (124.5.234.12)
2007-09-14 18:32:09
이제는
인터뷰같은거 하지말고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네요.
자신들을 위해서나 교계를 위해서나 그게 최선의 길인듯 해요.
리플달기
0 0
하늘문 (124.80.231.222)
2007-09-14 13:24:02
주님은
진실을 알기 원해요.
리플달기
0 0
! (61.84.89.146)
2007-09-14 09:26:01
주님은
With Jesus 의 마음도 보고 계십니다...
리플달기
0 0
With Jesus (202.169.217.10)
2007-09-14 09:14:37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인터뷰가 너무 조리있고 짜임새있네요.
역시 박목사님의 교인들답군요.
훈련이 잘 되어 있어요.
박목사도 보고 있지만
예수님이 보고 계십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소천하신 배목사님께 그런 식으로
말 돌리지 마세요.
리플달기
0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