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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의 "창"시 한편이 있는 하루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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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8월 18일 (목) 00:00:00 [조회수 : 4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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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 희


   
▲ 창(출처 네이버 이미지에서)
나도 면벽(面壁)하고 싶다.

무언(無言), 두 글자로 가슴에 못을 치고

서늘한 눈빛으로

벽에다 구멍 하나 내고 싶다.

그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싶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었구나.

세상에 저 많은 창(窓)들을 보아라.


공룡처럼 치솟은 아파트에도

제멋대로 달리는 저 자동차에도

창은 많이도 달려 있구나.


모두가 면벽(面壁)하며 살았었구나.

무언(無言), 두 글자로 가슴에 못을 치고

서늘한 제 눈빛으로 벽을 뚫으며

하늘을 보려고 괴로워했었구나.

창(窓)을 만들었구나.

*

*


  벗님,                                            2005.   8.   15

  오늘은 광복 60돌입니다. 토요일부터 주일지나 오늘 아침까지 근무를 하고 한낮에 들어온 아파트 창가에는 어머니께서 내거신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내걸렸는지 태극기는 깃봉을 감고 엉켜 있었습니다. 나는 엉킨 태극기를 펼쳐주고 아파트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위아래로 고개를 돌려가며 태극기가 몇 장이나 펄럭이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가족 모두가 여행 중인 빈집들만 빼고(내 아내도 아이들과 여행 중이니…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모두들 태극기를 내건 듯 합니다. 뒤창문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창가에도 2002년 월드컵 막바지 기간만은 못해도 제법 많은 태극기들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나도 면벽(面壁)하고 싶다.

무언(無言), 두 글자로 가슴에 못을 치고

서늘한 눈빛으로

벽에다 구멍 하나 내고 싶다.

그 구멍으로 하늘을 보고 싶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었구나.

세상에 저 많은 창(窓)들을 보아라.


  내가 일하는 곳은 24시간 근무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야간에는 기계실과 사무실에 각각 한명씩, 두 명이 근무를 합니다. 3일에 한번씩 야간 근무를 하는데 한명이 휴가를 가면 며칠은 나머지 두 사람이 맞교대를 합니다. 야간 근무가 어려운 것은 일이 많기 보다는 생활의 리듬이 깨져서 필요 이상의 피곤이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며칠 맞교대를 하고나면 머릿속이 몽롱하고 하얗게 텅 비어 일에 대한 의욕이 없어지고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내가 직접 일년 반을 겪어보니 적응되는 것도 어느 한계 그 이상은 안 되더군요. 내가 힘들면 직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수행하는 목사가 ‘무언(無言), 두 글자로 가슴에 못을 치고’ 직원들보다 힘든 일을 잘 참을 수 있어야(잘 할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름) 본이 되겠다 싶어 여름휴가 떠나는 직원편의를 생각해서 이틀동안 연이은 근무를 선겁니다. 산 숲에 있는 일터에서 때때로 몰려드는 고요한 정적 속에서 ‘서늘한 눈빛으로 / 벽에다 구멍 하나 내고… / 그 구멍으로 하늘을 보…’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나만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걸렸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아파트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쳐다본 태극기가 걸렸거나 또는 안 걸린 다른 아파트 창들! ‘세상에 저 많은 창(窓)들을 보아라.’ 아, 내가 쳐다 본 그 많은 창들은 더 이상 창이 아닌 시인의 간절한 눈이 되어 내 마음의 창을 열어 보려는 듯 마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공룡처럼 치솟은 아파트에도

제멋대로 달리는 저 자동차에도

창은 많이도 달려 있구나.


모두가 면벽(面壁)하며 살았었구나.

무언(無言), 두 글자로 가슴에 못을 치고

서늘한 제 눈빛으로 벽을 뚫으며

하늘을 보려고 괴로워했었구나.

창(窓)을 만들었구나.

*


  나만 사람답게 살려고 애쓴 것이 아니로군요. 모두들 사람답게 살려고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나만 면벽을 한 것이 아니로군요. 모두들 면벽을 하고 살았기에 그 벽에 너도 나도 넓은 창을 만들었습니다. 나만 외롭고 혼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모두가 외롭고 혼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만 하늘을 보고 간직하려고…, 이웃을 보고 만나려고…, 세상을 보고 문밖으로 나서려고… 언제나 창으로 눈을 돌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모두들 자기 가슴에 서린 하늘을 못 잊어 푸른 하늘을 보려고 여기저기 ‘제멋대로 달리는 저 자동차에도’ 온통 창을 내고… 나 아닌 이웃을 먼저보고 만나려고 ‘공룡처럼 치솟은 아파트에도’ 무수히 창을 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고 바로 그 세상에 나보다 먼저 참여하려고… 저마다 넓은 창을 만들어 창밖으로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공룡처럼 치솟은 아파트에도

제멋대로 달리는 저 자동차에도

창은 많이도 달려 있구나.


  시인은 예리한 눈길로 내 마음의 창을 넘어 내 속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나는 빤하게 속을 보인 아이처럼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이젠 알았어! 사실은 내가 제일 느린 거야. 그리고 언제나 내가 제일 더딘 거야. 이제 나만 일어서면 되는 거지! 이제 나만 나서서 참여하면 되는 거지! 이미 남들은 다 저기까지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뒤만 돌아다보고 언제나 이제 주님만 나서면 됩니다. 주님, 안 그렇습니까? 따지고 보면 저들 때문에 진보도 성숙도 없어요…, 에이, 그러니 말세지요… 대책도 없이 더럽고 악한 세상…이라며 점점 더 제 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못 알아보리라 생각하면서… 아아, 그러나 면벽의 창은 들여다보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면벽(面壁)하며 살았었구나.

무언(無言), 두 글자로 가슴에 못을 치고

서늘한 제 눈빛으로 벽을 뚫으며

하늘을 보려고 괴로워했었구나.

창(窓)을 만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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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칠 ()
2005-08-18 05:50:24
두드리라…… 열리리라
고행의 길을 거쳐 주님이 계신 집을 발견하고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면 안에서 무슨 응답이 들려 올지 궁금한 것이 인생의 의문점 이더군요.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나서 주님의 문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면벽(불교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아 참선하는 일) 해야 벽에 창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님의 창문은 열려 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두드리라는 주님의 말씀 같습니다.

오늘 하루는 말씀의 한 구절을 깨닫는 귀중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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