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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의 에어컨백년사위의 백년 더위 앗아가신 장모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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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8월 15일 (월) 00:00:00 [조회수 : 36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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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엔 유난히 더웠다. 봄부터 백 년만의 더위가 올 거라는 말이 돌더니 그게 낭설이라고도 했었다.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과연 백년 더위란 말이 맞았다.
오늘이 말복이어서 그런지 강릉지방은 낮 기온이 사람의 평균 체온과 같았다 한다. 날도 덥고 피서 가는 집들도 있어서 일요일 예배 모임을 일찍 끝냈다. 에어컨을 켠채 아내는 밀린 원고를 쓰고 나는 한가롭게 책을 읽었다. 아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고 딸은 수다를 떨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거실에서 화기 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양념 치킨도 주문해서 먹었다. 웃으며 지내노라니 30도를 웃도는 더위도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간밤에는 일 주일간 시원하게 잘 잤다고 쓴 글이 무색하게도 도통 잠을 못 이루었다. 물론 더위 탓만은 아니었다. 내게 시원하고 달콤한 잠을 자도록 해 준 대나무 통의 위력이 약해진 탓도 아니었다. 모임 때 입었던 티셔츠에 자극 물질이 있었던지 온 몸이 가려워서였던 것. 그것을 잠결에 모기가 깨물어서 가려운 줄로만 알았다. 작년엔 졸린 눈으로 일어나 모기채를 휘둘러야 했는데, 유난히 올해는 모기가 적었다. 집중해서 들어 보니 모기의 공습 경보 소리도 안 났던 것이다.
바람이 찰까 봐 누군가 창을 닫아 주었는지 땀이 나서 다시 창을 열고 누웠다. 뒤척거리며 돌아 누우면 잠결에 긁은 데가 까져 쓰리고 따가웠다. 북북 긁다가 아예 웃통까지 벗어 던지고 팬티 바람으로 바람을 맞았더니 그제야 가려움증이 가셨다. 그 대신 잠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창 밖에선 귀뚜라미 소리마저 잠을 방해했다. 찌륵찌륵 그 청아한 소리를 헤아리니 두 마리쯤 번갈아 바이올린 활을 문지르는 것 같았다. 바람 결도 그처럼 선들선들하고 가냘펐다. 무슨 정담을 주고받기에 밤새 똑같은 톤으로 세레나데를 반복하는 것일까? 사람으로 치면 언제나 들어도 지겹지 않을 "사랑해!~" 라는 속삭임 쯤 되는 것일까? 풀벌레 소리에 벌써 가을이 왔다는 멧시지를 체감하고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아픈 데도 걱정도 없고 천하 태평인 나같은 사람도 그 또랑또랑한 음색으로 애상에 잠기는 것이다. 먼 길에서 찻소리, 여자 아이가 보채는 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헤아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올 여름이 백년더위라 하지만 예년에 비해 더위를 덜 탓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매미 울음 소리도 확연히 줄어서 더 시원하게 느꼈다. 그 소리는 자동차 소음보다 더 시끄럽다. 새 소리나 풀벌레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좋은데 유독 매미 소리는 기계음처럼 짜증나고 덥게 느껴지게 한다. 특히 작년엔 밤새 울부짖어 미칠 것 같았다.
올해는 소나기도 때 맞게 쏟아져 달구어진 지열을 앗아가 버렸다. 게다가 8월 첫날 담양 친구가 잘라 준 대나무 통 선물도 나를 시원하게 해 준 공신임에 틀림 없다. 올해는 방학 초에 연수를 3일 미리 받아 놓아 바깥 출입이 준 것도 피서에 한몫 했다고 본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올해가 시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올초에 돌아가신 장모님 덕일 것 같다. 장모님이 쓰시던 중고 에어컨을 우리 집에 설치했기 때문에 올 같은 찜통더위에도 무척 시원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다. 다른 것들이 있었어도 에어컨이 없었다면 이 살인적인 더위를 못 견뎠을 것이다. 장모님이 일등 공신이었다. 계실 적에 잘 해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깃든다. 오늘 밤도 청아한 그 벌레 소리를 들으며 장모님의 정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사랑스런 아내와 장모님, 고맙습니다.
2005-08-15 / 02:30
[뒷글] 아내의 원고쓰기가 미진하여 보길도 여행은 다음 주로 연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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