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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신선 놀음'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나도 그런 말을 들을 만하게 일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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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8월 13일 (토) 00:00:00 [조회수 : 2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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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더위가 한창이지만 이번 주에는 반가운 친구처럼 간간이 찾아 주는 소나기 덕분에 너끈히 무더위를 이길 수 있었다. 후두두두 다다다닥.. 소나기 소리에 홀리면 밤이건 낮이건 거실로 뛰쳐 나오곤 했다. 바람에 휘누이는 유치원 뜰을 에워싼 튤립목 잎들의 몸부림을 망연히 바라보는 게 즐겁다. 볕이 날 때는 참매미나 쓰르라미들까지 무단히 우리 집 쩔은 방충망으로 헤딩하듯 날아와, 한바탕 소동을 부리곤 한다. 님을 못 만난 설움에 겨워 우는 것인지, 그 하소연을 나더러 들어 달라고 조르는 것인지 모르지만, 매미들이 날아오면 방충망을 툭툭 건드려 쫓는 일도 귀찮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나기 소리가 들려오기 무섭게 그 매미들이 요란한 합창을 멈추고 마는 것이다. 소나기가 반가운 또다른 이유이다. 온 천하가 잠시 긴장하듯 고요해지면 천지를 진동하는 빗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이따금 소나기와 더불어 찾아오는 손님이 천둥과 번개다. 깜짝 놀라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하지만 천둥소리 역시 반갑다. 그 호통 소리에 그만 심약한 가슴 쓸어내리며 겁먹은 작은 피조물로 회귀하고 만다. 겸허하게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천둥 속에서 들려 주시는 또다른 주님의 우렁차고 맑은 음성을 헤아려 본다.
후두둑 빗물이 베란다 속까지 들이치면 다른 생명체들도 부산해짐을 눈여겨볼 수 있다. 튤립목의 울창한 가지 속에 깃든 직박구리 신혼부부 한 쌍이 우리 203동 단풍나무 숲으로 차례로 넘나드는 것도 구경거리다. 내 시야에 벗어나 있지만 소나기의 갑작스런 행차에 쩔쩔 매거나 그 피해에 대비하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들이 있으랴! 청량한 그 비의 막춤을 바라보며, 후련한 그 타악을 음미하는 것이다. 무더위에 반기는 소나기 세례의 고마움을 누가 알아 줄까?
상우네 집에서 가져온 대나무 통 두 개는 나의 새로운 연인처럼 되고 말았다. 처음보다 푸른 빛이 약간 바랬지만 늘씬한 그 친구를 양 팔로 껴안고 안방과 거실을 오가며 논다. 장모님이 물려 주신 띠 돗자리를 거실에 깔고 얇은 홑이불로 덥고 느긋하게 잠을 청한다. 그 대나무 통 두 개를 시옷(ㅅ) 자 모양으로 벌려 놓고 등을 받치면 배기지도 않는다. 이것은 나만의 신기술이다. 머리는 댓살로 촘촘히 엮은 베게로 받쳐 주니 머리와 몸의 균형이 맞는다. 그렇게 하면 끈적거림이 몸에 접근할 수 없어 정말 시원하다. 등에는 돗자리의 온기가 포근하게 배어 온다. 통대 받침으로 허공에 살짝 들린 몸은 청바람이 벌거숭이 맨살을 살랑살랑 어루만져 준다. 그것이 천연 통풍구가 되니 온 몸이 시원해질 수밖에.. 몸이 시원하니 깊은 잠이 빨리 든다. 일단 잠이 들면 통대나 베게가 신경 쓸 일이 없다.
차가운 성질의 대나무 통과 놀아주는 일이 새로운 오락이 되다니. 그 걸 안거나 등에 대거나 거(擧)다리를 하거나, 그것으로 탁탁 발바닥을 두드려도 준다. 등에 가로로 놓고 레일처럼 몸을 위아래로 움직여 주면 훌륭한 안마기로도 변신한다. 오랜동안 안고 살아 온 죽부인도 있지만, 요샌 바람난 사람처럼 양 부인을 제껴 두고 지낸다. 잘 때는 그 푸른 대통이 누구보다 요긴하기 때문이다. 그걸 베고 잠을 자다 바람이 너무 세다 싶으면 창문을 닫아 주거나, 기다란 면타올로 몸을 덮고 잔다. 발 끝에 다가와 바람이 장난스럽게 들추는 기분, 바람 손길에 휘날리는 치마의 느낌도 그와 같을까? 이번 주 밤마다 이렇게 신선놀음을 즐겼다.
황금과 같은 여름 휴가를 게으르게만 보낸 게 아니다. 안방 노트북 앞에 쪼그려 앉아 몇 십년간 매달려 온 번역본 교열하는 데 집중해 온 것이다. 노트북의 비좁은 화면에 들러붙은 깨알 같이 잔 영문자와 한글체를 오랫동안 쳐다보고 일일이 다듬어 주는 지루한 일이다. 그러면 쉬 눈이 침침해지고 집중력이 분산된다. 가끔씩 드러누워 쉬다 깜박 잠이 들 때도 있다. 다시 깨어나면 냉장고를 열고 신선한 여름 과일과 차로 갈증을 달래 준다. 집사람이 부지런히 사 날라다 놓은 백도, 청사과, 참외, 냉수박, 꿀에 잰 인삼이 나의 여름철 기호 식품이다. 이따금 아내는 물미역, 오이 냉채도 만들어 주고 팥빙수도 만들어 댄다. 책임감 왕성한 아내 덕에 호강하고 사니 감사하다. 살찔까 두렵고 입도 간사해져서 요샌 밥은 한두 술 맛 보고 손을 내려놓는다.
수요일부터 두 출판사에서 각각 원고 청탁이 왔다. 요즘 원고료는 장당 3만원 미만. 방학이라 강사 일이 끊긴 아내에게 딱 맞는 일감이 주어졌다. 내가 교단을 떠나 한동안 출판사에서 일한 경력과 인맥 때문에 누리는 일복이다. 원고는 주로 아내가 쓰지만 바쁘면 나도 거든다. 두 사람이 적당히 나누어 맡아 마감 기한보다 앞서 보내 주니 출판사에서는 대환영이다.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니 오히려 일이 더 쉽다. 원고 집필 할 때는 두 사람 보조가 척척 맞는다. 입력은 딸내미에게 맡겨 용돈으로 준다. 꿩 먹고 알 먹는 짭짤한 가족 아르바이트다.
사흘간 바짝 집중해서 탈고하여 딸에게 넘겨 주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쉴 때는 이렇게 잡글을 쓴다. 허접스런 글이지만 소중한 내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목사 친구가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 기사도 이렇게 틈틈이 써 보낸다.
아내가 일요일까지 자기 맡은 분량을 마치면, 오랜만에 둘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 번에는 보길도와 소안도로 떠난다. 담양 대나무 통 두 개를 부둥켜안고 게으름도 만끽했지만 허랑하게 살지는 않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나도 그런 말을 들을 만하게 일했으니까 윤선도와 송시열, 친구 윤해남 화백의 발자취가 있는 두 섬을 대면할 자격이 없겠는가? 이참에 소안도 임야를 처분하고 싶은 아내의 기심이 엿보이지만, 난 팔지 않을 생각이다. 아니, 살 작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아버지가 생전에 활어산 타고 왕래하신 남해의 역사와 오랜 시우들을 만나러 가는 일로 설렌다. 넘실거리는 다도해 푸른 파도가 수수천년 빚고 다듬은 갯돌들의 슬픈 남도창도 감상하러 가는 길이니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오랜 세월 해풍을 막아 낸 맹선리 상록수림의 후박나무 줄기도 한껏 매만져 보련다. 게다가 소안도의 명품 전복회도 맛 볼 생각이다. 마침 기력이 떨어져 한약을 먹는 아내 때문에 고속버스나 새마을호보다 비싸지만 빠르고 편한 KTX로 다녀오기로 했다. 그 빠른 문명의 이기도 난생처음 접해 보는 것이다. 윤선도가 동남들을 시켜 춤추게 했다던 세연정의 무대도 휘휘 둘러보고, 어부사시사 가사에 맞춰 나도 달밤에 덩실 춤추어 볼런지 아느냐? 민박 주인을 잘 만나면 밤배를 타고 고기잡이도 구경해 볼 참이다. 비록 일박 이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벌써 내 마음은 남해 물결처럼 술렁거리고 있구나.
2005-08-14
이일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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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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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
여행은 아내 원고가 미진해서
한 주 미루기로 했습니다.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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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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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 잘 다녀 오이소. |
| 요새 부부 싸움은 바닷물에 낚시 던지기라~. 선물로 사진이나 많이 찍어서 올려 주시고 가는 여름의 기념으로 보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웃통을 벗은 사진도 찍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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