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살림교회 김준표 목사가 아닌 살림학사 김준표로 불러 주십시오”

지난 4월 열렸던 예장통합 제주노회 제129회 정기노회에서 목사직을 사직하고 평신도 신분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준표씨(42)는 사직 동기를 묻는 기자에게 먼저 호칭을 바꿔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제주가 고향인 김준표 목사는 지난 94년 8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4년여를 동서귀포교회에서 사역하다 2003년 여름에 살림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해 왔다.

김 목사는 작년 가을 이후로 설교하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성경말씀을 가만히 보고 있어도 설교 본문으로 잡히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본문을 억지로 잡는다고 해서 설교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설교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위로도 안됐고 또한 교인들에게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목사직을 사직한 이유는?
-내가 목사를 사직한 것은 말씀이 끊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다. 말씀이 끊어졌는데 내가 계속 말씀을 하려고 한다면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겠습니까? 어디서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지요….

사직을 결심하기 전까지 6개월여를 고민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설교를 할 수 있도록 깨닫게 해주시던지, 아예 분명히 목사 하지 말라고 얘기하십시오. 이거 되겠습니까? 라고 말이다.

지난 부활주일 설교를 준비하며 밤을 새고 있는데 하나님이 주신 본문이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장면이었다. 이 본문을 가지고 묵상하는데, 갑자기 ‘내 뜻대로 하지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라는 본문에서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있는 예수님의 ‘뜻’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예수님이 뜻을 가지고 했던 공생애 사역을 십자가를 짊으로 그 ‘뜻’을 포기하고 끝내는 순간을 부활절 설교 본문으로 택하게 된 것이 내 계획과 뜻에 대해 정리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했고 사직을 결심하게 됐다.

솔직히 얘기해서 말씀이 회복되는 동안 성경말씀만 읽고 그 말씀을 해석하는 정도로만 하겠습니다라고 교인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힘들다면 목사 사임을 하지 왜 사직을 했나?
-사임을 하는 것은 교회를 떠나는 것이며 내가 사임을 하면 살림교회를 떠난다는 의미다. 하지만 살림교회를 떠날 이유는 없다. 교인들하고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림교회를 개척한 이 상황에서 내가 힘들어서 이 임지를 떠난다고 한다면 그건 사임이겠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사임이 아니고 사직을 택한 것이고 사직을 해서 살림교회에 평신도로 남아있는 것이다.

△목사라는 자의식을 떨구기가 쉽지가 않을 텐데요?
-한번 목사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끝까지 목사라는 개념은 카톨릭의 신부 개념이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통해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나는 더 이상 목사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셨고, 쓰고 싶어서 그동안 쓰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만큼 쓰셨다는 것, 하나님이 이만큼 쓰고 다른데 쓰시겠다는 데 내가 고집할 이유가 없다.

목사로서의 자의식을 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커서 나는 목사가 될 것이라고 해왔고 학창시절 학교선생님, 친구, 동네사람들, 교회 어르신들도 내가 목사가 될 것을 당연시 했다. 중학교 때도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구역예배때 설교 해달라고 요청을 받는 등 어디서나 목사 안수 받기 전에 이미 목사였고 스스로도 목사가 될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사가 되기 전부터 뭘 봐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였고, 늘 설교가 끊이지 않고 넘쳤었다. 신학공부하면서 다듬어졌는데 지금 시점에서는 그게 멈췄다. 하나님이 30년 준비해서 10년 쓰시려고 하셨구나 생각하며 불만 가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솔직히 아직은 모르겠다. 새로운 소명을 찾게 될 텐데 우선은 목사라는 자의식과 미련을 완전히 버리면서 살림교회 주일학교인 살림학사에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고 싶을 뿐이다. <양동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