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와 종교간의 대화                                    
                                                                             한인철 연세대 교목

I. 들어가는 말

20세기 종반, 보다 정확히 말하면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예수 세미나」가 발족한 이래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가히 "예수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예수 세미나」는 미국의 신약성서학자 로버트 펑크(Robert Funk)에 의해 창설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신약성서학자 125명의 회원이 일년에 두차례 모이는 거대한 학자 모임으로, 이 세미나를 통해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괄목할만한 결과물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예수 세미나는 신약성서 연구사에 있어 전대미문의 거대한 집단 연구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그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한층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예수 세미나의 중심인물들인 로버트 펑크, 도미니크 크로산, 그리고 마커스 보그의 주요 저서들이 이미 번역되었고, 상당수의 젊은 신학자들이 예수 세미나의 신학적 흐름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본 논문은 예수 세미나의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종교간의 대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검토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아직까지는 예수 세미나 그룹에서 역사적 예수 연구 결과를 종교간의 대화 문제와 연결시켜 논문을 제시한 것도 없고, 반대로 종교간의 대화에 관심하는 학자들이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예수 연구 결과를 대화에 응용하는 논문을 제시한 적도 없지만, 이러한 연구는 시의성도 있고 타당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예수 세미나는 적어도 한가지 점에서 종교간의 대화에 관심하는 학자들에게 새로운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동안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기독교를 대변하는 대화의 중심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가 아니라 케리그마의 그리스도(kerygmatic Christ), 특별히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굳이 드러내어 강조하는 학자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묵시적인 전제였다. 이것은 아마도 1920년 대 이래 신정통주의의 영향이 계속 얼굴을 바꿔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종교간의 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역사적 예수의 새로운 추구가 가능하고, 기독교가 다시 이 역사적 예수에 기초를 두게 된다면, 그 때에 종교간의 대화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예수 세미나가 종교간의 대화에 던지는 21세기의 새로운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본 논문은 탐구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세가지 소주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첫째, 종교간의 대화와 그리스도 케리그마. 여기에서는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실체와 그것이 종교간의 대화에 미친 영향, 그리고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역사적 예수를 기피한 이유들을 살펴보겠다.

둘째, 예수 세미나와 역사적 예수. 여기에서는 예수 세미나의 입장에서 본 케리그마의 그리스도, 그 역사적 예수상, 그리고 예수의 중보자관을 검토한다.

셋째, 역사적 예수와 종교간의 대화. 여기에서는 기독교의 새로운 기초로서의 역사적 예수, 기독교의 기초를 역사적 예수에 둘 경우 종교간의 대화에 미치게 될 영향, 그리고 역사적 예수에 기초한 종교간의 대화가 종교다원주의에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다. 예측되는 결론은 역사적 예수에 기초를 둔 종교간의 대화는 종교 다원주의에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예수 세미나가 갖는 의의를 한층 고양시키게 될 것이다.

본 연구를 위해 사용될 예수 세미나의 연구물들은 로버트 펑크, 도미니크 크로산, 그리고 마커스 보그에 제한하고자 한다. 이들은 예수 세미나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그 대표적 저술들이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또한 그 내용이 역사적 예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종교간의 대화와 관련이 있는 점에서만 인용될 것이다. 이들의 연구 자체를 검토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관심의 범위를 넘어선다.

II. 종교간의 대화와 그리스도 케리그마

II-I.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형성과정

지금까지 종교간의 대화는 주로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그 기초를 두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신약성서 안에서 역사적인 예수가 유대인이 대망하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선포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러한 초대 기독교의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교회사 과정을 통해 계속 발전되어 니케아-칼케돈 회의에서 그 결정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종교간의 대화는 주로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 논문에서는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초대 기독교에 한정하지 않고 최소한 니케아-칼케돈 기독론에 이르는 발전과정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우선 물어야 할 질문은, 예수는 바울과 요한으로부터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에 이르는 일련의 그리스도 케리그마와 같은 것을 함축하거나 주장한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 특히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은 부정적이다. 종교간의 대화에 앞장 서 있는 존 힉의 목소리를 통해 그 분위기를 엿보도록 하자:

신약성서 학자들이 가장 무리없이 일치하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기독론의 발전을 이 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는 바로 역사적 예수는 신성에 대한 주장을 하지 않았고, 후대 기독교 사상이 그에 대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으로나 성자(聖子), 그리고 성육하신 분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기독교 신학이 사용해 왔던 의미로서 신적 성육 개념은 하나님 신성의 영원히 선재하는 요소, 즉 성자 혹은 신적 로고스가 인간 존재로 성육되었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적 예수가 그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생각했다는 것은 거의 가능성이 없는 추론이다. 진실로 그는 그와 같은 생각을 신성 모독으로 아마 거부했을 것이다. 그가 한 말 중의 하나는 이것이다: "왜 나를 선하다 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막. 10:18)

예수 세미나의 창설자인 로버트 펑크에 의하면, 신약성서에 있어서 역사적 예수로부터 그리스도 케리그마로의 변형은 최소한 네 단계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최초의 단계는 예수를 "다니엘서 7장에 그려진 아담의 아들, 즉 역사의 끝에 구름을 타고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인물"로 묘사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 아담의 아들은 그의 "죽음과 부활에서 아담의 아들 역할을 맡게 된 것"으로 이해되는 데, 이러한 모습은 로마서 시작 부분(롬 1:3-4)과 누가의 사도행전(행 2:36)에서 그 초기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펑크는 초기의 이 케리그마를 "고양(高揚) 그리스도론"(exaltation christology)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단계는, 예수가 가까운 장래에 메시야로서 재림할 것을 기대했던 것이 허물어짐에 따라, 예수에 관한 것들을 기억을 통해 회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된 것으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이해하되, "부활 때 하느님의 아들로 지명된 것이 아니라, 세례받을 때 지명된 것"으로 이해하는 그리스도 케리그마이다. 이것은 마가복음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막 1:10-11). 펑크는 이 케리그마를 "양자론적(養子論的) 그리스도론"(adoptionist christology)이라고 부른다.

세 번째 단계는, "예수의 메시야적 위치를 그의 출생 때 확정된 것"으로 옮겨놓는 단계이다. 이것은 1세기 말엽 마태와 누가복음서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하며, 두가지 관심사가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예수의 메시아적 위치를 더욱 믿을만한 것이 되도록 하기위해, 더욱 더 먼 과거에 이루어진 것으로 만들려는 열망"이고, 둘째는 "그의 비범한 생애와 그의 고상한 죽음을 다른 유명한 인물들과 견주어서 더욱 높이려는 관심"이다.

마지막 단계는 요한복음 서문(요 1:1-5, 14)과 빌립보서(빌 2:5-10)에 나타나는 모습으로서, 예수는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존재"하였거나 혹은 "본성에 있어서 신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펑크는 이 단계에서 "우상파괴자(예수)는 성상(그리스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신약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최종 단계로서, 예수가 메시야 혹은 하느님의 아들이 된 것을 시기적으로 가장 멀리 잡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된 그 시기의 발전과정을 보면, 제 1단계는 부활, 제 2단계는 세례, 제 3단계는 출생, 제 4단계는 태초로 점점 더 멀리 소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써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으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는 신약성서 안에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여기에서 잠시 신약성서의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으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의 사도신경을 잠시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왜냐하면 사도신경은 그 "초보적 형태가 2세기로까지 소급"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펑크의 분석에 따르면, 사도신경은 크게 세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수의 탄생과 죽음 사이의 생애 부분, 즉 그의 가르침과 삶에 대한 부분이 완전히 빠져있다.

펑크는 이것을 놓고 "사도신경은 (예수 생애의) 가운데 알맹이가 빠진 신조"라고 평한다. 둘째, 사도신경의 예수는 모든 점에서 수동적이다. 예수와 관련된 모든 사건의 주체는 하느님이지 예수 자신이 아니다. 펑크는 사도신경의 예수를 "구원자로서 하느님의 계획에 사로잡힌 인질일 따름"이라고 평한다. 끝으로, 이 신조에서는 복음서나 바울서신들에 나타나는 윤리적 차원이 사라져 버렸다고 하는 점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삶이 빠짐에 따라 그에 기초한 기독교인의 삶은 설 자리가 없다. 이에 따라 "신자들은 단지 믿기만 해야 할 뿐이지, 믿음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수정하는 것은 요구되지 않고 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정점은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은 "해결이라기 보다는 계속적인 해명을 요구하는 문제를 고전적으로 정의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은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나아갈 수 있는 마지막 한계를 보여주었고, 그 후의 기독론은, 적어도 정통주의를 표방한 기독교에 있어서는, 사실상 니케아-칼케돈 기독론에 대한 주(註)의 역사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에 나타난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예수는 하느님과 동일본질(homoousios)이라는 것(니케아 회의의 결정), 그리고 예수는 참 하느님(vere Deus)이라는 것이다(칼케돈 회의의 결정).

이로써 예수는 태초부터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였거나, 아니면 한껏 나아가봐야 태초부터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주장은 예수는 태초부터 하느님 자신이었다는 데까지 나아간 것이다. 이 때 당시에는 아직 종교간의 대화가 시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종교신학적 함의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적인 절대성을 확립하는 기본적인 초석이 되었다. 이로써, 펑크의 말처럼, "기독교의 기초는 예수의 말씀들과 행적들로 이루어져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베드로, 바울, 그리고 초기 지도자들의 고백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II-II.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변형

니케아-칼케돈에서 정점에 이른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기독교를 대변하는 대화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을 문자적으로 반복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그들에게서 니케아-칼케돈의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종교간의 대화에 걸맞게 새로운 표현을 얻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계시"라는 개념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기계시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는 것이 종교간의 대화에 관심하는 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 과정은 크게 보면 대개 세 단계의 변화과정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이것을 전통적인 대화의 유형을 따라 배타주의, 포괄주의, 그리고 다원주의와 관련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20세기 배타주의는 주로 칼 바르트에 의존한다. 바르트 자신은 종교간의 대화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의 신학에 의존하여 종교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학자는 적지 않다. 바르트에게 있어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계시"라는 개념으로 변형된다. 예수는 하느님과 동일본질이거나 하느님 자신이라는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은 하느님이 예수를 통해서 그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방식으로 재표현된 것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계시는 "하느님이 자신을 내어 줌이고(God"s self-offering) 자신을 드러냄(self-manifestation)"이며, 이러한 계시는 하나의 종교를 참된 종교가 되게 하는 표지가 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종교는 "인간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하느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시도들"로서, 그 행위 자체는 불신앙을 노출시키고 그 결과는 하느님에 대한 무지를 입증한다. 바르트는 이러한 계시와 종교의 이분법 속에서 기독교를 이해한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단 한번 계시하셨고,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는 "참된 종교"라는 것이다.

반면 하느님의 직접적인 자기계시가 없는 종교들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하느님을 알려고 하는 모든 시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직접적인 자기계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불신앙"으로 간주한다. 결국 바르트의 계시/종교의 이분법은 타종교를 거짓종교로 매도하는 신학적인 근거가 되고, 동시에 타종교인의 기독교에로의 개종을 정당화하는 기초가 된다.

포괄주의는 주로 칼 라아너의 "익명의 기독교인 이론"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대화의 유형이다. 라아너는 바르트의 계시/종교의 이분법이 불가피하게 배타주의를 산출한다는 점에 유념한다. 이를 극복하는 라아너의 기본 구상은 계시의 보편화이다. 라아너는 우선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자기계시라는 점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기계시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 속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그 가능성의 폭을 넓힌다.

다른 종교 안에서의 이러한 계시의 가능성을 라아너는 "시원적 계시"(primeval!! revelation)라고 칭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라아너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계시와 타종교 안에서의 하느님의 계시를 이름만 다른 동일한 계시로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라아너에 따르면, 동일한 계시의 가능성이 각 종교의 창시자들을 통해 "명시화되고(explicit) 개념화되고(conceptualize) 주제화(thematize)"되는 정도는 서로 다르다. 문제는 어느 종교에서 동일한 가능성으로서의 계시가 가장 완전하게 명시화되고 개념화되고 주제화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라아너는, "실질적이고도 참된, 그리고 초자연적인 계시의 역사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분,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완성"될 수 있으며, 이러한 그리스도는 사실상 "절대적인 구원자"로 불리워 마땅하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보면, 계시를 보편화한 라아너의 구상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의 계시의 절대성을 타종교와의 비교를 통해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원주의는 칼 라아너의 익명의 기독교인 이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라아너는 계시/종교의 이분법에서 계시의 보편화로 나아감으로써 배타주의를 극복하긴 했지만, 계시의 가능성이 현실화한 정도에 있어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를 완성으로 이해함으로써, 결국은 계시의 완성/미완성이라는 새로운 진화론적 이분법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원주의는 이러한 이분법 역시 기독교 중심의 제국주의적 요소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다원주의의 핵심 주장은 이것이다. 계시는 모든 종교에 가능하되, 어느 종교도 계시의 모든 것을 독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저변에는, 모든 계시는 인간의 관점에 의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모든 종교는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하느님에게 접근함으로써, 어느 한 측면에서 계시된 하느님만을 파악할 뿐이다. 이 때문에 종교들 사이에 참과 거짓, 혹은 완성과 미완성의 구분은 적절하지 않으며, 모든 계시들은 동일한 산을 오르는 서로 다른 길들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 경우 기독교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은 다른 종교와 비교하여 기독교의 절대성이나 우위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미쳐 깨닫지 못한 하느님에 대한 다른 측면들을 다른 종교들을 통해 배우고 수용하여 하느님에 대한 보다 통전적인 이해에 다다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위에서 간단히 살펴본 것처럼, 배타주의로부터 다원주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타종교를 보는 기독교의 관점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한가지 변하지 않는 것은 항상 기독교와 타종교를 하느님의 계시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끝까지 포기되지 않고 있는 그 계시란 바로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종교신학적 번역이라는 것이다.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어떠한 삶을 가르쳤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기계시에 있어 예수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는 것이 관심의 초점이다.

II-III. 종교간의 대화가 역사적 예수를 기피한 이유들

지금까지 종교간의 대화를 시도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그리스도 케리그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과 씨름할 뿐, 역사적 예수에 관심하고 그에 기초하여 대화를 진행시키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가지 각도에서 간단히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째, 1919년 칼 바르트가 로마서 제 2판을 낸 이후 지금까지의 서구 기독교계는 크게 보아 신정통주의의 영향권 속에 있고, 이 점에서 종교간의 대화에 참여하는 학자들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는 점이다. 특별히 종교간의 대화와 관련하여 신정통주의가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점은, 기독교의 기초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라는 주장이다. 신정통주의는 19세기 역사적 예수 연구를 학문적으로는 실패한 것이요, 신학적으로는 부당한 것으로 판단내렸고, 그에 따라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기독교의 기초를 두었다. 이러한 신학적 흐름을 타고 나온 종교간의 대화가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에 초점을 맞추고 이것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대화에 임했던 것은 일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종교간의 대화에 참여한 학자들은 대체로 부지불식간에 기독교의 기초를 역사적 예수에 두고 타종교와 대화하게 되면, 기독교가 상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유럽의 기독교는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포기하고 역사적 예수--도덕적으로 탁월한 모범적인 스승--에 기초하여 새로운 기독교를 확립하려 했다. 그러나 그 결과 기독교는 지금까지 정통주의를 통해 고수해온 배타적인 절대성을 포기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기독교의 배타성은 그리스도 케리그마, 혹은 그의 보다 발전된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에 기초를 둘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초 바르트를 중심한 신정통주의가 다시 그리스도 케리그마와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을 기독교의 기초로 재확립하려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상대주의의 위험으로부터 기독교를 구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III. 예수 세미나와 역사적 예수

III-I.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본 그리스도 케리그마

그렇다면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은 그리스도 케리그마, 특별히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을 어떻게 평가할까?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이라고 하여 모든 점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그리스도 케리그마와 역사적 예수와의 관계 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 일부는 역사적 예수를 그리스도 케리그마와 관련하여 이해하려 하지만, 일부는 그리스도 케리그마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려 한다. 마커스 보그와 크로산이 전자에 속한다면, 펑크는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마커스 보그는 역사적 예수가 하느님의 계시로서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에 문을 열어 둔다. "신의 현현으로서의 예수는 하나님의 "나타남" 혹은 "계시"였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서만(마치 계시가 일차적으로 정보로 이루어진 것인 양) 하나님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방식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드러냈다. 그 현현은 예수였다. 그의 메시지 뿐만 아니라 그의 "인물됨" 자체가 현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곧 예수가 자신을 하느님의 계시로 이해했거나 혹은 자신에게 덧붙여진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의도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세상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목적이나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거나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그의 메시지 또한 그를 믿으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보그의 초점은 이것이다. 역사적 예수는 자신을 하느님의 계시로 주장한 적이 없음이 분명하지만, 기독교인이 예수를 그의 가르침과 존재방식에 기초하여 하느님의 계시로 이해하는 것에 하등 잘못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그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정당화하려 했던 후기 불트만 학파의 작업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크로산도 근본적으로는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상호연관되어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역사적 예수를 결코 신앙의 그리스도로부터 분리시키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실(예수)과 해석(그리스도)의 결합이다. 그 둘은 분리되거나 혼동되어서도 안되고, 또한 각각은 매 세대마다 새롭게 발견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둘의 변증법적 구조는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크로산은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 케리그마의 관계를 사실과 해석이라는 관점에서 상호 보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반드시 서로 관련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 경우에 해석은 항상 사실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크로산은 강조한다.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우리의 현재 삶에 주는 함축적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역사적 사실들을 넘어서서, 그것의 의미들을 추구하기 위해 씨름하는 데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우회할 수가 없지요. 우리가 신앙에서 믿는 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알고 있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입니다. 예수에 대한 역사적 재구성은 우리가 예수를 어떻게 믿어야 할 지를 알려줍니다...."그리스 도"는 예수 이상이지만("Christ" is more than "Jesus"), 그렇다고 예수 이하인 것은 아니지요. 간단히 말하면, 만약 그리스도에 대한 저의 신앙이 제가 역사적 예수에 관해 알게 된 것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해석해 주지 못한다면, 저는 저 자신의 신앙을 다시 재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역사적 예수의 사실에 기초를 두고 그 궁극적인 의미를 우리에게 해석해 주는 한,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크로산의 요점이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역사적 예수의 사실에 기초를 두지 않고, 그 궁극적인 의미도 해석해주지 못한다면, 그러한 케리그마는 포기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크로산은 현존하는 기독교의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이러한 해석의 기능에 있어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펑크는 앞의 두 학자들과는 달리 그리스도 케리그마 그 자체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대부분의 예수 세미나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펑크도 예수는 자기 자신에 대해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속한 것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예수는 "분명히 자신에 관한 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했다는 것은 교만과 위선에 대한 그의 철저한 경멸과 모순될 뿐 아니라, 그의 비유들 속에 그처럼 일반적인 역할의 전도와 같은 그의 수사학적 전략들과 반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펑크는 다른 학자들과는 달리, 예수의 의도와 무관하게 예수에게 덧붙여진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예수에 대한 해석이라는 긍정적인 각도에서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예수를 종교시장에 팔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란 차원에서 부정적으로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추종자들은,메시아를 마케팅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기적을 일으킨 다른 카리스마적 인물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도 행한 것으로 만들어나감으로써 메시아를 마케팅했다. 이에 덧붙여 그들은 예수가 죽은 후에 자신들에게 나타났던 것을 포함하여 일련의 신적 현현(epiphanies)을 통해 예수의 지위와 위치를 증명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예수를 신화적인 설화의 틀 속에 넣어, 갈릴리의 현자 예수를 그리스도로 대치시켰다. 이런 모든 것은 선전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의 최종단계는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이다. 펑크는 다소 냉소적으로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을 이렇게 평가한다. "원래의 우상파괴자(iconoclast), 그 일차적 세상을 전복시키는 자는 이제 그 세상의 희망이며 일반적 기대에 속하는 성상(icon)으로 대체되었다. 그의 이차적 세계인 하느님의 나라의 매혹적인 즉각성은 이제 콘스탄틴 황제의 정치적 현실주의에 의해 대체되었다." 역사적 예수는 이 세상을 전복시키려고 한 우상파괴자인데, 니케아-칼케돈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정당화하는 성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펑크가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역사적 예수 연구에 기초하여 정당화하거나, 혹은 케리그마는 역사의 깊은 의미를 해석해준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펑크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기초를 둔 신앙이란 것 자체에 회의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 자신은 신앙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처음 신자들의 우상숭배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케리그마가 부정되는 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신앙이란 말이 성립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수에 의해 일깨워진 신앙"뿐인데, 이 경우 그 "진정한 대상은 예수가 신뢰한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예수에 관한 주장들에는 일차적인 관심이 없고, 예수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예수를 사로잡았던 진리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펑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혹은 하느님으로 높이고 신화화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예수를 격하시키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수는 그것을 요구했으며,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에게 덜 빚지는 것은 아니다.... 격하된 예수는 기독교 운동의 진정한 창시자로서 다가올 수 있게 된다. 그의 지위를 이렇게 새롭게 자리매김할 때, 그는 더 이상 이방 신비종교의 내려오고 올라가는, 죽고 다시 살아나는 주님이라는 신화 속에 간직된 신화적 성상이 아닐 수 있으며, 우리 모두와 동일 본질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 성상을 그 우상파괴자에게 되돌려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III-II.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예수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이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역사적 예수의 모습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면, 그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다행히도 이 물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긍정적이다. 마커스 보그에 따르면, 예수 세미나 학자들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점에서 일치한다. 첫째, "예수가 세계의 임박한 종말을 선포한 종말론적 예언자라는 낡은 합의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신약학계에서는 오랫동안, 특별히 19세기 역사적 예수에 관한 옛 물음 이래로 1960년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새로운 물음으로 이어지는 시기까지, 예수는 하느님 나라 선포를 통해 임박한 종말을 믿었던 것으로 이해해왔고, 이러한 이해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부동의 상수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예수 세미나에 속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최소한도 "3/5 내지는 3/4"의 학자들은 이러한 낡은 합의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종말론적 예언자로서의 예수상은 예수 자신에게 기원을 둔 것이라기 보다는 "부활절 이후 몇 십 년이 지나서 만들어진 예수 추종자들의 창작물"로 이해한다. 그리고 종말론적 예언자상의 신빙할 만한 자료로 생각되는 마가복음의 하느님 나라 가르침은 "마르코의 편집적 작업에 영향받은" 것으로 이해한다. 이들의 이러한 결론은 결국 예수의 하느님 나라를 종말론이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둘째, 예수 세미나에 속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를 교사로서, 특히 <전복적인 지혜>(subversive wisdom)의 교사로서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복적인 지혜자로서의 예수상은 지금까지의 종말론적 예언자로서의 예수상에 대한 예수 세미나의 대안이다. 예수 세미나에 속한 학자들은 예수의 다양한 지혜의 양식들, 예를 들면 잠언, 비유, 금언 및 자연에 대한 말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예수는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지혜들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지혜를 제시했다고 본다. 이들에 따르면, "예수는 세상의 안전과 검약을 추구하는 에토스, 보상과 징벌에 기초하여 구성된 현실에 대한 관념, 억압적인 위계체계, 의인과 죄인을 규정하는 범주들 등을 함축하고 있는 전통적 지혜의 밑바탕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고 "기성의 문화 속에서 안위하거나 정체성을 찾기보다는 하느님의 영(spirit) 속에서 삶을 살아가라고 청중을 향해 촉구한다.

셋째, 예수 세미나의 학자들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사회적 세계에 관한 연구가 중심 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의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서도 이러한 연구는 진행되었지만, 예수 세미나의 학자들에게 이러한 연구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은 크게 두가지 점에서 새로운 진전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새로운 정보의 습득이요, 둘째는 사회적 세계에 대한 학제적인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이 도입된 것이다. 전자는 특별히 사해문서나 나그 함마디 문서(Nag Hammadi texts)와 같이 최근 발견된 문서를 통해 예수의 사회적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요, 후자는 하나의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측면들을 연구하는 학문분야들간에 상호교제를 통해 그 세계 속에 공유된 사상을 파악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발전된 것이다. 이처럼 예수의 사회적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학제적 연구는 결국 전통 사회 속에 함축된 인습적 지혜를 예수가 어떻게 전복하고 그러한 세계에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기초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III-III. 역사적 예수와 중보자

전통적으로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가 중보자로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는가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예수는 이 점에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하나이며 유일한 중보자로서 그 위치를 차지해왔고, 이것은 배타주의의 근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역사적 예수는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예수 자신도 스스로를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종보자를 자처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예수 세미나 학자들의 대답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보그는 {미팅 지저스}에서 그의 예수 연구를 다음과 같이 종결짓고 있다. "그(예수)는 자기 자신을 세상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목적이나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거나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그의 메시지 또한 그를 믿으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것보다 그는 성령자였고, 인습타파적 현자였으며, 사회적 예언가였다. 또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청중에게 자신이 안 그 영(靈)과 전혀 새로운 관계를 열고, 자비를 중심 가치로 하는 사회 비전을 지닌 공동체를 이루도록 권한 운동의 창시자였다." 예수의 가르침과 삶을 영과의 관계속에서 이해한 보그는, 예수는 자신이 영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의 경지에 들어간 것처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그 세계로 초대한 대안적 공동체 운동의 창시자로 이해한다. 이 경우 예수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계는 신앙과 구원의 관계가 아니라, "예수와 함께 하는 여행" 혹은 "그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예수는 "기독교적인 삶의 모델"이지, 기독교인의 신앙의 대상은 아니다. 보그는 그의 또다른 책 {예수 새로 보기}에서 예수의 제자됨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예수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처럼 된다는 말이다.... 역사 인물로서의 예수의 인물됨은 그가 자기 제자들을 그리로 초대했던 바로 그 삶의 비전을 밝히고 체화한 제자됨의 모델이 되었다."

크로산은 "지중해 연안의 문화에서는 모든 관계들이 보호자/피보호자(patron/client)라는 연결고리에 의해 지배"되어 있었다는 점에 유념하면서, 예수의 중보자관을 이 각도에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사회에서는 힘이 있는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 사이에 중개인(brokers)을 매개로 보호자와 피보호자라는 상호의존체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크로산은 예수의 주변사람들도 예수에게서 이러한 상호의존체계가 형성되기를 요구했을 것이고, 그러한 흔적이 예수의 치유행위를 통해 엿보인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예수의 가족들은 예수가 나사렛의 집에 머물면서 그 곳을 중개소로 삼아 예수와 환자들 사이에 보호자/피보호자 관계를 형성하고, 가족들은 그 중개인 역할을 맡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는 이러한 관계를 원치 않았고, 그 때문에 계속적으로 자리를 이동하며 치유를 했을 것이라고 한다. 크로산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를 이해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중해 연안의 사회와 종교를 틀잡았던 보호자와 중개인, 중개인과 피보호자의 계급제도 대신에, 예수는 하느님과의 개방적이고도 직접적인 관계 속에서 살았고,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여 그렇게 살도록 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선포한 하느님 나라가 "새로운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중개인으로 단순히 해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유랑했고, 어느 곳에서도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중보자(mediator)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나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는 어떠한 중보자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선언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중보자나 중개자가 없는 하느님의 나라(brokerless Kingdom of God)를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크로산은 역사적 예수가 "중개인 없이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에로 사람들을 불렀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한, 예수를 "하느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로 주장"하는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믿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펑크도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중개자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인간과 하느님과 사이에 어떠한 중보자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가 한 인간으로서 그의 한계 안에서 동시대에 대안적 지혜를 제시한 현자로 이해된다면, 얼마든지 구원자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나사렛 예수가 구원자라면, 그 유일한 이유는 그가 모든 사람들처럼 하늘을 품고 살았지만, 유혹을 물리치고 유한한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현자(賢者)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기적적인 출생을 통해 이 세상에 도착하였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과 메시아로 알고 있었으며, 그가 죽은 뒤 며칠 후에 그것이 뒤집어질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는 나의 구원자로서 기능하기에는 자격이 없다. 나는 나의 곤경을 이해하는 구원자를 선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펑크는 예수를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 이해한 초대교회의 이해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그것은 예수의 의도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오늘의 교회에 있어서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예수는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과 즉각적으로 특별히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하느님의 영토에 대한 그의 비전에서는, 그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중개하기 위해 특정한 제자들을 위임했으리라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다. 따라서 사제직과 성직이 시작된 것은 예수의 희망에 반대되는 것이다.


IV. 역사적 예수와 종교간의 대화

IV-I. 기독교의 새로운 기초로서의 역사적 예수

예수 세미나의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를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서로 입장을 달리하지만, 지금까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에 기초를 두었던 기독교는 이제 그 기초를 새로 놓아야 하며, 그 새로운 기초는 역사적 예수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입장을 같이한다.

보그는 기독교인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제자됨에 두고, 제자됨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따라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은 스쳐 지나가는 관심사 이상이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이"되는 것이고, 그가 신중하게 받아들였던 것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기독교의 기초롤 역사적 예수에게 두었을 때에,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와 같이 된다는 것, 다시 말해 예수가 받아들였던 그러한 삶의 비전을 우리도 갖고 예수처럼 사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크로산도 기본적으로는 보그와 입장을 같이 하지만, 그는 예수의 메시지나 삶의 양식이 갖는 철저성 때문에 기독교인으로서는 현재의 자신과 예수의 메시지/삶 사이에서 창조적인 긴장을 갖고 궁극적으로는 예수의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곧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다소 긴 인용이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자:

기독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의 철저한 메시지/삶의 양식과 우리 대부분의 일상생활의 요구들 사이에서 긴장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마이클 조던의 농구경기를 보는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당신은 아마도 조던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당신은 그 사람 안에서 인간 육체와 관련한 놀라운 가능성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아마도 당신 자신을 이전보다 더욱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인간의 삶과 관련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지요. 우리가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의 요구와...반문화적 삶의 철저한 도전 사이에서 창조적 긴장을 갖고 살게 됩니다."

펑크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보다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앙의 기원을 그 처음 신자들에게까지만 거슬러 올라가는 신앙에 대해 근본적으로 불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진정한 신앙, 근본적 신앙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사렛 예수에게까지 직접 연관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독교는 예수의 상상력과 그의 비전에 다시 닻을 내릴 필요가 있다." "처음 신자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깨끗한 신학적 접시를 가지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즉 예수의 비유들과 경구들, 우화 같은 행동들과 행적들만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신앙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에서 언급되는 새로운 신앙이란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대한 신뢰와 따름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펑크는 "예수를 재발견하고 해방시키는 것은 기독교의 새로운 탄생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IV-II. 역사적 예수와 종교간의 대화

기독교의 기초를 역사적 예수에게 둔다면, 종교간의 대화에는 어떠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종교간의 대화는 케리그마에 기초를 둔 종교들간의 대화로 일관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히 기독교의 경우, 케리그마는 기독교의 불변하는 상수인 양 작용해 왔다. 다행히 케리그마가 그 창시자의 가르침과 삶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주고 있다면 모르지만, 펑크의 주장처럼, 만약 그 케리그마들이 창시자의 그것들에 역행하여 창시자의 의도를 왜곡시키고 있다면, 케리그마에 근거를 둔 종교간의 대화는 재고되지 않으면 안된다. 한발 물러서서 케리그마가 동시대의 선교적 필요에 따라 역사적 예수를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역사적 예수로부터 니케아-칼케돈의 기독론에 이르는 초대교회의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그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특별히 인간인 예수를 하느님인 그리스도로 높이는 전체 과정은 예수와 보통 인간들 사이에 결코 뛰어 넘을 수 없는 질적 차이를 설정함으로써, 예수를 믿을 수는 있어도 예수가 살았던 것과 같은 삶을 따라 살 수는 없는 그러한 관계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그리스도 케리그마는 역사적 예수의 궁극적인 의미를--크로산이 주장하듯이--해석했다기 보다는 역사적 예수의 의도에 역행하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필자는 이러한 점에서 케리그마 중심적인 지금까지의 종교간의 대화는 근본적으로 재고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독교가 역사적 예수에 새롭게 기초를 둔다면,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대화의 새로운 주역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대답은 분명하다.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 기독교의 주역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타종교의 상대역도 그 종교의 역사적인 창시자가 되어야 마땅하다.

 예를 들면, 불교와의 대화는 그리스도 케리그마와 붇다 케리그마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석가모니와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가 전통적인 인습적 지혜를 전복시키고 하느님 나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적 지혜를 제시한 스승이었다면, 역사적인 석가모니는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살았던 인물인가를 묻고 비교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와 붇다}(1997)라는 책에서의 마커스 보그의 시도가--예수 세미나의 학자로서는 종교간의 대화에 나선 최초의 시도라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더라도--종교간의 대화의 새로운 방식으로 적합한가 하는 점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는 이 책에서 정경에 나타난 예수와 붇다의 가르침과 삶을 역사적인 검증과정없이 단순 대조하여 비교하고 있다. 필자의 물음은 그가 대조시켜 놓은 그 가르침들과 그 삶의 방식들이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석가모니에 속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보그는, 앞서 밝힌 것처럼, 역사적 예수와 케리그마의 그리스도를 상호연관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와 케리그마가 혼재해 있는 경전들 사이의 대조적인 비교가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기독교의 기초는 역사적 예수에게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학자들과 입장을 같이 하고 있는 한, 이러한 비교는 그의 전제와 일관성을 유지한 종교간의 대화라고 보기가 어렵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역사적 예수에 기초를 둔 종교간의 대화는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행위 등에 나타난 예수의 "삶의 비전" 혹은 "삶의 길"과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의 가르침과 삶에 나타난 그들의 비전 혹은 길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본다. 말하자면, 각 종교의 창시자들을 통해 제시된 "참 사람됨의 길들"이 대화의 우선하는 관심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대화의 과정에서 미리 어떤 종교철학적인 전제를 가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빠지기 쉬운 전제가 각 창시자들의 비젼과 길들은 그 표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있어서는 동일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유혹을 필자는 보그의 {예수와 붇다} 안에서 발견하게 된다. 보그는 그의 책에서 예수와 붇다의 가르침과 행위들을 보게 되면 그 "종교경험의 공통성"을 발견하게 되는 데, 그것은 곧 "삶을 변혁시키는 거룩의 경험"이라고 했다. 나의 관심은 이것이 옳은 판단이냐 하는 데에 있지 않다. 가정하여 이것이 옳은 결론이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제기되어야 할 문제는, 종교간의 대화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결국 모든 종교는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화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예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참 사람됨의 길이 다른 종교에서도 확인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예수의 길은 보편적으로 옳은 길이라는 것을 확증하는 것인가? 이것이 궁극적 목적이라면, 그것 또한 제국주의의 또다른 가면이 되지는 않을지 의심스럽다. 불행하게도 필자는 보그의 책에서 예수의 길과 붇다의 길이 어떻게 다르며--표현의 차이 이상으로--, 그 차이가 두 창시자 사이의 대화에 어떻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만약 대화의 목적이 다른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성숙시키는 과정이라면, 종교간의 대화는 동일성보다는 차이에 보다 우선하는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IV-III. 역사적 예수와 종교다원주의

기독교의 기초를 역사적 예수에게 둘 경우, 종교간의 대화는 각 종교의 역사적 창시자들의 삶의 비젼과 길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면, 이러한 대화는 어떠한 유형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배타주의에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면 포괄주의로 가게 되는가? 아니면 다원주의에로 발전될 수밖에 없는가? 필자의 결론은 다원주의에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우선 예수 세미나의 학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보그는 여전히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 케리그마를 상호연관시킨 기독교 전통을 염두에 두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독교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든지, 성서가 하느님의 계시된 의지라든지, 혹은 예수는 하느님의 유일한 아들이었다고 믿지 않는다."

크로산은 좀 더 적극적이다. 신앙은 그 자체의 성격상 절대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것은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다원주의의 수용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다소 길지만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사랑과 마찬가지로, 신앙도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이고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경험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알아야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신앙을 우 리와 똑같이 유일무이하고 절대적이고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경험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모든 종교는 그 신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일무이한 것으로 경험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다른 종교인들이 이와 같은 유일무이성을 경험한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종교들은 공개적인 대화 속에서 자신을 다른 종교와 비교할 수도 있고 비교해야만 하겠지만, 어느 종교도 거룩한 것, 신성한 것, 혹은 신적인 것에 대한 독점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실로 이러한 독점적 주장 속에 종족살해의 충동이 배태되어 있는 것이지요. 즉 나만이 홀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죽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이 죽는 하나의 방식은 내가, 우리가, 혹은 우리의 하느님이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다음 천년시대를 위한 도전은 자기 자신의 신앙을 온전한 정체성을 가지고 지키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파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회의적인 펑크의 생각은 보다 적극적이다. 역시 긴 인용이지만,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 그대로 옮겨본다:

기독교 시대가 끝나는 것과 더불어 기독교적 서구 세계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도 끝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지구촌에 살고 있다. 지구촌에서는 기독교 유산이나 유태교 유산을 갖고 있는 우리들은 다른 고대의 강력한 종교 전통의 신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기술적 우월성--이것도 급속히 시들고 있다--을 문화적 우월성과 동등하게 간주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의 주장들은 사상의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만 한다. 우리는 예수가 부처나, 노자, 공자, 간디,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인물들과 겨루도록 해야만 한다. 기독교 시대, 즉 선교라는 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서구적 관점으로 개종시키 는 것을 뜻했던 기독교 시대가 끝나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이슬람과 기타 근본주의자들이 통일적 체제를 회복시키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영구적으로 다원주의적인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특별히 펑크의 경우는 각 종교의 창시자들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져, 그들이 제시하는 참 사람됨의 길 중 어느 것이 과연 이 시대에 보다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는지 경쟁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필자는 역사적 예수에 기초를 둔 종교간의 대화는 다원주의에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한가지 점을 추가해서 언급해두고 싶다. 역사적 예수의 길은 다른 종교의 창시자의 길과 다르고, 이러한 차이는 비교하여 진위를 말하거나 우열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서로 다른 길들 사이에 대화를 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대화의 목적이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종교간의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호보완을 통한 상호성숙에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역사적 예수가 제시한 삶의 비전이 그의 사회적 세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난 것이라면, 그 비전은 시공간적 제약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말은 역사적 예수의 삶의 비전이라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을 전혀 달리하는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는 데에는 유일하게 배타적으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아마도 예수의 삶의 비젼은 오늘의 삶을 사는 기독교인에게 다른 어떤 비전보다 중요하게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이 우리의 길을 전적으로 결정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의 길과 예수의 길을 비교하여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의 길을--물론 부분적인 것일 수밖에 없겠지만--배우고 수용하여 예수의 비젼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완하고 더욱 성숙시킨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예수의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면, 이러한 제안은 부담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길이 하나의 길이라면--혹은 그렇게 믿는다면--, 다른 길을 통한 보완과 성숙의 과정은 앞으로 다원주의가 마땅히 지향해 나아가야 지향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V. 나가는 말

오늘의 한국 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한가지를 지적하라면, 그것은 삶의 결핍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부정 부패 비리 사건에는 상당수의 기독교인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 선교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교회에서는 신앙의 열정이 넘쳐나는 기독교인들이 사회에서는 상식선조차 미치지 못하는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기독교인을 보는 비기독교인들, 특히 타종교인들의 시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의 기초를 그리스도 케리그마에 두지 말고 역사적 예수, 보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의 가르침과 삶에 기초를 둔 예수의 삶의 비전에 두자는 예수 세미나 학자들의 제언은 매우 고무적이다. 펑크의 말처럼, 그것은 "새로운 종교개혁"이 될 수 있고, "16세기의 종교개혁만큼 큰 규모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 영향력은 그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제언은 기독교인의 자기정체성에 있어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가 성육신, 하느님의 아들, 혹은 하느님 자신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었다면, 그래서 죄를 유전처럼 타고난 우리는 예수처럼 살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면,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말하는 기독교인됨은 예수가 살았던 삶을 우리도 살아냄으로써 예수처럼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삶과 그의 비전에 기초한 기독교인의 삶의 회복과 확립, 그것은 예수 세미나가 한국 기독교의 구원을 위해 보내온 청신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새로운 기독교적 토대 위에서 종교간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 타종교의 창시자들이 제시하는 또다른 삶의 비전과 만나서 그들의 비전을 배우고 수용하여 기독교인의 삶을 더욱 성숙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종교간의 대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처입은 유대인의 구원이 뜻하지 않은 사마리아인의 손길을 통해 오듯이, 오늘날 상처입은 한국 기독교의 구원은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의 손길을 통해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배타주의나 포괄주의적 입장에만 안주해온 기독교의 입장에서 이러한 가능성은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이제 새천년 시대를 맞이한 기독교는 이러한 전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도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종교간의 대화를 통한 기독교인의 삶의 성숙, 그것은 21세기 기독교 선교의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관문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