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인가?

위의 구절을 보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예외없이 ‘그리스도의 고난만으로는 좀 부족하단 뜻이냐?’이다. 그럴 경우 제기되는 신학적인 문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만 갖고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 불충분했다는 것인갗로 모아지게 된다.

유일회적으로 단번에 끝나버린 구속사역(롬6:10; 히7:27; 히10:10; 벧전3:18)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단 한 번의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구원사역을 이루셨다는 것이 신학적인 결론이므로 이같은 그리스도의 구속신학의 완전성을 이 구절로 뒤집을 수는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표현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가 과연 ‘모자라는, 불충분한, 불완전한, 보충이 필요한’ 등의 뜻을 갖고 사용되므로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보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겠는지를 신학적인 맥락속에서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면 골1:24의 구절이 표면적으로 명백하게 진술하고 있는 “불충분, 불완전, 미완성”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속격(소유격)해석의 다양한 경우의 예

(1)가장 일반적인 속격의 통상적인 뜻은 보통 종속적인 의미에서 여격적으로(영어의 간접목적어) 처리되어 “~의”는 ‘~에(게) 속한’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친구의 그림”이라는 속격은 ‘친구에게 속해 있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2)하지만 이를 주격적으로 해석하면 ‘친구의 그림’은 ‘친구가 갖고 있는(소유하고) 그림’이라는 의미가 되어 남에게 잠시 빌려다가 진열해 놓은 그림도 ‘친구의 그림’ 중에 포함될 수 있는 여지가 있게 된다.

(3)그런데 이 ‘친구의 그림’이라는 속격을 대격적으로(영어의 직접목적어)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친구의 그림’이란 표현은 ‘친구에 대한 그림(친구를 이런 모습 저런 모습으로 다양하게 표현한 그림)’ 혹은 ‘친구를 위한 그림(친구에게 줄 선물)’ 아니면 ‘친구로 말미암은 그림(친구로 인해 그려지게 된 그림)’ ‘친구 때문에 그린 그림(친구의 동기부여로 인해 만들어진 그림)’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체문장안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속격

이래서 속격에 대한 이해는 그 속격구문이 들어 있는 전체 문장안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선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속격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에 대한 문법적, 구문론적인 해석보다는 [신학의 맥]속에서 화자나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해석학적인 방법으로 그 의미를 들여다 보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에, 문법적인 틀을 벗어난 번역을 할 수 있으므로 이런 경우의 해석을 “의역”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똑같은 “~의”라는 문법적 속격일지라도 문장의 흐름에 따라 전체적인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저자의 사상의 맥속에서 적절하게 해석, 번역되도록 해야 한다.

참고로 마틴루터역 독일어 성경 골1:24는 ‘그리스도의’ 라는 속격구문을 쓰지 않았다.

마틴루터역:  was noch mangelt an Truebsalen [in] Christo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고난에(있어서) 아직 부족한 것 (하지만 “in”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는 속격의 뜻을 갖는 “~의”로 번역해야 문장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관한 문법적 이해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표현을 문법적, 구문론적으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1)통상적인 소유격으로서의 여격적 종속개념: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남은 고난

(2)주격적 개념으로서의 해석: 그리스도가 남겨놓은 나머지로서의 남은 고난

(3)대격적 개념으로서의 해석: 그리스도를 위해 남은 고난(목적), 그리스도에 대해 남은 고난(지향), 그리스도로 인해 남은 고난(원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남은 고난(유래), 그리스도 때문에 남아 있는 고난(이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문법적으로가 아니라 신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

그러면, 골1:24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속격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이 속격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는 문법적으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나 구원사역을 위한 고난당하심에 관한 표현을 이런 식으로 나타낸 곳은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 여기뿐이므로 다른 표현들과 어울리게 번역을 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격을 처리하는 번역의 문제보다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문제를 말하는 이 특수한 속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신학적 해석이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대한 신학적 전제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이라는 말이 사용된 골 1:24의 속격은 구원사역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이 불충분하다거나 모자라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구원사역이 완전해지거나 완성되려면 보충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학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은 유일회적으로 완전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주격적 개념으로서의 이해

따라서 위에서 이해한 주격적 개념으로서의 해석은 당연히 포기된다. 그리스도가 감당하다가 미처 다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잔여분 고난을 대신 채워나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격적 종속개념으로서의 이해

그러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통상적인 여겨적 종속개념으로 보면 어떨까? ‘친구의 그림’을 ‘친구에게 속해 있는 그림’이란 의미로 볼 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는 남은 고난’으로 이해되어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속해 있는 고난 하나 제대로 다 통어하지 못해서 남아 있게 된 그 고난을 다른 사람이 보충하거나 채워야 한다는 이미지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면 단 번에 구원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막강 구원능력에 배치된다. 따라서, 통상적인 여겨적 개념으로서의 소유격 이해도 적절하지 못하다.

대격적 개념으로서의 이해

그렇다면, 대격적으로 해석해야한다는 마지막 관문이 남는데 대격적 해석 중 목적의 의미를 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4절 전체의 흐름이 “~위하여”라는 목적을 지향하고 있으며 고난이라는 어휘가 ‘너희를 위하여’ 와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라는 말에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속격도 이에 맞춰 ‘~위하여’라는 목적의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면 이 속격이 포함되어 있는 문장은 이렇게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이후 재림때까지 계속될 (교회시대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로 계속 이어받아 채워가노라”

‘남은 고난’의 의미-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고난이라는 뜻

이렇게 될 때 ‘남은 고난’이란 ‘모자라는, 불충분한, 불완전한, 미완성의’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 재림하실 때까지의 교회가 존속되는 기간 동안에 ‘여전히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고난’ 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 영광의 그 날까지 교회시대에 계속되는 여전한 고난을 계속 이어 받으므로 그리스도처럼 고난감당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교회시대를 살아가는 중에 그리스도께서 당하셨던 육신의 그 고난을 자신의 육신에도 하루하루 채워나간다는 고난감당의 적극적인 의지표명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구원사역을 이루셨으나 고난을 끝장낸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는 속격문장의 의미를 대격적 목적으로 이해하여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이후 재림의 날까지 계속되는 교회시대의 고난을 그리스도처럼 나도 감당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신학적인 맥락에서 볼 때에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고난당하심으로 구원사역을 이루신 것이지 구원사역을 통해 온갖 고난을 끝장내신 것은 아니므로 고난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고난을 채운다’의 뜻 -고난의 연속성, 고난당함의 연대성

이렇게 이해할 때 그리스도가 당하셨던 고난을 계속 이어받아 감당한다는 고난의 연속성,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여정을 같이 간다는 고난감당의 연대성을 나타내는 신앙적 일체감을 표현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다. 행9:4(22:7; 26:14)에 의하면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을 때 그것은 곧 그리스도 자신을 박해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기서 고난의 연속성, 고난감당의 연대성을 보게 되는데 이런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채운다’를 보게 되면 ‘감당못하고 남긴 나머지를 보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에 계속되는 교회시대의 고난을 세상 끝날까지 몸으로 잘 감당하겠다’는 고난당함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표명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고난의 연속성및 연대성의 증거

이런 의지표명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은 모자라지 않는다면서(고후1:5~6) 자신은 그 고난에 참여한다고 자신의 고난당함을 해석(빌3:10)한 것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고난의 신학은 벧전4:13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로 이어져 벧전 5:1에서는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고 하여 고난의 열매는 영광이라고 말하므로(고후4:10, 14참조) 그리스도의 모자라는 고난을 보충시켜 메꿔나간다는 이미지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그리스도처럼 나도 내 몸으로...

따라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의 뜻은 그리스도의 고난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그 부족부분을 보충해 나간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부활 이후 재림의 날까지 교회시대에 여전히 계속이어지는 고난을 그리스도처럼 몸으로 감당하므로서 영광의 날이 되어야 끝장나게 될 고난에의 참여,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고난의 여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