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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8월 08일 (월) 00:00:00 [조회수 : 3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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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으로 가 주세요.”
영이는 과외미팅을 할 때에는 꼭 택시를 타고 뒷좌석에 파 묻혀 마음의 정리를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평소에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외국인만 만났지만 오늘 상대는 영이와 같은 혈통과 젊은이라는 사실에 긴장이 되어 더 깊숙이 등을 대었다. 이 사장이 영이에게 제시한 엄청난 보너스와 신신당부를 하는 것으로 보아서 큰 돈이 굴러올 기회인 것 같았으나 돈에는 별로 큰 관심이 없었으며 다만 기회를 준 사부를 실망 시키고 싶지 않았으며 나의 형제들과 잠시나마 같은 환경 속에 살아간다는 마음 뿐이었다.
호텔의 입구부터 방문객을 환영하는 사람을 세우는 모습은 창녀촌의 휘파리 아줌마 같았고, 접수대가 있는 홀을 넓고 호화롭게 장식한 것은 잠자는 문제를 넘어선 다용도의 공간을 가진 장소임을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으나 호텔의 근본은 잠을 자는 곳이다.
평소에는 옥상의 라운지로 가는 척 하면서 호텔 객실로 바로 가지만 오늘은 젊은이들이니 호텔 레스토랑부터 시작하자는 영이의 최초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이 조금의 위안을 주었지만, 영이는 호텔 레스토랑이 처음이었기에 약간 두려웠으나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레스토랑의 문을 열자 곡이 피아노 연주로 천천히 들리기에 뛰는 가슴을 진정 시킬 수가 있었다.
하얀 피아노 앞에서 젊은 여인이 느리게 연주하는 이 곡은 사학과 신입생 환영회 때, 단짝인 희조가 역경을 이겨낸 이스라엘 민족처럼 한국의 역사에서 여인들의 역경사를 추적하겠다는 명발언을 하며 애창을 한 노래이기에 영이에게도 친숙한 곡이었다.
실내에는 나이 든 분들과 외국인 그리고 가족끼리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고 조용하고 격이 높은 그들만의 분위기인지라 영이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익숙한 듯한 표정으로 실내를 둘러 보았는데, 사부에게서 파트너의 이름과 인상은 들었으나 장발이 유행인 시대에 짧은 머리를 찾기는 쉬울 것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어 상세히 묻지를 않았다. 피아노 근처에서 천천히 실내를 살펴 보니 창 가의 중앙에 스포츠 머리를 하고 옅은 회색의 목T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잡지를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이다.
“저~, 실례지만 박 태철씨 맞는지요?
“….”
상대는 대답은 않고 고개를 들고선 영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다.
“저~, 추 비서께서…..”
“아! 미안합니다. 어디서 본적이 있는 얼굴인 듯하여 잠시 깜빡 했었나 봅니다.”
숫총각은 급히 일어나서 영이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면서 앞 자리를 가리킨다. 영이는 자신을 어디서 보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나 태연하게 겨울코트를 벗어 핸드백과 함께 옆 의자에 놓고 자리에 앉았다. 입구에 외국식의 옷 보관소가 있었으나 이것이 영이에게는 편한 것이다. 영이가 앉자 서 있던 숫총각도 의자에 앉았는데 그의 옆 의자에도 속에 엷은 노란색 털로 장식된 짙은 밤색의 쎄무잠바가 놓여 있었다.
“박 태철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고경혜 입니다. 이 책, 어떤 종류의 책이예요?”
짧은 인사가 끝내기 무섭게 테이블 위에 놓여진 잡지를 들먹인 것은 먼저 공격하라는 사부의 주문대로 서버권을 영이가 먼저 가지려는 계획된 시도였다.
“샘터라는 잡지인데 오다가 길에서 샀어요. 경혜씨도 자주 보나요?”
태철은 영이의 가명을 기억하였고 표지의 글자를 가리키며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며 질문까지 하는 것은 영이의 서버를 가볍게 받아 넘긴 셈이다.
“가끔씩 보는 편이예요.”
탁구공에 변화를 줄 필요도 없어 영이도 가볍게 넘긴 것은 처음부터 강한 공격은 숫총각이 겁을 먹을 수가 있고 기술을 넣으면 숫총각이 경계를 하여 긴장이 될 것이라는 자체 판단이었다.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트가 주문을 받기 위해 메모지를 들고 서 있다. 서양음식은 손님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까다로운 부분까지 다 적어 주방으로 전달하는 것이 번거럽게 느껴졌으나 식대로 따라가는 것이 초보자의 미덕이다.
영이는 태철이 건네 준 메뉴를 흩어보면서 간단하게 ‘돈가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자리를 위해 본바닥에서 시식을 해 본 희조와 동대문 시장의 싸구려 경양식 집에서 3차례나 연습을 했던 것이다. 마요네즈 야채수프, 생오징어 사라다, 부드러운 빵, 레몬을 가미한 약간 익힌 함박스테이크 그리고 토마토주스를 주문했다. 돈가스가 먹고 싶었지만 메뉴에는 그런 이름이 없었으며 여자는 함박스테이크를 시키는 것이 예의라는 희조의 말을 따르기로 했는데 태철은 잘 익힌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하는 것이다.
대학가의 다방미팅에서 2차로 중국집으로 가서 우동을 주문하면 상대가 마음에 든다는 표시이고 짜장면을 주문하면 불만의 표시나 짜장면 곱빼기를 주문하면 통행금지를 넘겨 급속도로 일이 진행된다는 희조의 우스개 소리가 머리를 스친다.
수프부터 나오자 영이는 배운 대로 반대로 노를 저으며 조심스럽게 먹었으며 함박을 대감님 모시듯이 정성을 다해 나이프와 포커를 움직였는데 반해 태철은 발레리나의 발끝처럼 잽싸게 움직여 수프를 비우고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멋지게 썰더니 포커로만 굶은 사람처럼 잘 먹는 것이다. 태철의 포커와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다루는 솜씨처럼 여자를 다루었으면 자신과의 오늘이 미팅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우습기도 하였다.
“맥주 한 잔 하시겠어요?”
자신의 스테이크는 벌써 다 먹고 영이가 음식을 남겨주지는 않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태철이 식사를 마친 영이에게 하는 말이다. 이제 식사를 통해 몇 번의 연습용 주고받기도 끝났으니 백핸드로 스핀을 잔뜩 걸어 실전으로 기를 죽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제가 나가서 한잔 사도 될까요?”
태철은 눈을 크게 뜨면서도 대답대신 동의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떡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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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외국과 개방된 시절이라 문화의 차이에 곤혹을 겪어야 하지만 30년 전에는 문화수준의 차이에 곤혹을 겪어야 했다. 서울과 부산의 문화 수준이 엄청난 차이가 났는데 서울과 시골은 하늘과 땅 차이의 시절이었다. 지역감정은 정치의 소산물이 아니라 문화수준의 소산물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나는 164 cm 가드, 친구는 180 cm 센터. 내가 6개월 농구 고참이니 꺽다리는 짱다리의 밥이었다. 그러나 짱다리는 꺽다리에게서 99원짜리 돈가스를 대접을 받음으로 기가 죽었다. 포크와 나이프, 노 젖는 법… 짱다리는 피난 온 집안이라 외국에 유학을 간 사람이 없었는데 꺽다리 삼촌은 MIT 공대 교수인 것이다. 어메~ 기죽어. 그러나 문화의 차이도 같은 구멍에 협력하여 공을 넣으면 좁혀 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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