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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문제 있는 교회에 과연 십일조를 바쳐야 하는가?[어느 평신도의 외침-30] 교회는 재정을 왜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는가?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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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5월 03일 (목) 00:00:00 [조회수 : 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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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이민교회의 실상을 다루는 복음과 희망( http://www.gospel-hope.org )에 "이민성도" 라는필명으로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장로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당당뉴스 운영자)

[본문은 상당히 긴 내용이며 끝까지 읽으셔야 바르게 이해가 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내를 가지시고 끝까지 읽으셔서 십일조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시기를 바랍니다-필자-]

십일조의 고민

최근 한국교회와 이민교회 내에서 "십일조헌금" 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교회에 재정문제, 즉 불투명한 재정관리와 운용과 사용처가 투명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일부 직분자들과 교인들이 불의에 대한 항의적인 차원으로 소속 교회에 "십일조" 를 내지 않고, 재정문제가 투명하게 될 때까지 홀딩하거나 또는 "십일조" 를 어려운 개척교회 또는 선교기관으로 보내는 일들이 벌어진다.

분쟁하는 교회를 목회하는 목회자로서는 재정의 반 이상을 차지 하는 십일조를 교인들이 내지 않으면 당장에 융자금 반제 또는 교회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십일조" 를 내지 않는 직분자들을 치리하거나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 이라고 설교한다. 그리고 물질축복을 받고 사업이 잘되고 자식이 잘되기 위해서 반드시 “십일조를 해야 한다” 라는 것을 전매특허처럼 말하게 된다.

한편,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카리스마적인 독재형 목회자와 맹신하는 당회원들이 기득권이나 특권을 가진 세력화이 되어 교회재산을 비밀주의로 마음대로 주물럭거리거나 심지어 세습하고 사유화하는 상황" 속에서 "내가 바친 십일조를 가지고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에 사용하지 않고 기득권세력의 사유화" 를 용납할 수 없다고 여겨서 십일조를 홀딩하거나 물질이 필요한 선교기관 또는 개척교회에 보내는 일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선교100년동안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을 배운 목회자이든 순복음과 같은 체험중심의 신비주의사상을 가진 목회자이든, 사회구원을 강조하는 리버럴신학노선을 취하는 목회자이든, 여하튼 무조건 내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신학적인 노선과 전혀 관계없이 하나같이 근본주의적인 사고로 무장되어 “철저한 십일조와 헌물생활과 주일성수” 를 강조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돈문제 만큼은 일치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십일조 논쟁은 유치한 논쟁이다

한국교회, 즉 한국교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최근에 일고 있는 "십일조를 할 것이냐 하지 말 것이냐?” 의 논쟁 자체가 실천적인 면에서 굉장히 유치한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지난 선교 1세기 동안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대단한 헌금생활을 해왔다. 지금 왠만한 규모의 교회에서 바치는 헌금항목을 열거해보면 놀랄 정도이다.

십일조헌금을 시작하여, 주일(정)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 절기헌금(성탄절,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각종 항목의 특별헌금(추계, 춘계 부흥회), 장학, 교육헌금, 구역헌금, 감사헌금(심방, 생일, 취직, 입학, 졸업, 입사, 이사, 회사설립…) , 그리고 각교회 선교회의 회비 등 각종 항목의 헌금들을 하고 있다.

교회내 장로나 권사나 안수집사가 되려고 한다면 적어도 이 정도는 충실하게 하는 것이 하나의 상식으로 되어 있다. 계산해보면 대부분의 직분자들이 십일조, 십이조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교인들의 열심있는 헌금생활로 인하여 세계 20대 대형교회들 안에 15개의 한국대형교회들이 들어가 있고, 수십억, 수백억의 건축비가 들었던 초대형 예배당 건물들이 전국 도처에 세워져 있다. 또한 이민교회도 3천만달러짜리의 예배당 건물이나 비전센터가 세워지는 시대가 되어 있다.

이제 돈 없이 교회를 다니기 힘들다는 서민들의 말이 나올 정도이며, 돈없이는 아예 교회내 직분자로 세움 받을 꿈도 꾸지 말라는 물질 중심의 분위기가 교회내에 팽배해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교회에서는 장로, 권사, 안수집사라는 직분자로 세워지면서 최소한 수백만원 이상의 특별감사헌금을 하여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있다.

이민교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교회들에서 조금 성실하게 교회생활을 하는 성도들의 헌금내역을 계산해 보면 소득의 십일조 정도가 아니고 십의 이조와 십의 삼조와 심지어는 소득의 반이상을 교회에 바치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왜 십일조 논쟁이 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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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렇게 헌금을 잘하기로 소문이 나 있고, 폭발적인 부흥을 거듭해 왔던 한국교회의 상황에 있어서 성도가 하여야 할 최소한의 의무에 불과한 "십일조논쟁" 이 지금 불거져 나오고 있는가?

교회가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십일조논쟁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십일조논쟁” 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교회에 돈이 넘치기 때문에 파생된 급성 부작용이며, 한마디로 만성적인 질병형태의 부산물로 불거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 바치는 십일조라는 헌금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비롯한 각종 헌금을 관리하는 시스템과 관리자들과 헌금의 사용처와 사용자들" 에 관련된 심각한 문제점으로 인하여 “성경적인 십일조제도” 자체가 유탄(?) 을 맞고 있는 것이다.

수천명의 교인들이 모이는 상황에서 교회건물을 신축하지 않은채, 매년 거두어진 수십억의 십일조 전액을 선교비로 사용하고 있는 전주안디옥교회는 잘 알려져 있다. 담임목사와 직분자들의 청빈하고 헌신적인 삶과 인격, 그리고 오직 영혼구원에 집중하는 십일조의 사용이라는 것을 아는 성령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아낌없이 교회에 바치고, 십의 이조와 십의 삼조도 마다하고 바치게 된다,

그런데 한국교회나 이민교회의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중대형교회들은 실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고 구제하는데 드는 비용은 전체 예산의 10%도 사용치 않고 있다.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한 투자도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예산이 100만달러가 넘는 교회에서 1.5세와 2세들을 위한 한글학교와 도서관과 나눔카페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차세대를 위한 교회라고 입으로만 나팔불고 선전하는 양심불량의 목회자들이 있는 교회들이 한 두 곳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십일조는 율법이 주어지기 전인 아브라함의 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이며, 십일조 속에는 대단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다. 히브리서를 보게 되면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교회재정충당용으로 바치는 것이 아닌 주 예수그리스도께 나를 드리는 헌신으로 표현할 정도로 깊은 영적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논쟁의 가치나 의미가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단순히 그 십일조가 각 교회의 특성에 따라 그 이름이 십일조라는 이름이 아니어도 십일조에 해당하는 소득에 따른 연간분담금 또는 소득월정헌금 등으로 이름을 붙혀도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소득의 십일조를 어디에 바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논란이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가 소속해 있는 교회에 바치는 것이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가 소속한 교회가 재정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투명한 재정 운영이 있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야 하는가?

내가 소속한 교회가 헌금재정관리와 사용처가 불투명하고 정확하게 공개를 하지 않으며, 대단히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을 목회자와 일부 당회원들이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열심히 바치는 십일조와 헌물을 가지고 목회자나 당회원들이 재정운영상태를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고 의심받을 행동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갈등을 하지 않을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다.

어떤 교회에 목사와 재정장로와 짜고서 교회 재정의 상당액을 주식투자를 하다가 손실을 입게 되는 일종의 헌금횡령사고가 터졌다. 횡령의 증거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도 두 사람은 절대로 시인을 하지 않고 있으며, 재정감사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교회 건물과 은행에 예치되는 헌금을 보증으로 융자를 받거나 교묘한 방법으로 계속 교회돈을 횡령하고 있었다.

이러한 내부적인 상황을 알았던 교인들이 교회에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헌금을 내는 즉시 헌금의 상당액이 계속 횡령의 대상이 되고 있다면 과연 십일조를 내 교회에 바쳐야 하는가에 갈등을 하지 않는다면 비정상일 것이다.

예를 들면 세계최대감리교회의 K목사는 교회헌금으로 불륜의 합의금 1억원을 지불하고 별장을 건축하였으며, 감독선거에 돈을 뿌리는 등 총 27억원의 교회헌금을 횡령하고 배임하는 일이 벌어졌고 명확한 증거들에 의하여 형사범으로 체포되어 서울구치소에서 감옥살이까지 하였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징역2년 6개월이라는 전과자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전과자 목사가 설교하는 교회를 다니는 직분자들은 정말 성령받은 사람들이라면 대단한 갈등을 할 것이다.

그런 교회를 떠나거나 아니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항의를 할 것이다. 당연히 소수의 당회원들이 항의를 하였지만 도리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여 고충을 치루고 출교를 당하는 일까지 당하였다.

교회 헌금을 함부로 사용하였던 목회자에 대하여 항의를 하다가 고발까지 당하고 출교까지 당하는 상황에 내막도 모르고 교회에 다니는 어린 영혼들이 설령 나중에 알았다고 하여도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강단에서는 “목사를 대적하면 고발당하고 출교를 당하는 화를 당할지 모른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수 있다” 는 암시적이고 지속적인 공갈에 감히 반기를 들 수 있는 교인들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결국 맹신과 맹종만이 남아 있는 일종의 사이비 컬트집단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교회재정문제는 100% 목회자와 직분자들이 일으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세계 어떤 교회를 보아도 교회내 헌금재정운영에 있어서 사고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일반신자들은 거의 없다. 재정문제의 99%는 불의하고 탐욕스러운 목회자와 맹종하는 당회원들(운영위원, 기획위원 등) 이 일으키는 문제이며, 재정이 빈약한 가난한 교회에서는 실제적으로 재정문제가 일어날 일도 거의 없다.

따라서 “십일조를 어디에 바칠 것이냐? 십일조를 바칠 것이냐 바치지 말 것이?” 라는 논쟁의 뿌리를 보면 결국 “거두어진 헌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느냐?” 라는 것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두어진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십일조논쟁” 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정문제에 관련된 사고는 불의한 목회자들이나 당회원들이 실컷 일으켜 놓고서는 그것으로 인하여 헌금이 줄어들면 일반신자들에게 “왜 십일조를 하지 않느냐? 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느냐?” 고 백날 말해 보았자 소용이 없는 일이다.

재정문제로 분쟁이 있는 교회의 목회자나 당회원들이 교회재정에 관한 투명한 관리와 사용처에 대해서 먼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재정감사 시스템을 만들고 주보 또는 인터넷 등에 공개를 하면 “십일조논쟁” 은 금방 일단락 되어버린다.

한 손에는 교단법 한 손에는 십일조라는 저울대를 든 재판장

뉴욕의 롱아일랜드 입구 리틀넥에 위치한 JB교회에서 “십일조문제” 가 나왔던 적이 있다. 지난 3년간의 교회재정을 조사하는 가운데 상당수의 직분자들과 교인들이 재정운영에 대한 투명성이 보장될 때까지 “십일조를 홀딩” 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3년간의 교회재정을 감사하고 조사를 해보니 교회에서 재정사용에 있어서 가장 큰 의혹을 받았던 사람이 바로 담임목사였던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담임목사의 목회활동비의 사용내역과 여러가지 재정사용상태가 공개되자 교회 안의 여론이 나빠지고 일부 직분자들과 교인들이 이런 불투명한 재정운영상황에서 교회에 십일조를 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서 “십일조를 홀딩” 하거나 어려운 선교기관이나 개척교회에 헌금을 보내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헌금액수가 줄어들자, 위기감을 느낀 K담임목사는 “교단법” 을 들고 나오면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직분자는 해임할 것이며, 앞으로 직분자로 세우지 않을 것이다” 라고 공개적으로 공표하고 언론인터뷰를 통해서도 자신의 소신을 말하였다. 한 마디로 한 손에는 교단법을 들고 또 다른 손에는 십일조라는 저울 대를 들고서 재판장의 자리에서 율법적인 정죄를 버젓이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교회의 내부적인 진실을 알게 된 직분자들이 십일조를 홀딩하고 어려운 개척교회들에게 십일조를 보내고 있는 그 근본 원인을 목회자와 관련 추종 당회원들이 제대로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교단법을 들고 나오면서 교인들을 압박을 하였던 것이다.

본래 겁이 많고 무슨 액운이라고 나에게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교인들이 두려움 때문에 십일조를 교회에 낸다고 하여도 그러한 십일조는 절에 가서 시주나 공양을 하거나 로타리클럽에 가입하여 회비를 내는 정도이지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실리도 없다.

한국인은 대단히 괴상한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집안에 큰 문제가 일어나면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는 일이 있다. 싼 것이 몇 십만원이고 알려진 무당을 부르게 되면 몇 천만원짜리의 굿판도 있다고 TV시사프로그램에 공개된 적이 있다.

점집도 규모나 숫자도 대단하다. 한국역술인(점술, 무당) 들의 숫자가 거의 40만명 정도가 된다고 하니 목회자의 수보다 열 배가 많은 셈이다. 입학철, 이사철, 결혼철, 선거철이 되면 북쩍거리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굿판을 벌리고 미래의 운명을 알기 위해서 무당을 부르고 점장이를 부를 때 그 어떤 누구도 무당이나 점장이의 인격과 삶을 파악한 후에 굿판을 벌이고 점을 치는 사람들이 없다. 액운만 떨어져 나가고, 내 운명만 읽어주는 용한 점쾌만 있다면 된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의 의식이다. 따라서 무당이나 점장이들이 귀신의 힘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공갈을 치면 거의 넘어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속적인 샤머니즘이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통한다는 사실이다. 목회자의 신앙인격과 신앙사상과 삶이 개판이라도 내 마음을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설교만 그럴 듯하게 하고 나를 위해서 복만 열심히 빌어주면 된다고 하는 일종의 무당과 점장이 노릇을 목사에게 요구하는 교인들이 상당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샤머니즘 때문에 목회자가 적당히 무속적인 냄새와 기복주의를 가지고서 교인들에게 강단에서 “십일조문제” 로 인한 “직분해고와 정죄와 심판” 을 가하게 되면 정통 교회 안에서도 잘도 먹혀 들어가는 일이 벌어진다.

심지어 ‘목사가 저주하면 큰 일이 벌어진다” 고 두려워 하는 교인들이 많다. 특히 오늘날 교회들이 고령화가 되다 보니 얼마 후 이 세상을 떠나게 되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입장에서는 “혹시 우리 목사님이 우리에게 저주라도 하면 내가 병이나 들리는 것은 아닌가? 또는 내 자손에게 어떤 재난이 오지 않을까?” 라는 막연하고 무속적인 샤머니즘에 근거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요즈음 인생을 마감하는 연로한 분들이 어떤 면에서 교회내 여론을 주도하는 일들이 있기 조차 하다. 타락한 목회자와 맹신당회원들은 그러한 분들을 등에 업고서 고집을 피우고 거짓말 하고 교회의 거짓된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

십일조 행위보다도 재정운용의 투명화가 우선이다

재정을 먼저 투명화 시키고, 재정운용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용에 대하여 관련자들이 정직하게 회개하고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면 교인들의 “십일조 홀딩” 이나 “십일조를 다른 어려운 선교기관 또는 개척교회들에 바치는 것” 은 자연적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우선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만약 고객의 돈을 맡고 관리하는 은행이 스테이트먼트도 보내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고객들은 돈이 잘 관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돈을 관리하는 은행직원이 고객들의 돈을 빼내어서 함부로 어디에 투자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면. 그러한 은행에 누가 돈을 예치하겠는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

교회를 은행에 비유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투명한 재정감사시스템를 만들어 놓고, 투명하게 재정사용처를 공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후에 "십일조를 열심히 해라! 감사헌금을 열심히 해라! 건축헌금을 열심히 해라! 성도의 십일조 의무를 충실하게 해라 " 고 해야 상식이다.

그런데 사이비부흥사들의 상투적인 언어수법인 “바치면 되지 더이상 묻지마식”으로 교회에 헌금을 무조건 바치기를 강요하고, 바쳐진 돈을 누가 어떻게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교인들이 무슨 상관을 하느냐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고 비성경적인 이단과 사이비 집단에서나 벌어지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벌어진다면 비극이다.

타락한 목회자와 당회원들은 독재적인 정치권력자들, 또는 개인회사의 소유주나 주식을 가진 이사들과 같은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고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직위가 아니다. 더구나 교인들이 헌금으로 바쳐진 돈은 하나님 외에는 어떤 특정한 개인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1달러도 없다. 교회내 직분자들은 관리자, 청지기에 불과하다.

왜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는가?

그런데 헌금으로 거두어진 돈에 대해서 왜 그렇게도 제대로 된 투명한 재정감사를 받지 아니하려고 하고, 제대로 교회인터넷이나 교회주보에 공개를 하지 못하고 있는가?

왜 머리를 이리 저리 돌리면서 교인들이 알아보지도 못하는 항목으로 분산시키고, 또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가? 왜 그렇게도 제직회나 교인총회(공동의회)를 열어서 정기적인 재정보고를 하고 문서로 나누어 주는 것을 어려워 하는가? 정말 이상하고 괴상망칙한 일이다.

교회재정이 당회원들이나 재정부원들의 것이 아니고 교회공동의 소유이자 하나님의 것인데 무엇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꼭 도둑이나 사기꾼들처럼 뒤로 쉬쉬 거리고 교회 인터넷이나 교회주보에 정기적인 재정표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가?

공식적으로 월간, 연간 재정운용사항(헌금수입, 재정지출, 사용처)을 정직하게 공개 하지 않고, 불투명한 재정운용상황과 비밀주의를 개선하지 않고서 목사가 교인들을 향해서 "십일조를 하라",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다" , "십일조를 하지 않는 자들은 직분에서 해임하고 십일조를 하지 않는 자들은 직분자로 세우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만하고 교인들을 기만하는 "삯과 밥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삯꾼, 불순한 도둑심보를 가진 거짓된 인격자" 로 여김을 받아야 마땅하다.

어떤 금실이 좋은 부부가 있다. 결혼 후 아내가 가계부를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의 행동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 터무니 없이 비싼 옷과 보석을 자주 사고, 밤늦게 외출이 잦으며, 화장이 짙어지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남편이라면 자신의 월급이 뻔한데, 가정주부인 아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비싼 옷과 보석을 사고, 밤늦게 외출을 하느냐고 한 마디 정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가 가계부를 조금 보자고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월별에 날아오는 신용카드내역서를 한번 보자고 할 수 있다. 열 명에 한 명이 신용카드파산자라는 세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편으로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계부나 신용카드 내역서를 보자는 남편을 보고서 아내가 "당신 나를 의심해요? 결혼 후 지금까지 한번도 나에게 가계부나 카드내역서를 보자고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도둑 취급하고, 바람피우는 사람 취급을 해요?" 라고 달려든다고 하자.

더구나 아내가 남편에게 "월급도 많이 가져다 주지 않는 주제에 감히 나에게 큰 소리쳐요. 절대로 당신 같이 아내를 의심하는 수준 낮은사람에게 가계부와 카드사용내역서를 보여줄 수 없어요" 는 말까지 남편의 뒤통수에 던진다.

그리고 자식들을 모아 놓고서 "너네 아빠가 엄마를 의심하고 있다" 고 울고 불고 야단을 하고, 친정집과 시집까지 달려가서 "아~이~고~ 결혼 20년을 살아왔는데 내 남편이 나를 도둑년으로 의심해요, 월급도 많이 주지 않는 주제에 나를 도둑년 취급해요, 아~이~고~ 억울해라!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면서 땅을 치면서 통곡한다.

가만히 보면 과잉반응하는 여자의 태도가 도리어 이상한 것이다. 지금까지 남편의 월급을 받아서 정직하게 살림을 살아온 아내라면 남편에게 "가계부와 카드내역서" 를 보여주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10분이면 끝나는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보여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를 도둑년 취급한다고 하면서 동네 방네 온갖 생쇼를 부리는 것이다.

오늘날 재정문제로 분쟁하는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당회원들이 바로 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생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순진무구한 종교생활을 하는 교인들, 좋은 게 좋다는 연로한 교인들에게 눈물까지 흘리면서 “교회내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이 주의 종과 장로들을 모함하고 대적하고 있다” 고 하면서 비극적인 코메디쇼를 보여주고 있으며, 거기에 잘도 속아 넘어가는 교인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썩은 완장을 차고서 “반동분자 색출작업” 까지 하려는 무지한 자들마저도 생긴다.

교회재정문제에 대하여 10년동안 제대로 된 재정감사도 하지 않고, 년말이나 년초에 공동의회 (교인총회)에서는 재정표 슬라이드 한 두장 슬쩍 보여주거나, 아니면 여러가지 항목으로 분산 통합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급처, 사용처, 사용자가 전부 불투명한 엉터리 재정표를 나누어 주고서는 다시 거두어 가는 기만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꼭 도둑이나 강도들이 누구에게 들키면 큰 일이 나는 장물을 다루듯이 교회재정을 운영하는 모습을 가진 교회들이 한 두곳이 아니다.

과민반응을 보이는 이유들

교인의 의무를 다해 왔던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교인들이 당연한 알권리이기도 한 "투명한 재정감사와 투명한 재정운영상태의 공개" 를 요구하면 불순한 일을 벌였던 목회자와 당회원들 99%는 "감히 우리를 의심하느냐? 너희들은 교회를 파괴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대적자들이다. 저들은 성령을 훼방하는 마귀새끼들이다 " 라는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교인들로부터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본인들이 모를리가 없다. 의심을 받으면서도 딴 청을 피우면서 “모르쇠” 로 일관하고, 심지어는 난타를 당하고, 교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여도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당회원들이 한 두명이 아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다 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단에서 담임목사가 "십일조 똑 바로 해라!",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다", "십일조 하지 않으면 장로직, 집사직, 권사직을 확 짤라 버린다" 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변태적인 정신질환자의 발언이자, 도둑이 "내가 네 집에 도둑질을 하러 갈 테니 미리 문을 열어 놓고 식탁 테이블 위에 저금통장, 패물, 현금을 잘 준비해 놓아라, 그렇지 아니하면 사람 다친다 " 는 것과 똑 같은 일이다.

투명한 재정감사와 재정운영상태의 공개에 대한 요구에 대해서 과잉반응을 보이는 목사는 아예 허가 받아 놓고서 도둑질을 하겠다는 것으로 간주해야 마땅한 일이다.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인지 건강하지 않는 교회인지에 대한 시금석은 “정기적으로 재정운영상태가 보고되고 있는가? 정기적으로 교화내 주보(문서) 또는 교회웹사이트를 통해서 매월수입과 지출이 공개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전주안디옥교회와 같이 아예 십일조를 통채로 선교비로 사용해버리면 재정감사를 별도로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담임목사의 목양실도 없고, 전용차도 없으며, 냉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건축한 교회건물도 없는 상황에서 수천명이 바치는 수십억원의 십일조를 전부 선교비로 사용하는 상황에 감히 누가 의심하여 누가 투명한 재정공개를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 많이 바치지 못한 교인들이 도리어 하나님께 죄송하고, 영혼구원에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늘 선교비 때문에 강단 뒤에서 기도하는 담임목사에게 미안해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십일조는 구원받는 것과 관계가 없다

레디컬 한 표현이지만, 십일조는 구원받는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더구나 소속한 교회에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 성경적인 진리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 편 강도는 단 한번도 십일조를 한 적도 없고, 세례를 받은 적도 없고, 교회를 다녀 본적도 없는 자였지만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전신지체부자유이자, 고아이며, 국가의 도움으로만 살아야 하며,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교회에 가지 않고 십일조헌금을 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병상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면 즉각적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 복음적인 진리이다.

성경 어디에도 십일조행위가 구원의 조건이라고 기록된 곳이 없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게 되면 의롭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는다. 은혜의 선물인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나 노력으로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십일조를 하여야 하는가? 이것은 의무가 아니며,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지금까지 어린아이 처럼 남에게 얻어 먹었던 것이 아닌 이제 내 삶 전체를 주님을 주권자로 모시고 예배자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복음전하는 자로 살겠다는 믿음과 삶과 신앙고백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고 믿음을 가진 아벨과 믿음으로 드려진 제물을 함께 받으셨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십일조라는 제물만을 바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라는 믿음을 가진 내 몸을 산제사로 드리고, 믿음의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내 믿음과 믿음의 십일조를 받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십일조는 물질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바치는 자의 믿음과 인격과 삶 전체가 들어있는 너무나 귀하고 신비하며 놀라운 비밀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믿음의 십일조를 가지고 목회자들이나 직분자들이 함부로 장난을 치게 되면 그 뒤에 그들에 어떤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지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이라는 것이 성경적인 진리이다.

오늘날 샤머니즘적인 기복주의자들과 행위구원론적인 사상으로 가득찬 삯꾼들이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복을 받는 필수적인 신앙행위라고 하면서 십일조를 바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하고, 재산이 축이 나고, 병이 생기며, 사업이 망한다고 지속적으로 암시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어떤 삯꾼 부흥사가 교인들이 세상에서 남의 등을 치고, 탈세하고, 조폭하고, 매춘하고, 사기를 쳐서라도 돈을 많이 벌어서 교회에 십일조를 일단 해보면 하나님께서 그 십일조를 통해서 축복을 한다고 가르치는 정신이 완전히 돌아 있는 설교를 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웃 속이고, 탈세하고, 조폭, 매춘하고, 사기를 치는 곳에 믿음이 들어 있을리가 없다. 십일조 속에 믿음과 신앙인격과 십자가의 삶이 들어 있는 것이 성경적인 진리인데 무슨 짓을 해서라도 십일조를 일단 바치면 그 돈을 거룩해지고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것은 이단적인 영지주의자들의 소리이며, 대단히 사악한 다른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가인과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아니하셨다는 거슬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교회재정의 불투명은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큰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이단 사이비 식으로 교인들을 겁주고 몰아가는 일은 전부 성경적인 진리와는 전혀 다른 복음들이며, 거짓된 사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떻게 바치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

이 시대의 재정문제로 분쟁하는 교회문제, 특히 헌금생활(십일조)은 어떻게 바치고, 얼마를 바치느냐는 것이 아니고, 바쳐진 헌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훨씬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를 클리어 하지 못하면, 너무나 소모적이고 의미가 없는 “십일조논쟁-십일조 홀딩, 십일조를 다른 교회에 보내는 행위” 가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모인 교회가 하나되어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전력을 하지 못할 망정, 바쳐진 교회 돈 때문에 도둑들과 양심불량자들을 양산해서는 안될 것이다.

거룩한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안된다. 거룩한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도록 허용해서도 안된다. 거룩한 것을 가지고 목회야망과 탐욕을 이루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목회자 본인도 불행해지고 교인들도 전부 불행해진다.

믿음의 나를 산제사로 드리고, 믿음이 담겨진 십일조와 헌물들을 관리하는 청지기들이 영혼구원과는 전혀 관계없이 불의하게 사용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성도의 믿음과 신앙인격과 십자가의 삶이 담겨진 거룩한 십일조와 헌물을 불의하게 사용하는 것은 바로 성도들의 마음과 믿음을 도둑질 하고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목회자나 직분자들로 인한 붙투명한 재정문제로 분쟁하는 교회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더 이상 십일조를 어떻게 바칠 것이냐, 어디에 바칠 것이냐에 대해서 갈등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내가 거룩하게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 놓은 소득의 십일조 속에 믿음과 신앙인격과 십자가의 삶이 있다는 신앙양심적인 진실한 고백이 정말 들어 있다면 거룩한 것을 함부로 개나 돼지에게 던져야 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영혼구원에 사명이 불타있으며, 정직하고 신실한 목회를 하는 목회자와 충성스러원 청지기 사역을 잘 감당하는 직분자들이 있으며, 투명한 재정운영과 투명한 공개가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은 주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믿음을 가지고서 십일조 정도가 아닌 십의 이조나 십의 삼조 나아가서는 전 재산을 다 바쳐도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자기 생명까지 내어 놓으려는 믿음의 목회들과 믿음의 청지기들과 믿음의 십일조를 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이 땅에 여전히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심으로 아버지께 십의 십조를 하신 것이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살았고, 바울은 일평생 십의 십조의 복음적인 삶을 살면서도 늘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검증된 진실과 신앙양심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교회와 하나님의 복음증거 사역에 거룩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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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희 (218.236.233.35)
2007-05-13 06:00:27
있으나 마나 한 목사....
십일조를 열심히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는 있으나 마나한 목사입니다. 모든 것을 바치라고 해야 옳습니다.. 교회당에 바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바치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눈에 보이는 하느님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느님을 사랑 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거짓된 자들이지요...

천국가기를 힘쓰지 말고 지옥에 가야 마땅한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십일조로 만족하려는 자들로 교회가 가득차다 보니 십일조가 신앙화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십일조가 합리화 시켜 주는 것이지요... 있으나 마나한 목사들 때문에 거짓이 난무하는 것입니다.
리플달기
6 10
대언자 (121.142.65.104)
2007-05-04 12:35:39
교회들 중에는 있으나마나 한 교회들이 매우 많다
성경 말씀을 좇아서 바르게 신앙하려고 힘쓰는 교회에, 기독교인들은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의로울 것입니다.

교회들 중에는 있으나마나 한 교회들이 매우 많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리플달기
6 9
(211.199.213.238)
2007-05-04 00:15:46
이런설교를...
설교를 이렇게 해야 합니다.
ㅁㅁㅁ못하거니 안하는 스스로가 부끄럽습니다.
.........................................
그런데 이 글로 님들도 설교가 됩니까?............
리플달기
8 10
답답한 오후 (152.99.132.13)
2007-05-03 14:43:48
참 명쾌한 강의 입니다.
칼럼 잘 읽고 있습니다.
수고하세요.
리플달기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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