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 > 꽃우물 이야기
이름값을 잘 하자시흥종교교회 입당예배 축사(지난 4월16일, 시흥북지방 '시흥종교교회 입당예배'에서 했던 축사입니다.)
박인환  |  gojumool@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7년 05월 02일 (수) 00:00:00 [조회수 : 409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이 교회는 14년 전에 창립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제가 시흥지방 선교부총무였기에 창립예배 사회를 보았는데 지금은 군번이 바뀌어서 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종교교회에서 담임목사님과 여러 성도님들이 오셨는데, 그 때도 그랬습니다. 제 장모님이 그 때도 오셨는데 오늘도 오셨습니다.

'몇 년도', '누가' 하는 식의 숫자와 이름만 말하면 역사 속의 살아있는 이야기는 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이 교회의 이야기를 잠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 전, 전라도 어느 시골의 가난한 집 어린아이 하나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왔습니다. 그리고 광화문에서 구두닦이, 중국집 배달원 등을 하면서 고생하던 중에 70년대 당시 종교교회에서 운영하던 야학을 다녔습니다.

 그 젊은이가 검정고시를 거쳐서 서울대학교 정외과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나이가 되어 군의 영장을 받게되어 서울대에는 출석도 못해 보고 군대에 갔습니다. 이 청년이 어느날 유관순기념관에 가서 구경하다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국회의원하는 것 보다 목사하는 것이 더 보람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제대한 후에 이 청년은 서울대에 복학하지 않고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을 하였고 나중에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지금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열심히 자기의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관악서지방의 김기현목사입니다. 김기현목사가 1993년 당시 종교교회 담임목사님이셨던 나원용감독님을 찾아가서 지원을 요청하였고 그 결과로 웨슬리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종교교회의 한 좋은 열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시무하는 화정교회가 계속 시흥남지방 소속으로 남아있다가 (행정구역원칙에 따라) 이번 연회를 기점으로 해서 안산지방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원래 시흥과 안산이 한 지방이었다가 18년 전에 시흥지방과 안산지방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화정교회는 18년 만에 안산지방의 교회들과 한 지방이 된 셈인데, 지방을 옮기면서 안산지방회에 찬석하였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1.미자립교회가 반이 넘었습니다. (제가 속했던 시흥남지방은 그래도 오래된 지역교회가 많아서 사정이 좋은 편입니다.)
후배 목사님들이 하는 대화 가운데서, 고등학교 다니는 자녀 등록금 걱정, 심지어 쌀 과 도시가스비 걱정하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상처받고 찾아온 사람들을 치유하여야 할 목회자들이 이렇게 상처를 가지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모두 감리교회의 신학대학을 나온 목사님들입니다. 실력있고 재능있는 분들입니다. 이 아까운 인재들이 마음껏 자신들의 목회적 역량을 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18년 전에는 그런대로 규모가 있던 (100명 안팎의) 교회들 대부분이 그대로이거나 아니면 더 작은 교회가 되어있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당시에 이미 건물을 지니고 있던 큰 교회들은 아주 큰 교회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단순히 신앙과 열심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형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어느 전직 감독님은 무슨 세미나나 집회 설교 때마다 "요즘 젊은 목회자들이 게으르다느니 기도하지 않아서 교회부흥이 안된다느니" 하시는데, 너무나 무책임하고 생각없는 말씀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해도 부흥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왜 그 분만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 곳 시흥종교교회가 위치한 시흥시 포동만 해도 과거에는 교회가 하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한 건물 건너 교회 하나씩은 있을 정도입니다.

좀 세상적인 용어같이 들리시겠지만, '경쟁력'의 문제라고 봅니다. 교회는 많고 사람들 숫자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왕이면 큰 교회, 부담을 주지 않는 교회를 가려고 하지 지하교회, 이층교회를 가려고 하지 않는 게 사실 아닙니까?

저는 며칠 전, 어느 연회 감독님이 기독교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개교회의 부흥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웃교회와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을 하신 보도를 읽으면서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연회는 감독님 잘 뽑았구나"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자본주의의 부작용현상이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적용되고 있는 현실이 가슴아픕니다. 무한경쟁의 현실 속에 내던져진 오늘날의 경제, 사회현상이 오늘날 교회에까지 들어왔다는 것이 매우 슬픕니다.

그런데, 종교교회에서 이 교회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여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선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것을 매우 기뻐하며 이웃교회 목사로서 감사합니다. 종교교회가, 이 교회가 웨슬리교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할 때에도 재정적이 뒷받침을 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 이상 도와 줬는데 아직도?" 하지 않고 다시 지원하셔서 좀 더 넓고 좋은 장소로 이동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유목사님과 시흥종교교회에 다시 한 번 좋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늘, 시흥종교교회의 입당을 축하하는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은 - 한국감리교회의 모교회 중의 하나인 종교교회와 연관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종교교회는, 고유의 전통을 잘 지키고 이어 온 교회입니다. 오늘날 많은 유수한 교회들이, 교회가 오히려 부흥되고 커짐으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세습이니 뭐니 하면서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서울 시내의 전통있는 교회들이 '좋은 목' 찾아 강남으로 떠남으로써 그 전통의 맥이 끊어져버렸습니다. 또 땅값 비싼 곳의 어떤 교회들은 교회를 상가로 개발하여 큰 부를 쌓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 모습은 많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종교교회야 말로 이러저러한 곳으로 눈 돌리지 않고 그 지역을 지키며 교회의 전통을 잘 이어오고 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종교교회가 이 교회의 후원자가 되었다는 것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름 값을 잘하는 것입니다. 시흥종교교회는 시흥종교교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교교회로 연결되는 것이니 만큼 '이름 값'을 잘 할 수 있도록 힘쓰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종교교회는, 시흥종교교회를 단지"우리가 후원하는 교회"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종교교회 지교회"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시흥종교교교회야말로 종교교회, 그 옛날 70년대의 '야학'의 수고가 결실한 열매 중의 하나이니까 말입니다.  잘 익을 때까지 돕고 함께 나누어야 할 지체임을 꼭 기억하신다면 시흥종교교회가 언젠가 아름답게 무르익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기사]

박인환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33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화정교회 박인환목사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