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로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달걀을 주웠습니다.

빨강과 초록 셀로판지에 싸여 리본으로 양옆을 사탕모양으로 묶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껍질하나 깨지지 않았고
하나는 약간 뭉개져 있었지만 그런대로 멀쩡했습니다.

쓰레기가 뒹구는 도로변에 버려져 있는 달걀을 주워드니

양계장 좁은 닭장에 웅크리고
백열등 불빛에 속아
기계가 되어 하루에 두 번
자신의 일부를 세상에 내어놓는 닭들이 생각납니다.

그러고 보니 4월 이맘때가 부활절 주간이군요.

달걀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듯
예수께서도 그렇게 환하고 노란 옷 입으시고
이 땅에 다시 오시라는 소망을 담은

그런 소박한 상징물인 부활절 달걀이,

달걀은 그저 흔하고 싼 것일 뿐이라고
요즘엔 결코 귀한 게 아니라고
그런 싸구려는 하나 안 아깝다고 막 버려져있네요.

쓰레기가 되려고 달걀이 세상에 나왔을까?
쓰레기가 되라고 닭이 알을 낳을까?

철저한 소외란 이런 것이겠지요.

인간이여 우리 몸은 이보다 더 작은 세포에서 시작했느니......

인간의 사회가 자신들의 약자에게, 자연에게, 다른 생명체에게
조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과
먹을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는 이 도시와
상징의 의미가 뭉개지고 밟히는 거칠고 난폭한 이 시절에

버스는 달려 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마리아는 왜  자기 아들을 인간에게 내어주었는지...
왜 자신의 알을 인간에게 내어주는지....

서른여섯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닭들에게 속죄했습니다. 
문득 예수님도 참 안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필 이런 문명에 임하셨습니까? 하필이면

늘 신세만 졌는데 처음 드리는 것이
달리는 버스안 변변치 않은 위로라니......

흐르는 눈물.....
달걀을 입에 넣는 것 말고 무얼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어리석고도 약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부활을 진심으로 경배하나이다.

▲ 당당뉴스 사랑방에 걸린 다릅나무 십자가(채현기목사 기증)와 오랫동안 운영자가 간직했던 루오의 예수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