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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8월 04일 (목) 00:00:00 [조회수 : 3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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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사부가 놓아준 전화로 유럽의 외교관이 첫 손님으로 예약된 날이기에 새벽에 영이가 대중목욕탕을 찾은 것은 고객에 대한 예의보다 자신이 아직도 목욕탕의 첫 물처럼 깨끗하다는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턱까지 욕탕 속에 푹 담근 영이가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영화에서 매력적인 백인 남자배우를 동경 안 하여 본 여성이 없겠지만 막상 한 이불을 덮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난감한 심정인 것이다. 그러나 사부가 사업상으로 많은 혜택을 입어 본국으로 돌아가는 기념으로 한국 최고의 여성을 소개한다고 했으니 최선을 다 해 보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후 일곱시 정각에 호텔에 도착하여 객실의 문을 두드리니 정장을 한 신사분이 문을 열어 주면서 영이의 외투를 받아 준다. 룸의 테이블에는 외국영화에서 본 것처럼 와인이 담긴 광주리와 음식 접시들이 철모를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는 생각외로 보통 키라 안심이 되었고 한국에 5년 동안 있었기에 우리말이 능통하다는 사실에 더욱 안심이 되었다. 영이는 기초 회화정도는 가능하나 실전에 약하여 사부장의 충고대로 회화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며 미니 영한사전까지 준비를 하였다.
외교관이라 그런지 몰라도 유럽인들은 식사를 즐기는 기분으로 하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잔잔한 미소가 절로 나오게 하는 농담과 중간 중간에 와인을 마주치는 분위기는 갈매기 영이를 백조로 둔갑을 시키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치자 제임스는 춤을 권하며 실내의 전축에 바늘을 올리자 색소폰 연주의 블루스 곡이 흘러 나왔다. 그냥 보리자루처럼 남자를 붙들고 있는 영이를 자연스럽게 리드를 하여 주는 것이다.
세 차례의 춤 중에 제임스는 영이를 힘차게 안더니 뜨거운 키스를 한다. 오래 계속되었으나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는 감미로움이 계속 되었다. 전축바늘이 레코드 판의 끝에서 멈출 때까지 춤은 계속되었다. 음악이 끝나자 룸 서비스가 그릇을 치울 동안 욕조에서 잠시 쉬라고 포즈를 취한다.
영이는 욕조에 다리를 뻗고 고개를 젖힌 상태로 수건을 두른 머리를 벽에 기대었다. 처음 상대하는 외국인에 대한 마지막 공포를 떨어 버리고 싶었다. 작년에 열린수요모임에서 고등학교 야구선수의 아들을 둔 아주머니의 말이 떠 오른다.
“돕는 배필에 대해서 저도 한마디 하죠. 우리 아들놈이 국민학교, 중학교까지는 투수였는데, 자라면서 이 엄마를 닮아 엉덩이가 커지더니 고등학교 때부터는 포수가 되어 제가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야구에서는 피차가 최고인데… .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아들놈이 야구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을 하더군요. 투수는 타자, 포수, 심판과 마주보고 있어 상당히 외롭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포수는 타자와 심판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분위기 파악을 빨리 해서 외로운 투수를 조정을 해야 한답니다.
투수는 타자의 앞 모습을 보고, 포수는 타자의 뒷모습을 보고 타자의 실력을 알아보는데 가까이 있는 포수가 더 정확하게 파악한다고 하더군요. 일리가 있어요. 남자는 점잖은 척하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보면 바람 피운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어요. 왜냐구요? 귀한 것을 버렸으니 쓸쓸함을 느낄 수가 있죠. 투수는 머리와 모자로, 포수는 사닥다리 사이에 손가락으로 어떤 구질의 공을 던질지 의견 교환을 한답니다. 청계천에서 쌍안경을 하나 사서 일류석이나 삼류석에 앉아 두 사람의 싸인을 주고 받는 것을 보면서 야구를 관람하면 진짜로 재미가 있습니다.
내 아들은 시합 전날이면 옛날에 주부들이 개울가에서 재로 냄비를 닦듯이 포수 미트를 열심히 닦아요. 특히 가운데는 왁스를 바르고 침까지 묻혀가며 닦고는 야구공을 넣고는 베개삼고 잡니다. 제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농구공은 링에 2개의 농구공이 동시에 들어가는 크기인데 비해 포수의 미트 중앙의 가운데 움푹 들어간 부분은 야구공 하나 반정도의 크기라 아주 정확해야 한답니다.
포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중노동으로 지쳐가는 투수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포수가 공을 받을 때 미트의 중앙에 공이 들어오면 ‘빵’ 하는 큰소리가 나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퍽’하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아무리 느린 공이라도 잘 받으면 ‘빵’ 하는 소리가 나고 강속구라도 잘못 받으면 ‘퍽’ 하는 소리가 난답니다. ‘빵’ 소리에 투수는 자신감을 얻고 심판도 애매한 공은 ‘스트라이커’ 하며 손이 올라간다고 합니다. 우리 아들은 포수 미트를 끼고 아침마다 외칩니다. ‘공 좋고! 힘 좋고! 스트라익!’. 여자는 세상살이에 지쳐있는 남편에게 ‘공 좋고! 힘 좋고!’를 선사하는 것이 돕는 배필이라 생각합니다.”
룸 서비스가 그릇을 다 치웠다는 신호로 가벼운 노크소리가 들린다. 이는 사부가 손님과 함께 있는 영이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섬세한 배려이었고 손님 또한 이 점을 환영했다. 제임스를 위해 욕조에 새 물을 받아두고 나오니 제임스는 욕조에 가기 위해 옷을 벗었는데 상체는 맨 몸이었다. 하얀 피부의 가슴과 팔에는 짙은 갈색의 털이 완전히 뒤덮고 있었기에 같은 종자인 다윈이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털 침낭에서 하루 밤을 잔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이방인과의 첫 피부 접촉의 느낌은 하얀 색의 피부가 보기와 달리 두텁다는 사실이나 털은 아주 부드러웠다. 흑인이 털이 적으며 솜털 같은 느낌의 피부라는 경험 많은 사부의 말과 좋은 대조가 된다. 제임스는 영이를 솜털로 문질러 주듯 긴 애무의 시간을 갖는 것은 남자들의 탐색전인 것이다. 영이는 애무에는 남들의 절반의 반응도 보이지를 못하며 단지 포근한 느낌을 받을 정도이나 자신의 앞에 엉덩이를 대고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타자의 숨소리까지 탐색을 한다. 투수가 공을 던지자 포수의 미트을 향하여 빨리듯이 날라 온다. 이제부터는 타자를 속이며 투수에게 자신감을 주는 자석절벽 영이의 시간인 것이다.
“공 좋고! 힘 좋고! 스트라익! 아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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