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올의 논리는 무지(無知)를 바탕으로 하여 저지른, 문자 그대로의 엄청난 무거불측(無據不測)의 언어횡포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구약성서를 기독교 경전에서부터 제거해야 할 ‘경전의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폄하하는 이단 사설이 최근 시중에 널리 회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견강부회한 혹세무민 논리의 그 진원지가 도올 김용옥 박사라는 것도 알았다. 분명 그의 논리는 세칭 식자라는 사람이 그의 무지(無知)를 바탕으로 하여 저지른, 문자 그대로의 엄청난 무거불측(無據不測)의 언어횡포다.

특히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민족신인 야훼(여호와)가 유대인들이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믿는 조건으로 애굽의 식민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주겠다고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며, 예수의 출현으로 새로운 계약(신약)이 성립된 만큼 구약은 당연히 효력이 없다”는 논리에 이르러서는 그 무지가 극치에 이른다. 왜냐하면 ‘구약성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유일한 경전이라고 믿고 또 유대교(Judaism)의 잘못된 구약성서 이해를 바로 잡으려고 각고정려(刻苦精勵)를 한 바로 그 ‘예수님의 성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약성서의 대부분과 예수님의 말씀의 상당 부분이 구약성서의 인용이거나 구약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는 사실은 이를 웅변한다. 우선 이러한 가장 상식적이고 기초적인 지식조차 도올에게는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우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구약의 모세를 믿으려면 유대교로 가야 하고,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도올의 주장은 이 지구상의 그 어느 과격한 유대교 공격자도 말한 일이 없는 견강부회의 억지다. 구약성서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라는 삼대 종교가 공히 경전으로 믿고 있는 책으로서 단지 그 관점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기독교 신자들에게 구약성서의 모세 율법을 믿으면 유대교로 가라니 도올이 “가라, 말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도올은 왜 모르는 것일까?

만일 도올의 말대로 자신의 주장이 ‘기독교에 대한 단순 비판에서 벗어나 기독교로 하여금 정도를 걷도록 도우려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구약성서를 먼저 겸손하고 성실하게 공부한 다음에 말하는 것이 학문을 한다는 사람의 정도가 아닐까? 우선 정평이 있는 ‘구약성서개론’부터 공부하여 구약성서의 진정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는 터득한 다음에 구약성서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의 양심적 태도가 아닐까? 물론 현실 교회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성서의 오류나 한국어 번역 성서의 번역상의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일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도올 식의 저널리스틱한 구약성서 비평은 너무 겉핥기식의 불명료한 ‘소음’ 같아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 그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어야 할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을 비난하는 도올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기원 후 2세기경에 일어난 ‘마르시오니즘’(Marcionism)의 마각이 그 발톱을 드러내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느끼게 된다. 실로, 도올 선생의 사상이 시중의 신심을 왜곡 선동하였던 그 궤변의 저의와 상응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세계교회사는, 그래도, 오랜 학문적 비판과 토론을 거치면서 마르시온을 이단(異端, heretic)으로 단죄하는데 합의점(consensus)에 도달할 그 순간까지도 마르시온의 이론이 지닌 장점, 이른 바, ‘하나님의 무한대의 사랑과 은총을 기독교의 중심요소로서 강조하는 이론’의 그 정당성을 부단히 존중했다. 그러나 도올 선생의 경우, 그 경박한 언어 폭력과 비열한 포퓰리즘(Populism)에 대해서는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음을 느낀다. 만일 그의 언어가 ‘고뇌하는 지성’으로서, 예컨대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Simon & Schuster 지음, 1957년)가 제기한 문제제기나, 템플톤(Charles Templeton)의 <하나님이여 안녕: 내가 기독교 신앙을 배척하는 이유들>(McClelland & Stewart 지음, 1996년)에 나타난 사고(思考) 전환의 이유들이 던진 문제들과 같은 그런 분명한 문제의식을 기초한 것이라면 나는 이토록 황당한 느낌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의 대표적 지식인(?)으로의 자부심을 가진 분이 저리도 초라한 모습으로 소영웅주의의 유혹에 의하여 매몰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구약성서는 희랍사상을 능가할만한 심오한 헤브라이즘을 그 기저에 깔고 있는 고대 중동세계의 역사·문화·고난의 인간 삶 등등에 대한 정제된 히브리인들의 신앙고백서다. 그 신앙고백은 또한 각고의 해석학적 노력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진의(kerygma)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고대의 ‘신화시적인(mytho-poe[t]ic) 언어’로 서술되어 있으며 그 속에 담긴 사실(faktum)의 개연성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자료도 더없이 풍부하다.

구약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구약성서에 담긴 저 고대 히브리 신앙인들의 신앙고백적인 증언들은 곧 다름 아닌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건(magnalia Dei)에 대한 증언들이라는 확신은 2000년을 넘는 세월 동안 기독교 신앙공동체 안에서(!) 검증받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18세기 중엽 계몽주의의 물결을 타고 밀려들어 온 냉엄한 성서비평의 학문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무려 250여 년 동안이나 냉철한 역사과학의 방법에 의하여 구약성서의 경전됨을 입증했다. 그러므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지도 못하는 그런 경박한 지식인의 말장난에 의하여 그 경전됨이 좌지우지될 책은 결코 아니다. 만일 도올의 구약성서 폄하가 문자주의적인, 주관주의적인, 포퓰리즘적인 판단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교의 교조주의가 범한 그 죄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는 큰 죄악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려고 오신 분이셨다(마 5:17~20, 롬 3:31). 본말을 전도하지 말았으면 한다. 예수님은 안식일 법에 대한 유대교의 해석(!)이 구약 경전에 대한 해석상의 치명적 오류라는 것을 지적하고 저항하셨던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막 2:27~28). 분명 ‘신약성서의 뿌리는 구약성서’라는 사실은 수세기에 걸친 학문적 검증을 거쳐서 확고히 확립된 ‘흔들릴 수 없는 진리’다. 구약성서라는 그 뿌리를 제거한 신약성서는 영지주의의 오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뿌리를 절단하려는 도올은 ‘지주의자’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끝으로 할 말은 도올의 도덕성에 대한 것이다. 만일 그가 정직하고 진솔한 성서해석학에 호소했다면, 그는 결코 ‘예수 탄생 조작 운운’하는 문제와 같은 것을 요란스레 부각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문적 해석학의 능력도 없으면서 성서해석상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데 재미를 느끼는 흥행주의는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진보 성향의 성서학자들이 도올의 언어활동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혐오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두기 바란다.

도올 대한 김경재 교수와 의견 차이 커

이상의 글이 나온 이후,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교수)의 도올관’이 <한겨레>신문을 통하여 소개된 것을 보고 몇 마디 덧붙인다.

1) 도올의 구약폐기의 주장에 반대한 것과 구약 인식을 바로 잡아준 것, 기독교의 정치 참여(네거티브 의미에서, 즉 기독교의 강자 편들기)에 대한 도올의 비판과 그것에 대하여 동의한 것에 대해서도 본인은 동감한다.

원론 면에서 도올-김경재-김이곤의 입장은 같다. 그러나 김경재 교수의 자세는 너무 원론적이고 구체적인 비판이 없는 점이 약점으로 보인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오늘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주로 목사들)이 권력의 떡을 먹으며 그 권력의 떡을 즐기고 있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예언자적 비판은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를 않았다.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일종 침묵을 한 셈이다. 사실 이 문제라면 김경재 교수의 지성으로서는 반드시 나서야 한다. 그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권력 영합에 대해서 비호하거나 아니면 묵인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다.

(2) 도올의 최근 강연 성격(어떤 의미에서는 지난 날 보여준 도올의 강연 성격도 포함)에 대한 김경재 교수의 평가, 예컨대 루터와 칼뱅에 비유할 만한 인물로 도올을 꼽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평가는 비학자적 아첨으로 의심 받을 수 있다. 동시에 김 교수의 이런 태도는 일종의 학문 아류에 김 교수도 편승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일종에 루터와 칼뱅에 대한 모독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충분하다. 루터와 칼뱅의 방대한 저서와 학문 활동을 통한 교회개혁에 대한 그 열정적 소명의식을 어찌 시정 아류와 흡사한 도올의 편협 경박한 학문 자세에 비유할 수 있는지 김 교수의 학문적 양심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루터가 교권의 위협을 받았던 그 수난을 도올의 현재 처신에 연계한다면 이는 종교 개혁자 루터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 될 것이다. 루터와 칼뱅이 무덤에서 비감해 할 것이다.

어쨌든 21세기에 들어 선 우리의 학문 세계가 18세기 이전으로 퇴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도올의 강연들에 대한 평가란 각자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비록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루터나 칼뱅과 같은 인물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 지나쳐서 그것은 그를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도올의 인기와 대중성에 대한 아첨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한신의 학문성이 이런 형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한신의 미래를 어둡게 할 따름이다. 아무리 세상이 이런 아류의 물결에 휩쓸려 간다고 하여도 한신은 그러지를 말아야 한다. 그것은 한신의 명예교수직에 대한 일종의 독직(瀆職)이 될 수도 있다.

김경재 교수는 구약 이해에 있어서 특히 구약성서의 야위즘에 대해서는 나의 글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말했지만(이번 도올의 구약 이해를 바로 잡는 논리 속에 나의 입장을 많이 반영한 것도 그것을 말해주지만), 김경재 교수의 이런 자세를 볼 때 나는 너무 외로움을 느낀다. 도올, 김경재, 김이곤 모두가 60이 넘은 나이로 이제는 지구의 미래, 지구촌 종교들의 장래에 대하여 진솔하게 염려하여야 할 나이가 아닌가? 실수인가? 아니면 본심인가? 만일 본심이라면 우리는 길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도올의 성서 이해와 기독교 이해를 학문적 아류라고 보는 입장과 그의 용기(나는 ‘만용’으로 봄)를 루터나 칼뱅만큼 높이는 입장은 좁혀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이 나이에 우리에게 무엇이 무서운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시류에 시달려야 하는가? 짧은 여생이나마 후세대를 위하여 진실을 말하며 살자!

김이곤/ 한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