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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향의 전남 담양 방문기아름답고 인심 좋은 고장, 담양 친구들을 만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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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8월 03일 (수) 00:00:00 [조회수 : 3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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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에서 두 번째가 담양
친구 이상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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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 담양에 산다는 친구 이상우가 작년 다음 카페에 홀연히 들어온 날부터 그 친구를 찾아가 보고 싶었다. 내가 가진 흑백 앨범 사진에 입이 툭 튀어나온 상우의 어린 모습이 낯익어 보였다. 많은 친구들을 시시콜콜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지만 상우와의 추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담양에 가고 싶었던 또다른 이유는 어릴 때 헤어진 조카 창숙이가 아직도 거기에 살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 작년부터 내려가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했지만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 올해 7월 20일 다시 시도한 결과 반가운 초청을 받았다. 공지한 바와 같은 과정을 거쳐 선영이와 금석이, 정란이와 더불어 담양에 내려갔다.
이번 여행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친구는 자신의 애마로 서해안고속도를 왕복 600여 km 손수 운전한 선영이다. 그의 봉사가 없었다면 담양 여행이 성사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선영이는 상우가 4, 5 학년 때 우리와 같은 반이었다고 했다. 어쩐지 그가 낯설지 않았다. 상우는 키가 커서 선영이와 어울렸고 말수가 적었으며 씩 웃는 표정까지 기억하고 있었지만 상우가 자신을 몰라 본다고 했다. 회사 퇴근하자마자 아침 일찍부터 동행하여 사진를 찍어 준 금석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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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림원의 대나무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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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날짜를 1, 2일로 정한 까닭은 정란이의 휴가를 배려한 탓이다. 어린시절 상우와 가장 절친하게 지낸 인성이가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 쪽지에서 상우가 기억하는 친구는 인성이와 인철이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기억을 살려 내려고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 보았지만, 그는 우리는 물론, 종범이나 혜경이, 철용이조차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5학년 담임인 이금석 선생님은 알고 있었다. '죽림원'이라는 유명한 대나무숲 식당 별실에서 호남의 떡갈비를 대접했다. 대머리가 약간 벗어지고 얼굴이 시커먼 그를 자세히 보니 시커먼스 멤버들인 광용이와 일환이를 합성한 얼굴 같았다. 이야기 끝에 그는 해방촌 종점 쌀집 딸 정란이를 기억해 냈다. 또 같은 군인아파트 뒷편 절벽 아랫마을 이태원에 살던 조성옥과 이시영도 안다고 했다. 당시에 정란이가 자기에게 하도 쌀쌀맞게 대해서 말도 붙여 보지 못했노라며 웃는 얼굴로 흘낏흘낏 훔쳐본다. 자꾸 그 일을 되내이는 것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35년 만에 처음 만난 우리는 처음엔 약간 서먹했지만, 과거의 학창 생활과 친한 친구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특히 그는 중학교 시절 인철이와 인성이랑 골방에서 술담배를 몰래 즐기다가 인성이 어머니에게 제발 술 좀 조금씩만 마시라고 혼난 일을 회상하며, 삼총사가 겨울 설악산 대청봉에서 길 잃고 속초 비행장까지 하산한 일 등을 일일이 기억 창고에서 끄집어 냈다.
상우는 운수업을 하다가 처가의 고향인 담양에 20여 년 전에 내려와 양돈업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읍에서 정육점을 운영하고 자신은 양돈 생산과 유통을 맡아 제법 큰 부를 축적하여 귀농에 성공한 듯했다. 아들은 둘인데, 장남은 제대후 의대에 복학중이고, 둘째는 해군에 복무중이라고 했던가?
키가 훤칠하고 사교적인 데다 항상 웃는 표정이라 그런지 담양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상종가라고 자찬한다. 정말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기분이 좋고 흥분했는지 상우는 우리에게 최고의 음식과 숙소를 제공해 주었다. 담양 호텔 특실을 잡아 주었는데, 건물이 낮고 대지가 넓은 데다 곳곳에 유실수와 기화요초가 즐비한 아름다운 숙소였다. 농장을 한시도 비울 수 없는 처지인데도 일손을 놓고 섬기는 그 친구가 고마웠다. 여러 친구들이 올 줄 알고 사람을 시켜 관리를 맡기고 돼지 한 마리를 잡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저녁 장어구이 집에서 우리 일행이 술을 잘 못 먹는다고 꽤나 섭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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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쇄원
뒷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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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은 호남 정자의 단아함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소쇄원을 둘러보았다. 조광조의 제자인 원씨가 정치 싸움에 밀려 아담한 정원이 딸린 집(원우, 園宇) 한 채를 지어놓고 친구들을 불러 시문을 읊조리며 시름을 달랬을 정원이다. 빈 마당에는 꽃이 진 탐스러운 석류나무 한 그루가 다정한 벗처럼 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고, 곳곳에 배롱나무 꽃이 붉은 마음의 불을 토하듯 현란하다. 친구들과 두 칸짜리 방에 앉아 주인 행세를 했다. 어렵사리 한시를 번역해 가며 읽어 보았다. 열어 젖힌 작은 문으로 다가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노라니 잠시 습한 복 더위를 잊는다. 탐욕을 버리면 이렇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거늘 어찌하여 예나제나 정치인들은 돈과 명예와 재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더럽히는가?
금석이는 카메라 셔터누르기에 바쁘고 배 고플 짐승들이 눈앞을 가리는지 상우는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장말 미안했다. 이십 년을 거기 살아도 소쇄원을 지나가기만 했지 오늘 친구들을 따라 처음 올라와 봤다는 그이다. 이렇게 먹고 살기 위해 애쓰며 사는 사람들이 허다한데, 나는 세상 걱정 없이 살면서 바쁜 친구를 찾아와 오히려 대접을 받고 있으니 얼마나 모순인가? 구비구비 천연스럽게 흘려내려오는 시원한 물줄기 돌틈에 손을 넣고 꼬마들이 가재를 잡고 논다. 담벽에 새겨 넣은 명문하며, 대나무 통으로 흐르는 물을 받아들이는 물길 하며, 사진으로만 보아서는 귀족의 성처럼 호화로을 것 같았던 그 정자의 개방성과 단아함과 조촐함에 또 한번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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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깨 긴
담양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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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검푸른 물결이 굽이치는 담양호와 안개에 감싸인 추월산, 개천가에 펼쳐진 담양 오일장도 둘러보았다. 선영이 말로는 과거에 담양에 들렀을 때에는 죽세공품 일색이었다는데 이젠 중국산에 밀려 담양은 더 이상 죽세공품의 고장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오일장도 여느 시골 장터나 다름 없어 보였다. 그가 해거름에 농장에 먹이를 주려고 가는 것을 따라 가서 수 많은 돼지들을 보았다. 특히 새끼 돼지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약 삼만 평의 자기 산에 표고버섯을 재배해 놓고 아무나 따 가게 한다는데, 그 산에는 못 가 본 게 좀 아쉬웠다.
정이 많은 상우는 자기 집 주변의 대밭에서 큰 대나무 두 그루를 잘라 지압용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어릴 적 추억이 많은 술 친구 인철이와 인성에게 죽순주를 한 병씩 보내고, 우리 친구 모두에게 대두병 60개들이의 술과 죽순을 차에 실어 주었다. 춘란을 기른다기에 한 촉 달라고 했더니, 싯가로 10만 원 이상 호가할 거라는 춘란을 한 촉씩 선물했다. 어떤 것은 꽃만 좋으면 일억까지 받을 수 있다 하니 눈이 휘둥그레 해진다. 친구 상우보다 더 호감이 가게 남편 친구들을 반기고 서글서글한 그의 부인은 질좋은 돈육 갈비를 약 4근씩 봉지에 담아 주었다.
그는 시골에 사는 친정 아버지나 오라비처럼 청일점인 정란이에게 유난히 더 살갑게 대했다. 정란이에게 사 준 대나무 바구니도 그 징표이겠지만, 정란이도 그 오빠가 고기가 맛있다고 하면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했다며 무척 행복해한다. 그 당시에 그 쌀집에 신세를 안 진 사람이 있었을까? 그것은 진정 옛 정에 대한 보답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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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양호텔 로비 앞의 하얀
연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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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울창한 대나무숲과 머리를 맞대고 서 있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게다가 길마다 만개한 배롱나무 꽃들이 흐드려진 인상적인 마을이 담양이다. 게다가 푸른 호수와 높은 산과 계곡들이 병풍을 두른 듯한 아름다운 땅, 거기에 인심 좋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물산이 풍부한 담양인들의 후함에 한층 마음이 끌렸다. 친구는 정년 퇴직한 후에 내려와 연금을 받고 살면 존경 받고 여유롭게 살 거라고 귀향을 권한다. 정란이가 상우 부인더러 자기도 내려와 담양 사람을 만나 살면 어쩔까요 물었더니, 혼자 사는 게 낫지 않느냐면서, 좋은 사람 만나 살아도 자기 남편은 건드리지 말라는 뼈있는 말로 웃겼다.
가을에는 여럿이 함께 내려와 보자고 말했다. 인근에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이 있다니 단풍 구경을 겸해 친구도 만나 보자는 것. 처음 만난 친구에게 너무 폐를 끼쳐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자꾸 신세를 지고 생업에 지장을 줄까 봐 나는 걱정이 앞선다. 받는 것보다 줄 것이 더 많은 그 친구는 정녕 도시에서 찌드는 우리보다 더 여유있고 풍족하고 행복해 보였다. 살가운 그 친구의 정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리라. 그래서 특히 우정의 상징으로 받은 그 보춘화를 잘 길러 꼭 꽃을 피워 보이고 싶다.
2005-08-02
이일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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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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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처사(=양산보) |
| 그 이름이 기억 안 나서 양씨라고만 했어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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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시간 가지셨네요...그런데... |
| 소쇄원의 주인은 양처사랍니다.(양산보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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