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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 한국 신학의 미래기독교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다면
김동학  |  lovekorea0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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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3월 06일 (화) 00:00:00 [조회수 : 3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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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설교 겸 강의를 동영상으로 들었다. 그의 교회 접근을 불순하게 보고 싶지는 않았고 오히려 당연히 돌아와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A.D 354~430)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마니교에 천착했던 어거스틴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였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다.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말이다.

어머니 같은 성령

도올은 삼위일체가 가톨릭에서 정리된 개념이라고 했지만 실은 이미 성경에 삼위일체는 명시되어 있다. 단지 그것을 교리화하므로써 생각할 자유나 자유 의지마저 뺏은 잘못이 있다면 그것이 기독교의 교조주의요 이른바 도그마티즘-교권주의-이다. 한국교회가 도올의 망발에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만든 교권이란 권력의 틀에 갇힌 '박제화된 기독교'는 도올이 비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상(李箱1910~1937,본명은 김해경)은 날개라는 소설에서 천재인 자신 혹은 인간이 가장 뼈아프게도 아내가 몸을 팔아 그것으로 연명하는 가장 비참한 모습을 그려냈다. 날려고 해도 날 수 없는 현실, 마치 윤회의 감옥에 갇힌 비참한 중생이나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 구렁텅이에 빠진 인간의 실존을 그렸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숙명인 죽음 앞에서 한계에 부딪힌 인간이 '삶'과 '존재' 자체에 물음을 던지며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을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 세대는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인간이란 얼마나 비정하며 허무한 존재인가를 느꼈다. 많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집합적인 무'(nothing)를 경험했다.

그러나 칼바르트(1886∼1968)에게서 여명이 비쳤다. 19세기까지 신학은 역사적 예수-실제의 예수-를 재구성하려고 성경과 기타 고고학적 자료들을 탐구하며 노력했지만 예수를 찾지 못했다. 다시말하면 예수라는 인물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전체를 사진으로 보듯이 알 수는 없다는 결론이었고 신앙의 눈으로 볼 때만 그 답을 알 수 있다고 고백했다.

20세기 최대의 신학자 칼 바르트

내가 목원대학에 들어간 것은 참 행운이었다. 난 거기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신학자들의 강의와 강연, 설교를 다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함석헌이 살아있을 때 들었던 강연도 있고, 아쉽지만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책으로,해방신학과 심지어 동양학적 접근으로 신학했던 김하태교수의 강의등 참으로 다양한 신학을 접했다. 4학년때는 송기득교수를 통해 한국적 신학이란 말도 들었고 대학원 때는 당대 칼 바르트의 대가인 박순경(당시 초빙교수)교수와도 조우했다. 나는 시골목회하면서 칼 바르트의 초기 자펜빌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그에게 반했으며, 그 후 그의 은총의 신학에 빠져서 대학원 논문도 그를 전공하다시피했었다.

당시 우리의 신학적 관점은 어떻게 서구의 신학적 틀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토양에서 신학하는 주체적 학문을 찾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미 초년 목회시절 나는 주체사상의 문건도 보았다. 그리고 박순경 교수가 교황과 김일성 수령론을 비교하면서 강연한 것이 문제가 된 동경강연 후 옥에 갇히는 상황, 당시 기독교교회협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변호하거나 거들어 주지 못했다. 그리고 칼바르트에서 갑자기 민중주체 통일운동의 투사로 급변한 그녀를 보며 놀랐다. 성령의 역사였다.!!!

그렇게 나의 신학은 칼 바르트에서 머문 듯 했지만 선교사로 지원하면서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되었다. 상황화란 말과 상황신학이란 말을 실제로 나의 태국 사역 기간내내 체험했으며 하나님은 절대로 고정되어 있거나 굳어져 계시지 않고 항상 우리 인간을 향해 열려 있으며 절망한 인간을 찾아오시는 '사랑'임을 깨달았다.

21세기는 불확실성의 시대

2000년 귀환한 나는 다시 모국의 품에서 한국적이고 향토적이며 따뜻한 어머니같은 품을 원했다. 그 때 만났던 도올, 그의 여러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나를 풍성하게 했고 나는 그를 따라가며 주시했다. 그리고 최근 기독교로의 회심과 교회공동체로의 접근 그리고 기독교 신학 전반에 돌을 던지며 나타난 사람, 그는 어쩌면 이미 준비된 새로운 신학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국교회가 상업적인 복음으로 풍요해지고 부유해지면서 가난한 사람들-복음에 제시된 빈자,병든자,장애인,나그네,외국인,과부,고아,노숙자,갇힌자등-을 외면하고 거대한 첨탑과 아성(我城)을 쌓는 사이, 높아진 계단과 바라보기 힘든 높은 건물을 자랑하는 동안...교회의 장식 십자가에 갇혀 신음하는 예수를 해방시키는 새로운 하나님 나라운 동을 시작한 것이다.

김지하의 금관의 예수처럼... 만약 한국기독교가 정말 다시 예수께서 관심가지셨던 이들에게로 돌아오지 않고 한국신학이 그들의 눈물을 닦고 신명을 주는 '오늘'의 학문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돌(도올)들이 계속 건물만 높은 한국교회를 향해 계속해서 달걀 세례를 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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