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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차라리 폐기하는 게 낫다도올 논쟁에 대하여
류상태  |  shalom77@cho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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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2월 26일 (월) 00:00:00 [조회수 : 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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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논쟁에 대하여]

노자와 유교 강의에서 여러 차례 한국교회를 비판했던 도올 선생이 이번에는 요한복음을 강의하면서 또 한차례 한국 기독교계를 흔들고 있다. 그는 “구약을 믿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성황당을 믿는 것과 다름없다”는 등의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내며 구약의 한계를 지적하다가, 보수적인 교계가 반발하자 아예 ‘구약 폐기론’을 들고 나왔다.

도올은 구약이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한 계약’이라며, “예수의 출현으로 새로운 계약(신약)이 성립된 만큼 구약은 당연히 효력이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기총 대표회장 이용규 목사는, “그것은 ‘성서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얘기이며, 성서는 신앙의 눈으로 봐야지, 과학의 눈으로 보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태의 와중에서 도올은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아예 한 술 더 떠서,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정통 기독교인’이며, 심지어는 ‘진짜 보수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다.

사태가 흑백으로 갈리자 진보신학의 거두라 할 수 있는 김경재 교수가 나섰다. “구약폐기론은 잘못이지만, 도올이 전하고자 하는 뜻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교수가 구약폐기론에 반대하는 근거는 “구약을 제거해버리면 도올이 소중히 여기는 인간평등과 존엄성 등을 담은 헤브라이즘이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신학자답게 “구약과 신약은 서로를 비춰주는 빛이며, 기독교가 이스라엘에서 탄생했는데, 그 뿌리를 제거해버리면 기독교가 천박해진다”고 했다.

나는 도올과 그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그들의 주장보다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말하고 있나?”에 관심이 간다.

[도올은 기독교인인가]

우선 도올의 의도부터 짚어보고 싶다. 그의 주장을 순진하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과거 행적에 비해 너무나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으로 돌변했다. 내가 “돌변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과거에는 기독교 신념체계에 대한 그의 개인적 신앙고백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이 ‘열등한 종교’를 오래 전에 졸업(?)하고 종교에 대한 매임이 없이 자유로운 영적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도올만큼 종교 전반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평을 듣는 그가 스스로 ‘기독교인’을 넘어 ‘정통 기독교인’, 심지어는 ‘진짜 보수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고 은혜를 받는 진보기독교인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나는 기독교인이며, 힌두교인이고, 동시에 무슬림이다.”라고 말했던 간디의 고백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지금 한국 교계는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도올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도 환갑이 다됐다. 오랫동안 기독교를 비판해봤지만 효과가 없어서 이제는 기독교가 정도로 가게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기독교단체들은 나와 협조하는 게 좋다. 나의 도움을 받아 기독교를 부흥시키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새겨들으면, 그는 전략적으로 기독교를 돕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직한 대화로는 도저히 통하지 않는 이 ‘무식하고 형편없는 종교’를 좀 구원해 볼까 하는 애타는 심정으로 말이다.

[과학, 이성과 충돌하는 신앙은 사이비]

한기총 사람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할 말을 잃는다. “성서는 신앙의 눈으로 봐야지, 과학의 눈으로 보면 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신앙이 과학을 초월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초과학적, 초이성적 세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어야지, 비과학적, 비이성적인 것을 수용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과학과 이성을 부정하는 신앙은 ‘사람 잡는 신앙’일 뿐임을 기독교 역사는 여러 차례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성서를 ‘사람의 기록’으로는 보지 않고 ‘하늘의 계시’로만 보는데 있다. 성서의 모든 기록을 ‘하늘의 계시’라고 믿게 되면, ‘사람의 이성’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원시 유대교 혹은 기독교 공동체가 갖는 어쩔 수없는 ‘그들의 한계’는, 때로는 비인간적인 만행으로, 때로는 말도 안되는 모순과 독선으로 성서에 기록되었다. 성서가 ‘사람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만행과 모순, 독선을 ‘하늘의 계시’로 믿는다면, 비판도 할 수 없고 그냥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종교는 ‘아편’이 된다.

이런 신앙이 자라면 이성이 마비되고 판단력이 사라진다.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성서의 절대성’을 들먹이는 사람들을 보면, 판단력이 마비된 바보들이거나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성서에는 ‘하늘의 계시’도 담겨있고 ‘사람의 한계’도 담겨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납득할 수없는 비상식, 비이성, 비과학적인 원시신앙까지 온통 ‘하늘의 계시’라니...

[솔직히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음은 김경재 교수님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다. 그 분은 나에게 큰 영향을 준 다원주의 신학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분이다. 지금도 그 분에 대한 존경심은 변함이 없지만, 요즘은 그의 강의를 듣거나 글을 대할 때마다, 자꾸 몸을 사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구약을 제거해버리면 도올이 소중히 여기는 인간평등과 존엄성 등을 담은 헤브라이즘이 빠져버린다”는 그의 지적이나 “구약과 신약은 서로를 비춰주는 빛이며, 기독교의 뿌리가 구약”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 것이 없다. 그러나 성서가 갖는 한계를 보다 분명하고 명쾌하게 지적하지 않는, 혹은 지적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언젠가 김교수님은 “이제는 성서를 여러 고전 가운데 하나로 보자.”고 말씀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그 때가 김교수님이 가장 솔직했던 때가 아닐까. 그 말씀은 성서의 ‘절대성’을 이제는 내려놓자는 말이며, 또한 성서를 철저히 ‘수단화’하자는 말이었다고 나는 이해했다. 그런 분이 도올의 의도를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 폐기론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기 전에 그의 의도를 먼저 깊이 헤아리고, 성서 전반에 대한 한국 교회의 잘못을 질타하는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았을까.

비록 김경재 교수 뿐 아니라 오늘날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에게서 느껴지는 한계는, 그들은 자기 밥통을 내려놓을 각오로 정직하게 말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먹물들의 한계’라고나 할까. <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을 쓴 돈 큐핏이 지적한 대로, 오늘날 진보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리면서도 “내 때에는 참으소서!”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차라리, 몇 년 전 한 개그맨의 입담에 담긴 “약간만 비겁해지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조소가 인간세상의 실상을 꿰뚫은 명언처럼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진정 성서의 정신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영적 여행을 즐기는 사람, 즉 진정 예수를 닮은 사람은, 자신이야말로 ‘진짜 보수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는 도올이 아닐까.

[신약은 문제가 없는가]

구약이 문제가 된다면 신약은 어떨까? 구약이라고 ‘하늘의 계시’가 전혀 담기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기록’이기에 당시 유대인들의 인식의 한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면,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오늘날 “문자가 아닌 의미로” 재해석되어야 한다면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폐기하자는 것이 도올의 주장이라고 생각되지만), 신약 역시 2천년 전 히브리-헬라 사람들이 가진 ‘인식의 한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신약이 갖는 독선과 배타는 구약보다 더욱 무섭다. 구약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사실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들 중에는 이방인을 배제하려는 종교지도자들을 치열하게 공격하고 사해동포주의를 외친 선각자도 많다), 신약은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독선과 배타의 횡포는 더욱 크다. 그러나 구약이건 신약이건 성서는 ‘책’일 뿐이다. 가려 읽으면 된다. ‘하늘의 계시’라고 할 수 있는 빼어난 가르침은 인류와 함께 나누고, ‘인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는 독선과 배타에 대해서는 ‘그들의 인식이 갖는 한계’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보적인 신학자와 목회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은 자신의 신앙과 신학에 대해, 그대들의 양심과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가? 여전히 마음 깊이 존경하는 선생님께 결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다. 내가 잘못 보는 것이라면 죄송한 일이지만, ‘한국 기독교의 지성’으로, 후학들에게 길을 제시했던 노학자가 교계의 눈치를 살피느라 할 말을 못한다면 슬픈 일이다.

“칼이 유익하냐 무익하냐?”는 논쟁은 무의미하다. 칼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가치중립적인 ‘물건’일 뿐이다. 칼을 쓰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칼이 주로 사람을 해치는데 사용된다면, 다소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차라리 없애버리는 게 낫다. 지금 한국 교계에서는, 구약 뿐 아니라 신약도, 예수도, 하나님마저도 철저히 종교장사꾼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라면, 모두 폐기처분하는 게 차라리 옳지 않겠는가? 종교가 사람을 얽어매서는 안된다. 종교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가르침이 아닌가? 비록 그가 그런 발칙한 말을 가리지 않고 뱉어내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받고 억울하게 처형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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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 (58.233.232.200)
2007-03-04 08:31:29
★종교에서 해방을 .....
산들님! 좋은 글 잘 앍었습니다.종교가 인류에게 필요하니까 인간은 종교를 만들엇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그 종교로 부터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러니 하기도 합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덜 인식된것은 안직도 여전한 것 같으나 종교 때문에 그 존엄성을 무시하는 작금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이젠 폐기할 때가 됐구나 합니다.
인간은 역시 위대하고 대단한 창조력을 갖고 있어 신을 만들기도 끌어내리기도 폐기하기도 합니다.
인젠 끌어내려 폐기하는 역사가 우리가 가야할 역사적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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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주님따름이 (221.165.12.80)
2007-03-03 01:07:28
흠..제생각은
말씀의 중요성은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공감합니다만 교리의 틀을 벗고 해석할줄도 알아야 된다 생각합니다. 최소한 오류나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있더라도 인정은 할줄 알아야 되고) 성경의 말씀을 온전히 하나님의 뜻과 부합되게 사용할줄 알고 분별력 있게 보는게 중요합니다. 부패한 목사들도 성경을 들먹이며 자신의 부패함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다미선교회 같은 사이비 단체도 자기네들의 당위성에 성경구절을 들었으니까요. 성경에 대해서 무조건 한자 틀림 없고 무조건 성령으로 쓰였다고 하는 솔직히 근거 대면서 반박하기도 아주 쉬운 교리적인 성서무오설 축자영감설 주장하기보다는 인간의 글로 쓴거라 아무래도 성경 안에 오류는 있을수 있어도 그안에는 분명 하나님 말씀은 들었고 또한 사람이 그 말씀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다양한 결과가 나올수 있는 만큼 성경의 구절구절을 하나님이 보기에 가장 좋게. 그리고 올바르게 사용하려고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 올바름의 정의를 내리기가 무척이나 힘들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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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태엽감는새 (152.99.132.14)
2007-02-28 12:55:13
목사 님 이라는 닉네임을 가지신 분께..!
종교개혁가들 역시 그시대의 반동역할 뿐이 었다.
루터나 칼빈이나 종교개혁가들 역시 그 시대의 타락상에 반대하여 일어난 역사의 반동일뿐입니다.
어느시대에도 영원히 변할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것으로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루터는 결국 독일의 농민들의 저항을 진압 학살하는데에 동조하여 다시 영주들의 손울 들어주는 반쪽 개혁, 결과는 성서의 개혁정신을 개인내면으로 끝내버렸지요.

칼빈의 종교개혁도 결국에는 다시 개신교 귀족화(선택교리)를 초래하여 영국 기독교의 부패를 웨슬레가 깨웠지요.

'종교개혁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라고 물으시지만 그렇게 물으시기보다는
현 한국교회의 가르침과 성서해석과 설교를 본인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먼저 물으심이 옳지않겠는가 라고생각을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감동으로 쓰여진것이 성서' 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요한복음과 디모데 서의 표현이며,
성서는 하늘의 정신으로 쓰여졌다는 주장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생각이 없이 성령이 따로 존재합니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귀있는자들은 들을찌어다' 라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그것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이며, 상식과 생각을 옳게 가지면 알아듣는 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진실, 진리, 순수, 에서 시작되는 신의 깨달음 이 성서이며 복음의 진리라는것을 이해하지못하고
특별한 종교적 용어로 믿어지는 믿음이 기독교는 결코 아닐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사고로 믿는것은 성령과 충돌되고 반한다' 라는 논리는
너무 급하게 가따붙여 논리를 펼치는것은 위헙합니다.
왜냐하면 생각과 사고를 떠난 성령의 역사는 거짓이나 망상, 자기착각, 억지주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기록이 때로 그렇게 연속성이끊긴채로 성령의 역사라고 표현이 되었어도 잘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가 그렇게 기록되었다고 그것을 이용하여 남을 말을 '그것은 생각이고 정신이다, 성령이 아니다' 라고 사용하라는 말씀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욕심에 잡혀있고 욕심의 사상이 되었을때 '그것은 '성령이''성령의 생각'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사상, 타종교 가 그것이 단순이 성서가 아니기때문에 성령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속에 진리가 담겨있는가를 보고 판단해야할 것 입니다.

이미 성서 자체도 긴세월속에서 수많은 책들을 추려서 정경화 한 것이기때문 입니다.

================ ==================

제가 리플을 단 내용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것이라 생각을 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다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 때 리플을 달때 사무실에서 일하다
글을 달았는데, 갑자기 출장일이 생겨 제대로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끊긴 감이 있었는데, 좀 더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물론 지금 부터 제가 목사 님이라는 분께 이말을 하는 것은 님도 전적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이므로 그냥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정도로는 출발선이
틀리기 때문에 분명히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전제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인 만큼 확대해석 하시지는 마세요.

전 세상살아가는 것을 먼저 그림자로 이해합니다.
한 예로 저는 전에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60분이나 90분짜리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은, 나중에 하나님앞에서 나의 60년,90년의
인생을 이렇게 되돌아보면서 심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구요.)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요.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약이나 신약시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주위에 넘쳐나는 아파트,자동차, 배, 비행기, 휴대폰 과
이런 인터넷등 등 이 없다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그냥 인간일 뿐인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말해서 통신과 교통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 진보시키고
그리고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끼쳐서 인간 스스로를 더욱 그 무엇이
된듯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명의 발전과 방향은 거스릴수 없을 것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아무도 그 미래는 알수 없을 것이지만요. !)

많은 사람들이 지금 개혁을 이야기 합니다.
저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는 모든
생활영역에서 개혁은 필요합니다. 다시 이야기 하면 인간의 본질중에는
항상 더 강한 자극을 필요로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문명 발달의
자극제가 되기도 하지만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근데 문제는 어떻게 개혁을 해야 하는 냐가 남습니다.
바로 제가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제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부분이 사람들이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결국은 자신의
생각과 정신으로의 개혁을 주장합니다.
사실 개혁이란 누가 옳으냐의 문제이기전에 무었이 옳으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래서 신앙에 있어서의 개혁은, 교회에 있어서의 개혁은 바로 말씀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성경에 말씀은 하나님
이시라고 선포하고, 무었보다 그 말씀은 천지와 만물이 없어져도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는 다는 말씀을 굳게 믿고 있으며, 바로 이 변하지 않는 말씀을
중심으로만이 우리는 하나님앞에 바로 설수 있으면 그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정신이 아닌 말씀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너무 우려스러운 현상은 그 말씀의 삶의 적용부분에 있어서
각자의 환경과 문화와 처지, 그리고 살아온 모습이 틀리다 보닌까
여러가지 주장과 표현들이 있을수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말씀 자체를 개인적인 생각과 정신으로 존폐를 이야기하는 하시는
분들을 볼때에 답답함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이단입니까?
이런 방향으로 개혁을 이야기하고 말하는 것은 개혁은 물론이고 자칫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까지도 모독하고 나아가서는 전도라는
지상명령은 고사하고 성경에 나오는 택한자들이라도 실족케하는
무서운 결과를 부지불식간에 가져올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회사에 다니지만 세상의 법도 공부하고있는 사람으로써,
더 성경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깊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는 가를
깨달을수록,다른 사람도 아니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분들이
개인적인 생각이상을 넘어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러한 사상과생각을전파
하는 것을 볼때에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칼빈과 루터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부분에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이야기 할수 있지만, 지금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고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임을
말씀드리면서 마칠꼐요.
리플달기
0 0
구약학자 (12.170.152.114)
2007-02-28 11:46:14
류상태님에게
난 류상태님에게 한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매번 사회와 교계에 무슨 이슈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받아치는(?) 본인의 논조를 가지지 말고, 먼저 본인 이끌어 가는 글을 쓰셨으면 합니다.
목사직분을 포기할 정도로 기독교에 대해서 깊은 생각이 있으시다면
난 그 글을 읽고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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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81.49.145.204)
2007-02-27 22:37:24
종교개혁가들 역시 그시대의 반동역할 뿐이 었다.
루터나 칼빈이나 종교개혁가들 역시 그 시대의 타락상에 반대하여 일어난 역사의 반동일뿐입니다.
어느시대에도 영원히 변할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것으로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루터는 결국 독일의 농민들의 저항을 진압 학살하는데에 동조하여 다시 영주들의 손울 들어주는 반쪽 개혁, 결과는 성서의 개혁정신을 개인내면으로 끝내버렸지요.

칼빈의 종교개혁도 결국에는 다시 개신교 귀족화(선택교리)를 초래하여 영국 기독교의 부패를 웨슬레가 깨웠지요.

'종교개혁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라고 물으시지만 그렇게 물으시기보다는
현 한국교회의 가르침과 성서해석과 설교를 본인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먼저 물으심이 옳지않겠는가 라고생각을합니다.

또한 '성령으로 감동으로 쓰여진것이 성서' 이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요한복음과 디모데 서의 표현이며,
성서는 하늘의 정신으로 쓰여졌다는 주장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생각이 없이 성령이 따로 존재합니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귀있는자들은 들을찌어다' 라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그것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이며, 상식과 생각을 옳게 가지면 알아듣는 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진실, 진리, 순수, 에서 시작되는 신의 깨달음 이 성서이며 복음의 진리라는것을 이해하지못하고
특별한 종교적 용어로 믿어지는 믿음이 기독교는 결코 아닐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과 사고로 믿는것은 성령과 충돌되고 반한다' 라는 논리는
너무 급하게 가따붙여 논리를 펼치는것은 위헙합니다.
왜냐하면 생각과 사고를 떠난 성령의 역사는 거짓이나 망상, 자기착각, 억지주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서의 기록이 때로 그렇게 연속성이끊긴채로 성령의 역사라고 표현이 되었어도 잘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성서가 그렇게 기록되었다고 그것을 이용하여 남을 말을 '그것은 생각이고 정신이다, 성령이 아니다' 라고 사용하라는 말씀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욕심에 잡혀있고 욕심의 사상이 되었을때 '그것은 '성령이''성령의 생각'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사상, 타종교 가 그것이 단순이 성서가 아니기때문에 성령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속에 진리가 담겨있는가를 보고 판단해야할 것 입니다.

이미 성서 자체도 긴세월속에서 수많은 책들을 추려서 정경화 한 것이기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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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문 (124.80.223.224)
2007-02-27 22:10:04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의 신앙고백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며 인간의 신앙고백입니다. 신앙고백은 자기의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과학도 우리의 생활 속에 있는 하나이기 때문에 과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볼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7일만에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인간의 신앙고백으로, 성경을 기록할 당시의 과학관에 의해서 기록한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궁창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기록한 분이 당시의 과학관을 반영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음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시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현대의 과학으로 사람들에게 설명했다면 한명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번째 목적은 사람들의 생명이며, 어떤 현상을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어서, 당시의 과학적인 생각을 단지 빌려서 말씀하신 것이지요.)

여기에서 몇가지의 결론에 다다랄 수 있습니다.
첫번째로 성경과 과학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두번째로 성경에 쓰인 비과학적인 말씀들을 현대의 사고로 다시한번 음미해보아야 합니다.
세번째로 성경에는 분명히 인간의 이야기가 아주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이해없이는 성경을 쓰지 않으신다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네번째로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성을 통해 알 수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으로 알 수도 있습니다. 이 분별의 능력위해 우리는 늘 기도와 성경을 묵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가글 1: 저도 구약과 신약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스라엘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풍습과 생각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추가글 2: 사람을 너무 비난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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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3
태엽감는새 (152.99.132.13)
2007-02-27 12:38:06
물론 이제는 들어오지 않겠지만,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알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장 39절.

신약과 구약은 바로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 하고 계시다고 예수님스스로
말씀 하신 부분입니다.
적어도 이곳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계신분들은 어떤 부분이 더 예수님께
합당한 모습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할수 있지만,좀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서,
판을 깨보겠다는 아니 판을 깰수도 있지만 그래서 재 창조할수도 있지만
무었을 바탕으로 다시 세우실 것인지도 같이 말씀해 주세요.
종교개혁을 하시 싶으신가요?. 루터나 칼빈이나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스스로의
정신이나 생각으로 접근했다면 그건 종교개혁이고 뭐고 아무것도 이룰수
없었을 것 입니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하나님앞에 설 그 때가 올텐데, 주님은 무엇으로 우리를
심판하실까요? 우리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생각과 정신으로 우리를
심판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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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3
믿음 (211.111.214.148)
2007-02-27 11:39:23
진지하게 생각하기전에
진지하게 생각하기전에 성경말씀을 단순히 역사서로 성령의 감동이 아닌 사람의 기술서로만 보느냐 하나님이 계시하신 말씀으로 믿느냐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이 깨달음을 주시지 못한다면 아래분 말씀처럼 갖가지 의문이 생기고 결국 성경도 역사서나 맹자 논어 불경등의 경전,교훈서의 하나쯤으로 밖에 진지하게 생각될수 밖에 없죠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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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4
목사 (82.126.228.153)
2007-02-27 10:42:33
훈수는 두지 말자.
밑에 훈수 두시는 분은 훈수는 다른데서 두시고 여기서는 진지하게 생각하시며 사고하시는 것이 좋지않을 까 생각합니다.

님에게 몇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신앙을 가진자들이 님과 같은 생각에 있기때문에 위의 기사를 읽고 더 충만해지지못하고 불안에 떨기 때문입니다.

물음 1) 님께서는 아래 말씀하신 내용처럼 님이 가진 신앙이란,
그러한 과학으로 말할 수 없는 사실이 정말 물리적으로 일어 났기때문에
그 일어난 사실때문에 하나님(존재등등)을 믿는것입니까?

만일, 그래서 믿는다고 대답을 하신다면

님의 신앙은 신기하게 벌어진 사실때문에 믿음이 생긴다는 말씀입니까?

물음2)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으로 변했다' '경수가 끊어진 사라가 아들을 낳았다'' 40년동안 만나를 먹였다'등 이러한 이야기가 정말 사실로 일어난 이야기로 믿음으로 그 내용들이 의미적인 표현으로는 믿으려하지않고 사실 사건으로만 일어난 일로 주장하여 하나님증명을 꼭 거기서 찾습니까?

예 1), 소돔과 고모라 사해 근처에 사람비슷한 크기의 소금기둥들이 있으므로 역 추적하여 이야기 형식으로 후대 사람들에게 교훈적인 이야기를 만들려고 쓰여진 이야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예 2) 사라가 경수가 끊어졌는데 아들을 낳았다면 꼭 그렇게 경수가 끊어졌는데 아이를 낳았다는 데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합니까?
그럼 님께서도 100세가 다되어 한번 실험해 보겠다는 생각 해 보셨습니까?

오히려 그 본문은 당시에 초목지를 찾아다녀야 했던 제국들 틈에서 희망이 없는 유목민 들에게 아들이라는, 미래를 얻는다는 희망의 상징으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에게 희망을 이어주었다는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희망,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예3)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고 시간이 지나면 흙이 되는 것을 먼저 알고 꺼꾸로 흙으로 지어졌다고 '이야기로 기록 한 것이다'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예 4)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 40년을 광야에서 먹였다는 것은 의미적인 이야기로 후대에 이스라엘백성들이 자신들의 처음을 이야기하고 고백하려고 그렇게 광야에 방황의 기간을 통해서 우리민족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말하려고하는 하나의 이야기 형식인 것이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의 능력이 뭡니까?
하나도 님과 같이 믿는 기적은 없습니다.
저는 위의 성서내용을 님처럼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님처럼 위의기사로 신앙이 사라진다는 위기감도 느끼지 않습니다.

꺼꾸로 우리한국 교인, 혹은 보수라고하는 신앙인들 모두가
성서를 좀 깊이 생각하지아니하고, 성서의 언어가 뭘 말하는지 생각지 아니하고
무댑보로 가르쳐온것을 신앙으로 착각하고 그렇게 믿어왔기때문에 울렁거리며 급체하고 마는 것입니다.

솔직히 님과 같은 신앙은 신앙도 아니며, 맹종이며, 우상이며, 억지 입니다.
그것은 좀넓게 생각하며 현재의 삶 복판에서 성서의 정신을 포착해 내려는 사람들의 수고를 파괴하려는 아주 악질적인, 사단의 장난과 성숙하려하지 않는 미숙아이며 게으름뱅이입니다.
조금도 고민을 하지않는 나태한 자입니다. 혹시 새벽기도는 할지언정 잠든자 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깨어야 하고, 성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구약과 신약, 심지어 모두 폐기할수도 있지 않겠는가? 라는 발언은
문자에만 억매여서 신념화 하며 그것이 신앙인양 착각하는 것에 대한 반론으로 생각됩니다.

구약, 신약 을 기록한 사람들은 그시대의 세계관과 시간이해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시대의 사고이해관으로, 그시대의 언어로 기록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성서의 한계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속에 담긴 정신, 영을 발견하고, 포착하고,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구약의 폐기는 인간권리, 자유, 평등 사상과 인류의 양심을 깨운 예언자 정신이 사라진다고 보여 집니다.
그렇다면 자칫 우주를 떠도는 영을 추구하는 것으로 인간개혁의 지평을 놓치게 됩니다.

하긴, 이미 모든것이 사라져도 진리는 이미 있었고, 있을 것이며, 추구될것이기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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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4
훈수두는자 (121.142.65.104)
2007-02-26 20:21:34
하나님의 능력은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류상태님은 “한기총 사람들에 대해서는 솔직히 할 말을 잃는다. ‘성서는 신앙의 눈으로 봐야지, 과학의 눈으로 보면 열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과학으로 한번 설명해 보십시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였다는(창1:1,요1:1-3) 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을(창2:7) 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사람)를 만드신 것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경수(월경)가 끊어진 사라가 아들을 낳은 것을 의학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천사가 존재한다는 것을(창19:1) 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멀쩡한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것을(창19:26) 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하늘에서 맛나가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이나 먹이신 것을(창16:13-35) 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이와 같이, 성경에는 과학이나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은, 과학이나 의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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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
훈수두는자 (121.142.65.104)
2007-02-26 19:37:01
"성서(성경)를 고전 가운데 하나로 보자"라고요?
류상태님이 “언젠가 김(김경재) 교수님은 ‘이제는 성서를 여러 고전 가운데 하나로 보자.’고 말씀했던 적이 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김경재 교수라는 분은 참으로 믿음이 없는 분 같습니다.
이런 분이 신학교의 교수로 있으니, 이 분의 가르침을 받은 신학생들의 믿음 또한 알 것 같습니다.

신학교의 교수라는 분이 얼마나 믿음이 없으면 “성서(성경)를 고전 가운데 하나로 보자”라는 말을 하였겠습니까?
우리나라 기독교 신학교수들의 신앙 상태와, 신학교의 신앙 수준이 적절하게 표현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여!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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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4
훈수두는자 (121.142.65.104)
2007-02-26 19:19:28
기독교인의 탈을 쓰고서 어떻게 이런 참람한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류상태님께서는 “지금 한국 교계에서는, 구약 뿐 아니라 신약도, 예수도, 하나님마저도 철저히 종교장사꾼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 이런 실정이라면, 모두 폐기처분하는 게 차라리 옳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부패하여 하나님 앞에 그릇된 신앙을 하고 있다면, 기독교인들이 폐기처분되어야 마땅한 것이지, 어떻게 성경 말씀(신구약)과 예수님과 하나님이 폐기처분되어야 한다는 참람한 말을, 기독교인의 탈을 쓰고서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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