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갓랜드》 (Vanskabte Land/Volaða Land, 2022)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4년 05월 06일 (월) 23:16:24
최종편집 : 2024년 05월 07일 (화) 12:36:10 [조회수 : 81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갓랜드》 (Vanskabte Land/Volaða Land, 2022)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때는 19세기말, 젊은 루터교 신부 루카스는 교회를 짓는 사명을 받고 아이슬란드로 떠난다. 루카스는 배로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사역지를 굳이 땅을 가로질러 가는 선택을 한다. 길은 말 그대로 끝도 없이 광활하고 험하기 짝이 없는데 말이다. 그가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이 땅을 자세히 보아 알고 싶고,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루카스는 사제인 동시에 전문적인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루카스는 무겁고 거추장스런 촬영도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길의 끝까지 지고 나른다. 하지만 그를 사역지까지 인도할 아이슬란드인 길잡이 라그나르는 루카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라그나르는 길잡이로서는 최고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 루카스의 눈에 그는 거칠고 무식하고 불경하다. 그는 사역지까지 날라야 할 십자가를 처음 보고는 크기와 무게가 여행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 반으로 썰어서 가져가자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인간이다. 길을 가는 동안 라그나르와 루카스는 사사건건 부딪치기 일쑤다.

그런데 왜 덴마크의 사제가 아이슬란드에 교회를 지으러 가는 것일까? 여기에는 19세기까지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관계가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때까지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것이다. 즉, 영화는 마치 수도자의 긴 구도의 여행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식민지 땅에 교회를 세우러 가는 제국주의 선교사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덴마크와 아이슬란드는 언어가 다르다. 그러니 제국주의 선교사에게는 당연히 통역사도 필요하다. 이런 배경 하에서 영화는 시작과 끝에 의도적으로 영화의 제목을 두 번씩 보여준다. 첫 번째는 덴마크어로, 두 번째는 아이슬란드어로.

끝없이 펼쳐지는 광대한 자연을, 하지만 결코 인간 친화적이지 않은 대자연을 통과하면서 루카스는 마치 광야에서의 예수님처럼 점점 시험에 빠지게 된다. 신앙인들이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알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 있는데 그것은 신앙에 있어 최후의 시험은 언제나 사람의 시험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도 포함시키는 이 사람의 시험은 거의 이길 수 없는 시험이다.그리하여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넘어지고,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신앙을 떠나기도 한다. 이 무서운 사람의 시험을 루카스도 통과해야만 한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땅을 알고 기록하고자 했던 그의 마음은, 그리하여 그렇게 무리한 길을 택해 여행을 감행한 그의 시도는 사역을 위한 선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을까? 여행의 과정 속에서 라그나르를 향한 멸시와 적개심은 루카스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파멸시켜간다. 그런데 그의 멸시는 온전히 라그나르의 인격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식민지인을 대하는 정복자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끼어든 때문은 아닐까?

죽을 고비를 넘겨 마침내 사역지까지 도달하기는 했으나 루카스의 영혼은 이미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고 회복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자신 앞에서 죄를 고백하며 고해성사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보인 루카스의 태도는 그의 영혼의 상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집을 짓기 위해 그곳에 왔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이 과연 갓랜드, 신의 땅일까? 덴마크어와 아이슬란드어로 표시된 영화의 원제는 Godland, 즉 신의 땅의 아니다. 원어의 제목은 현재 아이슬란드 국가의 작사가이기도 한 아이슬란드의 시인 마티아스 요큄손의 시에서 따온 것으로서 ‘일그러진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버림받고 기형화된 비참한 땅, 인간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곳을 신의 땅으로 만들 수도 있고 일그러진 비참한 땅으로 만들 수도 있다. 실로 무서운 일이 아닌가. 모든 것이 은총이라는 고백이 아니고서는, 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서는, 우리의 모든 시도와 노력이, 심지어 신의 땅을 만들겠다는 노력까지도 오직 버림받고 기형화된 비참한 땅을 만들어낼 뿐이라니 말이다.

이진경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