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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는 어느 정도 사실인가젊은 연예인의 이어지는 자살 소식에 충격을 받으며
김동학  |  lovekorea0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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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2월 12일 (월) 00:00:00 [조회수 : 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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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당시 25세)씨가 재작년 2월22일 자살했을 때만해도 당시 젊은이들의 자살은 그래도 생소했다. 더러 자살 사이트들을 통해 죽음을 동경하는 대학생들이나 청년층의 행동을 보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유니라는 젊은 연예인의 자살 때도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하고'굳이 충격의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정다빈 양(27세)의 자살을 통해 나는 1974년 미국의 필립스라는 심리학자에 의해 조어(造語)된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주인공 베르테르가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하다가 권총으로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장국영의 자살로 홍콩이 들썩거렸다

난 중국을 다녀오면서 홍콩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내용은 잘 몰랐지만 유명한 홍콩 액션 배우였던 장국영이 자살한 일로 떠들썩 했던 모양이다. 태국에 있을 때도 부족한 것이 없었던 유명 여배우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뉴스를 유심히 보았다. 얼마 전 미국의 섹스 스타 안나 니콜스의 죽음도 자살이었다.


자살의 심리학

결국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인간의 한계 상황은 마지막에는 자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직도 앞 길이 창창한 이 젊은이들을 죽음의 행렬로 몰아넣는 실체는 무엇일까? 이은주도 유니양도 정다빈양도 모두 기독교인이었거나 적어도 가족들이 모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유니양은 가족들이 교회로 간 사이에 사망했고, 다빈양은 전 날 미니 홈페이지에 주님이 오셨다고 기록하면서 아직 의문은 남지만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고 싶다고 남겼다. 어떻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도록 창조주 하나님이 방조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이어지는 젊은이들과 유명인들의 자살에는 분명 개인의 의미를 넘어서 '사회적인' 메세지가 담겨 있다.

자살은 죄?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죄로 정죄하고 있다. 예수를 배반한 갸롯 유다의 경우를 제외하면 성경에서 자살은 사람을 창조하고 부모를 내신 하나님과 '생명'에 대한 반항이므로 '죄'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은주나 정다빈처럼 어떤 특별한 주목받는 이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끊기까지 고민한 데 대해서 뭉뚱그려서 정죄하기가 참 어렵다. 청주의 한 목사님이 전에 설교에서 '오죽했으면 자살을 했을까?'라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살하는 이들을 이해하는 차원에서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일본에서는 기업가들이 신의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할복'-배를 가르는 자살-을 했고 조선 말기 충신 민영환등은 조국의 운명을 비통해하며 배를 갈랐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13장에서 가장 최고의 은사를 언급하며 '사람이 자기 몸을 불사르게(분신 공양, 분신자살)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요한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쓰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이셨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으셨다. 정말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자살은 인간이기에 연약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우리가 생명되신 주님을 끝까지 신뢰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일단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라고 믿는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자신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 따라서 저질러지기 쉬운 '모방 자살'-베르테르 효과-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생명되신 주님을 의지하고 '살자'라고 외치며 순명(順命)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죽이는
겸손이며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풍토가 아쉽다. 그리고 경쟁과 인기, 상업주의와 물질주의의 연예계 풍토가 변하지 않으면 어쩌면 순수한 우리 딸들이 계속 희생당할 지도 모르는 일이니 교회가 바로 가르치고 목회자와 지도자들이 바르게 인도해야 할 것 같다.


은주, 유니,다빈양이 주님이 계신 곳에서 편안히 쉬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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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씨께 (211.221.212.230)
2007-02-13 05:46:50
직접 지우세요.
당신의 글을 지우고 싶었습니다. 남의 글을 지울 권한이 없지만 그래도 지우고 싶었습니다. 그 만큼 당신의 글이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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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61.41.60.21)
2007-02-13 02:48:49
?
"은주, 유니,다빈양이 주님이 계신 곳에서 편안히 쉬기를 기도하면서.."

위 글 본문에서 인용했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게 되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불가능한 일로 사료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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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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