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밥일지>, 천현우, 문학동네, 2022)

“냉소하지 맙시다. 자신과 일상, 동료들과 일, 오늘과 내일을 진심으로 사랑하십시다. 내 주변의 내가 의식한 모든 것들이 우연이고 행운이며 이를 소중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내 삶의 주체가 오롯하게 나가 되고, 그때가 되면 반드시 행복은 따라옵니다.”(273)

  한 번뿐인 인생이다. 100세 기대인 까닭에, 제2의, 제3의 인생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또 이중직, 삼중직으로 살기도 하지만, 젊었던 날을 돌아보며,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꼭 후회나 미련이 남아서는 아닐 것이다. 간접경험만으로 불충분한 까닭이고, 전혀 다른 인생길을 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까닭이다. 언젠가 목사가 아니면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공장노동자라고 답하며,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라는 말을 덧붙인 적이 있다. 천현우의 <쇳밥일지>를 읽은 후, 그 말이 얼마나 부박한지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천현우의 10대는 유복한 어린 시절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위 ‘정상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 남들보다 일찍 생계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빚쟁이가 되어 외상질도 해보았고, 임금을 떼이기도, 누군가의 심각한 산재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동일한 노동을 하지만 하청직원이라는 이유로 정직원에게 차별당하기도 했다. <쇳밥일지>는 그런 날 것 그대로의 증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회사는 잔업 근무자를 위한 통근 버스 따윈 없다. 휴게실도 샤워실도 열어주지 않는다. 땀에 찌든 옷을 입은 채 걸레짝이 된 몸으로 버스에 오른다. … 열심히 일했다는 자부심 따윈 느낄 새도 없다. 버스 안 모든 승객이 기름내와 용접 ‘흄 fume’ 냄새 풍기는 나를 불쾌하게 여길 것 같아 불안하다. 이 인 좌석 구석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기대는 동안, 만원 버스임에도 누구도 옆에 앉지 않는 현실에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 세상은 그저 냉소로 회답한다. 넌 흙수저 주제에 노력도 하지 않았잖아?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던가.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는 발언이 될까 조심스러운데, 천현우의 인생이 마냥 불우한 것은 아니었다. 흔쾌히 외상을 받아준 식당사장, 가장 고단했던 시절 그의 곁에서 독서와 글쓰기의 열망을 지켜준 친구, 또 노동자로서의 긍지를 일깨워준 포터 아저씨. 저자는 <쇳밥일지>라는 바위에 자기가 받은 은혜를 새겼다. 

“승자독식에 의문을 느끼고 저항할수록 나의 초라함만 되새길 뿐이란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 그리 생각하면 세상만사가 일목요연하고 질서정연해졌다. 체념하면 모든 게 편할 텐데, 오히려 ‘우리가 훨씬 대단하거야’라니. 확신에 찬 그 목소리가 참 멋지다고 느꼈다.”(117)

  부유한 사람이 부러울 때가 많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인 까닭이다. 인생에 돈이 전부가 아님을 믿지만 우리들은 자주 미끄러진다. 흔들릴지언정, 비틀거릴지언정, 주체적으로 나만의 인생을 영위하며, 자기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쇳밥일지>는 죽비가 되어 혼탁해지는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줄 것이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