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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첫 찬송가, “찬미가”(1892년)!-“한국인들의 심성에서 솟구쳐 오르는 가락으로 찬송할 수 있어야”-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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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4월 16일 (화) 12:08:49
최종편집 : 2024년 04월 19일 (금) 23:01:35 [조회수 :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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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첫 찬송가, “찬미가”(1892년)!

-“한국인들의 심성에서 솟구쳐 오르는 가락으로 찬송할 수 있어야”-

노 종 해(CM 리서치)

   
▲ 필사본 찬미가(1892년)-사진 출처:한국기독교 박물관

한국 기독교의 첫 찬송가(讚頌歌)는 감리교에서 1892년 발행된 “찬미가”로 조원시(趙元時.George H. Jones.1867-1919)와 로드와일러(Louise C. Rothweiler.1853-1921) 선교사가 편집한 필사본(筆寫本) 찬송가이다. ​

이 “찬미가”는 “미감리회년환회”(연회) 발행으로 순 한글로 악보 없이 당지(唐紙) 39매(枚)에 30장으로 수록된 찬송가이며, 초기 선교 착수 때부터 교회와 학교, 병원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에서 불러진 찬송이었다. 두 번째 찬송가는 언더우드(H.G. Underwood)의 “찬양가”로 1893년에 발행되었다.​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은 열정적으로 찬송 부르기를 즐거워하였다. 또한 이들은 새롭고 낮 설은 한국 문화에 접할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북돋는 길은 찬송하는 것이었다. 찬송과 기도와 성경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로써, 복음 선교는 기도와 함께 찬송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펜젤러의 “일기”에 보면 1887년 부활주일(4월10일)이 지난 다음날 4월 11일(월) 자 일기에, 찬송과 말씀 증거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이미 예배와 기도회 모임 때 회중이 함께 부를 뿐만 아니라 특별 찬송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가대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경건하게 불렀다. 나는 '어떤 자가 묻는다,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삽니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본문은 고린도 전서 15장 35절이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설교였다. 요점은 우리가 무덤에 묻힌 그 몸 그대로, 그 부분 하나가 다시 산다는 것이다.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리는 전달했다.”](참조-아펜젤러 1887년 4월 11일 일기.)​

한국인들의 은밀한 예배에서 공개하여 예배드리기 시작한 1887년도에는 한글 성경 번역이 시작되었고, 예배 때 설교도 한국어로 설교하기 시작하였으며, 찬송도 힘차고 아름답게 불렀다. ​

이러한 사실은 아펜젤러 “일기”(Diaries)에도, 1887년 성탄절(12월 25일) 예배에 “예식서”를 사용하였고 “첫 한국어로 설교하였다” 하였으며, 예배 순서에 찬송이 2번 들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즉​

[“교회는 만원이었고 예식서에 따라 예배를 드렸는데 길모어가 사회를 보았다. 설교는 매우 짧았으나 핵심적이었다.

​오후 2시 첫 한국어 설교를 하였다. 큰 사건이었으므로 설명을 해야겠다. 내기 직접 쓴 것 을 아니고 권서인 최 씨(최성균)에게 내 생각을 말하면 그가 한국어로 옮겼다. 그렇게 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한국어 설교한 것이 몹시 기쁘다. 본문은 마태복음 1장 21절로,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설교문을 그대로 읽었지만 영적인 의미를 최대한 살렸다. 예배는 다음과 같은 순으로 진행되었다.

​["1. 세례(김명옥), 2. 찬송, 3. 스크랜턴 박사의 기도, 4. 마태복음 2장 낭독, 5. 누가복음 낭독(스크랜턴), 6. 설교, 7. 주기도문, 8.“하나님께 더 가까이”, 9. 축도.“](아펜젤러의 “Diaries”, 1887년 12월 25일.)

   
▲ 조원시 선교사와 로드와일러 선교사

실제로 선교 초기부터 선교 학교인 배재학당(培栽學堂), 이화학당(梨花學堂), 구세학당(救世學堂) 등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 성경 말씀과 찬송을 가르쳐 왔고, 선교 병원(病院)에서 선교사를 돕는 한국인들과 환자들에게 찬송을 불러주며 가르쳐 주었다.​

특히 메리 스크랜튼(M.F. Scranton) 선교사는 1885년 여성해외선교회(WFMS) 보고서에서, "오르간"(Organ)을 요청하였고, 그의 첫 학생들에게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 일세” 같은 찬송을 가르쳤다.(M.F. 스크랜턴의 Annual Report of the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of the M.E.C.)​

한국 기독교는 1887년 이후 평양, 인천 등지에 선교를 확장해 나갔고, 1890년에 들어서서 전국으로 개척해 나가면서 예배 및 집회, 모임에 사용될 찬송가의 필요성을 절감케 되었다. 또한 복음 전파를 위해 한글 찬송이 필요하게 되었다. 

   
▲ 필사본 찬미가(1892년)-사진 출처:한국기독교 박물관

선교사들은 개별적으로 영어 찬송을 한글로 번역해서 사용하였지만 한글로 찬송 시(讚頌詩)를 번역하였지만 한글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심정과 문화를 이해치 않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때에 음악을 전공한 마거릿 벤겔(Miss Margaret Bengal) 양이 1890년 선교사로 내한하여 이화학당에서 1891년부터 성악(聲樂)과 오르간(Organ)을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인천 영화학교 개척 설립하고 교사로도 교육전도 하였다. ​

이때 이화학당에는 한국인 최초 여교사(女敎師)이며 전도부인(傳道婦人)인 이경숙 선생이 1889년 4월부터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

조원시 선교사는 1887년 20세 때 내한한 선교사로써 배재학당에서 가르며 전국을 다니며 순행 전도하였고, 특히 제물포 지방을 개척 전도한 분이다. 벤겔 선교사는 1892년 조원시(G.H. Jones) 선교사와 결혼하였다.​

조원시 선교사와 로드와일러, 벵겔 선교사는 최병헌(崔炳憲) 선생과 이경숙 선생 등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영어 찬송 30여 곡을 선택하여 한글로 번역하였고, 1892년 최초 찬송가인 “찬미가”를 감리교 출판사(삼문출판사)에서 발행한 것이다. “찬미가”는 배재학당장인 조원시와 이화학당장인 로드와일러의 공동 편집으로 발행되었다.

   
▲ 찬미가 표지와 목록(2판, 1895년)-사진 출처:한국 교화 역사자료관

한국 최초 찬송가인 “찬미가”는 그 서문(序文)에서 “한국인들의 심성에서 솟구쳐 오르는 가락으로 찬송할 수 있도록 한국인 찬송가 작곡 작사가들이 나와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

이는 번역된 찬송 시(讚頌詩)의 표현에서 불완전성을 절감하였기 때문이다. 찬송만큼은 “한국 백성들 틈에서 그들 마음 그대로 솟구치는 가락”으로 노래할 수 있어야 함을 깨달은 것이다. 이점은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서도 눈여겨보고 유의해야 할 점이다.​

“찬미가”는 1892년 최초 한글 찬송가로 발행된 이후 중판하였고, 개정 증보를 거듭하여, “찬미가” 제3편은 81곡 수록(1895년), 제4편은 90곡 수록(1897년), 제5편은 176곡 수록(1899년), 제6편은 205곡(1902년)을 수록하였다.​

오늘 우리는 첫 “찬미가”의 서문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인 마음에서 솟구치는 가락”으로 작곡 작사된 진정한 ”한국 찬송가“는 이제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rch)

 

<"찬미가", 목록과 가사(2판, 1895년)>

   
 
   
 
   
 
   
 
   
 
   
 
   
 
   
 
   
▲ 오늘날 한국교회의 회중 찬양-한국인들의 심성에서 솟구쳐 오르는 가락으로 찬송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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