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사상, 하나의 철학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이(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사회>, 오구라 기조 지음, 조성환 옮김, 모시는사람들)

(<K-사상사>, 조성환 저)

흥미진진한 철학서 두 권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개념과 문장을 분석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철학서가 아니라 지하철에서도 읽을 수 있는 흥미 외에 재미와 의미 또한 충분히 안겨주는 철학서다. 하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이(理)와 기(氣)로 해석한 한국사회>(오구라 기조)이고, <K-사상사>(조성환)이다.

결론적 느낌부터 말하자면 오구라의 책을 통해 한국사상을 비로소 처음 밖에서 객관적으로 알게 되었고, 한국 유학(성리학)의 본질과 기능을 평이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우주선에서 지구를 객관적으로 본 것과 같은 엄청난 충격과 효과다.

1장. 한국사회의 특성은 지독하게 도덕 지향적인 나라이다. (17항목으로 다룸)
2장. 사회적 자기 상승을 향한 열망은 늘 불야성이다.(21항목)
3장. 理氣를 생활공간에서 푼다(25항목)
4장, 문화체계를 理氣로 푼다(37항목)
5장. 사회구조를 理氣로 푼다(32항목)
6장. 경제, 정치, 역사를 理氣로 푼다(46항목)
7장. 한국 理氣의 세계를 일본과 비교한다(33항목)
무려 211항목으로 한국사상, 역사, 사회, 문화, 정치와 경제를 理氣로 분석한 셈이다. 8년의 유학 경험을 통해, 이렇게 세세하게 분석할 수 있는가, 일본문화의 섬세함을 느낀다.

이 책은 일본에서 27년 전인 1996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7년에 번역되어 그동안 7쇄가 되었다. 오구라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동태와 변화를 기술할 수 있는 개념으로 ‘리’말고는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나의 개념, 그것도 가장 추상적이고 난해한 개념 ‘리’로 복잡한 한국 사회의 동태와 변화를 기술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기적과 같은 일인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의 <비참한>!! 유학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였다. 이방에서 온 이 탁기(濁氣)의 ‘놈’(‘놈’은 ‘님’의 반대개념) 연구실 한쪽 구석에서 벌레처럼 몸을 웅크리면서 오로지 주자학에 침잠하고 있었다.” 그다음 기상천외의 발언이 이어진다. “주자학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었다.”

‘리’는 도덕성이고 ‘기’는 물질성이다. ‘기’(물질성)가 차고 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위기나 사회의 변곡점에서 ‘이’(도덕성)가 나타나 ‘기’를 확 꺾어놓는다. 일본의 이기와 비교한 부분에서 한국 사회의 특성이 잘 보인다.

“일본은 ‘리’가 잘게 분해되어 있어 하나 하나의 ‘기’에 깃들어 있기 때문에 잡다한 것을 깔끔하게 분류, 정리하며 사람들,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한다. 한국은 강한 ‘리’가 <욕망=기>을 교화하는 데, 그 교화로부터 벗어나고 배제되어 거리로 쫓겨난 <욕망=기>은 ‘리’의 제약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한다.”(66)는 것이다.

이 책의 역자이며 『K-사상사』의 저자 조성환 교수는 한국 사상(철학)을 찾는데 30년이 걸렸다고 회고한다. 그것은 <지구학>의 덕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100년 이상이 걸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서양학문과 한국학의 단절은 100년이 넘기 때문이다. 조성환 교수의 다음 두 가지 비판에 매우 공감한다. “오늘날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유교 연구는 조선이라는 시대와 중국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현대 한국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잘 와 닿지 않는다” 오늘의 문제의식을 담지 못했기 때문에 푸는 데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고전의 번역과 주석에 그친다. 해석과 비평 및 실천의 원천이 되기를 바라는 목마름에 애간장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비판 둘, “(한국인은) 자국의 역사에 대해서조차 직시하지 못한다. 대상(=한국)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내재적으로 자국을 이해하려고 하는 소수의 성실한 언설은 부당하게 무시되거나 경멸되고 있다. 그런 식으로 한국을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  자기를 보기보다는 남(=외국/서양, 미국)을 보고 싶어 하는 한국인, 모든 좋은 사례는 외국에서 가져오려는 한국인 등등.”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설교 예화도 미국 등 서양에서 찾는다. 그래서 조성환은 호소한다. “아니, 한국에도 좋은 사상과 철학과 종교와 문화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양(사실 미국일변도)만 보지 말고 한국에도 눈을 돌려주세요!”

오구라 기조가 理氣를 다루면서도 理주도적, 氣종속적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했다면 조성환은 ‘氣’ 중심으로 전개한다. 한마디로 “기학의 귀환”이다. 조성환은 기후위기 시대에 등장한 인류세의 철학을 ‘인류세의 기학’으로 보고자 한다. 

인간의 행위 뿐 아니라 사물의 행위를, 인간의 위상은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새로운 사실, 사물의 위력을 인식하자, 정치의 지구적 확장, 그래서 지구정치학, 지구 대신 ‘행성’의 대두, 근대의 종언과 자유의 제한과 자연의 부상, 생명평화학의 제안.

조성환이 인용하는 철학자들은 최근의 인류세 철학자들, 사변적 관념론, 신유물론으로 분류되는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브뤼노 라투르, 파울 크뤼천, 한나 아렌트, 플럼우드, 제인 베넷, 토마스 베리, 퀭텡 메이야수, 티머시 모턴... 등이다.

조성환은 이들의 문제제기를 최한기의 기학과 동학을 통해 응답하고 인류세의 기학 내지는 신(新)기학의 이름으로 한국철학을 계승하고 변혁하려 한다. 그래서 그의 K-사상사는 세계철학과 대등하고 신선하다. 그러나 조성환도 인정하듯이 서양의 인류세 담론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치중했다. 기학이든 동학이든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식을 그 안에서 제기하고 고유한 답변을 시도해야 하는 크나큰 과제를 한국 철학(사상)은 떠맡고 있는 것 같다. 

심광섭 목사(경기연회 색동교회 소속; 조직신학/예술신학/K-기독교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