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봄비는 금비’라 하였다. 봄비가 내리면 수자원 확보, 대기질 개선, 산불 피해 예방, 가뭄 피해 경감 등의 4가지 측면에서 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물이 넉넉하고 공기가 맑고 가뭄이 해갈되면 그만큼 그해 농사도 풍족해지는 결과를 얻으니 어제오늘 내리는 비는 분명 금비다. 4월 초순부터 여기저기서 얻어다 심은 꽃들이 이번 비로 쑥쑥 자랄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특히 비탈 여기저기 쓸려내려오는 흙을 방제하려고 꽂아놓았던 개나리와 라일락이 이번 비로 활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니 기분이 더 좋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사는 곳은 물이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 내가 물을 얻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관정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파 내려갔어야 했고, 물탱크도 더 큰 것으로 묻었어야 했는데 처음 지하수 공사를 할 때 경제적인 면과 환경적인 면에 여러 제약이 있어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물 절약 겸 원활한 식수 공급을 위해서 빨래는 훈련원 사무실을 이용한다. 상하수도의 편리가 이럴 때는 매우 부럽다. 지난 11월부터 현재까지 6개월 동안 물공급이 어려웠던 적이 두 번 있었다. 물탱크에 물을 받는 센서가 멈춰 한밤중에 수도가 멈춘 것이다. 이럴 때의 당혹감과 난감함은 아직도 스트레스로 남아있고 앞으로 계속 그럴 것이라는 예측은 일상에서 늘 품고 살아야 하는 불편함이기도 하다. 

이런 시절 속에 살고 있지만 어제오늘처럼 비가 한껏 내릴 때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로 눈과 귀가 시원하다. 평소에는 건천이 되었다가 비가 내리기만 하면 마치 깊은 산속 폭포 아래의 선녀 같고, 계곡의 산지기와 같은 기분에 취한다. 이럴 때는 물 부족이라는 불안감에서 살짝 비껴난다. 그리고 힘차게 흐르는 저 물을 어떻게 하면 받아놓고 사용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린다. 실행에 옮기려면 힘과 패기와 시간과 돈이 들긴 하지만 흐르고 사라지는 빗물이 그리 아까울 수가 없다. 흐르는 물을 가둘 수 없다면 떨어지는 물을 모을 수 있다. 그렇게 하여 지금 처마 아래에는 크고 작은 수조통이 여러 개다. 앞으로 더 갖다 놓을 판이다. 이렇게 모아진 물은 텃밭을 가꾸는데 사용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을 사용한다’는 말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궁하면 통한다’는 옛말이 세상 사는 이치이기도 하다. 

요즘 집과 사무실을 오고 가는 길이 꽃밭이다. 양옆으로 복숭아 농원이 있는데 연홍색의 꽃봉오리와 만개한 꽃이 환상적이다. 밝은 해 아래에서는 후광처럼 밝게 빛나는 모습이 신비롭고, 비에 젖은 모습은 더 짙은 연홍색을 띄어 아름답고 아련하고 슬퍼보이기까지 한다. 길가에 있는 연못 수면은 복숭아꽃과 벚꽃으로 가득 덮였다. 그 위로 비가 떨어질 때마다 꽃잎들은 흩어지기도 하고 길을 내기도 하고 연못 속으로 사라지다가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한다. 황홀한 그 길을 아침저녁으로 거닐고 있으니 나는 남들이 뭐라든 선녀가 되고도 남는다. 엊그제 이웃집에 놀러 온 여인들이 복숭아밭에서 한껏 멋을 내며 사진을 찍는 모습과 즐거운 말소리, 경쾌한 웃음소리는 봄의 흥을 한층 높여 주었다. 

이 비에 자연은 더욱 만개할 것이 분명하다. 파릇파릇 돋은 새싹은 금비 덕분에 더욱 활력을 얻어 춥고 황량하고 고독했던 땅이 언제 있었느냐며 한층 풍요롭게 채울 것이다. 그와 더불어 농부의 손도 덩달아 바빠질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는 만개한 복숭아 꽃이 농부의 눈에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꽃이다. 작년 이맘때는 냉해와 우박으로 과일들이 빛을 못 봤는데 속단하기 그렇지만 이번에는 꽃들이 그 어느해보다 풍성하게 피었다. 그 풍성한 꽃을 이제 곧 마구마구 솎아내야 한다. 그래야 더 크고 더 달고 더 실한 과일을 수확할 수 있다. 이웃에 사는 복숭아 농원 주인은 봄비이자 금비 속에서 복숭아 접을 붙이고 있다. 이번에 거의 천개 이상 접을 붙여 심었다고 한다. 어느새 봄볕에 그을린 얼굴에 노동의 수고가 가득하지만 자신의 일을 천명으로 여기며 묵묵히 손질하는 모습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농부의 바쁜 손길을 따라 나도 부지런히 움직이자. 

황은경/농촌선교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