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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설교는 안녕하십니까?
원형수  |  paul95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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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4월 07일 (일) 23:28:21
최종편집 : 2024년 04월 07일 (일) 23:28:59 [조회수 :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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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설교는 안녕하십니까?

역사적으로 전해 내려온 성경 해석방법은 4중적 의미의 해석입니다. 기독교 초기 교부 시대 3대 학파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오리겐이 데살로니가전서 5:23에 근거하여, 인간이 육과 영과 혼으로 되어 있듯이, 성경에도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 본문에 대해 ‘몸’은 문자적 의미, ‘혼’은 도덕적 의미, ‘영’은 풍유적(영적) 의미를 찾는다고 하며, ① 문자적, ② 도덕적, ③ 우의적 해석을 강조한 것인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여기에 ’영적(신비적)‘의미를 더하여, 4중적 의미의 해석으로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1) 4중적 의미의 성서해석

이 같은 4중적 의미의 성경 해석은 중세기를 거쳐 현재까지 성경 해석의 중요한 해석 체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 판단입니다만 아마도 한국교회 설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성경 해석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2020년 제10월 ‘코로나19 사태와 한국교회의 대응’이란 이름으로 기독 언론 포럼이 있었는데, 여기서 진단된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강조된 것은 “한국교회 가장 큰 약화 원인은 핍박이 아닌 윤리적 설교 때문”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습니다. “윤리적 설교가 난무할 때, 교회는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복음이 도덕과 윤리로 대체될 수 있다”라는 우려를 표명한 것입니다. 

이같은 우려는 오리겐의 성경해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리겐은 ‘강도만난 나그네’의 비유를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라 칭하며, 영적으로는 성경 전체의 구원 역사를 담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비유속의 행인은 '인류'를, 강도는 '사탄'을, 제사장은 '율법'을,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를, 여관은 '교회'를, 다시 오신다는 표현은 '재림'을 의미한다” 하며, 이 비유는 ”인간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선행을 하라는 실제적인 교훈을 제공하는 비유“라는 것입니다(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 김동주, 킹덤북스 2012-03-17). 

그러나 이 비유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도, ’선을 행하라‘는 비유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를 강도만난 나그네로 비유한 것이며, 율법사에게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고 하신 것은 “출교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그네를 도운 사마리아 사람처럼 네가 나를 목숨을 다해 도울 때 “영생을 얻으리라”(눅10:25, 28)고 하신 것입니다(요5:39, 20:31). 

저는 성경해석의 우려는 윤리적 설교뿐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자주의, 우화주의, 영해(신비)주의 역시 그 폐해가 심상치 않다고 봅니다. 제가 전문적 종교학자가 아니기에 조심스럽지만, 지나친 문자주의로 인해 파생된 교파가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으로 보며, 우화 주의자들은 베뢰아,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장막성전 등을 꼽을 수 있고, 영해 주의자들은 세칭 통일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해 주의자의 한 사례를 소개하면, 에덴동산을 사람의 ‘신체’로, 두 나무는 남자와 여자로, ‘동산 가운데’는 남자와 여자의 음부로, ‘따 먹었다’는 것은 ‘간음’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를 ‘영해’라 하여,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우화 주의 해석’ 역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베뢰아,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 장막성전 등의 성경 해석을 우화 주의로 비판하면서도 자신들 역시 이러한 유형의 성경 해석을 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다빈치 코드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듯이 성경 여기저기 코드를 맞춰 설교하는 형태 역시 그중 하나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4중적 의미의 해석은 이미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배척을 당했던 성경 해석입니다. 종교개혁가들은 중세 가톨릭교회에서 전통적 해석방법으로 전해져 내려온 4중적 의미의 해석을 배척하고, 안디옥 학파의 역사적 해석 방법론을 토대로, 성경 해석의 원리와 방법을 획기적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라는 모토 아래, ①오직 성경(Sola Scriptura), ②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③오직 은혜(Sola Gratia), ④오직 믿음(Sola Fide), ⑤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5대 강령을 성경해석의 원리로 제창한 것입니다. 저도 5대 강령을 제 설교의 성경 해석 원칙으로 삼습니다. 

다른 분도 그러하겠지만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관심사보다, “나는 성경의 본뜻을 제대로 깨닫고 그 의미를 제대로 대언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더 큽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판단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여 전달할 수 있는 약점을 가진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처럼 본문에 주목하게 된 것은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한 율법사와 예수님의 대화를 읽고부터입니다.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묻기를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읽느냐?”고 하신 것은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뜻으로서, 그 말씀의 의미는 “기록된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율법사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눅10:27)라고 답합니다. 이 대답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든지 간에 나는 그 모든 율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라고 답한 것입니다. 

여기서 ‘율법’이라는 이 단어는 613가지의 규정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율법(요7:23), 율법과 선지자(마22:40, 눅24:44) 등으로도 불리는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결국 구약성경 전체를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라고 답한 것이라 봅니다. 

그 근거는 예수께서 한 율법사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미22:40) 고 말씀하신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22:40)이란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율법사의 대화 속에서 저는 ‘성경에 기록된 것과 그것을 ’읽는 것(이해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설교자로서 기록된 말씀(성경)을 읽을 때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큰 고심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가장 명확히 가르쳐주는 교사가 있다면 모세와 예수님입니다. 모세는 구약시대의 최고 설교가이고 예수님은 신약시대의 최고 설교가시기에 모세와 예수님은 설교자들의 최고 롤 모델이란 점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2) 설교자의 롤 모델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우리의 롤 모델이신 모세는 구약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예수께서는 신약성경을 어떻게 이해하시고 선포하신 것일까요? 사실은 이런 질문조차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성경, 특히 창세기로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다섯 권의 책은 모세의 설교집이기 때문이며, 신약성경 역시 그 뼈대를 이루는 복음서가 예수님의 설교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설교 핵심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사장의 나라‘라고 봅니다. 출애굽기 19:4~6절을 보면 하나님의 명을 받아 애급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시내산에 이른 모세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언약의 내용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가 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출19:5-6).

’제사장의 나라‘란 ”죄인이 하나님이 정하신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을 찾아가서 제사장을 통해 제사를 드린 후 성막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속량을 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는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를 가장 처음 깨달은 인물이 베드로임을 그의 첫 번째 편지 2:9절이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셔서 언약을 맺은 이야기이고, 레위기는 죄인이 제사를 통해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안식을 누린다는 내용이고, 민수기는 거룩한 백성으로 거듭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야기고, 신명기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따라 제사장의 나라를 이룬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로써 창세기는 모세 설교의 서론이라고 한다면 출애굽기로부터 민수기까지는 본론이고, 신명기는 설교의 결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여호수아서로부터 말라기서에 이르는 모든 책도 결국은 제사장 나라에 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역사서는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배신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질책과 책망과 심판,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를 통해 다시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흥망성쇠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문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때와 지키지 못했을 때 언약 백성들이 겪는 희로애락에 관한 내용이고, 이사야서로부터 말라기서에 이르는 예언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켰는가, 지키지 않았는가? 그들이 왜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신하고 파기한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그들이 어떻게 회개하고 돌이켰으며, 하나님은 이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인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구약성경 전체는 결국 제사장 나라에 관한 이야기이고, 이를 배신하자 하나님은 그들과의 언약을 파기하시고, 새 언약을 세워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나라 곧 메시아 왕국을 세워 통치하실 것임을 예언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구약전서인 것입니다. 

신약 역시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옛 선지자들의 예언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첫 마디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4:17)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첫 번째 설교인 산상수훈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종결짓습니다(마5:3, 7:21).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모든 교훈과 모든 행적의 핵심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되어 있으며,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로부터 이탈하신 적이 없습니다(마4:17, 23, 막1:15, 마7:21, 25:1 등) 심지어 죽음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도 마지막 당부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행1:3)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란 어떤 나라일까요? 복음서에는 ‘하나님의 나라’란 표현은 많아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구체적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무엇 무엇과 같다’라고 하거나, 9가지 복(8 복이 아님, 마5:3-12)으로 표현하고, 서신서에서는 9가지 열매(갈 5:22-23), 3가지 하나님의 뜻과 4가지 당부(살전5:16-22)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구절 로마서 14:17 절 만이 가장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한 것입니다.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이란 믿음에 의한 의(롬3:22, 26, 27), 세상을 이기신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요14:27, 16:33, 20:19, 21, 26, 고전15:55-57), “끊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희락”(롬8:37-39)인 것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9가지 복(8복이 아님, 마5:3-12)이고, 9가지 열매(갈 5:22-23)이고, 3가지 하나님의 뜻이며, 4가지 당부(살전5:16-22)와도 같습니다. 결국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이, 천국(하나님의 나라 )이며, 이는 사후에서뿐만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서도 누릴 수 있는 ‘복’인 동시에(눅17:20-21, 마5:3-12), 성령의 열매이며(갈5:22-23),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처음 내려주셨던 복, 곧 ‘안식’인 것입니다(살전5:16-22)

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신약 성경의 4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말씀이고, 유일한 역사서인 사도행전은 하나님의 나라(통치)가 어떻게 온 세상에 전파되었는가를 증언하는 책이고, 로마서에서 유다서에 이르는 서신들은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 공동체’인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기록한 내용이고, 계시록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실체를 보여주는 내용인 것입니다. 

 

3) ‘하나님 나라’와 또 다른 주제들과의 관계

우리는 여기서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약의 제사장 나라와 신약의 하나님 나라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라는 의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같은 동시에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다’는 것은 제사장 나라의 완성이 하나님의 나라란 점에서 그렇고, ‘다르다’는 것은 “제사장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고, 그 실상은 하나님의 나라란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히8:5, 9:11, 10:1, 골2:17)”. 그러나 ‘제사장의 나라’나 ‘하나님 나라’나, 두 나라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안식’이고,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렸던 그 안식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며, 안식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이고, 그 완성이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구원, 영생, 복락, 평강, 풍성, 낙원, 안식은 ‘하나님의 나라’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만일 저에게 “신구약 성경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읽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서슴없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책이며, 구약은 제사장의 나라, 신약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언약으로 읽습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설교는 어떻습니까? 어떤 원칙과 기준에서 설교를 준비하십니까? 만일 예수께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서슴없이 “창세기로부터 말라기서에 이르는 구약전서는 제사장의 나라이고, 마태복음으로부터 계시록에 이르는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의 책으로 믿습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저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며, 하나님이 내 안에 오셔서 성령으로 통치하심으로써(갈2:20) 의와 편강과 희락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목표이고(롬14:17), 이것을 선포하는 것이 설교의 목적이라“(요5:39-40, 요20:31, 요일5:20)고 저는 답할 것입니다. 

”당신의 설교는 안녕하십니까?“ 이 질문은 제 자신에게 묻는 질문이며, 제 자신의 설교를 성찰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설교는 정말 안녕하십니까?“ 

 

 

 

   
원형수 목사 /
1947년 황해도 옹진에서 출생
1.4 후퇴 후 피란을 내려와
순천 매산고와 대전 목원대학,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기독교 대한 감리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강경제일교회, 군산 반석교회,
광주제일, 전주제일교회를 거쳐
호남선교연회 관리자를 역임한 후 2017년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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